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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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나는 일상 미스터리를 정말 좋아한다. 추리소설 중 가장 부담없이 읽는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히 추리소설로써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추리소설 애독자나 일반 독자들에겐 아리송한 말일 수 있겠다.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선뜻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일상 미스터리라 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가 원조라고 하는데 난 그 할머니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종종 본 지라 솔직히 별로 안 와 닿는다. 나는 주로 와카타케 나나미나 가노 도모코 같은 일본 일상 미스터리가 떠오른다.


 어쨌든 이 작가들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이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했다. 기타무라 가오루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에서도 크게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당대... 그러니까 80년대 후반 일본 추리소설계를 뒤흔든 작품의 저자라서 그런가 어딘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으로 <스킵>이나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을 읽어봤다. 읽을 때마다 '그 전설의 데뷔작이나 출간할 것이지...' 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작품이 드디어 출간됐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이 신본격 미스터리의 효시를 알렸다면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은 정반대의 작풍인 일상 미스터리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한다. 숱하게 명성을 들은 작품이라 사뭇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가 이 작품을 홍보하기를 일상 미스터리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퍽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일상 미스터리의 전형이자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복면 작가로 활동한 탓에 여성 작가로 오해를 받았다는데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는 섬세한 문체나 추리소설답지 않은 따뜻한 드라마와 일상의 작지만 놀라운 수수께끼와 진상들이 알차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일본 문화 중 하나인 라쿠고를 당최 알지 못하니 주인공과 엔시 씨의 대화나 일부 인용이 바로 바로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점은 참 아쉬웠다. 이건 외국 소설이라 어쩔 수 없는 문제긴 하지만... 그 외에도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의 시원한 결말보다는 여운을 주는 쪽으로 결말을 지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는 내내 어리둥절하면서 읽지 않을까 싶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좋고 싫음이 정확히 반반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작품인 '설탕 합전' 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알바 경험을 대입해 읽으니 공감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추리소설다웠고 작중의 미스터리가 적잖이 궁금증을 자아내서 꽤나 만족스럽게 읽었다.

 소설 본편과 무관한 듯 무관하지 않았던 주인공과 엔시 씨의 대화는 이 책의 백미다. 위에서는 바로 바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고 했는데 이는 둘 사이를 오가는 내용을 좀처럼 놓치고 싶지 않은 탓에 나오게 된 불만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에 옮긴 게 전부 그 대화 중에 나온 구절들인데 어떻게 보면 엔시 씨가 추리를 펼쳐 미스터리를 푸는 것보다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일상 미스터리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을까. 서두에 밝혔듯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일상 미스터리를 추리소설로써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수수께끼 해결에만 주력하지 않으며 인물간의 드라마나 뜻밖의 감동을 전해주는 일상 미스터리 특유의 작풍 때문에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설령 추리소설이라고 불릴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일상 미스터리는 오래도록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새삼 느끼기도 했다.

 오랜만에 읽은 일상 미스터리 작품이었는데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해도 역시 좋았다. 후속작인 <밤의 매미>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 부문)을 수상했다는데 그 작품 또한 기대된다.

하지만 나는 말입니다, 뜸을 뜨려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안에서만 가능한 옹고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20p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지는 않답니다.

그러면 일부, 이야기의 내용을 아는 사람만을 상대하는 건가요?

아니요. 일부도 아니고 단 한 사람, 자신입니다.

네, 젊은 날의 나를 상대하는 것이지요. 한 무대 한 무대를 순수한 기대를 안고 귀 기울여 들었던 나 자신. 모든 관객을 그 시절의 나라고 생각하고 공연하고 있답니다. 그 상대는 기만할 수 없어요. 그걸 기만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라쿠고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231~232p




하지만 한번 마음에 걸린 이상에는 거기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머리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데, 그 반대를 불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이 머리로 움직이는 인간의 슬픔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머리는 영원히 감정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 327p




......어떻습니까, 인간이란 존재도 아주 가치가 없지만은 않지요? - 4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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