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9








 네이버 책에 '고백'이라고 치면 이 작품이 최상단에 뜰 정도로 이 작품의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두 번째로 읽음에도 여전히 충격적인 내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제목의 어감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이 작품이 출간 당시에 불러일으킨 신드롬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덕에 더 주목받기도 했다. 영화는 소설과 거의 맞먹는, 어떤 부분에선 능가하기도 하니 못 본 사람은 꼭 보자. 특히 원작은 읽었는데 영화는 아직 못 봤으면 더더욱. 이 작품은 혼자만 알기에 너무 아깝다. 지금은 오히려 혼자만 알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략히 줄거릴 풀어내자면, 종업식 날 교사인 화자가 학생들에게 '얼마 전에 죽은 내 딸은 우리 반 학생이 죽였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미나토 가나에의 장기인 1인칭 화자 시점에 따른 독백의 묘미가 가장 잘 두드러진 작품인데 - 이 작품이 데뷔작인데 가장 뛰어나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묘사되는 인물의 심리가 일품으로 데뷔작 같지 않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솔직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가 이 작품과 유사하다면 유사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작품이 현실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다소 막장일지라도 광기 어리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고백>을 읽으면 이 세상에 광기에 물들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할까 의문이 다 든다. 딸을 잃은 엄마, 군중 심리에 물드는 아이들, 자기 자식을 과보호하는 엄마, 그리고 두 명의 살인자... 무엇보다도 우리와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말은 가벼울 수 있어도 글은 가볍지 않다던가.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실히 글은 말보다 무게가 있다.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서간 형체나 독백 형식의 글은 음성의 말과는 판이한, 남다른 진지함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글은 입바르거나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 자극적이고 동의를 얻어낼 수 없을지라도 자기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 위해 펜을 잡는 것이 아닐까. 난 이런 글이야말로 소설 속 등장인물을 빛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 <고백>은 그 부분에서 월등한 영역을 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법 이전의 인간의 복수심을 다룬 시점에서 이 작품의 시원시원함은 진즉에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들의 윤리 의식이 마치 시시껄렁한 것이라도 되는 양 숱하게 배반하는 인물들의 행동거지가 쾌감과 절망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런 막장이 다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론 동정심도 적잖이 든다. 특히 만악의 근원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소년 A의 파트는 유달리 몰입됐다.

 우리는 악인의 속내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악인을, 자기 행동이 충분히 악한 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악인은 자기가 악하게 보이길 원치 않아서 선한 사람보다 더 선한 척을 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심정으로 악행을 일삼았는지 듣기란 무척이나 힘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소설가들은 자신의 글로나마 악인의 숨겨진 속내를 그려내기도 한다. 대체로 상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일수록 그 속내를 복잡 미묘하게 그리는 것 같다. 일리는 있지만, 동정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 없는 사정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이번 재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을 하나만 꼽자면 단연 작가의 글의 마력을 들 수 있다. 충격적인 서사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지탱하는 심리 묘사도 수위가 세다. 수위 자체로만 보면 우리가 하나도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읽기 시작하면 빠져들 듯이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난 이를 작품 특유의 '가식 따윈 없는 속내 들추기'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평소 거의 외면하다시피 한 불편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이 작품이 제대로 해소시켜준 덕분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작품의 성공은 설명이 안 될 것이다. 기분 나쁜 추리소설이란 신조어 '이야미스' 장르를 개척한 작품과 저자를 떠올리면 우리들에게 불편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마냥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소설도 읽었으니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거의 대다수의 작품을 읽었지만 최근 출간작은 안 읽어서... 데뷔작을 능가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지만 그래도 다시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소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착한 일이나 훌륭한 행동을 하기란 힘듭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질책하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먼저 규탄하는 사람, 규탄의 선두에 서는 사람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무도 찬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규탄하는 누군가를 따르기란 무척 쉽습니다. 자기 이념은 필요 없고, ‘나도, 나도‘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착한 일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벌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 78p




바보일수록 변명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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