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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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이 작품도 꽤 오랫동안 챙겨본 만화였는데 드디어 다 읽었다. 20권 안팎으로 완결이 나는 작품은 차라리 기다렸다가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한 권 한 권 발매되기를 기다릴 땐 아무래도 전권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어느 순간 신간을 잘 안 찾게 되지 않은가. 막상 신권을 펼치면 특유의 압도적이고 감질난 연출에 금방 매료되지만, 기왕이면 이 작품은 역시 몰아서 보는 게 좋겠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답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테니.

 소재 자체가 원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 무척 궁금해하며 봤던 작품이다. 의외로 결말에 대해 사람들이 혹평을 하기에 걱정을 좀 했는데, 확실히 이야길 상당히 벌려놓은 것치곤 결말이 많이 허무한 편이긴 했다. 사실 이야기의 주역이 케빈 야마가타에서 케빈 굿맨으로 넘어갈 즈음인 80년대부터 이야기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키 마우스를 빌리 배트로 대체된 것을 제외하면 작품 속 이야기는 거의 실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시대가 점점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묘사가 빈약해지고 픽션이 가미됐던 것이다. 특히 9.11은 너무 뭉뚱 그려서... 전개상 미래 시점으로 가야 했기에 9.11을 안 짚을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초반에 케네디 암살의 오스왈드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빈약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그가 가미하는 픽션이나 가상의 인물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많은데, 초반에 나온 칸베에의 이야기나 뒤비비에의 부모님 이야기와 쿠루스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좀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아예 따로 단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물론 초반에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한 캐빈 굿맨 부모의 이야기도 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 작품에서 이렇게 캐빈 굿맨처럼 탄생에서부터 노년까지 쫓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운명이란 걸 잘 안 믿는 편이고 이 작품에서도 그런 표현을 안 쓰지만 후반에 케빈 굿맨이 그리는 만화가 미래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미약해보이는 한 개인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오한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만화'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에 대해서 이 정도로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작품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처음엔 '빌리 배트'의 정체가 짐작이 안 갔는데 갈수록 문화적 아이콘이 갖는 영향력에 대해 작가가 제법 잘 짚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이야기는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전형적인 5~60년대 스타일의 일본, 미국 만화에 대한 작가의 로망도 엿볼 수 있는 등 향수 어린 분위기를 작풍도 좋았다.


 다만 군데군데 보이는 일본 문화 예찬론은 가끔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창작이라지만 미키 마우스급 캐릭터인 빌리가 일본계 미국인이 오리지날이라는 건 그렇다 쳐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의 일본인들의 역할이 너무 두드러졌던 건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물론 일본엔 '왕년'이란 게 존재할 만큼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잘 나간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일본을 생각하면...... 나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왕년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 게 오히려 비참한 현재를 더욱 상기시키지 않냐고 누가 좀 옆에서 알려줬음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중립을 유지한다고 해도 자기 작품에서 자기 나라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게 당연한 듯하기도 한데 그런 일본인이 한둘이 아니라 우라사와 나오키라도 약간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음모론에 일본을 끼워맞추는 솜씨는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이 있는데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 단점의 극대화'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점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접한 독자는 아니지만 - 언젠간 다 읽을 생각이다. - 그래도 주변에서 너무 떡밥만 던지며 끄는 전개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 단점이란 말을 듣곤 했는데 <플루토>와 <몬스터>에선 그 말에 공감이 안 갔지만 안타깝게도 <빌리 배트>에서 그 말에 공감하게 됐다. 실제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해서 그런지 단편 소설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주제의식을 너무 장황하고 질질 끌면서 얘기하는 느낌을 없잖았다. 이사카 코타로의 <피쉬 스토리>란 책에 수록된 표제작이 비슷한 주제의식을 다뤘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보시길. <빌리 배트>의 주제의식을 그 작가 특유의 엉뚱하고 쌩뚱맞은 상상을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심오함이나 카타르시스는 단연 <빌리 배트>가 더 앞서지만, 세계사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미친 작화력에 관심이 없다면 그 작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만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이 됐기에 이 작품도 당연히 기대를 했고 남들이 뭐라든 나만큼은 재밌게 읽을 생각까지 했지만 결론적으론 기대에 못 미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애당초 설정 자체가 불명확하고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건 큰 문제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이렇게 이해는 안 가는데 몰입한 경우는 흔치 않아서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라며 감탄했었다. 당장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캐릭터나 이야기도 나중에 설명이 돼서 역시 불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론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손길이 있다며 그를 탓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같은데 그 무의식의 심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빌리 배트란 캐릭터나 그를 연출하는 방식도 유쾌해서 인상적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신파도 적절하고 깊숙하니 볼 만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왜 이렇게 결말에 실망했는지 짐작이 잘 안 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케빈 굿맨의 캐릭터가 덜 매력적이서 그런 건지 후반에서도 정체가 밝혀지는 일이 없이 빌리 배트는 도돌이표처럼 같은 애기만 하던 게 질린 건지, 아니면 지금도 내가 만화의 설정을 제대로 이해 못한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이야기의 구성이나 캐릭터면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성엔 흠집이 갈 만한 작품이 아닌데 이상하게 막판에 느낀 허무함이나 실망스러움에 대해선 말을 아끼게 된다. 매력이 뚜렷한 만큼 결말이 흐지부지한 걸 차마 내 머리가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참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을 그려낸 야심찬 작품이었지만 결말은 물론이고 소재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의외로 읽을 사람이 적은지 후기를 많이 접할 수 없던데 만약 읽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위에서 말했듯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서 읽길 추천한다. 띄엄띄엄 읽으면 내가 느낀 불만 그 이상의 불만을 느낄지도 모르므로. 그건 또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네.

사람은 그 박쥐의 도구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우리도 도구로만 그치지 않소. 고향을 잃고... 친구를 모두 읽으면서까지... 도구로 그칠 수만은 없었소. - 3권 제27화 ‘모모치 무예첩 제10권‘




너 하기 나름이야.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똑바로 굴러가게 할지는. - 13권 제108화 ‘너 하기 나름‘




이제 인생을 시작한 네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함께 인류도 끝나버리면 좋겠다 싶구나. - 14권 제116화 ‘지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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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와 더럽혀진 천사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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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이번 권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재해석했는데 내가 이 시리즈 통틀어 유일하게 원작을 읽어본 경우에 해당한다. <폭풍의 언덕>은 예전에 어린이판으로 읽어봤을 뿐이고 <인간실격>과 <좁은 문>은 읽다가 보류했다. 아마 이 시리즈에서 언급하는 고전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도 작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추리소설로는 엉성하고 연애소설로는 기괴하다고. 하지만 팬텀이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불멸의 매력이 있어 뮤지컬로 2차 창작돼 그야말로 대박이 됐다고. 신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는데 실제로 내가 원작을 읽었을 때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전에 처음 읽을 땐 <오페라의 유령>을 읽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그 책도 읽어야지 다짐을 했었다. - 이렇게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하는 게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확실히 이 작가가 자신이 재밌게 읽고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을 선정해 절묘하게 시리즈 속 이야기에 녹여내는구나 싶었다. 처음에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을 비밀리에 레슨을 해주는 팬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설정을 들었을 땐 너무 대놓고 따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이후에 나오는 전개는 오히려 <오페라의 유령>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비참하기 그지없어 더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프로가 되고자 예체능에 뛰어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건 알지만, 이런 문제를 청소년들의 원조교제 문제와 더불어서 엮어내다니, 민감한 소재를 잘도 풀어냈구나 싶었다.


 1권서부터 주인공 코노하에게 남모를 감정을 품어온 고토부키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에 복면 미소녀 작가였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코노하에게 있어 '더럽혀진 천사'는 상당히 분기점이 될 만한 에피소드였다. 예술계에서 재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고 재능이 원치 않을 정도로 너무 많아도 문제인 이중성도 다뤘는데 이 부분을 <오페라의 유령>의 화자 라울에게 대입하여 풀어내는 건 꽤 인상적이었다. 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은 라울이 화자고 주인공이라 할 순 있지만 그는 작중에선 활약이랄 게 없고 끝까지 팬텀에게 농락당하다가 작품이 끝난다. 그래서 그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팬텀이고 실제로 팬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팬텀은 시점을 달리하면 비참하게 살았고 누구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적으로나 그렇다는 거고 현실에서라면 대부분의 독자는 라울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오코 선배는 라울의 존재 의의가 그것밖엔 안 된다며 그저 찌질한 사내라고 여기는 것엔 반대한다. 라울의 모습은 평범한 독자들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게다가 라울은 석연찮긴 하지만 어쨌든 행복을 거머쥔다. 그 결말엔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토오코 선배는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건 아님을 강조하고자 극중 라울의 역할을 굉장히 신경써서 재해석한다.


 최근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서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앤디보단 레드가 아니냐며 내 나름대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탈옥에 성공한 앤디보다 희망을 위험하게 여겼지만 앤디처럼 드라마틱한 사람을 보고 생각의 변화가 생긴다는 점에서 레드가 관객을 대변한다는 논지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약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도 팬텀과 대조되는 면을 보여서 진정 작가가 강조하고픈 가치는 오히려 라울에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팬텀이 되기 싫어 라울이 되기로 한 코노하, 그리고 작중의 범인은 라울임에도 팬텀을 질투하거나 팬텀의 의지하는 등 상당히 여러 유형의 정신파탄자들이 등장해 <오페라의 유령> 못지않은 스트레를 받은 게 잊혀지질 않는다. 최근에 <우부메의 여름>을 만화로 읽었는데 그때 접한 몇몇 캐릭터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입장에선 잘해줬다지만 그게 피해자를 어찌나 기만한 건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에 비해 코노하는 이전보다 내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인지 전보단 그 심상이 덜 답답하게 읽혔다. 뭐, 오미 시로의 말에 지 혼자 멘붕해 실어증에 걸리는 듯한 묘사 때문에 답답함이 치밀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그렇게 쓴소릴 들어야 할 만큼 코노하가 한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에 관해선 둘이 나중에 대화를 나누는데 이 장면도 괜찮게 읽혔다. 약간 질질 끌어서 사족 같은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 받은 만큼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 다음 권에선 엄청난 멘탈 붕괴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 훈훈함도 있어야지, 안 그럼 코노하 녀석... 정말로 기절할 테니.



 p.s 얘기하다보니 이 글이 '더럽혀진 천사' 포스팅인지 <오페라의 유령> 포스팅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른 작품 얘길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본편이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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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스피리츠 2
아라카와 히로무, 토코 준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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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다시 읽고 중고서점에 팔아버려야지' 하면서 읽었다가 다시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된 본격적인 삼국지 마니아들을 위한 만화. 항상 삼국지 팬을 자처하는 내 팬심을 독특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소장 가치 높은 만화라 이번에도 중고서점에 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두고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 마니아인 두 만화가 토코 준과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이 만화는 흔히 볼 수 있는 삼국지 만화가 아니다. <삼국지연의>는 총 120장으로 이뤄진 역사 바탕 소설인데 각 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두 만화가의 대담, 그리고 그 대담 중에 있었던 재미난 농담을 개그의 명수(?)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4컷 만화가 두 편씩 수록됐다. 총 120번의 대담과 240편의 4컷 만화로 이뤄진 이 만화는 어지간히 삼국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금방 질릴 구성일 수 있겠으나 조금이라도 삼국지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유익하고 개그성 짙은 만화에 폭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팬심에 기대지 않으면 매력을 어필하기 힘든 책이긴 한데,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워낙에 팬층이 방대해서 혹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듯하다.


 주로 토코 준이 지식과 해설을, 아라카와 히로무가 개그와 뇌피셜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두 작가 중 아라카와 히로무의 역할이 아무래도 더 돋보일 수밖에 없다. 대담도 물론 재밌지만 아라카와 히로무만이 그릴 수 있는 4컷 만화가 아니라면 이처럼 만족스럽게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가끔은 쥐어짜듯 그린 개그도 있는 것 같았고 가끔은 내가 봐도 마니악한 개그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개그의 질이 고르게 뛰어났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진지한 작품을 그리는 사람은 개그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아니, 이 작가의 경우는 실로 그 두 가지가 완벽한 수준이라... 직전에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지만 토코 준 작가의 삼국지를 향한 애정이나 전문 지식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독자가 정사 삼국지나 <삼국지연의>를 텍스트로 접하지 않았을 테고 특히 나같은 90년대생 독자들에겐 이문열의 <만화 삼국지>나 코에이가 만든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로 더 친숙할 텐데 그렇다 보니 정작 진짜 삼국지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은 30% 정도가 창작이라는데 - 진짜로?! -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만화나 게임은 거기서 더 창작이 가미되니 내가 봐도 작위적이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특히 '진삼국무쌍'은... 아무튼, 토코 준이란 작가는 보통 삼국지 팬이 아니라서 그가 짚어주는 내용들은 모두 알차기 그지없었다. 중국어로 된 자료라도 읽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 정도로 사소한 내용도 있어서 이 정도는 돼야 삼국지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삼국지가 얼마나 대단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두 만화가의 분석, 삼국지 각 인물의 정확한 등장 및 퇴장 시기, 제갈량 사후에 있었던 강유의 출사표나 진이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다룬 것 등 놓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다면 역시 두 작가가 본격적인 삼국지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일 터다. 아예 두 권을 빼곡하게 4컷 만화로 채우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이문열과 이휘재의 <만화 삼국지>처럼 작정하고 그렸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전자와 후자 둘 다 만만찮을 것 같다. 전자는 개그 아이디어를 짜는 게, 후자는 어마어마하게 강도 높은 작업이 될 것이란 점에서. 더군다나 이 두 작가라면 보통 수준의 퀄리티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테니 아마 작업하다가 과로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겠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대해본다. 이만큼 삼국지를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설마 '스피리츠'란 부제를 붙인 대담집과 4컷 만화를 낸 것만으로 만족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 아라카와 히로무와 토코 준의 <만화 삼국지>가 출간될는지도 모르지.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다른 건 몰라도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삼국지 캐릭터들이 너무 귀엽고 매력적이라서 2차 창작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이건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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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오늘의 젊은 작가 24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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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6








 재미와 완성도를 막론하고, 나한테 있어서는 우리나라 문학에서 외국인이 등장하거나 외국이 배경이기만 해도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다. 원체 해외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희로애락이라든가 같은 지구인끼리 사사로운 '다름'을 근거로 배척하는 건 무의미하든가 하는 주제의식을 퍽 마음에 들어하기 때문인지 대체로 국적이 다른 인물이 한 명 이상 나오는 것만으로도 더 눈길이 간다.

 공교롭게도 내가 작년에 방콕으로 출국한 날에 출간된 이 소설은 내 개인적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방콕에 가져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의외로 우리나라엔 방콕을 배경으로 했다든가 태국 소설가가 쓴 문학 작품이 많이 출간되지 않았다. 지금 떠오르는 건 노르웨이 추리소설가 요 네스뵈가 쓴 <바퀴벌레>와 우리나라 소설가 김병운 씨가 쓴 에세이 <아무튼, 방콕> 정도인데 이 두 책과 지금부터 얘기할 <방콕>에서 묘사되는 방콕의 모습을 보노라면 참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방콕은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일 텐데, 이만큼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사건사고도 끊기지 않아 말 그대로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는 걸 절로 실감케 한다. 방콕에는 내가 5박 6일동안 여행갔던 경험과 위에서 언급한 <아무튼, 방콕>에서 묘사된 휴양지로서의 이미지도 있는 반면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자행되는 성매매나 테러, 코끼리 학대 등 어둡고 비참한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흔히 진지한 학술서나 소설에선 후자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묘파하곤 하는데 요번에 읽은 <방콕> 역시 이러한 경향에 꼭 들어맞는다. 4~5명의 인물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이 소설은 후반부에서 거의 모든 인물이 이야기의 무대를 방콕으로 옮기는데 그 도시의 여러 면모를 정면으로 그려낸다. 여러 면모라고 해봤자 거의 부정적인 면모뿐이라 실제로 그 도시에 가본 적이 없는 독자라면 머릿속에 '방콕=지옥도'란 공식이 들어서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의 소설적 과장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기껏해야 6일 정도 관광해봤다고 저렇게 둘러대려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아마 이 소설이 집필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에서 가장 볼 만했던 건 여러 비극이 뒤로 갈수록 중첩돼 새로운 비극을 낳는다는 식의 전개가 아니라 - 오히려 약간 산만한 면이 없잖아 조금 더 비중을 할애해 천천히 전개시켰으면 어땠으려나... - 사건이 일단락 지어진 뒤에도 변화가 일어난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우는 섬머의 이상보다 안위를 걱정하다가 상아 밀수꾼이라 착각하는 생면부지의 남자를 죽이고 벤은 약혼자에게 착각과 변명만 일삼다가 큰 망상에 빠져 살해당하고 와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국 남자에게 버림당한 태국 여자' 신세가 자기한테도 예외가 아닐 거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린은 실질적으로 훙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의 곁을 떠나고 문제의 인물 훙은 어느 순간부터 동정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반복한다. 섬머는 허울 좋은 소리를 하지만 어딘지 그녀 자신도 치료가 필요한 듯한 면모를 보이고 정인은 트라우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이는 정우와 정인 남매의 모친도 마찬가지다.


 아마 작가가 가장 강조하려고 했던 캐릭터는 섬머였던 것 같다. 실제로 섬머의 입에서 중요한 대사가 많이 나왔고 가장 이상적이라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도시인 방콕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중 섬머의 시선이 가장 흔들림이 없다. 그녀에게 태국은 관광 사업을 위해 코끼리를 학대하는 나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며 섬머의 말에 따르면 동물을 학대하는 장소는 사람에게도 좋은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은 어느 정도 맞고 그 외에도 섬머의 말 중에 괜찮은 말이 여럿 된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과는 다른 존재며 같아서는 안 된다는 논지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미안한 얘기지만 결국 그러한 전제는 우월감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월감 중에서 지적 우월감과 도덕적 우월감은 특히 위험한데, 왜냐하면 이런 우월감은 얼핏 표면적으로는 그저 바람직하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있어 이보다 우월감에 젖기 쉬운 명분도 없잖은가.

 섬머를 단지 미국의 백인 지식인 여성이란 카테고리 안에서만 해석하려고 하면 그녀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너무 한결같은 신념은 도리어 평면성을 띄는데 여기서 우린 문학 속에서 평면적인 캐릭터란 대체로 두 가지 이유에서 등장한다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는 그냥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반대로 사람들의 평면성을 조롱하기 위해서다. <방콕>에선 이 두 번째 이유가 훨씬 그럴싸하다. 마지막에 가장 평면적이었던 섬머가 심중에 뭔가 변화의 조짐이 있는 듯함을 암시하며 결말이 났던 걸 보면 자꾸 '세상만사를 한쪽으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작품의 주제의식을 해석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의식이지만 이 작품은 현란한 스토리텔링으로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기교를 구사해 생각보다 세련되게 와 닿는 편이다. 스토리텔링하니 하는 말인데, 너무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넘나드는 게 가끔 산만하긴 했지만 대체로 이국적이고 속도감이 있으며 선도 굵은 전개였던 터라 계속 현혹되며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의외로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우리나라 문학 중에선 잘 안 떠오르는데 앞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나갈 신인 작가로선 참 좋은 개성이 아닐 수 없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문체를 구사하기도 해 여러모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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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와 얽매인 바보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8.2







 '문학소녀'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다. 전편을 읽은 게 벌써 4년 전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이 시리즈도 틈을 두지 말고 계속 읽어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인 듯 보여도 실은 유기적으로 연결됐으니까. 적어도 코노하의 성장담이란 측면에서 이 흐름을 읽을 때마다 헤매지 않는 것이 관건이겠다.

 이번 에피소드의 모티브가 된 작품은 무샤노코지 사네아츠의 <우정>이다. 작품도 그렇고 작가도 국내엔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하게 다가올 법한 에피소드였다. 다행히 모티브가 된 고전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사랑 앞에 흔들린 두 남자의 우정을 다룬 이야긴데 우리나라의 현실로 옮기면 입대를 했더니 여자친구가 내 친구와 눈이 맞았더라는 식이다. <잘못된 만남>이나 <흔들린 우정>의 가사 내용도 연상된다. 물론 이 작가가 모티브로 선정했을 정도니 원작이 생각보다 가볍게 읽힐 작품은 아니리라. 다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10년도 더 전일 텐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출간이 안 됐다니... 그래, 이렇게 일본인만 알 법한 작품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문학소녀' 시리즈는 기존 고전 문학과 유사한 형태의 사건을 묘사해 등장인물들의 고난과 성장을 야기시키는 스타일을 전개시키기로 유명하다. 모티브로 삼는 작품들이 <인간실격>이나 <폭풍의 언덕>처럼 흔히 진입 장벽이 낮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아니라서 여타 라이트노벨 중에서도 이 시리즌 여러모로 돋보였다. 일단 고전 문학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나중에 원작에 도전하게끔 만드는 교육적인 효과도 있으며 기본적으로 발랄한 분위기와 상반된 수위가 있는 '심상'을 다룸으로써 품격이 있어 보였던 것도 차별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번 '얽매인 바보'는 코노하의 동급생 아쿠타가와의 과거사를 그렸는데 학교 가을 축제 때 <우정>을 원작으로 둔 연극을 올림으로써 아쿠타가와는 물론이고 코노하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쉽지 않은 구도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상당히 복잡한 전개 방식인데 라이트노벨 특유의 캐릭터 설정이나 분위기 때문에 - 나이가 들수록 라이트노벨의 작풍이 부담스러운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산만하게 읽힌 경향이 있으나 전개상 놓친 부분도 없으며 오히려 산만할 정도로 발랄했기에 작품의 수위가 중화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번 3편이 다른 작품들보다 가장 밝은 이야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코노하는 최근에 읽은 <우부메의 여름>의 세키구치 못지않게 어둡고 음침해서 읽는 내가 다 지쳤지만 그랬기에 그가 과거의 상처나 친구와의 관계를 잘 수습하는 결말의 쾌감이 더 진하게 다가온 것이리라.


 연극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일전에 읽은 하츠노 세이의 <퇴장게임>이 떠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그 작품도 추리소설이고 이 시리즈도 엄연히 추리소설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원작이 워낙 생소하기도 하고 작중에서도 원작의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언급을 하지 않아서 마지막 토오코 선배의 추리가 우리나라 독자들 한정으로 아무래도 불공정한 측면이 있었지만... 고전 문학에 박식한 작중 탐정역의 토오코 선배가 자신이 '문학소녀'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며;; 뜬금없는 멘트로 시작되는 추리는 고전 문학을 단서로 한 추리물이란 흔치 않은 설정의 백미를 선사해준다.

 최근에 고전까진 아니더라도 여러 이름난 소설이나 영화를 자주 접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엔 괜히 유명하면 더 안 보게 되는 심리가 있었는데 그것도 참 부질없게 여겨졌던 것이다. 고전 문학은 이것과는 좀 다른 심리로 멀리했었는데, 과거의 이야기가 생각만큼 현재의 나를 감동시키진 않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있다는 것에도 이의를 표한다는 건 아니다. 이번 '문학소녀' 에피소드는 너무 국내에 안 알려진 작품이라 고전 문학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던 건 아쉽지만 결말까지 읽으니 때론 유명세와 무관하게 개개인의 상황과 과거사에 반응해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도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편식을 차츰차츰 줄여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다음 에피소드 '더렵혀진 천사'는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브로 했는데, 그 작품은 읽어봤기에 특별히 기대가 된다. 4편을 읽을 땐 그나마 덜 헤맬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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