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스피리츠 2
아라카와 히로무, 토코 준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9.5







 '다시 읽고 중고서점에 팔아버려야지' 하면서 읽었다가 다시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된 본격적인 삼국지 마니아들을 위한 만화. 항상 삼국지 팬을 자처하는 내 팬심을 독특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소장 가치 높은 만화라 이번에도 중고서점에 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두고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 마니아인 두 만화가 토코 준과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이 만화는 흔히 볼 수 있는 삼국지 만화가 아니다. <삼국지연의>는 총 120장으로 이뤄진 역사 바탕 소설인데 각 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두 만화가의 대담, 그리고 그 대담 중에 있었던 재미난 농담을 개그의 명수(?)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4컷 만화가 두 편씩 수록됐다. 총 120번의 대담과 240편의 4컷 만화로 이뤄진 이 만화는 어지간히 삼국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금방 질릴 구성일 수 있겠으나 조금이라도 삼국지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유익하고 개그성 짙은 만화에 폭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팬심에 기대지 않으면 매력을 어필하기 힘든 책이긴 한데,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워낙에 팬층이 방대해서 혹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듯하다.


 주로 토코 준이 지식과 해설을, 아라카와 히로무가 개그와 뇌피셜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두 작가 중 아라카와 히로무의 역할이 아무래도 더 돋보일 수밖에 없다. 대담도 물론 재밌지만 아라카와 히로무만이 그릴 수 있는 4컷 만화가 아니라면 이처럼 만족스럽게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가끔은 쥐어짜듯 그린 개그도 있는 것 같았고 가끔은 내가 봐도 마니악한 개그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개그의 질이 고르게 뛰어났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진지한 작품을 그리는 사람은 개그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아니, 이 작가의 경우는 실로 그 두 가지가 완벽한 수준이라... 직전에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지만 토코 준 작가의 삼국지를 향한 애정이나 전문 지식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독자가 정사 삼국지나 <삼국지연의>를 텍스트로 접하지 않았을 테고 특히 나같은 90년대생 독자들에겐 이문열의 <만화 삼국지>나 코에이가 만든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로 더 친숙할 텐데 그렇다 보니 정작 진짜 삼국지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은 30% 정도가 창작이라는데 - 진짜로?! -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만화나 게임은 거기서 더 창작이 가미되니 내가 봐도 작위적이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특히 '진삼국무쌍'은... 아무튼, 토코 준이란 작가는 보통 삼국지 팬이 아니라서 그가 짚어주는 내용들은 모두 알차기 그지없었다. 중국어로 된 자료라도 읽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 정도로 사소한 내용도 있어서 이 정도는 돼야 삼국지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삼국지가 얼마나 대단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두 만화가의 분석, 삼국지 각 인물의 정확한 등장 및 퇴장 시기, 제갈량 사후에 있었던 강유의 출사표나 진이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다룬 것 등 놓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다면 역시 두 작가가 본격적인 삼국지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일 터다. 아예 두 권을 빼곡하게 4컷 만화로 채우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이문열과 이휘재의 <만화 삼국지>처럼 작정하고 그렸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전자와 후자 둘 다 만만찮을 것 같다. 전자는 개그 아이디어를 짜는 게, 후자는 어마어마하게 강도 높은 작업이 될 것이란 점에서. 더군다나 이 두 작가라면 보통 수준의 퀄리티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테니 아마 작업하다가 과로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겠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대해본다. 이만큼 삼국지를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설마 '스피리츠'란 부제를 붙인 대담집과 4컷 만화를 낸 것만으로 만족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 아라카와 히로무와 토코 준의 <만화 삼국지>가 출간될는지도 모르지.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다른 건 몰라도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삼국지 캐릭터들이 너무 귀엽고 매력적이라서 2차 창작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이건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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