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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평점 :
9.5
이 작품도 꽤 오랫동안 챙겨본 만화였는데 드디어 다 읽었다. 20권 안팎으로 완결이 나는 작품은 차라리 기다렸다가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한 권 한 권 발매되기를 기다릴 땐 아무래도 전권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어느 순간 신간을 잘 안 찾게 되지 않은가. 막상 신권을 펼치면 특유의 압도적이고 감질난 연출에 금방 매료되지만, 기왕이면 이 작품은 역시 몰아서 보는 게 좋겠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답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테니.
소재 자체가 원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 무척 궁금해하며 봤던 작품이다. 의외로 결말에 대해 사람들이 혹평을 하기에 걱정을 좀 했는데, 확실히 이야길 상당히 벌려놓은 것치곤 결말이 많이 허무한 편이긴 했다. 사실 이야기의 주역이 케빈 야마가타에서 케빈 굿맨으로 넘어갈 즈음인 80년대부터 이야기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키 마우스를 빌리 배트로 대체된 것을 제외하면 작품 속 이야기는 거의 실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시대가 점점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묘사가 빈약해지고 픽션이 가미됐던 것이다. 특히 9.11은 너무 뭉뚱 그려서... 전개상 미래 시점으로 가야 했기에 9.11을 안 짚을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초반에 케네디 암살의 오스왈드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빈약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그가 가미하는 픽션이나 가상의 인물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많은데, 초반에 나온 칸베에의 이야기나 뒤비비에의 부모님 이야기와 쿠루스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좀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아예 따로 단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물론 초반에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한 캐빈 굿맨 부모의 이야기도 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 작품에서 이렇게 캐빈 굿맨처럼 탄생에서부터 노년까지 쫓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운명이란 걸 잘 안 믿는 편이고 이 작품에서도 그런 표현을 안 쓰지만 후반에 케빈 굿맨이 그리는 만화가 미래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미약해보이는 한 개인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오한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만화'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에 대해서 이 정도로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작품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처음엔 '빌리 배트'의 정체가 짐작이 안 갔는데 갈수록 문화적 아이콘이 갖는 영향력에 대해 작가가 제법 잘 짚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이야기는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전형적인 5~60년대 스타일의 일본, 미국 만화에 대한 작가의 로망도 엿볼 수 있는 등 향수 어린 분위기를 작풍도 좋았다.
다만 군데군데 보이는 일본 문화 예찬론은 가끔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창작이라지만 미키 마우스급 캐릭터인 빌리가 일본계 미국인이 오리지날이라는 건 그렇다 쳐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의 일본인들의 역할이 너무 두드러졌던 건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물론 일본엔 '왕년'이란 게 존재할 만큼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잘 나간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일본을 생각하면...... 나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왕년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 게 오히려 비참한 현재를 더욱 상기시키지 않냐고 누가 좀 옆에서 알려줬음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중립을 유지한다고 해도 자기 작품에서 자기 나라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게 당연한 듯하기도 한데 그런 일본인이 한둘이 아니라 우라사와 나오키라도 약간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음모론에 일본을 끼워맞추는 솜씨는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이 있는데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 단점의 극대화'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점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접한 독자는 아니지만 - 언젠간 다 읽을 생각이다. - 그래도 주변에서 너무 떡밥만 던지며 끄는 전개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 단점이란 말을 듣곤 했는데 <플루토>와 <몬스터>에선 그 말에 공감이 안 갔지만 안타깝게도 <빌리 배트>에서 그 말에 공감하게 됐다. 실제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해서 그런지 단편 소설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주제의식을 너무 장황하고 질질 끌면서 얘기하는 느낌을 없잖았다. 이사카 코타로의 <피쉬 스토리>란 책에 수록된 표제작이 비슷한 주제의식을 다뤘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보시길. <빌리 배트>의 주제의식을 그 작가 특유의 엉뚱하고 쌩뚱맞은 상상을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심오함이나 카타르시스는 단연 <빌리 배트>가 더 앞서지만, 세계사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미친 작화력에 관심이 없다면 그 작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만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이 됐기에 이 작품도 당연히 기대를 했고 남들이 뭐라든 나만큼은 재밌게 읽을 생각까지 했지만 결론적으론 기대에 못 미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애당초 설정 자체가 불명확하고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건 큰 문제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이렇게 이해는 안 가는데 몰입한 경우는 흔치 않아서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라며 감탄했었다. 당장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캐릭터나 이야기도 나중에 설명이 돼서 역시 불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론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손길이 있다며 그를 탓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같은데 그 무의식의 심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빌리 배트란 캐릭터나 그를 연출하는 방식도 유쾌해서 인상적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신파도 적절하고 깊숙하니 볼 만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왜 이렇게 결말에 실망했는지 짐작이 잘 안 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케빈 굿맨의 캐릭터가 덜 매력적이서 그런 건지 후반에서도 정체가 밝혀지는 일이 없이 빌리 배트는 도돌이표처럼 같은 애기만 하던 게 질린 건지, 아니면 지금도 내가 만화의 설정을 제대로 이해 못한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이야기의 구성이나 캐릭터면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성엔 흠집이 갈 만한 작품이 아닌데 이상하게 막판에 느낀 허무함이나 실망스러움에 대해선 말을 아끼게 된다. 매력이 뚜렷한 만큼 결말이 흐지부지한 걸 차마 내 머리가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참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을 그려낸 야심찬 작품이었지만 결말은 물론이고 소재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의외로 읽을 사람이 적은지 후기를 많이 접할 수 없던데 만약 읽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위에서 말했듯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서 읽길 추천한다. 띄엄띄엄 읽으면 내가 느낀 불만 그 이상의 불만을 느낄지도 모르므로. 그건 또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네.
사람은 그 박쥐의 도구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우리도 도구로만 그치지 않소. 고향을 잃고... 친구를 모두 읽으면서까지... 도구로 그칠 수만은 없었소. - 3권 제27화 ‘모모치 무예첩 제10권‘
너 하기 나름이야.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똑바로 굴러가게 할지는. - 13권 제108화 ‘너 하기 나름‘
이제 인생을 시작한 네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함께 인류도 끝나버리면 좋겠다 싶구나. - 14권 제116화 ‘지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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