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와 얽매인 바보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8.2







 '문학소녀'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다. 전편을 읽은 게 벌써 4년 전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이 시리즈도 틈을 두지 말고 계속 읽어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인 듯 보여도 실은 유기적으로 연결됐으니까. 적어도 코노하의 성장담이란 측면에서 이 흐름을 읽을 때마다 헤매지 않는 것이 관건이겠다.

 이번 에피소드의 모티브가 된 작품은 무샤노코지 사네아츠의 <우정>이다. 작품도 그렇고 작가도 국내엔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하게 다가올 법한 에피소드였다. 다행히 모티브가 된 고전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사랑 앞에 흔들린 두 남자의 우정을 다룬 이야긴데 우리나라의 현실로 옮기면 입대를 했더니 여자친구가 내 친구와 눈이 맞았더라는 식이다. <잘못된 만남>이나 <흔들린 우정>의 가사 내용도 연상된다. 물론 이 작가가 모티브로 선정했을 정도니 원작이 생각보다 가볍게 읽힐 작품은 아니리라. 다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10년도 더 전일 텐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출간이 안 됐다니... 그래, 이렇게 일본인만 알 법한 작품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문학소녀' 시리즈는 기존 고전 문학과 유사한 형태의 사건을 묘사해 등장인물들의 고난과 성장을 야기시키는 스타일을 전개시키기로 유명하다. 모티브로 삼는 작품들이 <인간실격>이나 <폭풍의 언덕>처럼 흔히 진입 장벽이 낮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아니라서 여타 라이트노벨 중에서도 이 시리즌 여러모로 돋보였다. 일단 고전 문학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나중에 원작에 도전하게끔 만드는 교육적인 효과도 있으며 기본적으로 발랄한 분위기와 상반된 수위가 있는 '심상'을 다룸으로써 품격이 있어 보였던 것도 차별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번 '얽매인 바보'는 코노하의 동급생 아쿠타가와의 과거사를 그렸는데 학교 가을 축제 때 <우정>을 원작으로 둔 연극을 올림으로써 아쿠타가와는 물론이고 코노하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쉽지 않은 구도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상당히 복잡한 전개 방식인데 라이트노벨 특유의 캐릭터 설정이나 분위기 때문에 - 나이가 들수록 라이트노벨의 작풍이 부담스러운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산만하게 읽힌 경향이 있으나 전개상 놓친 부분도 없으며 오히려 산만할 정도로 발랄했기에 작품의 수위가 중화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번 3편이 다른 작품들보다 가장 밝은 이야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코노하는 최근에 읽은 <우부메의 여름>의 세키구치 못지않게 어둡고 음침해서 읽는 내가 다 지쳤지만 그랬기에 그가 과거의 상처나 친구와의 관계를 잘 수습하는 결말의 쾌감이 더 진하게 다가온 것이리라.


 연극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일전에 읽은 하츠노 세이의 <퇴장게임>이 떠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그 작품도 추리소설이고 이 시리즈도 엄연히 추리소설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원작이 워낙 생소하기도 하고 작중에서도 원작의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언급을 하지 않아서 마지막 토오코 선배의 추리가 우리나라 독자들 한정으로 아무래도 불공정한 측면이 있었지만... 고전 문학에 박식한 작중 탐정역의 토오코 선배가 자신이 '문학소녀'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며;; 뜬금없는 멘트로 시작되는 추리는 고전 문학을 단서로 한 추리물이란 흔치 않은 설정의 백미를 선사해준다.

 최근에 고전까진 아니더라도 여러 이름난 소설이나 영화를 자주 접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엔 괜히 유명하면 더 안 보게 되는 심리가 있었는데 그것도 참 부질없게 여겨졌던 것이다. 고전 문학은 이것과는 좀 다른 심리로 멀리했었는데, 과거의 이야기가 생각만큼 현재의 나를 감동시키진 않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있다는 것에도 이의를 표한다는 건 아니다. 이번 '문학소녀' 에피소드는 너무 국내에 안 알려진 작품이라 고전 문학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던 건 아쉽지만 결말까지 읽으니 때론 유명세와 무관하게 개개인의 상황과 과거사에 반응해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도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편식을 차츰차츰 줄여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다음 에피소드 '더렵혀진 천사'는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브로 했는데, 그 작품은 읽어봤기에 특별히 기대가 된다. 4편을 읽을 땐 그나마 덜 헤맬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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