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와 더럽혀진 천사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8.0







 이번 권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재해석했는데 내가 이 시리즈 통틀어 유일하게 원작을 읽어본 경우에 해당한다. <폭풍의 언덕>은 예전에 어린이판으로 읽어봤을 뿐이고 <인간실격>과 <좁은 문>은 읽다가 보류했다. 아마 이 시리즈에서 언급하는 고전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도 작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추리소설로는 엉성하고 연애소설로는 기괴하다고. 하지만 팬텀이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불멸의 매력이 있어 뮤지컬로 2차 창작돼 그야말로 대박이 됐다고. 신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는데 실제로 내가 원작을 읽었을 때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전에 처음 읽을 땐 <오페라의 유령>을 읽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그 책도 읽어야지 다짐을 했었다. - 이렇게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하는 게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확실히 이 작가가 자신이 재밌게 읽고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을 선정해 절묘하게 시리즈 속 이야기에 녹여내는구나 싶었다. 처음에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을 비밀리에 레슨을 해주는 팬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설정을 들었을 땐 너무 대놓고 따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이후에 나오는 전개는 오히려 <오페라의 유령>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비참하기 그지없어 더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프로가 되고자 예체능에 뛰어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건 알지만, 이런 문제를 청소년들의 원조교제 문제와 더불어서 엮어내다니, 민감한 소재를 잘도 풀어냈구나 싶었다.


 1권서부터 주인공 코노하에게 남모를 감정을 품어온 고토부키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에 복면 미소녀 작가였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코노하에게 있어 '더럽혀진 천사'는 상당히 분기점이 될 만한 에피소드였다. 예술계에서 재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고 재능이 원치 않을 정도로 너무 많아도 문제인 이중성도 다뤘는데 이 부분을 <오페라의 유령>의 화자 라울에게 대입하여 풀어내는 건 꽤 인상적이었다. 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은 라울이 화자고 주인공이라 할 순 있지만 그는 작중에선 활약이랄 게 없고 끝까지 팬텀에게 농락당하다가 작품이 끝난다. 그래서 그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팬텀이고 실제로 팬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팬텀은 시점을 달리하면 비참하게 살았고 누구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적으로나 그렇다는 거고 현실에서라면 대부분의 독자는 라울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오코 선배는 라울의 존재 의의가 그것밖엔 안 된다며 그저 찌질한 사내라고 여기는 것엔 반대한다. 라울의 모습은 평범한 독자들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게다가 라울은 석연찮긴 하지만 어쨌든 행복을 거머쥔다. 그 결말엔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토오코 선배는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건 아님을 강조하고자 극중 라울의 역할을 굉장히 신경써서 재해석한다.


 최근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서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앤디보단 레드가 아니냐며 내 나름대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탈옥에 성공한 앤디보다 희망을 위험하게 여겼지만 앤디처럼 드라마틱한 사람을 보고 생각의 변화가 생긴다는 점에서 레드가 관객을 대변한다는 논지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약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도 팬텀과 대조되는 면을 보여서 진정 작가가 강조하고픈 가치는 오히려 라울에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팬텀이 되기 싫어 라울이 되기로 한 코노하, 그리고 작중의 범인은 라울임에도 팬텀을 질투하거나 팬텀의 의지하는 등 상당히 여러 유형의 정신파탄자들이 등장해 <오페라의 유령> 못지않은 스트레를 받은 게 잊혀지질 않는다. 최근에 <우부메의 여름>을 만화로 읽었는데 그때 접한 몇몇 캐릭터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입장에선 잘해줬다지만 그게 피해자를 어찌나 기만한 건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에 비해 코노하는 이전보다 내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인지 전보단 그 심상이 덜 답답하게 읽혔다. 뭐, 오미 시로의 말에 지 혼자 멘붕해 실어증에 걸리는 듯한 묘사 때문에 답답함이 치밀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그렇게 쓴소릴 들어야 할 만큼 코노하가 한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에 관해선 둘이 나중에 대화를 나누는데 이 장면도 괜찮게 읽혔다. 약간 질질 끌어서 사족 같은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 받은 만큼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 다음 권에선 엄청난 멘탈 붕괴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 훈훈함도 있어야지, 안 그럼 코노하 녀석... 정말로 기절할 테니.



 p.s 얘기하다보니 이 글이 '더럽혀진 천사' 포스팅인지 <오페라의 유령> 포스팅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른 작품 얘길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본편이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한 탓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