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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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다시 읽으면 인상이 많이 달라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시 읽어도 인상이 거의 그대로인 작품도 있다. 비록 흔치 않지만 재밌게 읽었던 책이 10년 뒤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을 텐데, <남쪽으로 튀어!>가 딱 그랬다. 지금 읽어도 역시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대학 강의 때 교수님이 이 작품을 두고 대중 소설치곤 괜찮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난 그 말에 썩 동의하지 못했다. 일단 그 교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를 너무 잘 안 나머지 둘을 모르는 스타일이라 본인이 전공한 순수 문학만이 진리라고 여기셔서 대중 소설이라면 무조건 평가절하하고 보는 위인이다. 나는 <남쪽으로 튀어!>가 대중 소설'치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장르를 초월하여 그냥 잘 쓴 작품이니까. 700쪽이 넘는 분량이 쉬지 않고 넘어가는 가독성, 만화처럼 선명한 캐릭터, 폭주하는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리얼리티와 사전 조사 등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가 빼곡하고 수준 높게 구현됐다. 개중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단연 지로의 아버지인 이치로의 캐릭터성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내가 10년 전에 읽을 때와 지금 읽을 때 달리 느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치로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치로가 내 아버지라면 어떨까 하고 가정해보면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치로는 평범함과는 아예 담을 쌓은 인물인데 특히 첫 등장이 가관이었다. 연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국민이 되길 거부하겠다고 말하다니, 이보다 강렬한 등장은 없을 것이다. 옛 과격파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치로는 사고방식이 시위로 날뛰던 그 당시에 고대로 멈춰 있다. 한마디로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인물인데 어렸을 땐 이런 이치로가 그저 웃기기만 했다면 지금 읽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도 없구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첫인상뿐이지 책을 완독하고 난 다음의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치로가 민폐긴 해도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나 그렇지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거나 폭군은 아니라서 - 초반엔 독재자가 아닌지 의심됐지만... - 점점 호감이 생겼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게 좋았다. 아들에게 꼭 자길 닮을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말에서 이 책의 정체성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공산주의 찬양이 아님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정체성은 무리를 이루면 파벌도 만드는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안빈낙도가 어떤 형태인지 - 오히려 공산주의보단 무정부주의에 가까우려나. -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 이치로가 지로에게 자길 닮을 필요는 없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정진하되 남을 속여먹진 말라는 말이 이치로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주인공이 초등학생임에도 사상처럼 무겁고 위험할 수도 있는 소재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답게 주인공은 얘기가 어려워진다 싶으면 솔직하게 그런 얘긴 자기한테 해봤자 모른다고 독자들을 대변한다. 확실히 사상이 중요한 소재긴 하지만 그를 통한 계몽이 목표가 아닌 작품인 만큼 사상의 내용보단 사상을 갖고 행동하는 인물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덕분에 작품은 굉장히 유쾌하게 전개되는데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닌 뼈가 있는 유쾌함이라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의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삶이 아닌 패배할 것을 알고도 발버둥치는 삶에 호감이 느껴진다는 걸 작가가 제대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사상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는 걸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대단히 막힘없이 풀어낸 것,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10년이 지나서 읽어도 작가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었는데 다시 10년 뒤에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작가를 디스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만큼 잘 만든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만약 나온다면 독자 입장에서 너무 좋은 일이겠지만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p.s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다. 김윤석이 이치로 역을 맡았는데 - 배역의 이름은 최해갑 - 배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아버지가 주인공으로서 극이 전개된다. 내 기억으론 그래서 영화가 소설의 매력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고 보는데 이 부분이 다시 봐도 인상이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엄연히 아이의 성장담이었던 원작이 영화에선 어른의 기행으로 재해석된 감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무래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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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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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착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진심으로 착하지 않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문해보면 위험한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런 내용이 나온다. 오랜 시간동안 인권에 대해 공부해온 저자가 '결정 장애'란 말을 가볍게 말하고 다닌 것에 대해 누군가 지적한 일화가 나오는데 당시 그 지적을 받았던 저자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왜 나쁘며 나쁘다면 어떤 이유에서 나쁜 것이냐며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한다.

 책에선 우리가 평소에 차별이라고도 여기지 않았던 지점이 등장한다. 코미디언이 흑인 분장으로 웃기는 걸 시작으로 예맨 난민을 수용하길 가장 반대한 사람이 여성이란 것까지 가볍게 접할 수 있던 주제부터 깊은 주제까지 저자는 일관된 논리로 다뤄냈다. 대다수의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듯 이 책도 모든 말이 구구절절 옳게 들리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저자의 사고 방식이 좋았다.


 아까 언급한 프롤로그로 예를 들어보겠다. 난 '결정 장애'라는 표현의 논란엔 미묘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애'라는 단어가 단순히 장애 유무를 논하는 팩트를 넘어, 어떤 형태로든 욕설의 뉘앙스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정도로 모욕적인 표현이라면 '장애'라는 단어는 완전히 비속어/욕설로 분류됐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장애인이고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비장애인이라고 칭하자는 사회의 흐름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애'는 예전에 비해 욕설의 느낌이 순화된 듯하다고 여겨졌다.

 그렇다고 '결정 장애'가 아예 문제가 없는 표현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애매하다. 그래서 내가 평소 말하듯 섣불리 트집이라고 단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다. 더 순화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을 만한 표현이 있다면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장애'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부정적 어감은 아무래도 부정하기 힘드니까.


 책에는 수많은 좋은 구절들과 몇 번을 읽어도 아리송한 구절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이 한 가지 요소 때문에 책의 모든 내용이 좋게 와 닿았다. 어떤 논란을 마주했을 때, 혹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이나 생각하곤 했던 논리에 혹시 결함이 있을지 생각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이 책의 저자는 책을 쓰는 내내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전제가 뒤로 갈수록 설명이 부족했던 - '1부에서 그렇게 얘기했으니 이 다음부터 어련히 알아서 이해하겠지' 하고 쓰는 느낌을 받았다. - 2부와 3부의 아쉬움을 메꿔줬다. 물론 압도적인 흡입력의 1부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상 1부만 보면 근래 읽은 페미니즘 도서 중 가장 뛰어났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개인적으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란 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게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 말을 특권을 가진 당사자가 호의는 베풀 용의가 있어도 당연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엔 심리적 저항감이 심하다고 분석했는데 이게 꽤 그럴싸했다. 똑같은 말을 입장만 바꿔서 살펴보면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켰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서 이 '입장만 바꿔서'라는 말도 심층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말이지 않나 싶다. 역지사지만 잘 실천하면 세상 모든 갈등은 대번에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저자는 그렇게 일차원적인 해석을 내놓지 않는다.


 서로 반대되는 한두 가지의 입장만 바꿔선 택도 없으리란 걸 저자는 예맨 난민 이슈를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했다. 성별이 됐든 인종이 됐든 성소수자가 됐든, 사회적 약자는 다른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예맨 난민을 수용하지 말자고 반대하는 사람 중에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았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단지 하나의 정체성만 갖고 있는 게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여성이라도 날 때부터 한국 국적인 사람은 난민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성소수자여도 백인이라면 흑인보다 사회적 차별에 덜 시달릴 수 있다는 식으로. 이처럼 거의 완벽하게 사회적 강자에 속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완벽하게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사람은 극히 적듯 우리 각자에겐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고 설켜 있어 그토록 타인의 문제에 공감대를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항상 논란이 불거지고 사람들끼리 반목하는 것에 대해 나는 늘 한쪽만을 탓하며 얼른 이 갈등의 골이 사라지길 바라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꼭 이 책 덕분이라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완벽이란 개념은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하면서 페미니즘이 항상 논쟁거리인 게 지극히 당연하고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만약 페미니스트가 하는 말은 모두 옳다고 신봉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또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논쟁이 생기는 상황과 그 논쟁에 의해 충분한 토론과 사유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어느 순간부터 페미니즘 책은 은근히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으면서도 계속 찾아 읽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페미니스트라며 페미니즘 책을 그만 읽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 어떤 논쟁도 날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랬다간 타성에 젖길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겠지.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 -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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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6
타카노 이치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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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스포일러 있음


 최근에 시간 여행물을 접하면서 내가 시간 여행이란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가면서 발생하는 모순, 타임 패러독스 때문인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아예 타임 패러독스를 배제한 평행 우주를 다뤄서 그나마 좀 괜찮게 읽은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과거의 자신한테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과거 시점에서 친구가 살아봤자 그건 평행 우주에서의 일이므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과거의 친구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이 작품은 그럼에도 과거로 편지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어떻게 과거가 바뀔지도 모르는데 편지 같은 건 보내지 않을 것인지 묻고 있다.

 이 작품은 평행 우주 속 친구라도 구해겠다고 대답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를 구하기 위한 다른 친구들의 우정이 정말 눈물겨웠는데 순정 만화 특유의 감성으로 넘치는 듯 부족함이 없게 진심 어린 감정을 잘 전달해냈다. 개중에는 원래는 죽었어야 할 친구가 살게 되면서 자기 운명이 크게 바뀌게 될 - 아무리 그래도 슬하에 자식도 있는데 저렇게 헌신적이라니... 스와가 실로 성인으로 보였다. - 친구도 있어서 이들의 우정이 더욱 돋보였다. 과연 이렇게까지 타인을 살리고자 할 의지를 갖출 수 있을까? 작품에선 친구들의 편지가 어떻게 과거로 갔는지 그 과학적 매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대신 친구들의 마음이 진심이었기에 그들의 의지가 결실을 맺었음을 암시하며 진실된 마음이란 무엇인지 어필하고 있다.


 처음엔 이 작품의 답답한 감정선이 싫었다. 주인공 나호는 너무 자신감이 없고 카케루는 어떻게 손대기 힘들 정도로 유리 멘탈이다. 스와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의 캐릭터가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라서 중화가 됐지, 나호와 카케루만으론 이 작품을 완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결국엔 제3자에 불과해서 그렇게 느낀 건지 독자로선 둘의 마음이 엇갈리는 장면이나 자책하는 장면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또 개인 취향이지만 순정 만화 특유의 오글거리는 묘사도 거슬릴 때가 많아 짧지만 이래저래 완독에 있어 난관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래도 다르게 생각하면 그토록 답답한 전개가 무척 현실적인 연출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편지가 왔고 상황에 따른 조언이 적혔던들 그 말을 그대로 따르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미래의 나 자신한테 온 편지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과연 이 편지대로 움직였다 해도 좋은 결과가 나타날지 확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매우 답답하게도 왜 그 조언을 따라야 하는지 미래의 나호는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아 과거의 나호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는데, 이거야 전개를 위한 시적 허용이라 하더라도 과거의 나호가 너무 행동력이 떨어져 답답한 마음이 가실 길이 없었다. 도대체 답답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론 아까도 말했듯 그렇게 답답한 게 현실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에 와선 납득이 갔다. 솔직히 그래서 이야기가 더 재밌게 전개되기도 했고.


 대체로 시간 여행물에선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상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전제를 까는 것 같다. 그 말 그대로 작품에서 나호의 원래부터 소심했던 성격 때문에 기껏 미래의 자신이 보낸 편지를 수포로 만드는 선택이 질리지도 않고 반복된다. 이 장면 때문에 정말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상 미래를 바꾸기가 정말 힘들단 게 피부로 와 닿았다. 카케루도 마찬가지다. 얘는 아무리 주변에서 노력해도 어떻게든 자괴감에 빠진다. 어떻게 보면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하기가 쉽지 않음을 한숨 나오도록 잘 그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보다 나는 타인이든 미래의 나 자신이든 간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문제를 극복하기가,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래를 바꾸기가 어려움을 그린 것이라 봤다.

 난 원래 내 문제를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도 자기만의 문제로 벅찬데 거기서 내가 내 문제를 들어달라고 하는 게 찡찡대는 것 같아서 가급적 입을 닫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내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공감해주거나 몇 마디 해줬을 때의 효과를 깨닫고 나선 내가 그 전엔 정말 내 안에 갇혀 살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또 그와 반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너무나 진실된 마음으로 잘 전달하는 작품이라 느껴졌다.


 <오렌지>는 애니메이션, 소설,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그만큼 인기를 얻은 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 현재가 바뀌지 않더라도 과거라도 바꾸겠다는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것, 두 번째는 자살한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며 도움을 받는 관계임을 잘 전달한 것이겠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더군다나 진실 되게 그리기가 난해한 것도 있는데 모두 성공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한 작가가 대단했다. 원래 순정 만화에 호감이 있지 않았고 솔직히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도, 심지어 지금도 호감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이렇게 순정 만화를 불호하는 나 같은 독자도 매료시킨 걸 보면 확실히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고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매권 말미에 다른 단편 만화도 수록됐는데 그 작품은 뭘 어떻게 말하기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산만하고 정신없어서 그냥 <오렌지>가 엄청 뛰어난 작품이란 결론이 나오게 됐다. 그 작품만 수록되지 않았어도 다른 순전 만화도 찾아봤을 텐데... 일단은 그냥 <오렌지>를 완독한 것으로 만족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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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You Need is Kill 2 - 완결
오바타 타케시 지음, 사쿠라자카 히로시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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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스포일러 있음


 시간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다. 죽어도 전장에 출격하기 전날로 돌아가 영원히 전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자기 운명을 뛰어넘고자 최강의 전사로 거듭난다. 그 과정에서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는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한 사람을 만나면서 겨우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결국 끝없이 반복되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유일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 쇼킹한 서두부터 아주 비정한 결말까지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넓게 보면 SF, 세부적으로 보면 복선과 반전의 미학이 돋보이는 추리물로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일본 라이트 노벨계 최강의 작품이라고도 생각한다.

 안 그래도 깔끔했던 원작의 내용은 만화로 옮겨지면서 더욱 깔끔한 형태로 탈바꿈했다. 소설을 읽은지 꽤 됐지만 그런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도 생략된 부분들이 얼핏 보이긴 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생략된 요소들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들이 아니라서 읽을 때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 덕에 눈이 즐거워 페이지 넘기기에 바빠 자잘한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오바타 타케시의 그림을 <고스트 바둑왕>, <데스노트>, <바쿠만>에서 접한 나는 그 작가가 정적인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장르에 맞춰 그림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천재라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아쉽게도 2권으로 끝나는 내용이라 그림이 화제가 덜 된 모양인데, 이 작품도 <원펀맨>처럼 장편이었다면 무라타 유스케의 그림처럼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화끈한 그림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전개, 개성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통찰까지도 모든 요소가 부족함 없이 잘 맞물렸다. 일견 호불호가 갈릴 법한 비정한 결말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는데, 연출의 덕택인지 무리수로 여겨지지 않았다. 기껏 자기 처지와 똑 닮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래봤자 마음을 나눈 건 고작 하루 - 그것도 리타 입장에선 초면이나 다름 없던 상태였다. - 뿐이었던 것, 그 사람을 죽여야 미래로 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선택이 개연성 있게 그려졌다. 아무리 같은 시간이 반복되면 익숙해진다지만 그만큼 정신도 붕괴되던 주인공의 모습,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묘사되지 않았다면 주인공이 리타를 전력으로 상대하기로 마음 먹는 선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좋았던 부분은 정말 많지만 - 제목조차 마음에 쏙 든다.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 그 중에 마냥 새드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는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두 캐릭터가 하루 동안 찰나의 교감을 나눈 장면도, 루프를 벗어난 주인공의 허무한 뒷모습도 마찬가지다. 꼭 그런 결말이어야만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던데, 이건 철저히 호불호 문제인 것 같아 꼭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겠다. 실제로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할리우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정반대 스타일의 결말이었지만 나쁘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어떤 형태의 결말이든 개연성이나 그에 합당한 감정 묘사만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그냥 취향 문제일 수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내용에 차이가 없다면 시간 차를 두고 봤겠지만 소재만 같지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한 터라 바로 이어서 봤다. 영화 이야기는 영화 포스팅에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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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몬스터 - 또 하나의 몬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외 지음, 조미선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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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9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의 후일담을 그린 소설로 어렵사리 구했는데 - 다 알라딘 중고서점 덕분이다. - 나름의 값어치는 한 책이다. 그런데 후일담이라기엔 <몬스터>의 내용을 너무 복습하거나 혹은 작품 속에 나오지 않은 텐마의 과거를 비롯해 여러 캐릭터의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마저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해서 약간 당혹스러웠다. 일부러 <몬스터>를 읽은 다음 시간 차를 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그 작품을 접하고 바로 이 책을 읽을 걸 그랬다. 작년에 읽은 작품임에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덜 반가웠다. 뭐,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 그만큼 원작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는 반증이겠지만...

 제목대로 요한을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괴물을 쫓는 논픽션 형식의 소설로 특유의 사실감 넘치는 전개가 돋보였다. 실제 우리네 세상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사진이나 신문 기사도 첨부하는 등 제법 공을 들여서 처음엔 진짜로 벌어진 사건인 줄 알았다. <몬스터>가 정말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다뤘기에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기가 유독 용이했던 것 같다. 하여튼 기자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전개가 거듭되다 보니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점점 질리게 됐는데, 실제 기자라면 이렇게 글을 쓰리란 건 인정하지만 소설로는 가독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떠올랐다. 처음엔 진짜 사건인 척 묘사하는 저자의 짓궂은 장난도 가면 갈수록 별 감흥이 없게 됐는데 이야기는 <몬스터>의 거의 대부분의 요소에 빚을 지고 있어서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몬스터>의 내용, 특히 체코에서 벌어지는 2부의 내용이 특히 가물가물해서 그에 해당하는 소설의 내용도 쫓아가기 힘들었다. 정확히 어느 지점부터인지는 헷갈리지만 소설 본편의 사건, 기자가 요한 사건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그 사건과 <몬스터>의 사건과 겹치는 대목이 드러난 후부터 소설은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이미 집중력이 바닥이 난 시점에서 본편의 내용을 꺼내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그 뒤엔 결말이 금방 나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결말은 뭐, 예상대로 흘러갔고 그 결말의 내용조차 <몬스터>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어서 특별히 신선하다거나 충격적이거나 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몬스터>를 의식하지 않고 읽기엔 지루한 구석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자체적인 만듦새는 그럴싸하고 또 오히려 <몬스터>를 의식하고도 소설적 이야기에 걸맞은 스타일을 연출해내서 나중에 한 번은 더 읽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는 정말로 <몬스터>를 읽은 직후에 읽어야지 하고 생각 중이다. 그렇지 않았다간 그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테니...

적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인간을 총칭해서 ‘몬스터‘ 라고 부르는 동안은, 우리는 살인이라고 하는 행위를 없앨 수가 없소. 그들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이오. 괴물로 부르지 말고 우리와 똑같이 이름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요한이 무엇으로 존재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요. - 149p




실제 눈앞에 악마가 나타난다면 영혼을 헐값에 팔아서라도 사라진 창작력을 사버릴 것이다. ...다만 그 후의 작품에 자신의 의사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악마의 의사만 나타나게 되겠지만. - 3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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