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7.5







 내가 이 책을 군대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제법 인상 깊게 읽은 듯하다. 당시에 이용하던 수첩을 다시 펴보니 이 책에 9.5라는 점수를 매겼던데 지금으로선 그 숫자가 납득이 안 간다. 가볍게 읽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주제의식이 뻔하고 스케일이나 가독성도 미묘하고 무엇보다 작중에서 청각장애인이나 그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방식도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듯한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데 그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서 접하지 못했던 단순한 인물 묘사라 꽤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나는 귀머거리다>를 읽어서 장애인에 대한 상투적인 묘사에 유독 반감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웹툰을 접한 김에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을 집어든 거라... 차마 작품을 접하는 순서를 탓할 순 없겠다.

 연애소설이란 측면에서 보면 나름 괜찮은 작품이긴 했다. 청각장애인인 여자와 비장애인인 주인공이 필담을 통해 연애를 하는 장면 - 여담이지만 청각장애인은 연애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듯한데 바로 이런 독특한 방식의 연애 스타일이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은 연애 세포를 자극하고 주인공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거나 주변 사람에게 선뜻 자기 여자친구의 장애를 밝히길 거리끼는 장면은 연애소설다운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


 중간중간 다큐멘터리 제작에 종사하는 주인공의 일 이야기는 흐름을 끊는 감은 있었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생각하면 필요한 장면이긴 했다. 단, 주인공의 일 이야기가 가독성을 무지하게 갉아먹은 걸 보면 그렇게까지 분량을 잡아먹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분량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을 텐데, 어쩌면 주인공의 연애사에 비한다면 낯선 나라의 테러 이야기 같은 건 기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임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고도의 연출이었던 건지 생각해봤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작가를 '멕이는' 고도의 돌려깎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역자의 후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자의 섬세하고 성실한 해석은 어휘 수준도 높고 유난을 떠는 구석도 없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다 읽은 직후에 역자나 평론가의 해석을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처럼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은 작품의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역자의 해석엔 전부 동의하는 한편으로 이렇게도 평이한 작품에 이렇게나 훌륭한 후기를 쓸 수 있다니... 독자보다 원작자가 더 감사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잔인한 평가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작품이 다 마음에 들 순 없는 법이고 역자를 비롯해 다른 사람과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므로 역자의 해석에 공감이 가는 이상 여기서 작품에 대해 뭘 더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처음에 말했듯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건 내가 5년 전엔 이 소설에 9.5라는 점수를 매겼다는 것이다. 이게 단지 요번에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나는 귀머거리다>를 읽은 탓이라고 여기기엔 차이가 너무 심하잖은가. 5년 사이에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인상이 급변하기가 쉽지 않은데... 얼떨떨하면서 어떤 의미에선 무섭기까지 했다.



 p.s 원제인 '조용한 폭탄'을 '사랑을 말해줘'라고 바꾼 건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닭살 돋긴 해도 바뀐 제목이 핵심 주제를 더 잘 전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용한 폭탄'은 한 번에 와 닿지도 않거니와 어딘지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직설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은 거야. -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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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머거리다 - 안 들리는 젊은 처자가 솔직하게 쓰고 그린
라일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10








 나는 이 작품이 몇 권이 더 이어서 출판될 줄 알고 완결까지 다 읽고서 포스팅 쓰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출간 년도를 보니 2권, 3권이 출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작품을 그린 라일라 작가의 뜻을 생각해보면 더 화제를 몰고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할 작품인데 그렇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가 언제 청각장애인 작가가 직접 그린 청각장애인 웹툰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품인데.

 제목 그대로 <나는 귀머거리다>는 저자가 자신이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진지하게 풀어낸 만화다. 장애인을 그린 작품 중에 이보다 더 장애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품이 있을까 싶은데, 좋은 말인 한편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장애는 곧 개성이다' 라는 말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본다. 장애는 불행이자 치료의 대상이므로 동정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자 공존의 대상이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취지를 작가는 쉽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귀여운 그림체와 상반되게 다소 적나라하게 들릴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이 이를 반영한다. 귀머거리는 그 자체로는 욕이 아님에도 우리는 왜 욕처럼 들리는가? 작품을 읽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떠오른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장애 자체가 아닌 장애에 대한 인식이라고.


 책의 내용은 작가가 베스트 도전 시절에 그린 에피소드들이 수록됐고 실제 네이버 정식 연재 웹툰 버전과는 연출이나 그림, 그리고 분량 면에서 차이가 있다. 네이버 연재 당시엔 가장 화제성이 높은 시기다 보니까 그림체도 깔끔하고 - 그렇다고 책의 그림체가 지저분하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란 뜻이다. - 매 에피소드마다 마지막 부분에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는 등 단일 에피소드다운 완결성이 강조됐다. 이 차이는 한번에 쭉 읽을 수 있는 책과 달리 연재 웹툰은 매 에피소드를 주마다 - 정확히는 주에 두 번씩. - 끊어서 볼 수밖에 없으므로 스토리물이든 옴니버스물이든 임팩트 있는 마무리가 요구되는 것에서 비롯된 차이겠다.

 책도 좋지만 그래도 연재 버전이 더 좋았는데 그 이유를 100화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작품의 깊이가 더해진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즈음부턴 작가가 이 작품을 왜 그렸고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주변 친구들과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가볍고 흥미 위주로 다루기엔 민감한 소재다 보니 작가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라도 고민이 많았던 듯하다. 흥미롭게도 그런 고민을 작품 내내 풀어내니 독자 입장에선 깊이감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부분이 다뤄지지 않은 이 책의 짧은 분량이 아쉽게 느껴졌다. 아직도 연재 분량이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 게 아까운데 그나마 연재분이 유료로 바뀌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쉽게도 이 책도 이젠 절판됐는데 혹시라도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네이버 완결 웹툰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을 접해보길 바란다. 유료로 바뀌기 전에...


 청각장애인을 비롯해 장애인 당사자들이나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꼽는 작품이라고 하면 이 작품의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일단 진입 장벽이 무척 낮으니 부담없이 읽으라고 해도 선뜻 받아들일 사람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 작품이 완결된 2017년을 기준으로도 그렇게 진일보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인데...... 꼭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식 상관없이 그냥 재밌는 웹툰을 찾는다고 해도 난 이 작품을 꼽을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내가 봤을 때 와난의 <어서오세요, 305호에!>처럼 소수자 얘기인 것과 무관하게 일단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단 점에서 네이버 웹툰이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서 상황 자체가 재밌게 풀렸던 일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나 특정 사람 때문에 우울했던 일화, 청각장애인이기에 장애에 대해 사람들과 사회의 인식이 열악하단 걸 느낀 것 등 이 작품에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청각장애인의 세계가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이 세계를 접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신선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청각장애인에 대해 오해했거나 간과했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난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를 감상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준에 가장 부합했던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작품을 주변에 많이 추천하곤 했는데 이렇게 포스팅으로 쓰려고 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워낙에 작품의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오히려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을 써야 했던 이유가 있다. 이미 이 책도 절판이 된 마당에 이 책을 홍보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지만, 이 작가에게 나처럼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꼭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으면 진작에 이 책의 포스팅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작품이 완결된지 3년이 넘었는데 작품 활동이 뜸한 걸 보고 이렇게 묻힐 작가가 아닌데... 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최근에 <토요일의 세계>라는 창비의 청소년 성장 만화 단편선에 이 작가의 작품이 수록된 걸 발견했다. 단편인 게 약간 아쉽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던 나로서 참 반갑기 그지없던 소식이었다. 그 책을 조만간 읽을 생각인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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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의 기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9.4







 이사카 코타로의 데뷔작은 작가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몽환적이고 심오하며 나쁘게 말하면 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여느 때처럼 센다이가 아닌 100년 넘게 외세와 단절된 가상의 섬 오기시마이고 말하는 허수아비가 등장하며 그 허수아비는 이방인 이토에게 '당신은 이 섬에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올 사람'이라고 예언한다. 이윽고 범죄가 발생하고 머잖아 범인이 밝혀지는데 사건의 트릭이나 동기가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결이 아주 다르다. 이 작품의 배경과 소재에 매료되지 않으면 '긴 분량에 걸쳐 고작 요런 이야기나 하려 했냐'고 누군가는 따지려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스케일은 미묘하지만 분위기가 중요한 작품이라 이사카 코타로의 팬을 제외한 독자한테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 읽으니까 이 작품이 전보다 더 심오하게 느껴졌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 한 작품에 녹아든 내용이 방대해서 축약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크게는 편의점 강도 용의자인 이토가 경찰로부터 도망치다 오기시마에 오게 된 것, 그 이토가 그 섬에는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올 사람이란 예언이 나온 것,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의 동기나 사건이 벌어질 당위성이 도통 짐작도 안 간다는 것, 한편 섬의 바깥에선 이토의 동급생이자 절대악이라 할 수 있을 경찰 시로야마가 이토를 잡으려고 하는 것, 허수아비의 조언에 따라 끝마무리가 다소 아쉬웠던 전 여자친구 시즈카에게 이토가 편지를 보내는 것 등으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겠다. 쑥쑥 넘어가는 가독성과 별개로 난해하기론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키는데 데뷔작을 읽으니 이 작가가 왜 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불렸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이후에 작가가 펼쳐보일 이사카 월드의 근간으로 삼을 만한 작품으로 팬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할 작품인데 특유의 유머 감각과 골때리는 캐릭터, 무시할 수 없는 정교한 퍼즐식 구성, 그리고 특유의 철학과 음악에 대한 예찬 등은 이사카 코타로가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데뷔작임에도 능수능란하게 그려낸다. 유일하게 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절대악 시로야마의 캐릭터성인데, 이후의 작품에도 잔인한 캐릭터나 상황이 많이 그려지지만 시로야마는 유독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개인적으로 사이코패스 캐릭터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돈데 비중은 적지만 등장할 때마다 하는 짓거리가 가관이라 그의 악행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특히 이만한 악인이 퇴장은 또 정말 어이없게 이뤄져서 정말이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캐릭터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만 생각하면 난 꼭 쿠엔틴 타란티노가 생각난다.

 워낙에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두 캐릭터, 말하는 허수아비 유고와 무차별 심판자인 사쿠라에 대해서는 꼭 언급해야겠다. 일단 유고부터. 유고는 외세와 100년 넘게 단절된 오기시마에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캐릭터다. 허수아비지만 말을 하고 미래를 볼 줄 알지만 예언을 하진 않고 자신의 몸이 박힌 지면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지만 섬 바깥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모순된 존재가 바로 유고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섬 주민에게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지만 한편으로 그 어떤 사건이나 재앙도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 없어 원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이래저래 탄생의 배경이며 존재 이유를 상식적으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 이 작품에선 마치 추리소설의 명탐정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최근 작품을 보면 이사카 코타로가 추리소설을 상정하고 쓴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지만 데뷔작만 보면 영락없이 자기 스타일대로 추리소설 한 권을 쓴 느낌이 역력한 게 흥미로웠다. 단, 정통적인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먼데 굳이 분류하자면 메타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이 작가가 은유한 추리소설의 철학적인 결함이나 명탐정의 역할에 대한 고뇌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고뇌에 필적할 정도이며 신선하기로는 작가의 여느 작품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의 메인 사건은 시시할지언정 사유나 주제의식은 탄탄하기 그지없었는데 혹자는 추리소설을 쓰려다 실패한 작품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5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은 내가 그때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작가의 고뇌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걸 보고 그렇게까지 매도하고 싶진 않았다. 반대로 이런 식으로 추리소설에 접근할 수 있구나 싶어 5년 전보다 더 신선하게 읽혔다. 아마 추리소설 독자라면 주제의식 면에선 높이 평가할 사람이 많으리라 본다.

 이번엔 사쿠라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시로야마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로 옛날에 읽은 어느 후기에서 누군가가 그 둘은 동전의 앙면과도 같다고 분석했던데 난 그 분석에 대해선 좀 아리송하다. 유명 영화의 악역으로 비유하자면 시로야마는 혼돈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점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닮았고 사쿠라는 복불복의 재난이라 평가받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인만의 기준으로, 나름의 개똥 철학과 독선적인 행동력으로 섬의 시끄러운 인간을 총살시키는 사쿠라는 섬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경찰도 인정해주는 공인된 심판자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공인된 심판자치고 자아도취하는 구석이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이 인간에게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살인의 기준 자체가 터무니없는 데다가 그의 살인이 과연 정당한 심판이었는지 의심을 하는 섬 주민이 아무도 없어 이 정도면 무정부 사회와 뭐가 다른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데 작가는 이 의문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다.


 섬에서 사쿠라의 존재가 용인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유고가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매커니즘보다 더 논란이 될 만한 지점일 것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사쿠라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지금도 헷갈리는데, 추측하자면 시로야마처럼 경찰을 가장한 절대악이 있듯 - 여기서 섬뜩한 건 시로야마는 자기 악행을 보다 교묘하고 성공적으로 달성해나가기 위해 경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가 정의의 심판이라 여기는 것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결함투성이일지도 모른다고 암시하기 위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비판적인 복종에 대한 비판이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마왕>에서 많이 다뤄진 걸 생각하면 그리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닌 듯하다. 외세와 단절돼 폐쇄성이 적잖은 오기시마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주 확신하긴 좀 그렇지만 페쇄성 짙은 사회일수록 무비판적인 복종은 쉽게 이뤄지는 법인데, 작가가 어디까지 의도했는지 몰라도 무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오기시마의 폐쇄성을 강조하고자 사쿠라란 캐릭터가 탄생하진 않았는지 감히 추측을 던져본다.

 저번에 읽었을 땐 시시한 작품이라 여겼는데 다시 읽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다시 읽으니까 작품의 내용이 더 심오하게 다가온 것도 놀라웠고 저번 포스팅과는 인상 깊은 구절이 다른 것도 신기하고 이번 포스팅이 훨씬 긴 것도 묘하게 보람이 느껴진다. 아마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어쩌면 두 번도 더 읽을지 모르겠는데 몇 년 뒤가 될지 몰라도 그때마다 인상이 다를 것 같아 미래의 그때가 사뭇 기대된다.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408841419

 이건 5년 전 포스팅.

 

 

 

 

 

 

인상 깊은 구절

 

 

 

인생이란 건,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마찬가지다. 너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있어도 너의 위치는 어느 틈엔가 저 앞으로 나가 있지. 그 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흘러가는 거야. 도착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어. 제멋대로 그곳을 향해 간다 이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기가 있는 곳만큼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고들 생각해. - 53p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 이것은 인간만이 갖는 몹쓸 속성일지도 모른다. - 70p


생각해 봐, 그렇잖아. 저 다나카의 바람이 뭔지 알아? 만일 신이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쳐. 저 사람이 뭘 빌 것 같아? 난 알아. 저 다나카라는 남자는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걷게 해 주세요.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똑바로 걸어 보고 싶어요.'라고 할 거야, 틀림없어.

(중략) 그 기적이 나에겐 이미 이루어졌잖아. (중략) 나는 평범하게 걷고 있잖아. 저 남자가 신께 비는 소원이 나에게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그러니 나는 훨씬 낫다 이거지. 안 그래? - 115p


답장은 올까?

올 미래도, 오지 않을 미래도 있죠. 가능성은 양쪽 다 있단 말입니다. - 143p


이 명탐정이라는 인물은 뭘 위해 있는지 알아? 우리를 위해서야. 바로 이야기 밖에 있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시시해. - 159~160p


당신은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언지 아는가?

음악과의 교감?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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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수에 탐닉하다 - 푸드헌터 이기중의 소멘.우동.소바.라멘 로드
이기중 지음 / 따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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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일본 여행에 있어 먹는 걸, 특히 면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꽤 흥미로웠던 책이다. 이 책은 소멘을 시작으로 우동, 소바, 라멘으로 이어지는 본격 일본 면요리 기행기인데 다루는 요리 중에 소바의 비중이 단연 높았고 그 다음으로 근소하게 라멘의 분량이 높았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일본에선 면요리가 우리나라 국밥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요리구나 싶었다. 각 면요리별로 대표적인 맛집을 탐방한 작가의 집념 역시 대단했다.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몇 번에 걸쳐 방문을 했으니 돈도 적잖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나마 일본이라 부담이 없었던 것이려나.

 책의 전반적인 흡입력은 TV 방송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주제로 한 기행기란 측면에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연상됐는데 전문성이나 시각 자료나 뭐로 보나 그 프로그램보다 한 수 아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리의 유래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다양한 종류의 면을 다룬 것, 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높이 살 만했다. 개인적으로 사진과 텍스트의 비중이 적절하게 어울린 건 좋았지만 텍스트 자체는 다소 평이하고 반복적인 감이 있는 등 작가의 문장력 자체는 특기할 구석은 없던 건 아쉬웠다. 물론 다양한 일본 면요리에 대한 소개라는 목적에는 충실한 글이므로 애초에 이 이상의 문장력을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다. 글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불만이랄 게 나올 수가 없는 책이었다.


 의외로 내가 이 책에 소개된 가게를 3곳을 가봤다는 게 신기했다. 하코다테의 시오라멘 아지사이, 후쿠오카의 이치란과 잇푸도인데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가 아닌 책에서 접하니까 괜히 반갑고 그랬다. 책에 소개된 다른 가게 중 관심이 가는 가게가 많았다. 시마바라의 소멘 가게나 현 전체에 우동집이 널린 가가와 현, 나고야의 기시멘, 모리오카의 냉면, 교토의 청어 소바, 삿포로의 미소라멘, 아카유의 카라미소라멘, 토야마의 블랙라멘, 와카야마의 돈코츠쇼유라멘, 히로시마의 츠케멘, 규슈의 구루메와 구마모토 라멘 등 - 많기도 하다. - 가보고 싶은 가게들이 많이 소개됐다. 위에서 문장력이 평이하다 했지만 식욕을 자극하기엔 충분히 맛깔나기에 새벽에 읽는 게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시국도 시국이고 한일 관계도 너무 나빠져서 예전처럼 자주 여행을 못 갈 거 같지만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을 찾아가보자고 다짐했다. 오히려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건지 책에 소개된 가게들이 유독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는데... 꼭 우동이나 라멘을 먹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시국과 양국의 갈등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국내의 맛집을 찾아다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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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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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다시 읽으면 인상이 많이 달라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시 읽어도 인상이 거의 그대로인 작품도 있다. 비록 흔치 않지만 재밌게 읽었던 책이 10년 뒤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을 텐데, <남쪽으로 튀어!>가 딱 그랬다. 지금 읽어도 역시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대학 강의 때 교수님이 이 작품을 두고 대중 소설치곤 괜찮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난 그 말에 썩 동의하지 못했다. 일단 그 교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를 너무 잘 안 나머지 둘을 모르는 스타일이라 본인이 전공한 순수 문학만이 진리라고 여기셔서 대중 소설이라면 무조건 평가절하하고 보는 위인이다. 나는 <남쪽으로 튀어!>가 대중 소설'치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장르를 초월하여 그냥 잘 쓴 작품이니까. 700쪽이 넘는 분량이 쉬지 않고 넘어가는 가독성, 만화처럼 선명한 캐릭터, 폭주하는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리얼리티와 사전 조사 등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가 빼곡하고 수준 높게 구현됐다. 개중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단연 지로의 아버지인 이치로의 캐릭터성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내가 10년 전에 읽을 때와 지금 읽을 때 달리 느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치로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치로가 내 아버지라면 어떨까 하고 가정해보면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치로는 평범함과는 아예 담을 쌓은 인물인데 특히 첫 등장이 가관이었다. 연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국민이 되길 거부하겠다고 말하다니, 이보다 강렬한 등장은 없을 것이다. 옛 과격파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치로는 사고방식이 시위로 날뛰던 그 당시에 고대로 멈춰 있다. 한마디로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인물인데 어렸을 땐 이런 이치로가 그저 웃기기만 했다면 지금 읽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도 없구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첫인상뿐이지 책을 완독하고 난 다음의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치로가 민폐긴 해도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나 그렇지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거나 폭군은 아니라서 - 초반엔 독재자가 아닌지 의심됐지만... - 점점 호감이 생겼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게 좋았다. 아들에게 꼭 자길 닮을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말에서 이 책의 정체성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공산주의 찬양이 아님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정체성은 무리를 이루면 파벌도 만드는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안빈낙도가 어떤 형태인지 - 오히려 공산주의보단 무정부주의에 가까우려나. -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 이치로가 지로에게 자길 닮을 필요는 없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정진하되 남을 속여먹진 말라는 말이 이치로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주인공이 초등학생임에도 사상처럼 무겁고 위험할 수도 있는 소재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답게 주인공은 얘기가 어려워진다 싶으면 솔직하게 그런 얘긴 자기한테 해봤자 모른다고 독자들을 대변한다. 확실히 사상이 중요한 소재긴 하지만 그를 통한 계몽이 목표가 아닌 작품인 만큼 사상의 내용보단 사상을 갖고 행동하는 인물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덕분에 작품은 굉장히 유쾌하게 전개되는데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닌 뼈가 있는 유쾌함이라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의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삶이 아닌 패배할 것을 알고도 발버둥치는 삶에 호감이 느껴진다는 걸 작가가 제대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사상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는 걸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대단히 막힘없이 풀어낸 것,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10년이 지나서 읽어도 작가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었는데 다시 10년 뒤에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작가를 디스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만큼 잘 만든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만약 나온다면 독자 입장에서 너무 좋은 일이겠지만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p.s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다. 김윤석이 이치로 역을 맡았는데 - 배역의 이름은 최해갑 - 배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아버지가 주인공으로서 극이 전개된다. 내 기억으론 그래서 영화가 소설의 매력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고 보는데 이 부분이 다시 봐도 인상이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엄연히 아이의 성장담이었던 원작이 영화에선 어른의 기행으로 재해석된 감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무래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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