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10


 국내에 번역된 일본 문학 중 남자는 양억관, 여자는 김난주가 번역을 도맡는다, 부부인 두 사람이 다 해먹는다는 등 우스겟소리가 있을 만큼 번역가 김난주 씨의 작업량은 실로 엄청난 편인데, <별을 담은 배>는 그 김난주 씨가 재번역을 하게 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소설이다. 말인즉슨 이전에 한 번역이 성에 차지 않아 다시 번역했다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이 소설을 다시 펼쳐봤다.

 <별을 담은 배>는 나도 십여 년 전에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며 당시 후기를 쓸 때도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는 등 감상을 남기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던 기억이 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디테일한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고, 그 탓에 김난주 씨가 이전의 번역에서 아쉬움을 느꼈고 다시 번역할 땐 어떻게 개선했는지는 하나도 파악할 수 없었다. 소기의 목적은 흐지부지됐지만 시작이 어쨌든 기억에 잊힌 멋진 작품 하나를 다시 읽게 된 것에 더없이 만족감을 느낀다. 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아마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 대해 얘기할 때 김난주 씨의 재번역이라든가, 아니면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부차적인 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격찬을 아끼지 않는 상당수의 독자들 모두 책의 마지막 수록작 '별을 담은 배'에서 조선인 위안부 미주와 시게유키의 이야기에 전에 없는 울림을 받은 것이 한목했을 터다. 일본인 입장에서 왜곡 없이 바라본 조선인 위안부의 비극적인 처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핵심 요소였고, 그전까진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진 독불장군 시게유키의 반전 과거가 드러남으로써 사랑엔 한 사람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는 극단성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킴과 동시에, 이 작품이 캐치 프레이즈대로 '세속적인 행복보다 자유로운 불행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납득시켜주는 역할까지 겸해 압도적인 여운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이는 한국인 독자라서 후하게 하는 말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의 독자라도 비슷하게 얘기하리라 확신한다.

 이 작품은 불륜은 기본에 이복 남내의 금단의 사랑 등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지만, 작중 시게유키의 말마따나 사랑과 성에 관한 문제는 만연한 것인데 꼭꼭 숨겨 얘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괜히 더 비밀스럽고 더 음습해지는 것 같다. 책의 수록작 모든 이야기에 이 말이 해당되진 않지만 대체로 사랑에 죽고 사는 이들의 방황이란 점에서 이 작품이 울리는 바는 국경을 넘어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론 표제작 '별을 담은 배'와 더불어 미쓰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왜 나는 나일까'도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열정도 존재감이 사라지는 심리와 그런 무력감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건전하든 불건전하든 어딘지 연민을 자아내 어딘지 가장 이입이 되는 이야기였다. 미쓰구의 딸인 사토미도 마찬가지였다. 얘는 사랑과 장래 모두 순탄치 못한 과정을 겪거니와 배신을 당하기도 배신을 하기도 하는 등 작중 인물 중 유일하게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극적인 일을 겪기에 희로애락의 순간이 내 일처럼 가슴이 아렸다.


 작품의 등장인물 모두 미우나 고우나 응원하고픈 인물들이다. 마지막에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은 아키라와 사에, 불륜 관계를 정리하고 새출발의 기미를 보이는 미키와 미쓰구, 할아버지인 시게유키를 통해 전쟁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계획했던 대로 이룬 사토미, 오랫동안 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은 뒤에 하늘의 별이 됐을 전처와 후처가 타고 있을 배를 상상해보게 된 시게유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에서 살아 숨쉬어 경멸하면서도 격려하게 되는 입체적인 인물들로 다가왔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책의 여운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아... 이게 아닌데. 나름대로 분전했지만, 이번에도 책을 읽고 받은 감명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한 것 같다. 김난주 씨가 재번역을 했듯 나는 재재감상을 남겨야 할 듯하다. 세대를 아우르는 책의 내용의 특성상 여기서 십 년 뒤에 다시 읽어도 이번처럼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읽어내려갈 수 있을 테니 그날이 몹시 기대된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지 못한 것일까. 왜 나는 나일까. 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중략)‘뭐, 어때.‘
어디로 가든, 어차피 선로 위, 언젠가는 원치 않아도 어느 역에든 도착한다. - 288~289p

사과를 하고 마음이 편해져서 자신이 한 짓을 잊어버릴 정도라면, 차라리 사과하지 않고 후회를 껴안은 채 평생을 사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 359p

행복이라 할 수 없는 행복도 있을 수 있지. - 4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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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1부 (무선) - 연극대본 해리 포터 시리즈
J.K. 롤링.잭 손.존 티퍼니 원작, 잭 손 각색,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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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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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저주받은 아이'는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지만 팬들 사이에선 외전도 아닌 별개의 작품, 잘 쳐봐야 서비스 작품 정도로 취급받는다고 들었다. 이미 잘 완결난 시리즈의 후광을 제대로 잇지 못한 전형적인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하던데 그건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세세하게 따지면 설정 오류라든가, 아니면 과거를 경솔하게 바꾸었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난 작중의 몇몇 전개는 코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세드릭 디고리가 창피를 당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먹는 자가 됐다는 건 '불의 잔'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내가 봐도 너무 작위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볼드모트가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펼쳐진 평행세계에서도 아직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인 스네이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세상을 구한 영웅이 곧 좋은 가장이리란 법은 없다는 듯 아빠 노릇을 힘겨워하는 해리의 모습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물론 이 부분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처참한 몰골을 떠올리면 해리가 실망스런 언행을 보이는 것쯤은 애교다. 시리즈의 팬층이 너무 두텁다 보니 사소한 요소에도 강한 비판이 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듯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 아니 이 작품이 의도한 바는 사뭇 괜찮아서 즐겁게 읽었다. 오랜만에 원작 생각도 나서 좋았고 말이다.


 롤링이 이 희곡을 집필한 의도야 뻔하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추억을 되새기고 미래 세대들이 우여곡절 끝에 부모 세대가 이룩한 평화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포터 부자는 반목하고 해리의 7년 간의 고생은 수포로 돌아갈 뻔했으며 아이들을 기숙사별로 나눠 갈등을 조장하는 호그와트의 병폐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지만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신파적이지만 의미 있는 결말을 자아냈다. 자신의 부모가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하는 과거의 그 장면에서 이성을 잃은 해리가 아들 알버스를 비롯한 가족의 제지로 이성을 되찾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인간의 무력함과 더불어 인간의 행복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메시지도 엿볼 수 있어 이래저래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각본, 즉 실제 무대에 상연할 것을 상정하고 집필된 희곡인데 이렇게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내용이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됐는지 궁금하다. 무대 연출에 관한 지문은 극히 단촐해서 이건 직접 무대를 봐야 알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무대용으론 고난이도의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연극의 세계는 놀랍기 그지없군. 이거야말로 마법 아닌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완전히 망했고, 몇 년 뒤엔 '해리포터'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엔 기대와 비관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등 시리즈의 미래는 정작 밝지 않다. 이미 성공적으로 끝낸 시리즈를 몇 번이고 재탕하려고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란 생각밖에 안 드는데... 해리의 이야기가 이젠 단지 돈이 되는 콘텐츠로 전락한 것 같아 팬으로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게 롤링이 돈맛을 알아버린 탓인지, 주변이 시리즈의 덕을 보고 싶어 작가한테 너무 우쭈쭈해댄 탓인지 잘 모르겠군.

 배고픈 시절의 감성과 절박함을 다시 되돌리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롤링이 이제라도 정신 차리길, 소설가로서 분수를 지키기 바란다. 소설가는 소설을, 각본가는 각본을 담당하고 소설가는 제발 소설 속 이야기만 말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의견은 이제 그만. 그 의견도 소설 속에서 소설의 어법에 따라 말하란 말이다. 그전까지 잘해놓고 요즘엔 왜 그러는지 원. 에효, 여기까지 말하겠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 1권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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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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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 작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이자 현직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작으로 영화 못지않은 매력을 갖춘 수작이다. 영화와는 기본 소재만 갖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화나 소설이나 각기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이라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소설을, 반대로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면 영화도 접해보길 추천한다. 영화가 굉장히 흥행해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아무튼 영화는 소설의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구성력을 보완하고 드라마틱한 측면이 강조됐던 것이 기억나 조만간 영화도 찾아볼 생각이다.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독립적이라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템포가 끊기는 느낌을 받았고 똑같은 패턴을 열두 번 접하다 보니 식상한 감이 없잖았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가 흡입력이 고르지 않고 편차가 있는 편이라 몇몇 작품은 속독으로 넘겨버리게 됐는데 이는 작가가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는 탓이리라 본다.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평이했지만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것치곤 선방했단 생각도 드는데, 워낙에 소재와 주제의식이 좋아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길지만 여운이나 만족도는 상당한 작품이었다.


 열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의 명과 암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 그가 왜 퀴즈쇼에 참가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은 영화보다 좋았다. 영화가 이판사판이란 느낌이었다면 소설엔 주인공이 자신의 운과 인생을 건다는 비장미가 있어 행운과 기적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히려 타인을 돕다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당히 사기도 치고 길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살았기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이타적인 일을 위한 행동력도 충만하기에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아니, 밉기는커녕 퀴즈쇼에서 주인공에게 그토록 많은 행운이 따라줬음에도 주인공 보정 같은 작위적 연출로 느껴지기보단 저 정도 행운도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고 후반부의 몇몇 티 나는 반전과 행운 역시 주인공에겐 당연한 것이며 자격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히 행운과 기적을 바라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쟁취해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말도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노력해야 할는지 모른다면 적어도 주변에 노력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베풂이 이어져 훗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 모르기에 마냥 이기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타적인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도움되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계산적으로 이타적이어서야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나 세상일이란 건 또 모르는 일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 면에서 이타적인 삶이야말로 행운과 기적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지만 나만큼은 그 말을 신봉하지 않으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작중에 묘사된 인도를 보고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 는 생각을 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명색이 외교관인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 어쩌면 순화했을 수도 있지만 -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인데, 작가는 이런 잔인한 세상 속에서도 행운이 따를 자격이 있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더욱 가감없이 묘사를 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혹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행운을 거머쥐는 이야기보다 쾌감을 선사하는 이야기는 없기에 작가의 가감없는 인도 묘사는 제대로 멱혔다고 볼 수 있겠다. 동성애에 대한 다소 편향적인 묘사 정도를 제외하면 적어도 인도 묘사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작가다.

 작가의 다른 작품 <6인의 용의자>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 이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가의 수다스러움은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두 작품 모두 소재나 인도를 묘사한 방식이 끝내줘 다른 작품을 더 집필했고 국내에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용의는 있다. 안타깝게도 세 번째 작품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데... 나중에라도 꼭 출간되길 바란다. 두 권만 내고 펜을 꺾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다.

마누라를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은 뭄바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렇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인도 사람은 주변의 고통과 불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고매한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이다. - 103p

그게 아주머니가 맡은 최고의 역할이었나요?
물론 좋은 역할이기는 했지. 내 속에 감춰진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으니까. 하지만 내 삶에서 최고의 역할은 아직 해내지 못한 것 같구나. - 310p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 4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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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9.8


 오노 나츠메의 작품은 독특한 그림체 때문에라도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NOT SIMPLE>로 입문하게 됐는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연상될 정도로 충격적이고 암울한 작품이었으나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이 작가의 무거운 작품군에 속한다는데 밝고 명랑한 작품이나 사극은 어떨는지. 그림체가 단순하지만 참으로 개성적이어서 소장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제목대로 제법 단순치 않은 가정사로 인해 나락까지 가버린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의외로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한 편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작품이야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 차고 넘치지만 결국 얼마나 진솔하게 이야길 그려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최근에 읽은 <골든 슬럼버>에서 연출의 중요성을 제대로 느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여러 깨달음을 안겨줬다.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이야기임에도 몰입하게 된 데엔 캐릭터의 매력이나 방심을 허용치 않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반복적인 메시지 전달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최근 이것저것 재다가 본분을 놓친 대규모 자본 영화들에 적잖이 실망했던 나로선 이런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창작자의 단순한 자세에 더 매력을 느꼈다. 나 역시 소설을 쓰면서 이것저것 의도하고 의식하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렇게 쉽게 그려진 것 같으면서도 진솔한 작품을 읽으니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최근에 고민이다 뭐다 해서 블로그를 제외하곤 글이라곤 조금도 끄적거리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자극을 좀 받았다. 내가 곧 포스팅으로 다룰 소설집에서도 느낀 거지만 생각은 지나치면 방해가 될 뿐이다. 일단 행동하고 진도를 빼야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자세를 달리 가져봐야지.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작품이지만 <NOT SIMPLE>에선 가족으로 절대 두고 싶지 않은 캐릭터가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 이안의 부모가 그렇고 아이린과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반면교사는커녕 그쪽으로 소변도 누고 싶지 않을 만큼 역겨운 인물들 천지라 오히려 내가 다 겸허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적어도 이 작품에서 이안이 겪는 일에 비해선 하찮게 보이더라.

 그렇기에 가족의 소중함이 진정으로 와 닿은 작품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비견될 만한 새드엔딩의 귀감이 될 만한 작품이었고 내 스스로에 대해 전에 없이 겸허히 돌아보게 돼서 이 작품도 주기적으로 읽고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할 듯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을 것인데, 일단 이 작품으로 오노 나츠메란 작가에 입문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로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 작품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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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9.5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으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골든 슬럼버>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초장부터 대부분의 전개를 다 알려주는 독특한 도입부와 과거와 현재로 시점이 자주 변경됨에도 집중을 유지하고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연출의 도주극은 두 번째 읽어도 여전히 드라마틱하고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만들 때 결말과 반전 못지않게 전개와 연출도 중요함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아오야기가 도움을 받는 방식과 사건 3개월 후에 아오야기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무사 생존했음을 넌지시 알리는 연출이 특히 감명 깊었다. 이후에도 작가는 <마리아비틀>, <사신의 7일> 같은 걸출한 작품을 집필하지만 역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사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변하지 않는 것인지 자문하게 됐다. 아오야기를 돕는 사람들은 아오야기가 그럴 리 없다, 아오야기 같은 소시민이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로 변했을 리 없다고 믿으며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독자 입장에선 실로 믿음직한 아군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이들의 믿음이 순진한 걸 넘어 작품의 편의를 위해 작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재밌겠다는 이유로 돕는 기루오나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아오야기의 무죄를 부정해주지 않는 몇몇 등장인물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느꼈는데......


 최근 뉴스에서 두 명의 유명인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이 작품의 내용이 달리 보이게 됐다. 왜, 한 명은 구속됐고 한 명은 입장 해명을 해야 하는 그 두 명 말이다. 그들로 인해 현실을 외면하는 팬들과 비난하는 여론에 편승해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요새 적나라하게 드러나 뉴스나 유튜브 등을 접할 때마다 눈살이 절로 찌뿌려진다. 두 명 중 한 명은 나도 꽤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나도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한편으론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기도 했다.

 내 생각에 선한 사람이 타락하는 경우나 타락한 인간이 갱생하는 경우 모두 가능성은 극히 적은 것 같다. 선함은 곧 자부심이고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자기 억제력이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기에 타락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반대로 한 번 선을 넘어 타락해버렸다는 낙인이 찍힌 인간은 어느 순간 일이 순조롭게 풀리다가도 스스로에 도취돼 선함을 추구하기보단 선한 척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안 좋게 말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을 사람들이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데엔 다들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백히 제3자인 나도 유명인의 몰락에 심기가 불편하거나 박탈감을 느끼는 등 갈피를 잡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니 몰락한 당사자나 주변인이나 한 번 교류를 가졌던 사람들이 설령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리석은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현실적이지 못한 모습은 아니리라. 라는 생각을 하니 <골든 슬럼버>에서 아오야기를 돕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더 공감이 가게 됐다. 아마 나도 비슷한 상황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 같고 내 믿음을 관철하고자 노력할 듯하다. 대놓고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오야기의 아버지는 등장할 때마다 어록이 대단해 귀감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치한이 왜 최악의 범죄자인지 설파하는 것부터 인상적이었는데 테러리스트의 아버지라며 압박하는 기자들을 향해 내뱉는 일갈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자식을 감싸는 게 부모의 도리라지만 그 정도로 느닷없이 압박이 들어오면 위축될 법도 한데 오히려 기자들한테 그들이 갖춰야 할 직업윤리를 지적한 건 정말 대단했다. 지금 뉴스에 끊임없이 이름이 거론되는 두 유명인 중 한 명은 사실상 결론이 나버렸고 나머지 한 명이 언론의 중립적 태도가 굉장히 절실한 상황인데, 경솔하게 뉴스를 꾸미는 언론인들이 작품의 449~450페이지의 구절은 꼭 읽어줬으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느니 뭐니 전부 일리가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남의 인생이 걸린 일이잖은가. 사건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부화뇌동을 조장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작중에서 큰 사건을 덮기 위한 희생양으로 아오야기가 지목된 것처럼 지금의 두 유명인도 실제 잘못 유무는 차치하고 희생양으로써 다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이 상황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고 그걸 덮으려고 누가 이 난리법석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을 곤두세우는 게 상책일 것이다. 물론 잘못한 사람이 욕을 먹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골든 슬럼버>를 읽으니 언론을 비롯해 큰 기관에서 나온 정보는 아무리 그럴싸해도 일단 의심해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이러다 음모론자가 되어버리겠구만.

하지만 치한이란 말이야, 무슨 말로 둘러대도 용납이 안 되는 거야. 치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이란 게 난 도무지 떠오르지 않거든. 설마 아이를 지키기 위해 치한이 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은 없겠지. - 228~229p

어차피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에요.
훌륭하신 놈들일수록 그렇지. 남의 말을 전혀 안 들어줘. - 250p

치켜세웠다 버리는 게 세상 사람들 취미야. - 257p

돈이 아니야, 뭐든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걸라고. 너희는 지금 그만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인생을 기세만으로 뭉개버릴 작정 아니야? 잘 들어. 이게 네놈들 일이란 건 인정하지. 일이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자신의 일이 남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면 그만한 각오는 있어야지. 버스기사도, 빌딩 건축가도, 요리사도 말이야. 다들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가며 한다고. 왜냐하면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 각오를 하란 말이다. -449~4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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