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원작, 디노 바탈리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이숲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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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모파상의 작품 중 보불전쟁을 시간적 배경으로 두고 있는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이다. 8편의 소설이 그래픽 노블로, 이른바 만화화됐는데 만화도 엄연히 예술의 일각이라 대우하는 유럽에서 저명한 만화가라고 하는 디노 바탈리아의 각색이 들어갔다기에 꽤 기대됐다. 모파상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만화가의 명성도 제법이라서 그야말로 그래픽 '노블'의 퀄리티가 당연히 기대됐는데 그 기대는 반은 충족됐고 반은 빗나갔다.

  만화는 텍스트와 그림의 조합이란 점에서 굉장히 가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만화를 너무 저평가하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하곤 한다. 만화의 장점이라고 하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지면을 통해 전개됨에도 읽기 쉽다는 점이 클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텍스트에 집중하는 소설과 달리 만화에선 그림을 통한 색다른 연출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을 우린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단순히 소설과 같은 내용 전개에 그림만 삽입한 정도라면 그건 만화가 아니라 일러스트가 빼곡히 들어찬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책은 만화답게 모파상의 원작 소설을 시각적으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작 읽는 내내 소설에 삽입된 무수한 일러스트에 말풍선을 달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원작 소설의 문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인물들의 대사를 제외하면 거의, 아마도 소설의 전문 그대로 전개돼서 생각보다 만화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그림체도 비교적 선이 연하고 특히 인물들의 이목구비가 명확치 않기에 더더욱 소설의 문장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치명적인 단점까진 아니지만 만화라는 장르의 이점을 잘 살린 것 같지 않아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수록작들의 구성은 나쁘지 않았다. '두 친구'나 '비곗덩어리'처럼 여러 번 읽은 작품도 있었고 이번에 처음 읽은 작품도 있었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한 작가의 선집을 읽으니 퍽 신선했는데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부끄럽게도 작중의 시대적 배경인 보불전쟁에 여간 무지한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은 거의 모른 채 읽었지만 작품들은 사전 지식의 유무 없이도 이해가 가능한 보편적인 감정선을 다루고 있어 감상함에 크게 저해되지 않았다. 그냥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한테 크게 패했구나 정도로만 알아도 충분하다.


 읽고 나서 전체적으로 모파상을 입문하려고 읽기엔 좀 부족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파상의 소설들은 짤막해서 독해의 난이도가 높지 않기에 굳이 만화의 가독성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위에서 말했듯 이 책은 만화의 연출보단 원작의 연출과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기왕 읽는다면 역시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나을 것이다. 독특한 컨셉의 선집이란 메리트가 있지만 선집이라고 해도 모든 작품의 완성도가 고른 것은 아닌 만큼 그렇게 큰 기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파상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정말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파상을 처음 접하거나 좋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일독을 권하기 약간 망설여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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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들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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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꼭 에세이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소설은 얼핏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가 둘 다 구조조정을 당해 백수가 됐는데 집안에 경조사가 겹겹이 겹쳐 저축해둔 돈이 바닥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노후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노년에 접어들고 있는 주인공 아츠코가 날마다 불안에 떨고 불투명한 미래에 한숨을 짓는 게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 소설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터다.

 실제로 소설의 본편은 생각보다 암울하고 답답했는데 흡입력은 괄목할 수준이었다. 가히 오쿠다 히데오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작품의 몰입도며 일상을 묘사하는 미친 섬세함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고 문체가 아주 비슷한 건 아니다. 두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유머러스한 면이 있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순수한 웃음이라면 가키야 미우라는 작가가 그리는 웃음은 씁쓸한 웃음 쪽에 가깝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일본이 참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혹은 멀지만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거리감이 우리나라에서의 일본 문학이 누리고 있는 인기의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우리 가족의 지난 모습과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국과 일본이 분명 정서가 판이한 데가 있음에도 이 소설의 주인공 아츠코의 심리 묘사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시누이와의 갈등, 결혼식과 장례식에 거금을 들이는 것에 진땀을 빼는 것, 어떤 환상도 없는 부부 생활에 수시로 분통이 터지는 것 등이 무척 현실적이고 공감이 갔다. 작품의 주인공과 독자인 나 사이에 공통점이 실상 전무하다는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한국 독자로서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역시 일본은 한국과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체면을 차리는 문화에 있어선 일본은 확실히 독보적인 구석이 있다. 작중에서 경제 수준이 평범하거나 조금 유복한 정도인 아츠코의 가족이 딸의 결혼식과 시아버지의 장례식 때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낸 금액은 상식을 초월한다. 적당히 계산해도 한화로 1억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작중에서 장남의 며느리란 이상하게 불리한 이유로 이 모든 금액의 지출을 책임지게 된 아츠코는 금방 말했듯 울며 겨자 먹기로 저금을 깨야 했는데, 이건 뭐 지옥인 걸 알고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어서 보는 내가 다 착잡했다. 백 번 양보해서 딸의 결혼식이야 그렇다 쳐도 장례식이 그렇게 돈을 잡아먹는 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돈을 많이 들이는 게 곧 성의를 보이는 것과 같은 말이 됐단 말인가.


 설상가상 딸의 결혼 생활은 불안하게만 보여 아츠코의 걱정은 끊길 줄을 모른다. 딸의 어머니로서, 시누이를 견제하는 올케로서,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며느리로서 아츠코의 자아는 순서만 바뀔 뿐 아츠코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매한가지다. 그런 아츠코가 유일하게 자기 속내를 시원히 토로할 사람은 그녀가 취미로 듣고 있는 꽃꽂이 수업에서 만난 사츠키 뿐이다. 이런 사츠키와의 인연은 후반부의 어떤 사건과 이어지게 되는데...

 읽기 전엔 이런 소재, 이런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흥미로울까 싶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보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없어서 술술 읽혔다. 보편적인 주제지만 그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중년의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니 퍽 애잔했다. 위에서 말한 아츠코가 자신의 여러 자아 때문에 이래저래 손해를 감내하고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부분부분 아츠코의 주관이 개입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도 아츠코가 떠안은 책임이 범상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의 몰입을 끊김없이 끌어갈 수 있어 참 적확한 주인공 설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적인 일들, 고민, 약자에 대한 사려 깊은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이라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려 깊은 작가라 그런지 예상과 달리 해피 엔딩으로 끝내는데 그 과정이 은근히 현실적이었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얼핏 급조된 듯한 느낌도 있었고 몇몇 캐릭터에 있어선 캐릭터 붕괴가 의심되기도 했는데 다르게 보면 이 이야기는 결국 아츠코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라서 갑자기 성격이나 태도가 변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당연하다면 당연하겠구나 싶었다. 아츠코가 자신은 옛날부터 저축하며 검소하게 살았고 허세나 체면을 중시한 적이 없다고 늘상 말했지만 주변의 평가는 사뭇 달랐던 것처럼, 또 아츠코의 아들이 자기 주변 친구를 보면 우리 가족은 부자 같다고 느끼는 것처럼 자신과 타자에 대한 평가를 늘 상대적이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막장을 달려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소설의 내용이 최후반부에선 해피 엔딩으로 이어졌던 건 납득이 갔다. 미래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예측 불허하다는 것을 시사하기에 가장 행복한 형태의 결말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제목의 문장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 so what? 왠지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작가의 책이 국내에 많이 소개됐던데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이런 좋은 작가를 모르고 지냈다니, 오랜만에 전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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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볼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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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기리노 나쓰오는 아마 일본에서 소설가로서 수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수상작만 찾아 읽는 것도 일인데 개중 나오키상 수상작인 <부드러운 볼>은 절판이 돼서 구입해서 읽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작가 본인이 뽑은 최고의 작품, 최고의 대중 문학상을 받은 작품,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었던 <부드러운 볼>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일단 추리소설과 정반대의 소설임을 강조하고 싶다. 추리소설적인 사건은 등장하지만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추리소설이라면 보통 사건의 해결을 염두에 두는데 이 작품은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지 보는 소설이 아니라 어떻게 사건 해결을 단념하는지 살펴보는 이야기라서 추리소설의 '추'자도 꺼내선 안 되리라. 스포일러긴 하지만 일단 이 점을 짚어야만 얘길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딱히 스포일러인 것 같지도 않다. 초반부만 대충 읽어도 작품의 결말을 확신해버리게 되니까. 근거는 없었지만, 결말에서 사건의 내막이 공개됐더라면 오히려 더 놀랐을 것 같다.


 이 작가의 장기는 하드함과 문장력에 있다. 기본적으로 수위가 세고 어딘가 꼬인 심성을 바탕으로 한 인물이나 이야기를 세밀하고 그럴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적잖은 편이다. 대표작 <아웃>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묘사력이 두드러졌고 최근에 읽은 <그로테스크>는 제목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처음부터 어두운 심리 묘사를 주축으로 삼는다. 이런 요소는 때론 설득력보다 섬세함이나 분위기를 평가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뛰어난 장기라고 인정하고 지금까지 감탄해왔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심리 묘사만으로 작품 전체의 완성도까지 보장하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불륜남과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아이들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 직후에 그녀의 딸이 유괴되는 괴사건이 발생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벌어진 재앙에 극심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게 된 주인공은 마치 정해진 수순인 것인 마냥 가시밭길을 자청하며 걷게 된다. 불륜남과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고 남편과는 사이가 껄끄러워지고 둘째 딸에겐 얼굴을 들기 힘들고... 이런 상황 속에서 4년이 흘러간 주인공은 주변 사람 모두가 포기했음에도 자신만은 딸의 생존 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한다.


 <부드러운 볼>은 사건의 관계자 모두가 포기하더라도 혼자서만은 포기하지 않는 것, 마치 그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라 여기기에 이르는 주인공의 갈팡질팡하는 내면을 그린 소설이다. 사건 초반에 드러나는 아이러니와 더불어 웃음기 하나 낄 수 없는 압도적으로 무거운 작풍이 인상적인데 딱 거기까지다. 내면에 대한 묘사가 너무 길고 지리멸렬하며 사건의 전개도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더디고 분위기만 충만해 있다. 주인공 카스미와 함께 가장 비중 있다고 할 수 있을 전직 형사 우쓰미는 그 애매한 목적의식과 최후 때문에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륜남 이시야마의 퇴장도 마찬가지고... 서두에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중 가장 이질적이라고 한 데엔 이런 애매한 서사의 탓이 크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서사가 애매할 수는 있다고 치자. 그런 종류의 소설이 존재할 수도 있고 그런 소설에 대한 수요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을 쓴 저자가 노렸을 터인 여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때론 오리무중이어야 더욱 와 닿는 사건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카스미의 딸 유카에게 일어난 사건이 카스미의 죄책감과는 무관하게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라면 과연 이렇게 미해결로 넘어가는 게 최선일까 싶었다. 작중에서 미해결된 거야 그렇다 쳐도, 독자까지 사건의 아무런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면 500페이지 넘게 달려온 이야기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닌지? 솔직히 말해 카스미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처음엔 집중이 되다가도 어째 했던 말 반복하는 느낌이라 몰입도가 떨어지는 마당에 결말에서 여운을 주겠답시고 사건의 전모에 대한 추측만 늘어놓는다고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작품의 분위기나 캐릭터들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보통 이런 생각 잘 안 하지만 이 작품이 절판된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실망한 작품이었다. 다루는 소재들의 수위가 무색하게 꽤나 대중적인 이야길 직조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 나의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사실 기리노 나쓰오라면 응당 이런 종류의 소설을 쓸 법도 했는데, 이 작가라면 이보다 더 완성도 있게 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런데 작가 자신이 최고로 뽑는 작품이 이 작품이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이는 것은 언젠가 소멸해요.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소멸하는 것이 슬프고, 허무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요. 마음이나 진실을요. -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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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이해 - 만화로 보는 《영속패전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이와타 야스테루 그림, 박우현 옮김, 이서현 / 이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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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0






 일본도 다양한 사람이 사는 나라이기에 언론에서 접하는 극우, 혐한이 그 나라 국민의 일부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위 일본 지식인이란 작자가 일본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과의 국제 관계에 대해서 속 시원히 짚어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일본인들이 자국에 대해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 관련 주제의 글을 접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찝찝하곤 했다.

 이 책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을 읽지 못해 짐작만 할 뿐이지만 아마 무겁고 딱딱했을 터인 책의 내용을 최소한의 만화 기법으로 잘 담아낸 것 같다. 아주 전형적인 학습 만화였는데 대체로 설명 위주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림은 적어서 버거울 뻔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을 잘 짚어내서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원작의 내용을 적절히 잘 녹여낸 덕분이었을 것이다.


 전후 일본의 행태는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욕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일본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것인데 이때 저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통찰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 가령 일본인들이 원폭을 맞은 것을 비극이라 인식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다시는 원폭을 맞을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하는 것엔 다름 아닌 원폭을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로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 이는 일본이 스스로 제2차세계대전을 패전이 아닌 '종전'으로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자신들은 전쟁에서 진 게 아니라 그저 전쟁이 끝났을 뿐이라고.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은 정신승리인 건지...

 일본이 이런 정신승리를 해올 수 있던 것은 냉전 시대에 마주한 미국의 전략과 일본의 지리적 이점, 그리고 전쟁 특수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00% 완벽한 논리라고 보기엔 한두 군데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오늘날 일본 극우들의 우월주의나 정부의 태도를 떠올리니 일단 닥치고 공감이 갔다.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전선과 직면한 한국과 대만이 파란만장한 근대를 보낸 것과 달리 일본은 민주주의가 비교적 빨리 정착해 평온하게 경제 성장을 이뤘는데 이게 단순히 일본과 일본인이 우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자는 소련이나 중국과 거리가 있는 지리적 이점의 덕택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우리나라에서 친일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것과 비슷하게 일본은 미국이 장기말로써 부리려는 계획 하에 경제 발전에 돌입했기에 2차세계대전의 전범들을 그대로 정부 주요 인사에 투입시켰다고 한다. 작중에서 미국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은 약간 음모론 같은 구석이 있었지만 역사의 흐름이나 현재 미국의 동향을 살펴보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 마냥 얼토당토하게 들리지 않았다. 온전히 미국의 주도 하에 국력을 키웠으나 그 과정에서 패전을 했다는 자아 비판이 이뤄지지 않아 염치가 없게 됐다는 해석은 정말 와 닿았는데 특히 영토 분쟁에 있어서 거의 답이 없는 태도를 생각하면 용케 이 나라가 존속을 해왔구나 싶었다.

 영토 문제는 미국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쿠릴 열도나 센카쿠 열도에 비해 독도는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저자가 일부러 외면한 건지, 아니면 원작에는 다뤘지만 만화판에서 생략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중 내내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여서 이런 의문 정도는 눈감을 수 있었다.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쓴 역사 이야기라 약간 걱정되는 측면도 있었고 실제로도 관점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 위해 역사나 지난 과오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집필된 책이다. - 제목 그대로 전후 일본을 이해하기에 알맞아서 이래저래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작인 <영속패전론>도 정독해봐야겠다.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의 불운이라면, 알고자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랄까. - 머리말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에 패배를 질질 끌어올 수 있었다.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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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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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참 함정이 있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아마 현직 판사였던 시절, 작가가 법정에서 겪은 온갖 환멸을 드러낸 제목인 건가 싶어서 괜히 특이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본 작품의 사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평이한 양상을 보였다. 최근에 읽은 작가의 작품인 <가족의 탄생> - 최근이라고 해도 벌써 3년 전이다. - 도 이 작품처럼 통속적이고 외견만 보면 평이한 사건으로 시작되는데 특히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엔 법정물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명색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고진이 변호사고, 작가도 법조인인데 법정물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었다. 법정물이란 장르는 신기할 게 없지만 도진기 작가가 쓰는 건 처음 봐서 사뭇 기대가 됐다. 일찍이 이 작가가 법정을 배경으로 한 창작물을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던 만큼 다른 건 몰라도 법률에 대한 고증에 대해선 불안할 것이 없었다.


 처음으로 법정에 선 고진, 상대 검사는 그간 고진의 전적을 떠올려 본다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위인이지만 사건이 여러모로 변호인에게 불리한 구석이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하지만 변호란 곧 방어, 진범을 잡아야 하는 사건 수사가 아닌 의뢰인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충분한 터라 고진은 의심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분명하게 승소에 다가간다. 이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태도라 할 수 있기에 작품의 전개는 은근히 잔잔한데 고진의 취향이자 신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전개였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 우리나라에 리메이크돼 방영 중인 일본 원작 드라마 <리갈하이> - 리메이크작을 보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뜯어 말리더라. 반드시 실망할 것이란다... - 에서 다뤄진 법조인, 특히 변호인의 딜레마에 통달한 인물이 바로 고진일 것이다. 법의 생리, 한계를 알 만큼 아는 고진은 본래 그 점을 이용해 뒷세계에서 이름 좀 날렸을 정도로 시니컬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인데 우연한 책임감 때문에 '어둠의 변호사' 개업 이래 처음 법정에 출두했더라도 그의 철학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그래서 고진은 법정에서 초반엔 소극적으로, 중반부엔 어울리지 않게 무기력하게, 후반부엔 매우 파격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런 장면들이 어떻게 보면 무난하게 흘러가는 이 작품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의뢰인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생각이 없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인 고진이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작중 사건의 배경이 내가 실제로 가봤던 블라디보스토크라서 내심 기대하고 읽었지만 의외로 작품에선 장소에 대한 매력을 어필하지 않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장면은 별로 길지 않은 등 이른바 여행 미스터리의 쾌감 같은 건 전무해서 이럴 거면 왜 굳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썼을까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막판에 고진이 밝혀내는 범인의 거대하고 황당한 규모의 트릭을 위해서 선정된 느낌이 다분해 일단 의문은 남지 않았다. 다만 장편보단 오히려 단편에 어울리는 성질의 트릭이었던 것과 더불어 특유의 황당함 때문에 독자도 같이 추리하기 힘들었던 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추리소설답게 막판까지 쉽게 결말을 유추할 수 없고 긴장감과 기대를 이끌어내는 연출은 경험이 쌓인 작가답게 능숙했지만 만듦새 자체는 약간 위태로웠다.

 범인의 동기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과 비교하면 대단히 드라마가 강조된 편으로 흡사 만화 김전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주 전문적인 문인은 아닌 탓인지 캐릭터 설정이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은 여전하나 - 특히 여성 캐릭터의 묘사나 쓰임새는 젠더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자부하는 독자라면 거슬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 그만큼 알기 쉽고 선명해서 작가가 노렸을 감동과 여운이 일정 수준 이상 안겨지긴 했다. 하지만 고진이 입을 빌려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장면은 구태의연해서 내심 질리는 마음도 없지않아 들었다. 사람의 속내를 거의 발가벗기듯... 어쩌면 이 때문에 고진이 법정에서 진범을 밝히길 꺼렸던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라 약간만 독자의 해석에 기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함정이 있는 제목 덕에 작품의 여운이 강조돼서 괜찮았다. 이 이상 제목의 함정을 강조하는 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입을 다물겠지만... 초기작부터 시니컬함으로 일관하던 작가가 이 작품에서 드라마와 감동에 치중하는 변신을 선보여 결과적으로 신선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조금씩이지만 작가가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이 솔직히 불안한 한편으로 보기 좋다. 전업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 정력적으로 집필하시다니, 분야를 막론하고 참 모범으로 삼을 만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변호사용 상식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믿는 걸까요? 아니면 단지 그가 돈을 지불하는 의뢰인이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그 이성이 확률의 편에 선 이성입니까? 뻔한 범죄자를 변호한다는 여론과 양심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혼자만의 신념이라는 장막 뒤로 숨는 건 아닐까요? -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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