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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원작, 디노 바탈리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이숲 / 2016년 9월
평점 :
7.8
모파상의 작품 중 보불전쟁을 시간적 배경으로 두고 있는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이다. 8편의 소설이 그래픽 노블로, 이른바 만화화됐는데 만화도 엄연히 예술의 일각이라 대우하는 유럽에서 저명한 만화가라고 하는 디노 바탈리아의 각색이 들어갔다기에 꽤 기대됐다. 모파상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만화가의 명성도 제법이라서 그야말로 그래픽 '노블'의 퀄리티가 당연히 기대됐는데 그 기대는 반은 충족됐고 반은 빗나갔다.
만화는 텍스트와 그림의 조합이란 점에서 굉장히 가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만화를 너무 저평가하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하곤 한다. 만화의 장점이라고 하면 소설과 마찬가지로 지면을 통해 전개됨에도 읽기 쉽다는 점이 클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텍스트에 집중하는 소설과 달리 만화에선 그림을 통한 색다른 연출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을 우린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단순히 소설과 같은 내용 전개에 그림만 삽입한 정도라면 그건 만화가 아니라 일러스트가 빼곡히 들어찬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책은 만화답게 모파상의 원작 소설을 시각적으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작 읽는 내내 소설에 삽입된 무수한 일러스트에 말풍선을 달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원작 소설의 문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인물들의 대사를 제외하면 거의, 아마도 소설의 전문 그대로 전개돼서 생각보다 만화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그림체도 비교적 선이 연하고 특히 인물들의 이목구비가 명확치 않기에 더더욱 소설의 문장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치명적인 단점까진 아니지만 만화라는 장르의 이점을 잘 살린 것 같지 않아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수록작들의 구성은 나쁘지 않았다. '두 친구'나 '비곗덩어리'처럼 여러 번 읽은 작품도 있었고 이번에 처음 읽은 작품도 있었다. 이렇게 전쟁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한 작가의 선집을 읽으니 퍽 신선했는데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부끄럽게도 작중의 시대적 배경인 보불전쟁에 여간 무지한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은 거의 모른 채 읽었지만 작품들은 사전 지식의 유무 없이도 이해가 가능한 보편적인 감정선을 다루고 있어 감상함에 크게 저해되지 않았다. 그냥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한테 크게 패했구나 정도로만 알아도 충분하다.
읽고 나서 전체적으로 모파상을 입문하려고 읽기엔 좀 부족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파상의 소설들은 짤막해서 독해의 난이도가 높지 않기에 굳이 만화의 가독성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위에서 말했듯 이 책은 만화의 연출보단 원작의 연출과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기왕 읽는다면 역시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나을 것이다. 독특한 컨셉의 선집이란 메리트가 있지만 선집이라고 해도 모든 작품의 완성도가 고른 것은 아닌 만큼 그렇게 큰 기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파상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정말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파상을 처음 접하거나 좋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일독을 권하기 약간 망설여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