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들녘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5







 꼭 에세이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소설은 얼핏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가 둘 다 구조조정을 당해 백수가 됐는데 집안에 경조사가 겹겹이 겹쳐 저축해둔 돈이 바닥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노후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노년에 접어들고 있는 주인공 아츠코가 날마다 불안에 떨고 불투명한 미래에 한숨을 짓는 게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 소설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터다.

 실제로 소설의 본편은 생각보다 암울하고 답답했는데 흡입력은 괄목할 수준이었다. 가히 오쿠다 히데오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작품의 몰입도며 일상을 묘사하는 미친 섬세함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고 문체가 아주 비슷한 건 아니다. 두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유머러스한 면이 있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순수한 웃음이라면 가키야 미우라는 작가가 그리는 웃음은 씁쓸한 웃음 쪽에 가깝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일본이 참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혹은 멀지만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거리감이 우리나라에서의 일본 문학이 누리고 있는 인기의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우리 가족의 지난 모습과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국과 일본이 분명 정서가 판이한 데가 있음에도 이 소설의 주인공 아츠코의 심리 묘사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시누이와의 갈등, 결혼식과 장례식에 거금을 들이는 것에 진땀을 빼는 것, 어떤 환상도 없는 부부 생활에 수시로 분통이 터지는 것 등이 무척 현실적이고 공감이 갔다. 작품의 주인공과 독자인 나 사이에 공통점이 실상 전무하다는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한국 독자로서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역시 일본은 한국과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체면을 차리는 문화에 있어선 일본은 확실히 독보적인 구석이 있다. 작중에서 경제 수준이 평범하거나 조금 유복한 정도인 아츠코의 가족이 딸의 결혼식과 시아버지의 장례식 때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낸 금액은 상식을 초월한다. 적당히 계산해도 한화로 1억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작중에서 장남의 며느리란 이상하게 불리한 이유로 이 모든 금액의 지출을 책임지게 된 아츠코는 금방 말했듯 울며 겨자 먹기로 저금을 깨야 했는데, 이건 뭐 지옥인 걸 알고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어서 보는 내가 다 착잡했다. 백 번 양보해서 딸의 결혼식이야 그렇다 쳐도 장례식이 그렇게 돈을 잡아먹는 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돈을 많이 들이는 게 곧 성의를 보이는 것과 같은 말이 됐단 말인가.


 설상가상 딸의 결혼 생활은 불안하게만 보여 아츠코의 걱정은 끊길 줄을 모른다. 딸의 어머니로서, 시누이를 견제하는 올케로서,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며느리로서 아츠코의 자아는 순서만 바뀔 뿐 아츠코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매한가지다. 그런 아츠코가 유일하게 자기 속내를 시원히 토로할 사람은 그녀가 취미로 듣고 있는 꽃꽂이 수업에서 만난 사츠키 뿐이다. 이런 사츠키와의 인연은 후반부의 어떤 사건과 이어지게 되는데...

 읽기 전엔 이런 소재, 이런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흥미로울까 싶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보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없어서 술술 읽혔다. 보편적인 주제지만 그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중년의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니 퍽 애잔했다. 위에서 말한 아츠코가 자신의 여러 자아 때문에 이래저래 손해를 감내하고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부분부분 아츠코의 주관이 개입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도 아츠코가 떠안은 책임이 범상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의 몰입을 끊김없이 끌어갈 수 있어 참 적확한 주인공 설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적인 일들, 고민, 약자에 대한 사려 깊은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이라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려 깊은 작가라 그런지 예상과 달리 해피 엔딩으로 끝내는데 그 과정이 은근히 현실적이었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얼핏 급조된 듯한 느낌도 있었고 몇몇 캐릭터에 있어선 캐릭터 붕괴가 의심되기도 했는데 다르게 보면 이 이야기는 결국 아츠코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라서 갑자기 성격이나 태도가 변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당연하다면 당연하겠구나 싶었다. 아츠코가 자신은 옛날부터 저축하며 검소하게 살았고 허세나 체면을 중시한 적이 없다고 늘상 말했지만 주변의 평가는 사뭇 달랐던 것처럼, 또 아츠코의 아들이 자기 주변 친구를 보면 우리 가족은 부자 같다고 느끼는 것처럼 자신과 타자에 대한 평가를 늘 상대적이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막장을 달려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소설의 내용이 최후반부에선 해피 엔딩으로 이어졌던 건 납득이 갔다. 미래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예측 불허하다는 것을 시사하기에 가장 행복한 형태의 결말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제목의 문장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 so what? 왠지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작가의 책이 국내에 많이 소개됐던데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이런 좋은 작가를 모르고 지냈다니, 오랜만에 전율이 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