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이해 - 만화로 보는 《영속패전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이와타 야스테루 그림, 박우현 옮김, 이서현 / 이숲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9.0






 일본도 다양한 사람이 사는 나라이기에 언론에서 접하는 극우, 혐한이 그 나라 국민의 일부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위 일본 지식인이란 작자가 일본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과의 국제 관계에 대해서 속 시원히 짚어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일본인들이 자국에 대해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 관련 주제의 글을 접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찝찝하곤 했다.

 이 책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을 읽지 못해 짐작만 할 뿐이지만 아마 무겁고 딱딱했을 터인 책의 내용을 최소한의 만화 기법으로 잘 담아낸 것 같다. 아주 전형적인 학습 만화였는데 대체로 설명 위주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림은 적어서 버거울 뻔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을 잘 짚어내서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원작의 내용을 적절히 잘 녹여낸 덕분이었을 것이다.


 전후 일본의 행태는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욕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일본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것인데 이때 저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통찰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 가령 일본인들이 원폭을 맞은 것을 비극이라 인식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다시는 원폭을 맞을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하는 것엔 다름 아닌 원폭을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로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 이는 일본이 스스로 제2차세계대전을 패전이 아닌 '종전'으로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자신들은 전쟁에서 진 게 아니라 그저 전쟁이 끝났을 뿐이라고.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은 정신승리인 건지...

 일본이 이런 정신승리를 해올 수 있던 것은 냉전 시대에 마주한 미국의 전략과 일본의 지리적 이점, 그리고 전쟁 특수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00% 완벽한 논리라고 보기엔 한두 군데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오늘날 일본 극우들의 우월주의나 정부의 태도를 떠올리니 일단 닥치고 공감이 갔다.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전선과 직면한 한국과 대만이 파란만장한 근대를 보낸 것과 달리 일본은 민주주의가 비교적 빨리 정착해 평온하게 경제 성장을 이뤘는데 이게 단순히 일본과 일본인이 우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자는 소련이나 중국과 거리가 있는 지리적 이점의 덕택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우리나라에서 친일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것과 비슷하게 일본은 미국이 장기말로써 부리려는 계획 하에 경제 발전에 돌입했기에 2차세계대전의 전범들을 그대로 정부 주요 인사에 투입시켰다고 한다. 작중에서 미국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은 약간 음모론 같은 구석이 있었지만 역사의 흐름이나 현재 미국의 동향을 살펴보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 마냥 얼토당토하게 들리지 않았다. 온전히 미국의 주도 하에 국력을 키웠으나 그 과정에서 패전을 했다는 자아 비판이 이뤄지지 않아 염치가 없게 됐다는 해석은 정말 와 닿았는데 특히 영토 분쟁에 있어서 거의 답이 없는 태도를 생각하면 용케 이 나라가 존속을 해왔구나 싶었다.

 영토 문제는 미국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쿠릴 열도나 센카쿠 열도에 비해 독도는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저자가 일부러 외면한 건지, 아니면 원작에는 다뤘지만 만화판에서 생략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중 내내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여서 이런 의문 정도는 눈감을 수 있었다.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쓴 역사 이야기라 약간 걱정되는 측면도 있었고 실제로도 관점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 위해 역사나 지난 과오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집필된 책이다. - 제목 그대로 전후 일본을 이해하기에 알맞아서 이래저래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작인 <영속패전론>도 정독해봐야겠다.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의 불운이라면, 알고자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랄까. - 머리말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에 패배를 질질 끌어올 수 있었다.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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