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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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고전 문학을 특유의 감성으로 소개하는 만화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이 읽고 싶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체호프의 카프카의 단편 몇 편을 제외하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이 아직 읽지 못했거나 몇 번을 시도했으나 중도에 포기했던 작품들이라 궁금증을 자극했다. 과연 작가는 책을 어떻게 소개해줄 것인가 하면서.

 소개된 13권 중 <죄와 벌>과 <나를 보내지 마>, 이 두 권은 읽고 싶어졌다고 하면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은 만화의 형식을 띄고 있고 페이지도 빠르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히지는 않았다. 고전이긴 해도, 또 이름만 들어도 알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저자는 해당 작품을 읽고 느낀 바를 제법 추상적으로 묘사한 덕택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을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다소 두루뭉술한 감이 없지 않아 가끔은 이게 뭔 말인지 페이지 넘기는 손을 멈추고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싫증을 내며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해당 작품을 읽었더라면 저자의 말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싫증을 내야하는 건 나 자신이겠지.


 책의 서두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는데, 책이란 건 읽는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인상이 달라져서 나중에 그 책을 떠올리면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기분, 처한 상황, 읽었던 장소 등이 떠오른다는 맥락의 구절이었다. 책이라는 물건을 그런 식으로 의식해본 적이 없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장르를 막론하고 내가 글을 읽는 이유 중 하나로 내가 제대로 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을 저자가 명쾌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이 책이 그 경우에 딱 들어맞았기에.

 사실 서두의 저 구절만으로 이 책의 내용을, 그리고 저자를 반 이상은 신뢰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에 나오는 본편이 아리송했어도 그리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내 탓을 했으면 했지, 저자의 자질을 의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의사실'이라는 이상한 필명도 다 읽고 나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정말로 내게서 의외의 감상을 이끌어냈으니까.


 위에서 말했듯 <죄와 벌>과 <나를 보내지 마>가 굉장히 읽고 싶어졌다. 아깐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는지 자문했는데, 사실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나도 늘 느끼지만 누군가에게 책의 매력을 설명하는 건 서로 취향이 맞지 않는 이상 은근히 힘든 일이니까. 그래서 난 이 책이 좋았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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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함께 살기
폴 뒤무셸.루이자 다미아노 지음, 박찬규 옮김, 원종우 감수 / 희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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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근래 읽어본 로봇/인공지능 저서 중 페이지가 가장 느리게 넘어갔던 책이었다. 크게 인공지능 저서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너무나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책과 다른 하나는 너무나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로봇과 함께 살기>는 후자에 속하는데 말 그대로 로봇이 우리 삶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심플한 제목에 비해 무척이나 근원적인 내용을 자랑했고 거기다 각종 연구 사례나 주장이 인용되기까지 해 - 여담이지만 각주가 전부 미尾주로 처리돼 책 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무척 성가셨다.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확실히 전달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달라고 하면 난감하지만.

 인공지능이란 테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 아톰의 한 에피소드를 리메이크한 작품 - 를 보고 나서인데 그 작품에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어쩔 때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이 등장한다. 작중의 인공지능의 발전 양상은 허구답게 현재 기술을 아득히 초월했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로봇이 인간들로부터 받는 차별을 받는 양상이었다. 로봇이 너무나 인간과 닮아졌다는 이유로 인간들의 차별은 더 극심해진 것이다. 아마 이 작품에서의 윤리적 논란이 우리들 사이에서 오가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여야 하겠지만 차별과 관용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아주 유익하고 심오한 작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로봇과 함께 살기>에선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현대의 인공지능 분야에서 권위를 떨치는 학자까지 언급하며 새로운 차원의 윤리의 필요성을 아주 디테일하게 풀어낸다. 인공지능을 지닌 존재는 시작은 인간의 필요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그에 적합하며 더욱 진보한 윤리관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로봇이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비롯된 것처럼 로봇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했으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만연한 지금 시점에서도 역시 새로운 윤리관이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관이란, 로봇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우리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임을 알아감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것일 터다. 이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왜 두려워하는가, 로봇이 왜 우리와 닮을수록 불편함을 느끼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히 개개인의 기호로만 치부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시킨 것임에도 너무 발전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까워지자 불안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으니까. 우리는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또 무엇인가. 로봇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마주치는 내면의 질문들은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어렴풋이 느꼈거나 자문자답했던 문제들을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파고들어 반가운 한편으로 지겨운 감도 있었다. 하지만 지겹고 또 어렵게 읽힌다는 것은 곧 이 책이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한 번에 쓱 읽고 잊혀질 책이 아니라 몇 번씩 들여다봐야 하는 책의 특성상 내용이 뒤로 갈수록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나름 본받을 만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쉽게 써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만...

다시 말해 우리는 로봇이 자율적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율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10p




우리가 로봇을 가장 두려워하는 때는 차이가 사라지고 로봇과 인간이 다른 존재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 38p




공상과학이 보여주느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예측과 달리, 인공 윤리는 로봇들의 사회로의 진입을 종말의 시작이 아닌 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전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는 인공의 사회적 파트너(대리로봇)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자 탐구가 될 것이다. - 2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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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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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현암사에서 펴낸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가급적 출간 순서대로 읽으려고 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도련님> 다음에 <풀베개>라는 사상 최강의 난관에 부딪쳐서... 내가 나중에라도 그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 작품에 가미된 소세키의 숭고하다 못해 고고한 취향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다음에 출간된 <태풍>에 손을 댔다. 아, 이 작품은 그나마 낫다. <풀베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어쨌든 서사가 있는 편이라서 술술 읽혔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지식인이구나 싶었던 게 내가 요번 작품을 읽으면서 나온 감상이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차라리 약과였고, 이 작품에 등장한 시라이 도야라는 문학자는 천생 지식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인이라 부를 테고 어떤 사람은 선비라고 낮잡아 볼 것 같다. 현실 감각 결여된 채 실속 없이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인물이란 게 시라이 도야란 인물을 향한 통속적인 시선일 테니까.


 서사적 짜임새는 소세키의 초기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에 못 미치는 작품이다. 일단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개입돼 소설보다 계몽 도서를 읽는 기분이고 두 가지 시점을 번갈아 교차하는 서술 구조도 그렇게 효과적이라는 느낌까진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식인이 나오고 그 지식인을 바라보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시라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 뭣 모르고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자라고 나서 그 행동을 후회하는 제자와 시라이에 공감은 하면서도 정작 그를 따라 실천에 옮기기는 꺼리는 부잣집의 사내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선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꼿꼿하게 지켜야 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속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말해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작품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시라이 도야의 주장이나 인물들의 내적 갈등, 번민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 읽은지 2주 가까이 된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대신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작품에서 계속 강조되는 홀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외로운 삶에 대한 정의는 어렸을 때부터 내 나름대로 많이 내려왔기에 이제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무려 이게 100년도 더 된 작품이란 점은 눈여겨볼 만했다. 한 세기 전 작품치곤 너무 공감이 갔거든.


 단언컨대 작품 말미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작품을 여기서 더 저평가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KBS <대화의 희열2>에서 김영하 작가가 나와 '독자들은 작가가 자기처럼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그가 쓴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들을 땐 아리송했으나 가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닌 듯하다. <도련님>에서도 그랬지만 - 아직 소세키의 작품을 많이 못 읽어서 비교할 작품이... - 이 작가는 과장된 해피엔딩을 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한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결국 시라이 도야도 그의 인물됨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소수의 사람 정도만이 열광할 뿐 밥값도 벌지 못하는 선비 이미지가 특별히 전복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만나 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중요하다.

 이 작품도 나중에 다시 읽을 텐데,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라고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 다만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린 인간의 한계가 이전보다 더 와 닿을 것인가. 나는 시라이 도야의 말에 공감할 것인가, 반발할 것인가. 지금은 그의 말이 공감이 되면서도 내심 말만 번지르르한 것 같아 질리기도 했는데 다음엔 또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은근히 사람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 100p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중략)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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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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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7







 이 작가의 책은 <소문>으로 시작해 <내일의 기억>, <네 번째 빙하기>와 이번 단편집까지 총 4권 접해봤다. 그전까지 장편이었는데 이렇게 단편으로도 접하니 느낌이 또 색다르다. 이 책과 더불어 앞에 언급한 책을 모두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소화하는 장르가 정말 다양하단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은 연쇄 살인범을 잡는 스릴러,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자를 둘러싼 가족 드라마, <네 번째 빙하기>는 개성 강한 성장 소설이다. <벽장 속의 치요>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특징이 적절하게 혼합된 단편집이다. 어떤 작품은 서늘하고 어떤 작품은 웃기고 어떤 작품은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내일의 기억> 때도 그랬지만 별로 내 취향이 아니다. 서늘하거나 웃긴 이야기의 경우엔 수명은 짧지만 - 표현이 좀 이상한데 내 머릿속에서 그리 오래 남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그런대로 만족감은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단, 표제작은 꽤 괜찮았다. 그런 주제의식과 설정은 언제나 환영이다.



 '벽장 속의 치요'


 주인공 남자가 새로 구한 집에 알고 보니 유령이 살고 있다는 서사는 지겹고 뻔해서 신물이 날 지경이고 이 작품이라고 그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뒤로 갈수록 읽을 만했다. 유령인 치요는 매력적이고 치요가 죽은 원인과 그 죽은 원인에 얽힌 일본 근대사의 온갖 그늘진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가 다분해 가볍게 넘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제의식이 워낙 강렬해서 단편이 아닌 장편이었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승전결이 괜찮은 단편이지만 이 작가라면 왠지 장편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예기치 못한 방문자'


 비슷한 포맷의 이야기는 많이 접한 것 같은데 이것도 재밌게 읽혔다. 나름 절박하게 발버둥치는 남자의 심리 묘사가 몰입도 있었다. 살인을 은폐하려는 남자가 위험하고 멍청한 짓을 하는데 그런 만큼 스릴 넘쳤다. 결말의 반전이 내 그럴 줄 알았다 싶긴 하지만.



 '살인 레시피'


 비슷한 제목의 스릴러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은근히 레시피란 단어는 여러 곳에서 쓰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정말로 레시피의 본뜻에 맞게 활용된다. 음식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계략을 열거하는 부분은 좀 감탄스러웠다. 까다롭지만 실용적으로도 보이는 이 살인 레시피를 보노라면 작가가 얼마나 연구했는지 보였다. 특히 재밌던 건 결말이다. 이야길 끝맺는 문장이 아주 기막혔다.



 'Call'


 서술 트릭이 가미됐다고 해서 읽기 전부터 기대한 작품인데 생각보다 시시해서 김샜다. 서술 트릭이 맞긴 한데 아주 충격적이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겠지?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이 작품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후보에 올랐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다. 결말에서 드러난 어떤 반전이 오싹하긴 했는데 그 상에 후보로 들 만한 작품인 건가 싶었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상 이름과 달리 일반적으로 추리소설 같지 않은 소설도 수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나 추리소설 같은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수상작들이 다 재밌다는 건데... 이 작품은 상을 못 받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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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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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현재 쓰고 있는 미국 여행기에서 쓸 내용이긴 하지만, 나는 이번 미국 여행 때 뜬금없게도 뭉크가 더욱 좋아졌다. 노르웨이 여행 때도 그의 작품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지만 미국에서 여러 명화를 접하다 보니까 새삼 내가 대단한 분을 몰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다른 유명 화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뭉크라는 인물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귀국하고 바로 이 책을 읽어봤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읽는 것이 내게 있어 무척 생경한 일이라 이 책의 모든 것이 신선했고 만족스러웠다. 뭉크의 삶을 통해 그의 작품도 살펴보는 이 책은 자연스럽게 뭉크의 고향인 노르웨이의 풍경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데 내가 직접 다녀왔을 정도로 좋아해 마지않는 나라이기에 읽는 내내 아주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뭉크가 노르웨이에서 국민 화가 대접을 받는 걸 넘어 '회화하면 뭉크'라는 공식까지 - 비슷한 공식으로 '노르웨이에서 문학은 입센, 음악은 그리그, 조각은 비겔란'이 있다. - 있다는 걸 떠올리면 노르웨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나라에 아예 뭉크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뭉크 미술관이 있고 가장 가치가 높은 1,000크로네 지폐에 뭉크의 사진과 그의 대표작 <태양>이 그려진 것까지 보면 정말 말 다했다.


 특이했던 건 이 책에선 뭉크의 삶을 연대순이 아닌 키워드별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뭉크와 관련된 책은 참 많았지만 단언컨데 다른 책에선 이 책처럼 독특한 느낌을 받긴 쉽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은 저자 입장에서도 헷갈리고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텐데 뭉크의 작품을 들여다볼 때 무시할 수 없을 키워드인 가족과의 불화, 실연, 죽음, <생의 프리즈>, 그리고 대표작 <절규> 등에 대해 한 파트에 집중적으로 다뤄 나중엔 오히려 효율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성에 있어서 저자가 고심한 것이 빛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게 몇 가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노르웨이에서 뭉크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고 미국에서 그렇지 못했던 현상을 순전히 노르웨이가 뭉크의 진가를 일찍이 잘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사수한 결과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뭉크 역시 처음엔 그 독보적인 화풍 때문에 인정을 많이 못 받았는데 다행히 소수의 안목 있는 자들의 지원 덕분에 파리나 베를린 등 해외에 가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오히려 노르웨이에선 그러한 해외에서의 유명세가 있어 뒤늦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뭉크는 - 표현주의란 쉽게 말해 눈으로 보는 풍경에 자신의 심리를 대입해서 변형 및 왜곡시키는 스타일로 생각하면 편하다. -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파격적인 작품 때문에 당대엔 외면을 많이 받은 편인데 자국인 노르웨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았다는 게 내심 실망이라면 실망이었다. 노르웨이는 어딘지 깨어있는 그런 이미지가 있기에...


 그랬던 그의 작품이 대다수 노르웨이 미술관에 있을 수 있는 데엔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나치가 창궐해 자신의 그림이 무기력하게 불탈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나라에 기증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늘 생각하지만 시대의 그늘, 또 인생의 그늘은 늘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나치 덕분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나치의 위협이 있었기에 뭉크의 작품은 거의 다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게 된 점, 뭉크가 날 때부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등 여러 아픔이 있었기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여러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진짜 아이러니한 건 자신은 항상 죽음과 같이 살았다고 말했던 뭉크는 정작 그 자신은 80이 넘어서까지 산, 이른바 장수한 인물이란 것이다.

 뭉크의 장수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있어서 지독한 농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뭉크 자신은 고독을 좋아해 말년을 조용히 지내다 영면에 들었지만 뭉크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 후반부는 초라한 감이 없잖아 있다. 내가 봤을 때 뭉크의 고독엔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가 원해서 홀로 작품 세계에 몰두한 것이겠지만 그러한 계기가 가족과 연인 등과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이별의 탓이 컸으니... 그렇기에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꽤나 장수했고 인생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조용해서 일견 행복한 편이었다고 여겨지는 뭉크의 삶도 참 착잡하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이 페이지 수에 비례하지 않게 방대해서 후기가 다소 두서 없는 감이 있는데 여하간 책에선 뭉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겠다. 뭉크의 팬은 당연하겠고 그의 작품을 <절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줄 듯하다. 특히 두 번이나 절도를 당한 <절규>에 관한 에피소드, 내년인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인 뭉크 미술관 2관에 대한 얘기는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고 뭉크 미술관 등에서 인터쉽으로 참가한 경력이 있는 저자이기에 제법 디테일하게 서술돼서 끝까지 만족스러웠던 책이다.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 <뭉크> 같은 퀄리티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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