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함께 살기
폴 뒤무셸.루이자 다미아노 지음, 박찬규 옮김, 원종우 감수 / 희담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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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근래 읽어본 로봇/인공지능 저서 중 페이지가 가장 느리게 넘어갔던 책이었다. 크게 인공지능 저서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너무나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책과 다른 하나는 너무나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로봇과 함께 살기>는 후자에 속하는데 말 그대로 로봇이 우리 삶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심플한 제목에 비해 무척이나 근원적인 내용을 자랑했고 거기다 각종 연구 사례나 주장이 인용되기까지 해 - 여담이지만 각주가 전부 미尾주로 처리돼 책 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무척 성가셨다.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확실히 전달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달라고 하면 난감하지만.

 인공지능이란 테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 아톰의 한 에피소드를 리메이크한 작품 - 를 보고 나서인데 그 작품에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어쩔 때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이 등장한다. 작중의 인공지능의 발전 양상은 허구답게 현재 기술을 아득히 초월했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로봇이 인간들로부터 받는 차별을 받는 양상이었다. 로봇이 너무나 인간과 닮아졌다는 이유로 인간들의 차별은 더 극심해진 것이다. 아마 이 작품에서의 윤리적 논란이 우리들 사이에서 오가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여야 하겠지만 차별과 관용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아주 유익하고 심오한 작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로봇과 함께 살기>에선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현대의 인공지능 분야에서 권위를 떨치는 학자까지 언급하며 새로운 차원의 윤리의 필요성을 아주 디테일하게 풀어낸다. 인공지능을 지닌 존재는 시작은 인간의 필요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그에 적합하며 더욱 진보한 윤리관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로봇이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비롯된 것처럼 로봇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했으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만연한 지금 시점에서도 역시 새로운 윤리관이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관이란, 로봇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우리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임을 알아감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것일 터다. 이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왜 두려워하는가, 로봇이 왜 우리와 닮을수록 불편함을 느끼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히 개개인의 기호로만 치부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시킨 것임에도 너무 발전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까워지자 불안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으니까. 우리는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또 무엇인가. 로봇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마주치는 내면의 질문들은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어렴풋이 느꼈거나 자문자답했던 문제들을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파고들어 반가운 한편으로 지겨운 감도 있었다. 하지만 지겹고 또 어렵게 읽힌다는 것은 곧 이 책이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한 번에 쓱 읽고 잊혀질 책이 아니라 몇 번씩 들여다봐야 하는 책의 특성상 내용이 뒤로 갈수록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나름 본받을 만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쉽게 써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만...

다시 말해 우리는 로봇이 자율적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율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10p




우리가 로봇을 가장 두려워하는 때는 차이가 사라지고 로봇과 인간이 다른 존재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 38p




공상과학이 보여주느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예측과 달리, 인공 윤리는 로봇들의 사회로의 진입을 종말의 시작이 아닌 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전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는 인공의 사회적 파트너(대리로봇)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자 탐구가 될 것이다. - 2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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