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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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현암사에서 펴낸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가급적 출간 순서대로 읽으려고 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도련님> 다음에 <풀베개>라는 사상 최강의 난관에 부딪쳐서... 내가 나중에라도 그 작품을 완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 작품에 가미된 소세키의 숭고하다 못해 고고한 취향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다음에 출간된 <태풍>에 손을 댔다. 아, 이 작품은 그나마 낫다. <풀베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어쨌든 서사가 있는 편이라서 술술 읽혔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지식인이구나 싶었던 게 내가 요번 작품을 읽으면서 나온 감상이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차라리 약과였고, 이 작품에 등장한 시라이 도야라는 문학자는 천생 지식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인이라 부를 테고 어떤 사람은 선비라고 낮잡아 볼 것 같다. 현실 감각 결여된 채 실속 없이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인물이란 게 시라이 도야란 인물을 향한 통속적인 시선일 테니까.


 서사적 짜임새는 소세키의 초기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에 못 미치는 작품이다. 일단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개입돼 소설보다 계몽 도서를 읽는 기분이고 두 가지 시점을 번갈아 교차하는 서술 구조도 그렇게 효과적이라는 느낌까진 들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식인이 나오고 그 지식인을 바라보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시라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 뭣 모르고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자라고 나서 그 행동을 후회하는 제자와 시라이에 공감은 하면서도 정작 그를 따라 실천에 옮기기는 꺼리는 부잣집의 사내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선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꼿꼿하게 지켜야 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속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솔직히 말해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작품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시라이 도야의 주장이나 인물들의 내적 갈등, 번민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 읽은지 2주 가까이 된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대신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작품에서 계속 강조되는 홀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외로운 삶에 대한 정의는 어렸을 때부터 내 나름대로 많이 내려왔기에 이제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무려 이게 100년도 더 된 작품이란 점은 눈여겨볼 만했다. 한 세기 전 작품치곤 너무 공감이 갔거든.


 단언컨대 작품 말미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작품을 여기서 더 저평가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KBS <대화의 희열2>에서 김영하 작가가 나와 '독자들은 작가가 자기처럼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그가 쓴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들을 땐 아리송했으나 가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닌 듯하다. <도련님>에서도 그랬지만 - 아직 소세키의 작품을 많이 못 읽어서 비교할 작품이... - 이 작가는 과장된 해피엔딩을 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한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결국 시라이 도야도 그의 인물됨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소수의 사람 정도만이 열광할 뿐 밥값도 벌지 못하는 선비 이미지가 특별히 전복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만나 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중요하다.

 이 작품도 나중에 다시 읽을 텐데,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라고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 다만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린 인간의 한계가 이전보다 더 와 닿을 것인가. 나는 시라이 도야의 말에 공감할 것인가, 반발할 것인가. 지금은 그의 말이 공감이 되면서도 내심 말만 번지르르한 것 같아 질리기도 했는데 다음엔 또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은근히 사람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 100p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중략)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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