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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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현재 쓰고 있는 미국 여행기에서 쓸 내용이긴 하지만, 나는 이번 미국 여행 때 뜬금없게도 뭉크가 더욱 좋아졌다. 노르웨이 여행 때도 그의 작품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지만 미국에서 여러 명화를 접하다 보니까 새삼 내가 대단한 분을 몰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다른 유명 화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뭉크라는 인물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귀국하고 바로 이 책을 읽어봤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읽는 것이 내게 있어 무척 생경한 일이라 이 책의 모든 것이 신선했고 만족스러웠다. 뭉크의 삶을 통해 그의 작품도 살펴보는 이 책은 자연스럽게 뭉크의 고향인 노르웨이의 풍경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데 내가 직접 다녀왔을 정도로 좋아해 마지않는 나라이기에 읽는 내내 아주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뭉크가 노르웨이에서 국민 화가 대접을 받는 걸 넘어 '회화하면 뭉크'라는 공식까지 - 비슷한 공식으로 '노르웨이에서 문학은 입센, 음악은 그리그, 조각은 비겔란'이 있다. - 있다는 걸 떠올리면 노르웨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 나라에 아예 뭉크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뭉크 미술관이 있고 가장 가치가 높은 1,000크로네 지폐에 뭉크의 사진과 그의 대표작 <태양>이 그려진 것까지 보면 정말 말 다했다.


 특이했던 건 이 책에선 뭉크의 삶을 연대순이 아닌 키워드별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뭉크와 관련된 책은 참 많았지만 단언컨데 다른 책에선 이 책처럼 독특한 느낌을 받긴 쉽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은 저자 입장에서도 헷갈리고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텐데 뭉크의 작품을 들여다볼 때 무시할 수 없을 키워드인 가족과의 불화, 실연, 죽음, <생의 프리즈>, 그리고 대표작 <절규> 등에 대해 한 파트에 집중적으로 다뤄 나중엔 오히려 효율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성에 있어서 저자가 고심한 것이 빛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게 몇 가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노르웨이에서 뭉크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고 미국에서 그렇지 못했던 현상을 순전히 노르웨이가 뭉크의 진가를 일찍이 잘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사수한 결과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뭉크 역시 처음엔 그 독보적인 화풍 때문에 인정을 많이 못 받았는데 다행히 소수의 안목 있는 자들의 지원 덕분에 파리나 베를린 등 해외에 가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오히려 노르웨이에선 그러한 해외에서의 유명세가 있어 뒤늦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뭉크는 - 표현주의란 쉽게 말해 눈으로 보는 풍경에 자신의 심리를 대입해서 변형 및 왜곡시키는 스타일로 생각하면 편하다. -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파격적인 작품 때문에 당대엔 외면을 많이 받은 편인데 자국인 노르웨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았다는 게 내심 실망이라면 실망이었다. 노르웨이는 어딘지 깨어있는 그런 이미지가 있기에...


 그랬던 그의 작품이 대다수 노르웨이 미술관에 있을 수 있는 데엔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나치가 창궐해 자신의 그림이 무기력하게 불탈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나라에 기증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늘 생각하지만 시대의 그늘, 또 인생의 그늘은 늘 의외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나치 덕분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나치의 위협이 있었기에 뭉크의 작품은 거의 다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게 된 점, 뭉크가 날 때부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등 여러 아픔이 있었기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여러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진짜 아이러니한 건 자신은 항상 죽음과 같이 살았다고 말했던 뭉크는 정작 그 자신은 80이 넘어서까지 산, 이른바 장수한 인물이란 것이다.

 뭉크의 장수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있어서 지독한 농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뭉크 자신은 고독을 좋아해 말년을 조용히 지내다 영면에 들었지만 뭉크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의 인생 후반부는 초라한 감이 없잖아 있다. 내가 봤을 때 뭉크의 고독엔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가 원해서 홀로 작품 세계에 몰두한 것이겠지만 그러한 계기가 가족과 연인 등과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이별의 탓이 컸으니... 그렇기에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꽤나 장수했고 인생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조용해서 일견 행복한 편이었다고 여겨지는 뭉크의 삶도 참 착잡하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이 페이지 수에 비례하지 않게 방대해서 후기가 다소 두서 없는 감이 있는데 여하간 책에선 뭉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겠다. 뭉크의 팬은 당연하겠고 그의 작품을 <절규>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줄 듯하다. 특히 두 번이나 절도를 당한 <절규>에 관한 에피소드, 내년인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인 뭉크 미술관 2관에 대한 얘기는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고 뭉크 미술관 등에서 인터쉽으로 참가한 경력이 있는 저자이기에 제법 디테일하게 서술돼서 끝까지 만족스러웠던 책이다.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 <뭉크> 같은 퀄리티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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