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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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고전 문학을 특유의 감성으로 소개하는 만화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이 읽고 싶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체호프의 카프카의 단편 몇 편을 제외하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이 아직 읽지 못했거나 몇 번을 시도했으나 중도에 포기했던 작품들이라 궁금증을 자극했다. 과연 작가는 책을 어떻게 소개해줄 것인가 하면서.

 소개된 13권 중 <죄와 벌>과 <나를 보내지 마>, 이 두 권은 읽고 싶어졌다고 하면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은 만화의 형식을 띄고 있고 페이지도 빠르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히지는 않았다. 고전이긴 해도, 또 이름만 들어도 알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저자는 해당 작품을 읽고 느낀 바를 제법 추상적으로 묘사한 덕택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을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튼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다소 두루뭉술한 감이 없지 않아 가끔은 이게 뭔 말인지 페이지 넘기는 손을 멈추고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싫증을 내며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해당 작품을 읽었더라면 저자의 말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싫증을 내야하는 건 나 자신이겠지.


 책의 서두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는데, 책이란 건 읽는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인상이 달라져서 나중에 그 책을 떠올리면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기분, 처한 상황, 읽었던 장소 등이 떠오른다는 맥락의 구절이었다. 책이라는 물건을 그런 식으로 의식해본 적이 없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장르를 막론하고 내가 글을 읽는 이유 중 하나로 내가 제대로 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을 저자가 명쾌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이 책이 그 경우에 딱 들어맞았기에.

 사실 서두의 저 구절만으로 이 책의 내용을, 그리고 저자를 반 이상은 신뢰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에 나오는 본편이 아리송했어도 그리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내 탓을 했으면 했지, 저자의 자질을 의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의사실'이라는 이상한 필명도 다 읽고 나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정말로 내게서 의외의 감상을 이끌어냈으니까.


 위에서 말했듯 <죄와 벌>과 <나를 보내지 마>가 굉장히 읽고 싶어졌다. 아깐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는지 자문했는데, 사실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나도 늘 느끼지만 누군가에게 책의 매력을 설명하는 건 서로 취향이 맞지 않는 이상 은근히 힘든 일이니까. 그래서 난 이 책이 좋았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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