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9







 동명의 일본 영화를 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본인이 썼던 각본을 그대로 소설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 부를 수 없을 듯하다. 오히려 영화 원작 소설이라 해야겠지. 하지만 이 작품처럼 감독이 소설을 쓰는 경우는 처음 봤다. 보통 다른 작가를 쓰던데... 서두에서 감독은 영화와 소설의 서술 방식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언뜻 이 소설이 영화와 사뭇 다른 인상을 주리란 인상을 심어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인상은 읽을수록 크게 옅어진다.

 내용은 사실상 영화를 그대로 옮겼을 뿐이며, 다만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랄 수 있는 시오리의 심리가 세세하게 묘사된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뭐, 영화의 내용이 워낙 좋아서 그대로 옮긴다는 게 딱히 흠잡을 부분은 아니나 굳이 이렇게 큰 차이가 없는데 뭐하러 소설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전에 읽은 <태풍이 지나가고>는 영화와 소설의 인상이 달랐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소설화할 땐 다른 작가와 협업했는데 아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작품을 소설을 쓰면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가 보다. 작품의 각본을 썼는데 소설까지 썼던 건 욕심이 아니었는지...


 이야기나 설정은 여전히 울림이 있어 좋았다. 일본 특유의 경어로 서술되는 문체가 어색했지만 의외로 작풍과 어울리는 맛이 있어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소설의 분량은 짧은 지라 상대적으로 영화에 비해 심심한 감이 있었는데, 영상미나 배우들의 연기 없이 묘사만으로 그 많은 캐릭터들의 '행복한 기억 찾기'를 그리는 건 좀 벅찼던 듯하다. 만약 영화가 아닌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이 부분에서 더 강한 불만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본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읽은 거니 따라가기 편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이름도 헷갈리는데 - 의도적인지 몰라도 인물들의 이름이 다들 평범했다. 노린 건가? - 누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도 몰라 적잖이 헤맸을 것만 같다.

 소설의 내용을 비롯해 캐릭터 설정, 주제의식 등이 워낙에 영화와 닮아서 작품의 외형에 대해서만 말하게 된다. 경어로 이뤄진 문체 때문인지 영화보다 더 우화적이었던 게 인상에 남지만 표면적인 대사는 영화와 그야말로 판박이라 감흥이 덜했다. 나처럼 소설은 영화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소설이 영화의 세계관을 더 확장시킨 걸까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물론 영화의 지대한 팬이라면 이런 말은 무시하고 결국 읽겠지만 그래도 이 점을 꼭 염두에 두길 바란다.



 작품의 내용에 대한 감상평은 이 포스팅으로 대체한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189852654

 

난 그때 자기 안에서 행복한 순간을 필사적으로 찾았어. 그리고 50년이 지나 어제야 비로소 나도 다른 사람의 행복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안 거야. 그건 무척 멋진 발견이었어. - 25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바이, 엔젤 - 라루스가 살인 사건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8.1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이름은 상당히 낯익었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저술한 몇몇 작품이 추리소설로서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사쿠라바 가즈키나 요네자와 호노부 같은 작가들을 메인 스트림에 추천한 위인이란 걸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바이, 엔젤>은 무려 45년 전에 출간된 저자의 데뷔작이자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독자들의 평이 그닥 시원찮아 보여 읽기 전에 의아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도 호불호가 갈린다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절대 가볍게 펼쳐들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탈을 쓴 사상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설명적이고 관념적이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교고쿠 나쓰히코나 나카지마 라모 - 설명적인 것으로만 치면 기시 유스케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 같은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이 무척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너무 과장하는 걸까? 40년 전 소설답게 사건의 양상은 크게 신선할 것 없는 와중에 작품의 서사를 감싸고 있는 관념의 깊이, 철학의 두께가 초장엔 흥미로울지언정 전개를 거듭할수록 몰입도가 떨어져 왜 이 작품이 그토록 호불호가 갈렸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아니, 이렇게 어렵게 읽히는 추리소설은 꽤 오랜만이었다. 우스겟소리지만 작가는 물론이고 번역가도 자기가 무슨 말을 번역하고 있는지 알기는 한 걸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책의 편집에 의한 옥의 티를 지적하고 싶다. 작품 본편의 사건, 범인이 연쇄살인을 저지른 내막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가미됐는데 문제는 책에서 소개되는 저자의 약력만 보면 이 자전적 요소를 대충이라도 파악할 수 있어서 결말의 놀라움이 반감된 감이 있었다. 굳이 책의 첫 장에 저자를 그토록 길게 소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자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 자체는 문제삼을 것이 못 된다. 사건의 배경인 프랑스 파리의 역사적 맥락을 간과하면 범인이 밝히는 동기가 뜬금없는 경향이 있지만 작가가 자전적 요소를 제법 매끄럽게 녹여냈기에 이 정도면 자전적인 소설의 모범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홍보한 게 김빠진다는 거지. 그렇기에 만약 이 소설을 진지하게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첫 장에 소개된 저자의 약력은 안 보고 읽기를 바란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말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절대 가벼운 기분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평소에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책에 관심이 있다거나 내성이 있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지 책의 외면적인 요소, 연쇄살인과 머리 없는 시체 같은 본격 추리소설다운 소재에 이끌려 읽겠다면 한번 더 고심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흥미를 추구하며 읽기엔 사건의 전개와 해결은 평범하고 문장과 주제의식은 난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야부키 가케루가 그토록 주창하는 '현상학'이란 걸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몇 문장으로 쉽게 말할 것을 인물들이 기본적으로 서너 장에 걸쳐 장광설을 펼치는 통에... 아무튼 상당히 인내심이 필요한 작품이란 걸 꼭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냉정하게 말하건대 순전히 추리소설적으로만 봤을 땐 아주 만족스런 작품이진 않았다. 사건 전개가 평범하고 구태의연한 감도 있고 탐정역을 맡은 야부키 가케루를 비롯한 주위 등장인물들, 범인까지 너무 성향이 비슷해 읽는 맛이 떨어진다. 가령 제아무리 야부키 가케루가 어려운 말만 써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요약해주거나 딴지를 거는 발랄하기 그지없는 캐릭터가 - 예를 들면 '교고쿠도' 시리즈의 에노키즈 같은 캐릭터. -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긴 장광설을 읽느라 쌓인 피로가 간간이 풀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무겁거니와, 막판에 다다라선 야부키 가케루도 귀여워 보일 정도의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나 쏟아대는 범인까지 등장해 정신적 피로가 거의 극에 달하게 돼 여러모로 뒷맛이 개운치 않은 채 책장을 덮게 된다. 위에서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탈을 쓴 사상서'라는 말엔 조금도 과장이 섞이지 않았다. 아, 첨언을 해보겠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지만 완독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이 어려운 책을 다 읽다니,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소설은, 말그대로 어렵다는 개성 때문에 함부로 저평가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추리소설이건 추리소설의 탈을 썼건 뭐건 어쨌든 추리소설의 형태로 진지하게 어렵게 쓰는 것은 쉽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출간된 당시 일본에선, 이렇게 '뭔가 있어 보이는' 작품이 꽤나 신선한 나머지 높이 평가한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추리소설 평론가가 쓴 추리소설이라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작가가 꿈꿨을지 모를 추리소설과 사상의 결합이 아주 절묘했다고 보긴 힘드나 이토록 진지하기 짝이 없는 소설을 썼다는 점, 그리고 적어도 추리소설과 사상 중 한 마리 토끼는 제대로 잡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국내에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역자가 말하길 후속작에선 서사가 더 발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후속작이 끌리는 이유가 있다. 탐정 캐릭터인 야부키 가케루가 꽤 독특한데 이렇게 그림으로 그린 듯한 철학자 탐정은 가히 천연기념물급이었다. 때문에 본작에서도 이 양반이 등장하는 장면만을 집중하면서 읽었을 정도인데 그런 만큼 다음 작품에서의 행보도 궁금하다. 그와 더불어 야부키 가케루와 기묘한 관계로 그려지는 나디아도 독특한 캐릭터인 지라 솔직히 작중에서 펼쳐지는 철학/사상 대결보다 이 둘의 관계에 더 눈길이 가기도 했다. 후속작에선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너무나 기대된다. 추리소설은 캐릭터만 잘 만들면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게 마냥 우스겟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p.s 진짜 여담인데 왜 책의 제목이 영어인지 모르겠다. 불어로 <아듀, 앙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작품 배경이 파리인데...

순교자야말로 고리대금업자보다 타산적으로 자신의 소유물에 매달리지. 고리대금업자가 쌓아 올린 금화를 천한 웃음을 띠고 어루만지는 것처럼 순교자는 자신의 정의, 자신의 신을 두루 혀로 핥아. - 37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8.5







 누가 뭐라 하든, 동거는 결혼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은 퍽 흥미로웠다. 결혼이란 정말이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배우자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식을 올리는 건 그야말로 도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고작 설거지 누가 하느냐로 감정이 상했다고 서술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데이트할 때가 아닌 삶의 일상적인 순간마다 사랑스러우리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까지 했는데 설거지 하나 때문에 빈정이 상해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의미에서 동거는 결혼했을 때 겪을 시행착오를 미리 경험할 수 있게 충분히 할 만하다. 물론 동거도 부담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과정임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설령 동거를 해서 헤어진다 해도 그 역시 의미가 있으니까.

 이 책을 페미니즘 도서라 생각하며 읽었고 작가도 그 점을 꽤나 강조하고 있지만 원래 좋은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듯 이 책은 생각보다 다양한 측면으로도 읽혔다. 개인적으로 '여남 평등'이란 표현만 제외한다면 - 참고로 난 '양성 평등'이란 단어를 선호한다. - 전개되는 내용이 꽤나 일리가 있고 통찰력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하고, 결정적으로 자기 얘기에 도취해 공정함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 게 가장 좋았다. 남자 친구, 나중엔 남편이 되는 '그'의 변론이란 글이 각 챕터의 끝자락마다 실린 게 재밌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양반의 글에 좀 더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결국 여남 관계란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합리적인 이유와 입장이 있고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관대하기에 유리하게 말할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이란 짧은 글들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 남자의 글이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더라면 난 저자의 글 전체를 온전히 신용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측면에서 봤을 때 딱 알기 쉽고 일리가 있으며 재치있게 논리를 전개해 괜찮게 읽혔다. 남자 친구이자 나중에 남편이 되는 '그'가 그렇게 악한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범하는 차별적인 언동이 어떻게 저자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이에 대해 저자가 시도하는 다채로운 반격 등을 담은 내용이 남자인 내가 읽어도 몰입감이 제법이었다. 어디까지나 실화에 기반한 에세이지만, 저자가 엄연히 문학상을 받고 데뷔한 소설가인 지라 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내겐 더욱 술술 읽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저자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는 한국 여성 독자가 읽어도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권이 비등비등해서 딱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 치부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결혼하면 성씨가 바뀐다는 내용만 뺀다면. 이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일본에서 결혼하면 아내의 성는 배우자의 성으로 바뀌는데 그로 인해 동사무소 같은 곳을 돌아가며 서류를 작성하고 시간과 돈이 낭비된다는 것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자는 비교적 가볍게 저술했지만 이건 좀 심각한 일이 아니냐며 내가 다 억울할 정도지 뭔가. 생각해 보니 알고 있었지만 성이 바뀐다는 게 사람에 따라선 굉장한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저자가 얘기한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이렇게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 자신에게도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잖아? 미국도... 그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 읽으니까 저자의 소설도 읽고 싶어졌는데 국내에 아직 출간된 게 없더라. 저자가 데뷔하며 수상한 문학상이 R-18문학상인데 그 상을 받은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저자의 데뷔작도 궁금해졌다. 조만간 국내에 소개된다면 읽어볼 생각이다. 얼른 출간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4







 설마 <데프 보이스>의 후속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농인 사회를 제대로 그려낸 그 작품은 진지한 주제의식과 성찰, 그리고 농인 사회에 대한 사려 깊은 묘사가 돋보였는데 이렇게 후속작까지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내심 전편의 부제가 '법정의 수화 통역사'임에도 주인공이 법정에 서는 장면이 없었던 게 아쉬웠는데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본작에선 바로 법정의 수화 통역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이 책은 전 경찰, 현 수화 통역사인 아라이 나오토가 농인 사회와 마주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모은 연작 소설집이다. 작가 자신도 <데프 보이스>의 후속작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러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이렇게 간신히 연작의 형식으로 뒷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뭐가 됐든 정말로 반가운 후속작이 아닐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2년 만에 출간됐지만 일본에선 전편으로부터 무려 7년 만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후속작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기존의 주제의식이 더욱 심화됐다. 이 정도면 후속작이 또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단 두 편으로 풀고 끝내기엔 이야기나 캐릭터들이 너무 아쉽다.



 '변호 측 증인'


 아라이가 법정의 수화 통역가로서 활약한 에피소드. 통역은 신성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라이가 좀 고지식한 감이 있지만 그만큼 직업 정신이 투철해서 다른 통역가의 귀감이 될 만하다.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선 농인 사회 전반에 너무나 무지한 세상과 싸움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보를 보인다. 무고하게 누명을 쓴 농인을 변호한 변호인 못지않게 아라이는 농인과 청인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통역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저 놈(농인)이 그렇게 훌륭한 말을 했다고요? 당신이 지어낸 건 아니고? 믿기지가 않네. 순 벙어린 줄 알았는데.' 라고 냉대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했던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농인이 아닌 나도 뚜껑 열리는데 당사자는, 하물며 아라이는 오죽했겠는가.



 '바람의 기억'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라이는 통역가치고 사건에 꽤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선 아라이 스스로 '통역가 실격'이라 자책할 정도로 사건에 끼어든다. 자신들과 똑같은 농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범죄자들의 리더가 너무 골칫거리라는데 여느 통역가보다 괜찮은 수화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로 지목돼 아라이는 껄끄럽지만 리더인 신가이의 수화를 통역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실청한 중도실청자 신가이는 농인을 노리는 범죄 집단의 리더로서 '농인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가르쳐줬기에'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고 적반하장식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실청된 자신과 다르게 수화를 구사하면서도 들을 줄도 아는 아라이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등 신가이는 자신을 다른 농인과 선을 그으면서도 청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등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 언행을 보인다. 농인 부모의 들리는 자녀인 코다로 태어난 아라이는 그런 신가이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데...


 신가이가 아라이를 질투하는 이유가 청인과 농인, 두 세계를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갔다. 청인만의 세계라면 몰라도 농인의 세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단 것도 부럽다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리 청인들은 이렇게 생각할 듯하다. 농인의 세계는 단지 들을 수 없기에 선택의 여지 없이 속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세계라고. 또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벗어나고 싶을 것이리라 지레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는 농인 입장에서 대단히 무례하고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같은 농인을 등쳐먹은 신가이마저도 농인의 세계를 온전히 부정하지 못하듯 농인의 세계 역시 청인의 세계처럼 함부로 폄훼돼선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신가이가 뼛속까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았는지 아라이의 참견에 의해 잘못을 뉘우치는 건 퍽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다. 다양한 인격과 입장의 농인이 등장한 것도 흥미로웠고 아라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신가이의 모습이 한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용의 귀를 너에게'


 작가가 직전 에피소드에서 통역가인 아라이가 너무 활동적이었던 게 내심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하고 자각이라도 했는지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그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단, 다소 지리멸렬하게 보이는 제목의 풀이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농인의 농聾이라는 한자에 그런 유래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농'이란 글자가 귀가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뿔이 있어 자연스럽게 귀가 떨어져 없어졌다는 얘기에서 비롯됐으리라고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까. 단지 귀로 듣고 입으로 소리내 말하는 것이 곧 대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주변에서 농인을 보지 못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생각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제목에 담긴 의미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도 의미심장한 나머지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번 에피소드는 아라이가 상대적으로 나설 자리가 적었던 것, 다뤄지는 사건의 윤곽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 수화 통역가로서 활약할 자리가 적었던 점들 때문에 가장 이질적이었다. 주요하게 다루는 소재도 농인이 아닌 함묵증에 걸린 아이였던 것도 이러한 이질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하지만 농인이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고 오해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써 쉽게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함묵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처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고 이야기도 그를 적극 강조하고 있어 꽤나 통찰력이 돋보이는 세계관 확장이 아니었나 싶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씨앗을 뿌려둔 작중의 '정육학'의 개념, 국가가 '옳은 가정의 모습이란 자고로 이래야 한'고 주장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지라 이래저래 곱씹을 만한 내용이 많았다. 추리소설치고 전개도 약간 심심하고 결말도 싱겁게 나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만듦새는 갖추고 있어 딱히 아쉬울 건 없었다.

이제 바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아. 들릴 리가 없잖아. 바람은 이제 불지 않아. 만약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그건 네 안에서 들리는 소리야. 바람은 네 안에서 불고 있어. - 20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







 최근 이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 출간된 걸 알고 부리나케 이 작품 <레오파드>를 읽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겠다고 어언 5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스노우맨>의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됐다. 전작의 엄청난 성공과 그에 대한 부담의 발로인지 엄청난 분량으로 돌아온 <레오파드>는 작가의 팬인 내 입장에서 보통 기대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7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로 들리겠지만, 난 실제로 요 네스뵈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생각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막상 읽을 때는 물리적인 두께가 있어 아무래도 들고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았다.

 전편이 순전히 노르웨이라는 배경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낸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홍콩, 노르웨이, 콩고, 르완다 등 대륙을 넘나드는 확장된 스케일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시리즈의 주된 배경인 노르웨이를 어떻게 활용해냈는지 - 참고로 시리즈 1, 2번째 작품은 아예 배경이 호주와 태국이었다. - 그 전적을 생각하면 작중에 급변하는 배경들도 그저 생각없이 선정된 것이라고 넘겨짚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배경뿐만 아니라 백과사전급 분량을 꽉꽉 채우는 모든 요소에도 해당하는 얘기인데, 요 네스뵈는 결코 그냥 언급하는 소재가 없다. 캐릭터, 대사, 배경, 소도구... 이 크고 작은 복선들은 철저하고 교묘하게 등장하며 퇴장하는데 이번 작품은 분량이 분량인 지라 인과관계가 꽤나 복잡하긴 했다. 작가의 큰 그림에 헉소리가 났는데, 당연한 얘기겠으나 이러한 두꺼운 분량은 작품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절대 아니다.


 하마터면 '스노우맨'에 의해 모든 것을 읽을 뻔했던 해리는 이번에야말로 사직하고 - 적어도 본인은 사직을 했다고 믿었다. - 홍콩으로 간다. 어쩌다 보니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했던 그의 앞에 고국의 후배 형사인 카야 솔네스가 찾아와 노르웨이로 같이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스노우맨'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대도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해리는 아버지가 위독하단 얘길 듣고 어렵사리 귀국을 결심한다. 그렇게 해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고난 수사 본능으로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고, 반대로 그가 쥐약이라 할 만한 경찰 조직에서의 정치 싸움에 필요 이상으로 휘말리게 되고, 새로운 인연에 의해 다시 불안한 기운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리의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의 곁을 떠나 이번 작품에서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행복할수록 불안하다니... '마블'의 토니 스타크가 모두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 진정한 악몽이라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본작의 해리 홀레도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대해 사심을 줄이고 객관적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레드 브레스트>부터 전편 <스노우맨>까지가 시리즈의 정점이란 사람들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분량에 비해선 임팩트가 약한 작품이긴 했다. 해리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대화, 카야 솔네스와의 캐미, 크리포스와의 알력 다툼 등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여러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할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내가 기대가 너무 큰 탓일 수도, 아니면 작가가 너무 부담을 느껴서 위축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허에 허를 찌르는 것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사건의 전말을 복잡하게 만든 감은 있어 오히려 최종 단계에 이르렀을 땐 자극에 무뎌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과한 분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소 애매한 지점이긴 하나 분량보단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게 만드는 전개가 독이라면 독이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섣불리 추천할 수 없는 작품이다. 꼭 시리즈의 팬이어야만 이해가 된다는 얘긴 아니지만, 작중에 나오는 수많은 전개에 녹아든 감정선은 역시 전작을 다 챙겨 본 독자가 아니면 크게 주목 않고 지나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해리가 아들로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한 죄책감을 주변에 털어놓는 장면은 내 개인적으론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해리의 죄책감은 항상 과한 듯하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자기는 멀쩡한데 주변이 엉망이 되곤 하는 운명의 장난을 증오해서 이번 편에서도 역시 가슴이 아팠다. 그런 만큼 해리가 이 이상 어떤 상처를 입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기서 더 말하면 스포일러이므로 말을 아끼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편으로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해리는 영원히 경찰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무리 험한 처지에 놓여도 그를 즐기기만 했지 동정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해리 홀레는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인 인물이라 나도 모르게 그의 처지에 몰입하고 마는 것 같다. 어차피 해피엔딩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바라게 된다.

 후속작 <팬텀>도 조만간 읽을 것이고 최신작 <폴리스>도 늦어도 올해 안에 읽으려고 한다. 사실 어렴풋하게 스포를 당해서 걱정은 좀 되지만... 그래도 끝장은 봐야지. 아, 쉽지 않겠군.

해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경지란 뻔한 함정을 피하는 것이었다. - 214p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 358p




죽음도 최악의 시련은 아니에요.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죠.

그럼 뭔데?

굴욕이죠. 명예와 위엄을 박탈당하는 것. 무리에서 쫓겨나 따돌림당하는 것. 그게 최악의 형벌입니다. 거의 생매장 수준이죠. 그럴 때 유일한 위안은 인간의 목숨이 꽤나 짧다는 사실뿐이에요. - 365p




우리는 복잡하면서도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해.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면서, 내 우주의 지배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지. - 56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