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엔젤 - 라루스가 살인 사건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8.1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이름은 상당히 낯익었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저술한 몇몇 작품이 추리소설로서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사쿠라바 가즈키나 요네자와 호노부 같은 작가들을 메인 스트림에 추천한 위인이란 걸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바이, 엔젤>은 무려 45년 전에 출간된 저자의 데뷔작이자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독자들의 평이 그닥 시원찮아 보여 읽기 전에 의아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도 호불호가 갈린다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절대 가볍게 펼쳐들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탈을 쓴 사상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설명적이고 관념적이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교고쿠 나쓰히코나 나카지마 라모 - 설명적인 것으로만 치면 기시 유스케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 같은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이 무척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너무 과장하는 걸까? 40년 전 소설답게 사건의 양상은 크게 신선할 것 없는 와중에 작품의 서사를 감싸고 있는 관념의 깊이, 철학의 두께가 초장엔 흥미로울지언정 전개를 거듭할수록 몰입도가 떨어져 왜 이 작품이 그토록 호불호가 갈렸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아니, 이렇게 어렵게 읽히는 추리소설은 꽤 오랜만이었다. 우스겟소리지만 작가는 물론이고 번역가도 자기가 무슨 말을 번역하고 있는지 알기는 한 걸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책의 편집에 의한 옥의 티를 지적하고 싶다. 작품 본편의 사건, 범인이 연쇄살인을 저지른 내막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가미됐는데 문제는 책에서 소개되는 저자의 약력만 보면 이 자전적 요소를 대충이라도 파악할 수 있어서 결말의 놀라움이 반감된 감이 있었다. 굳이 책의 첫 장에 저자를 그토록 길게 소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자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 자체는 문제삼을 것이 못 된다. 사건의 배경인 프랑스 파리의 역사적 맥락을 간과하면 범인이 밝히는 동기가 뜬금없는 경향이 있지만 작가가 자전적 요소를 제법 매끄럽게 녹여냈기에 이 정도면 자전적인 소설의 모범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홍보한 게 김빠진다는 거지. 그렇기에 만약 이 소설을 진지하게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첫 장에 소개된 저자의 약력은 안 보고 읽기를 바란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말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절대 가벼운 기분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평소에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책에 관심이 있다거나 내성이 있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지 책의 외면적인 요소, 연쇄살인과 머리 없는 시체 같은 본격 추리소설다운 소재에 이끌려 읽겠다면 한번 더 고심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흥미를 추구하며 읽기엔 사건의 전개와 해결은 평범하고 문장과 주제의식은 난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야부키 가케루가 그토록 주창하는 '현상학'이란 걸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몇 문장으로 쉽게 말할 것을 인물들이 기본적으로 서너 장에 걸쳐 장광설을 펼치는 통에... 아무튼 상당히 인내심이 필요한 작품이란 걸 꼭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냉정하게 말하건대 순전히 추리소설적으로만 봤을 땐 아주 만족스런 작품이진 않았다. 사건 전개가 평범하고 구태의연한 감도 있고 탐정역을 맡은 야부키 가케루를 비롯한 주위 등장인물들, 범인까지 너무 성향이 비슷해 읽는 맛이 떨어진다. 가령 제아무리 야부키 가케루가 어려운 말만 써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요약해주거나 딴지를 거는 발랄하기 그지없는 캐릭터가 - 예를 들면 '교고쿠도' 시리즈의 에노키즈 같은 캐릭터. -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긴 장광설을 읽느라 쌓인 피로가 간간이 풀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무겁거니와, 막판에 다다라선 야부키 가케루도 귀여워 보일 정도의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나 쏟아대는 범인까지 등장해 정신적 피로가 거의 극에 달하게 돼 여러모로 뒷맛이 개운치 않은 채 책장을 덮게 된다. 위에서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탈을 쓴 사상서'라는 말엔 조금도 과장이 섞이지 않았다. 아, 첨언을 해보겠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지만 완독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이 어려운 책을 다 읽다니,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소설은, 말그대로 어렵다는 개성 때문에 함부로 저평가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추리소설이건 추리소설의 탈을 썼건 뭐건 어쨌든 추리소설의 형태로 진지하게 어렵게 쓰는 것은 쉽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출간된 당시 일본에선, 이렇게 '뭔가 있어 보이는' 작품이 꽤나 신선한 나머지 높이 평가한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추리소설 평론가가 쓴 추리소설이라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작가가 꿈꿨을지 모를 추리소설과 사상의 결합이 아주 절묘했다고 보긴 힘드나 이토록 진지하기 짝이 없는 소설을 썼다는 점, 그리고 적어도 추리소설과 사상 중 한 마리 토끼는 제대로 잡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국내에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역자가 말하길 후속작에선 서사가 더 발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후속작이 끌리는 이유가 있다. 탐정 캐릭터인 야부키 가케루가 꽤 독특한데 이렇게 그림으로 그린 듯한 철학자 탐정은 가히 천연기념물급이었다. 때문에 본작에서도 이 양반이 등장하는 장면만을 집중하면서 읽었을 정도인데 그런 만큼 다음 작품에서의 행보도 궁금하다. 그와 더불어 야부키 가케루와 기묘한 관계로 그려지는 나디아도 독특한 캐릭터인 지라 솔직히 작중에서 펼쳐지는 철학/사상 대결보다 이 둘의 관계에 더 눈길이 가기도 했다. 후속작에선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너무나 기대된다. 추리소설은 캐릭터만 잘 만들면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게 마냥 우스겟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p.s 진짜 여담인데 왜 책의 제목이 영어인지 모르겠다. 불어로 <아듀, 앙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작품 배경이 파리인데...

순교자야말로 고리대금업자보다 타산적으로 자신의 소유물에 매달리지. 고리대금업자가 쌓아 올린 금화를 천한 웃음을 띠고 어루만지는 것처럼 순교자는 자신의 정의, 자신의 신을 두루 혀로 핥아. - 3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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