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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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8







 추리소설의 외형적 화려함을 줄이고 온전히 추리하는 묘미에만 집중한 매우 실험적인 작품. 뭐가 됐든 범인은 마지막에 반드시 밝혀진다는 추리소설의 통념과 독자들의 불성실함까지 배신한 이 작품을 다시 읽었다. 이번엔 반드시 범인을 맞히리라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고 하니 50:50의 확률이긴 하나 누굴 범인이라 지목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용의자가 한 명이라 하더라도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범인이라 지목하기 힘들긴 매한가지일 터다. 오히려 용의자가 '두 명이나' 된다고 얘기해야 맞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가가 형사에게 참으로 실험적이고 어려운 무대에 세우곤 한다. 가가는 이번 작품에선 등장하는 분량이 적지만 그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극을 이끄는 이즈미 야스마사가 도를 넘는 복수 행위를 단념하게 해야지, 또 그에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면서 어디까지나 조력자의 위치에 있어야지, 그러나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너무 들러리여선 안 되는 등... 할 일은 많았지만 가가는 준수하게 모든 역할을 잘 수행한다. 분명 어느 뭐로 보나 주인공은 여동생을 잃고 복수를 다짐한 야스마사지만 가가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가의 등장이 사족일 수 있었으나 다 읽은 지금에 와서 보면 가가가 아니었다면 진행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새로운 형사를 등장시키면 아무래도 새로 소개하느라 전개가 번잡해질 테니까.


 마지막 장으로 들어서기 전까지의 전개는 대체로 지지부진한 편이다. 두 용의자의 알리바이 공작은 눈길을 잡아끄는 면도 없고 내막도 그리 놀랍진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첨단 기술이 - 어디까지나 당시 기준에서 - 잠깐 소개되지만 솔직히 뜬금없게 느껴졌다. 한 소설의 다양한 요소가 들어가는 건 눈여겨볼 만한 점이지만 이 작품에선 독자의 주의를 흐트러지게 만든 것 같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주의를 흐트러지게 만든다는 게 작가의 노림수였을지 모르나 그래도 과했다고 생각된다. 소설의 본편은 사실상 마지막 장에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전체 분량에서 보자면 너무 뒤쪽에 집중된 지라 상대적으로 전반부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밀도는 떨어질지언정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적잖게 포진됐으니 대놓고 지루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초중반부가 좀 더 탄력적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싶다.

 반면 마지막 장에서의 수시로 번복되는 사건의 내막이나 유력 용의자가 바뀌는 양상은 흥미로운 걸 넘어 혼란스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따라가기 버거워져 나도 모르게 추리에 손을 놓게 됐다. 그래서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것에 알면서도 당황했다. 때문에 마지막 장만 다시 읽었다. 결국 '범인은 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결론은 나왔다. 그런데 그마저도 정황에 따른 결론이라 석연찮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내 추리가 맞긴 한데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게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너무 어려웠다. 내가 집중력이 약하단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재밌었다. 정황에 따른 것이라도 어쨌든 사건을 해결하려고 머릴 굴린 건 퍽 유쾌한 경험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실험은 성공적이다.


 정말로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 도전해봄직한 추리소설이다. 집중력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도전해보면 좋을 듯하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단어 하나도 허투루 읽지 않는다는 사람은 더더욱 읽어보시길. 

 개인적으로 야스마사의 복수극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선 크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없다. 흔히 봐왔다고 할 만큼 평범한 이야기였으니까. 대신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에너지를 전부 추리 난이도를 올리는 것에 쏟은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로는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은데 이 생각엔 별로 자신이 없다. 아님 말고.



 p.s 마지막 해설서가 생각보다 독특하고 재밌었는데, 해설서도 범인을 누구라고 정확히 밝히지 않아 좀 답답했지만 이것도 나름 읽는 재미를 첨가해 또 그것대로 나쁘진 않았다. 이 해설서가 처음 일본에서 출간됐을 땐 없었다는데 나중에 이렇게 해설서가 생길 정도면 이 작품이 일으킨 반향이 생각보다 컸던 듯하다. 출간된 직후에 '도대체 범인이 누구냐'고 출판사에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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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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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상황의 심각함을 전달하는 방법엔 여러 종류가 있겠는데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겉으로 봤을 땐 따뜻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묘사하는 고차원의 방법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사린이 시가媤家에서 겪는 차별을 과장도 없이 효과적인 연출로 그려낸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방법을 다 활용했다. 소설로 치면 가독성과 문장력을 겸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작중에서 묘사된 시가의 모습은 현실적인 시각에서 봤을 땐 오히려 순화된 편이라는 건 뭇사람들이 동의할 듯하다. 어쨌든 사린과 구영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일단 시부모들도 둘째 며느리 사린을 알게 모르게 차별할 뿐 본질적으로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일단 새겨봐야 할 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식의 순화된 표현이 이 작품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또 화목해보이기까지 한 가족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가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거기서 우리는 교묘하게 세습되는 차별과 불행이 정말 뿌리 깊게 박혀있단 걸 엿볼 수 있어 한숨이 다 나왔다.


 등장인물들 면면을 살펴봤더니 장단이 제각각인 게 가관이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자기 아들을 감싸고,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회사 생활을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도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은 자신의 아내를 무시하고 결정적으로 가사事를 일로 취급하지 않아 작중 여자들을 비롯한 독자들의 속까지 박박 긁는다. 남편 구영은 차별 대우를 받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는 하면서 본질적으로 공감하여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실수를 지속적으로 범한다. 사린은 기본적으로 똑부러지고 능력도 있으면서 '며느라기期' 때문에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마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아 보는 입장에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이는 사린의 잘못이 아니다. 며느리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시댁과 처음으로 며느리가 된 여성들이 시댁한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이용당하는 상황이 한스러울 뿐이지. 다시 말하지만 사린의 성격을 탓하면서 개인의 문제로 떠넘길 일이 아니란 것이다.

 이렇게 평범하고 일견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집안에서도 사린은 속앓이를 하는데 그보다 더한 집은 어떻단 말인가.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린의 개인적인 이야길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면서 겪는 문제들이 상징하는 바가 워낙 커 독자들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와, 혹은 자신이 겪어야 힐 이야기와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작중의 각 인물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실제 독자들이 실제 자기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텐데, 그게 생각만큼 잘 될지 모르겠다. 그냥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서...


 처음엔 아기자기한 그림체 때문에 방심하면서 읽다가 뒤로 갈수록 이빨을 드러내는 통찰력 때문에 결말에 이르러선 마음이 뒤숭숭했다. 열린 결말이었는데 이 다음 장면이라고 사린과 구영 부부가 이혼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전개될 것 같진 않다. 슬하에 자식이 없긴 하지만 결혼이란 게 현실적으로 그렇게 쉽게 파탄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 - 구영의 동생 미영 부부는 또 몰라도... - 이다.

 시가에서 겪은 일들와 무관하게 어쨌든 그 둘이 일단은 사랑해서 결혼했고 무엇보다 사린도 구영을 사랑했기에 저도 모르게 며느라기의 함정에 걸려든 것을 보면 아직 이 둘의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글쎄, 시부모들의 문제, 특히 시아버지의 문제가 고쳐지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우여곡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단 부부가 의견이 일치한다면, 그리고 무영이 잘못을 뉘우친 게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부부의 관계만은 원만해질 여지가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내가 너무 낙관적이거나 이기적인 걸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영의 편을 들고 있는지 모르지만... 결말에서 사린도 이제 불합리한 상황에 거부할 용의를 밝혔으니 그녀의 결혼 생활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으로 변화하리라 기대할 만하다고 본다. 뭐가 됐든 사린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게 제일이다. 그러니 제발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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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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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소설집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을 아우르는 감상을 내놓고는 싶은데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움을 김애란 작가는 모르지 않았는지, 지난 번에 읽은 <바깥은 여름>도 그렇듯 이 소설집의 제목도 수록작의 제목 중 하나가 아닌 별개의 단어로 제목을 지었다. 비행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당연히 비행기의 자취를 따라 생기는 그 구름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비행운非幸運, 행운과 반대되는 의미였다니... 참 재미난 언어유희라 생각됐다. 그런데 비행운은 불행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이는 비행기가 지나간 뒤에 생기는 그 구름을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의 덕일 것이다. 행운과는 반대지만 또 그 나름대로 구름만큼 높은, 어딘지 높다랗다는 그 느낌이 퍽 희망적이기도 하다.

 내가 학생 때 김애란 작가가 특강을 하러 왔었는데 그때 '져도 이긴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의 묘미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삶이 비극적이더라도 그 안에서 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했는데 작가의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왔다. 참고로 이 책은 작가가 그 말을 한 해와 같은 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이 이토록 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테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작가가 자주 다루곤 하는, 아버지나 전남친에게 배신을 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것도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소재를 통해 주인공의 배신감을 효과적으로 묘사해냈다. 그런데 주인공이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지만 다르게 보면 좋은 결말이라고 본다. 미묘하게 미련이 남아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다소 충격적인 일을 겪고서라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이 작품은 연극으로 먼저 접했는데, 그땐 작품의 제목이 뭔 의민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작중에서도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이 밤에 운전하면서 노랠 듣는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명확하게 이래서 이런 제목일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굳이 시도를 해보자면, 밤에 택시에서 혼자 노래를 듣노라면 어김없는 떠오르는 후회스런 과거에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게 아닌가 하는데 그렇게 확신이 서진 않는다. 뭐, 해석이란 게 꼭 확신을 갖자고 하는 건 또 아니니까 상관은 없다만.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건 사이가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잘 나가는 조카와 주인공의 만남이다. 택시 운전사와 손님으로 만난 둘의 어색해 미칠 것 같은 묘사가 주인공의 비참함을 극대화한다. 김애란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참함은 그렇게 극적이고 대단한 순간에만 피어나는 게 아니란 것. 당연하지만 좋은 통찰력이다.



 '호텔 니약 따'


 해외 여행을 통한 비일상적인 경험과 인연에 대해 이래저래 좋은 기억이 있는 나는 이 작품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라 여겨졌는데 만약 표제작을 정한다면 이 작품의 제목으로 짓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듯하다. 그나저나 이 책에선 유독 공항이라든지 해외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이 수록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과장되지 않은 감수성이랄지 작풍이 그대로인 건 또 놀라운 일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호텔 니약 따'의 경우엔 어떻게 영감을 받고 쓴 작품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작가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서른'


 이 작품도 연극으로 먼저 접했다. 나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란 숫자에 가까워져 주인공의 심정이 더욱 내 일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선 '서른' 말고도 나이만 먹었지 별다른 성과 없이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 화자로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인물의 처지를, 그들의 굴욕적이고도 패배감이 짙은 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은 이 작품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서른'은 어떻게 보면 가장 희망과 거리가 먼 작품이겠다. 참 서글픈 게 뭐냐면, 주인공의 처지가 같은 세대인 내가 봤을 땐 그렇게 유별나게 비극적이란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도 읽히는 것은 뛰어난 문학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겠지만 이 작품에선 그게 너무 과했다. 어떻게 보면 결론 없는 아픔을 거론한 것일 뿐인 느낌도 들어 뒷맛이 안 좋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 '서른'도 단지 불행하단 말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슬픔이랄지 이별 같이 안 좋은 사건을 돌아보면서 더욱 망가지기도 하지만 때론 더욱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른'의 화자의 편지는 공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자신이 왜 편지를 쓰는지, 자신의 편지가 상대에게 닿을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편지를 쓰는 것일 터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021426306

 이건 연극 <서른> 포스팅.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044161156

 이건 연극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포스팅.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 147p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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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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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3







 일본 근현대사 속에서 소외받고 차별을 당한 지역과 관련된 책을 종종 접했는데 이번처럼 후쿠시마와 관련된 책은 처음 읽어봤다. 후쿠시마는 우리나라 사람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3.11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 때문에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곳일 것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에서 터진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나 애당초 후쿠시마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운 것부터가 문제가 많았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찍이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그 나라가 어떤 사건에 대해 수습이나 대처를 함에 있어서 문제가 많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이 아주 중대해 가볍게 훑고 넘어갈 사안은 아닌 지라 이렇게 부족하지만 책으로 읽게 됐다.

 도대체 후쿠시마에는 어쩌다 원전이 생기게 됐는가. 그리고 이 질문과 더불어 비슷한 선상에서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어떤 식으로 희생을 당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저자는 일본이 근대사에 들어서부터 나라를 얼마나 그릇되게 운영해왔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2부의 오키나와 이야기는 메도루마 슌이나 후지메 유키 등이 쓴 저서에서 워낙에 잘 다뤄졌기에 상대적으로 이번 책에서의 내용은 그렇게 새로울 게 없었지만, 1부의 후쿠시마 이야기와 연계되면서 좀 신선하게 다가온 측면도 있었다. 상술한 두 저자의 글에는 일본 본토라는 타자가 오키나와 같은 소수의 집단을 어떻게 이용해먹었는가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 책에선 자국에 대한 자아비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자아비판엔 짜릿함이 느껴졌는데, 이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상대나 상황을 막론하고 쾌감을 자아내는 법이니까.


 저자가 후쿠시마 출신이기 때문일까, 고향에 대해 얘기하는 1부의 내용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부의 감언이설 때문에 후쿠시마에 원전을 두게 된 경위를 정치/경제적으로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본 정부의 몰염치함은 읽는 나도 화나게 만들었다. 혹자는 억측이나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있겠으나 내가 봤을 땐 그건 아닌 것 같다. 자기 고향에 대해 얘기하는 것치곤 객관적으로 얘기하려는 태도도 그렇고, 무엇보다 고향을 등지고 도쿄로 상경한 것에 대한 저자 혼자만의 자책감이 감정적이면서도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서 제법 신뢰가 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원전사고와 같은 재앙을 두고 사람들이 '하늘의 벌'이니 뭐니 하면서 기존 자연 현상에 대해 지들 입맛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새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는 게, 옛날 고3때 경기권에 있는 대학의 종교철학과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런 질문이 나왔다. 3.11 일본 대지진이 신의 심판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우리가 한국인이라 옛날부터 일본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보는 거지, 지진 자체는 자연 현상이므로 우리가 신의 심판이냐 아니냐고 떠드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따위로 부끄럽게 떠들어대는 게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는지 저자는 짧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옛날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부터 시작한 일본 특유의 포장이나 미화를 낱낱이 파헤쳐본다. 도대체 그게 왜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다양하고 관점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기에 읽는 입장에서 속이 다 시원했다. 어떻게 보면 희생의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 책의 주제와 약간 동떨어진 감이 있는 부분이었지만,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어 글의 완성도 그 이상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의 국익에 눈이 멀어 오히려 피해를 받는다면 그보다 더한 막장이 있을 수 없겠다. 그것도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할 후쿠시마, 오키나와 사람들의 처지를 상상하노라면 그저 한숨이 나오는데, 이 책이 어디까지나 사고가 터진 원인에 대해서 살펴볼 뿐인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 그지없다. 물론 원인을 살펴보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긴 하나, 현재 일본은 저런 자아비판도 소용 없을 것 같은 수준의 행보를 질리지도 않고 이어나가고 있어 그저 아연해질 따름이었다. 책을 읽은 시기와 무관하게 일본이란 나라에 연민이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에 관해선 일본은 정말로 후진국이지 않은가.

누가 희생당하는가. 누구를 희생시키는가. 그것을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국가, 국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1할 쪽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좋다는 것을 국가 위정자들에게 승인해 준 적이 있는가. -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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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뭉크 다빈치 art 1
에드바르드 뭉크 지음, 이충순 옮김 / 다빈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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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책 제목이 꼭 날림으로 지은 듯하지만, 수록된 글들을 전부 뭉크가 썼다는 걸 생각하면 파격적일지언정 이상한 제목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뭉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일 텐데, 생전에 글 좀 쓴다고 평가를 받은 뭉크이기에 이 책이 상당히 기대됐다. 물론 대부분이 일기거나 편지라서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감안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뭉크 자신부터가 후대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리라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하지만 섬세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토로한 뭉크라면 지금 자신의 글이 이렇게 읽혀서 누가 왈가왈부하는 게 심히 불편함을 토로할 것 같지만... 어쨌든 뭉크의 팬이라면 의미있는 책이란 건 분명하다. 개중에는 뭉크가 쓴 단편이나 우화도 있으니 이래저래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그림이 있기에 완성도가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리가 없지.


 내가 읽은 책이 20년 전에 출간됐던 지라 노르웨이어 표기 같은 부분들이 좀 아쉽지만 - 사실 뭐가 정확한 노르웨이어 표기인지 나도 잘 모르므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웃기긴 하나 근래 읽었던 뭉크 도서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차이가 좀 난다. - 생각보다 편집이 깔끔했는데 특히 뭉크가 생전에 그린 그림이 정말 빼곡하게 실려 있어 눈이 즐거웠다. 뭉크가 일상의 순간마다 영감을 받아 그렸던 그림들이 바로 바로 소개되니까 그림의 생동감이 더욱 배가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작 텍스트에 눈이 잘 안 갔던 것도 사실인데 이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전문 소설가나 수필가가 썼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생전에 소설가들과 교류를 나눴을 뿐인 뭉크이기에 이만한 수준으로 필력을 구사하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의 우울한 글이 별로 취향에 안 맞았던 나도 이렇게 말할 정도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얼마나 인상적일지 생각해보면 함부로 무시할 수준은 못 된다. 개인적으론 우울한 화자가 등장하는 현대 일본 소설에 비견될 정도였다. 다른 화가가 쓴 글도 이 정도일까?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이쯤 되니 뭉크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작품 세계나 일생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뭉크를 다루는 책은 가급적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읽으려고 하는데, 그런 책들 가운데서도 이 책만큼 의미가 있는 책도 없을 듯하다. 뭉크의 글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 뭉크 연구가인 아르네 에굼이 쓴 뭉크 전기 역시 짤막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다른 책에서 접했던 뭉크의 일생이나 작품에 대한 얘기를 놀라울 정도로 잘 정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으로 뭉크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뭉크가 쓴 글과 그의 인생을 잘 연결시켰을 것 같다. 혹시 찾아볼 수 있으면 이 사람이 쓴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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