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8.3







 일본 근현대사 속에서 소외받고 차별을 당한 지역과 관련된 책을 종종 접했는데 이번처럼 후쿠시마와 관련된 책은 처음 읽어봤다. 후쿠시마는 우리나라 사람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3.11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 때문에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곳일 것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에서 터진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나 애당초 후쿠시마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운 것부터가 문제가 많았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찍이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그 나라가 어떤 사건에 대해 수습이나 대처를 함에 있어서 문제가 많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이 아주 중대해 가볍게 훑고 넘어갈 사안은 아닌 지라 이렇게 부족하지만 책으로 읽게 됐다.

 도대체 후쿠시마에는 어쩌다 원전이 생기게 됐는가. 그리고 이 질문과 더불어 비슷한 선상에서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어떤 식으로 희생을 당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저자는 일본이 근대사에 들어서부터 나라를 얼마나 그릇되게 운영해왔는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2부의 오키나와 이야기는 메도루마 슌이나 후지메 유키 등이 쓴 저서에서 워낙에 잘 다뤄졌기에 상대적으로 이번 책에서의 내용은 그렇게 새로울 게 없었지만, 1부의 후쿠시마 이야기와 연계되면서 좀 신선하게 다가온 측면도 있었다. 상술한 두 저자의 글에는 일본 본토라는 타자가 오키나와 같은 소수의 집단을 어떻게 이용해먹었는가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 책에선 자국에 대한 자아비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자아비판엔 짜릿함이 느껴졌는데, 이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상대나 상황을 막론하고 쾌감을 자아내는 법이니까.


 저자가 후쿠시마 출신이기 때문일까, 고향에 대해 얘기하는 1부의 내용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부의 감언이설 때문에 후쿠시마에 원전을 두게 된 경위를 정치/경제적으로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본 정부의 몰염치함은 읽는 나도 화나게 만들었다. 혹자는 억측이나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있겠으나 내가 봤을 땐 그건 아닌 것 같다. 자기 고향에 대해 얘기하는 것치곤 객관적으로 얘기하려는 태도도 그렇고, 무엇보다 고향을 등지고 도쿄로 상경한 것에 대한 저자 혼자만의 자책감이 감정적이면서도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서 제법 신뢰가 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원전사고와 같은 재앙을 두고 사람들이 '하늘의 벌'이니 뭐니 하면서 기존 자연 현상에 대해 지들 입맛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새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는 게, 옛날 고3때 경기권에 있는 대학의 종교철학과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런 질문이 나왔다. 3.11 일본 대지진이 신의 심판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우리가 한국인이라 옛날부터 일본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보는 거지, 지진 자체는 자연 현상이므로 우리가 신의 심판이냐 아니냐고 떠드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따위로 부끄럽게 떠들어대는 게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는지 저자는 짧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옛날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부터 시작한 일본 특유의 포장이나 미화를 낱낱이 파헤쳐본다. 도대체 그게 왜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다양하고 관점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기에 읽는 입장에서 속이 다 시원했다. 어떻게 보면 희생의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 책의 주제와 약간 동떨어진 감이 있는 부분이었지만,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어 글의 완성도 그 이상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의 국익에 눈이 멀어 오히려 피해를 받는다면 그보다 더한 막장이 있을 수 없겠다. 그것도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할 후쿠시마, 오키나와 사람들의 처지를 상상하노라면 그저 한숨이 나오는데, 이 책이 어디까지나 사고가 터진 원인에 대해서 살펴볼 뿐인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 그지없다. 물론 원인을 살펴보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긴 하나, 현재 일본은 저런 자아비판도 소용 없을 것 같은 수준의 행보를 질리지도 않고 이어나가고 있어 그저 아연해질 따름이었다. 책을 읽은 시기와 무관하게 일본이란 나라에 연민이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에 관해선 일본은 정말로 후진국이지 않은가.

누가 희생당하는가. 누구를 희생시키는가. 그것을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국가, 국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1할 쪽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좋다는 것을 국가 위정자들에게 승인해 준 적이 있는가. -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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