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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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소설집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을 아우르는 감상을 내놓고는 싶은데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움을 김애란 작가는 모르지 않았는지, 지난 번에 읽은 <바깥은 여름>도 그렇듯 이 소설집의 제목도 수록작의 제목 중 하나가 아닌 별개의 단어로 제목을 지었다. 비행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당연히 비행기의 자취를 따라 생기는 그 구름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비행운非幸運, 행운과 반대되는 의미였다니... 참 재미난 언어유희라 생각됐다. 그런데 비행운은 불행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이는 비행기가 지나간 뒤에 생기는 그 구름을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의 덕일 것이다. 행운과는 반대지만 또 그 나름대로 구름만큼 높은, 어딘지 높다랗다는 그 느낌이 퍽 희망적이기도 하다.

 내가 학생 때 김애란 작가가 특강을 하러 왔었는데 그때 '져도 이긴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의 묘미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삶이 비극적이더라도 그 안에서 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했는데 작가의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왔다. 참고로 이 책은 작가가 그 말을 한 해와 같은 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이 이토록 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테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작가가 자주 다루곤 하는, 아버지나 전남친에게 배신을 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것도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소재를 통해 주인공의 배신감을 효과적으로 묘사해냈다. 그런데 주인공이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지만 다르게 보면 좋은 결말이라고 본다. 미묘하게 미련이 남아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다소 충격적인 일을 겪고서라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이 작품은 연극으로 먼저 접했는데, 그땐 작품의 제목이 뭔 의민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작중에서도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이 밤에 운전하면서 노랠 듣는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명확하게 이래서 이런 제목일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굳이 시도를 해보자면, 밤에 택시에서 혼자 노래를 듣노라면 어김없는 떠오르는 후회스런 과거에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게 아닌가 하는데 그렇게 확신이 서진 않는다. 뭐, 해석이란 게 꼭 확신을 갖자고 하는 건 또 아니니까 상관은 없다만.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건 사이가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잘 나가는 조카와 주인공의 만남이다. 택시 운전사와 손님으로 만난 둘의 어색해 미칠 것 같은 묘사가 주인공의 비참함을 극대화한다. 김애란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비참함은 그렇게 극적이고 대단한 순간에만 피어나는 게 아니란 것. 당연하지만 좋은 통찰력이다.



 '호텔 니약 따'


 해외 여행을 통한 비일상적인 경험과 인연에 대해 이래저래 좋은 기억이 있는 나는 이 작품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라 여겨졌는데 만약 표제작을 정한다면 이 작품의 제목으로 짓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듯하다. 그나저나 이 책에선 유독 공항이라든지 해외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이 수록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과장되지 않은 감수성이랄지 작풍이 그대로인 건 또 놀라운 일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호텔 니약 따'의 경우엔 어떻게 영감을 받고 쓴 작품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작가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서른'


 이 작품도 연극으로 먼저 접했다. 나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란 숫자에 가까워져 주인공의 심정이 더욱 내 일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선 '서른' 말고도 나이만 먹었지 별다른 성과 없이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 화자로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인물의 처지를, 그들의 굴욕적이고도 패배감이 짙은 심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은 이 작품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서른'은 어떻게 보면 가장 희망과 거리가 먼 작품이겠다. 참 서글픈 게 뭐냐면, 주인공의 처지가 같은 세대인 내가 봤을 땐 그렇게 유별나게 비극적이란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도 읽히는 것은 뛰어난 문학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겠지만 이 작품에선 그게 너무 과했다. 어떻게 보면 결론 없는 아픔을 거론한 것일 뿐인 느낌도 들어 뒷맛이 안 좋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 '서른'도 단지 불행하단 말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슬픔이랄지 이별 같이 안 좋은 사건을 돌아보면서 더욱 망가지기도 하지만 때론 더욱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른'의 화자의 편지는 공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자신이 왜 편지를 쓰는지, 자신의 편지가 상대에게 닿을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편지를 쓰는 것일 터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021426306

 이건 연극 <서른> 포스팅.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044161156

 이건 연극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포스팅.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 147p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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