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방콕 -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아무튼 시리즈 11
김병운 지음 / 제철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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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며칠 전에 방콕을 다녀왔다. 좋은 여행이었다. 가기 전엔 반신반의했는데 가보니까 다들 왜 방콕, 방콕 하는지 알겠더라. '도대체 방콕이 어땠기에-'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이후에 포스팅할 방콕 여행기를 읽어주시길. 이변이 없는 한 올해 마지막 여행이니 애정을 갖고 포스팅해보겠다.

 아무튼, 방콕에 가져가서 읽을 책을 물색해봤는데 생각보다 방콕과 어울리는 책이 없어서 놀랐다. 방콕 혹은 태국 태생의 작가가 쓴 책이나, 어떤 식으로든 태국을 배경으로 한 책을 가져갈 - 가급적 소설을 - 생각이었는데... 우리나라에 태국 소설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은 것에 한 번, 그리고 태국을 배경으로 했거나 소재로 삼은 소설을 이미 읽었다는 데서 두 번 놀랐다. 요 네스뵈의 <바퀴벌레>와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가 그러한데 두 작품 다 나쁘지 않지만 좀 새로운 책을 읽고 싶었던 나는 조금 마뜩찮지만 이 책 <아무튼, 방콕>을 이번 방콕 여행 때 가져가서 읽기로 했다.


 조금 마뜩찮았던 데엔 일단 5박 6일 여행에 들고갈 책으로썬 너무 앏거니와 당장 서두만 읽었을 땐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게 크게 작용했다. 사실 얇은 분량이야 조금씩 나눠서 읽으면 되니까 딱히 문제될 건 없으나 너무나 일기처럼 읽히는 책의 내용엔 크게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연례행사처럼 연인과 방콕을 방문한다는 저자의 경험에 이끌려 결국 이 책을 읽게 됐다.

 서두가 길었는데... 결과적으로 생각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다. 작가 소개란을 보면 신인상으로 등단한 사람이라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장력이 준수했고 그래선지 다소 커다란 줄기 없이 툭툭 끊어지는 구성의 글들도 흥미롭게 읽혔던 것 같다. 작가 소개란을 마저 살펴보면 작가는 사실 방콕보단 방콕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참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난 연애세포가 메마른 편이라서 남의 연애론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좀 설레고 부럽더군. 여행엔 참으로 다종다양한 목적이 있다지만 이렇게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참 싱숭생숭해졌다.  


 방콕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엔 조금 부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흔한 그림이나 사진도 없고 드문드문 나오는 거리나 가게 이름도 단편적이기 그지없다. 이 책은, 아울러서 이 '아무튼' 시리즈는 저자 자신의 세계를 만든 키워드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리즈라 그런지 방콕 또한 저자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뿐이지 작가는 독자에게 굳이 방콕의 매력을 어필하려 들지 않는다. 이 점이 글에서 한 번 언급되는데 이 책은 여행책이 아니니까. 어쩌면 방콕은 굳이 저자까지 매력을 어필해야 할 정도로 덜 알려진 곳이 아니니까 특별히 손을 거들지 않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방콕 가기 전에 주변에 물어보니까 일본은 안 가봤어도 태국은 가본 사람이 진짜 많더라. 신기했다.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나 역시 소설가 지망생이다 보니 여행 중간에 저자가 카페에서 책을 읽다 느낀 자괴감이 심히 공감됐다. 나도 간혹 여행을 하는 중에 참담함을 느끼곤 하는데, 저자처럼 나 역시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는데 여행이나 오고 있느냐고 스스로를 꾸짖는 마음이 들어서다. 하지만 저자 맞은편에 있는 애인이 바로 대답하길, 여행 때 겪은 어떠한 에피소드라도 일단 쓰라고 한다.


 여행 때 겪은 일? 그러니까 우리가 여행 중에 겪은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게 소설로 적합한지 아닌지 저울질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비로소 빠져들며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그 물음에 대한 일종의 답을 얻은 것 같아서... 게다가 앞으로 여행을 더 자주 가야겠다는 일종의 좋은 핑계를 발견한 것 같아서 말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나를 꾸짖었던 것 같다. 나도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이 여행을 간 편인데 왜 지금 이 글을 읽을 때까지 저런 생각을 못했느냐면서. 차마 그동안 여행을 헛 다녔다곤 말 않겠지만 그래도 지난 여행을 더 뒤돌아보게 됐다. 여행 에세이는 잘 안 읽는 편인데 지금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적으면서 왜 지금까지 안 읽었는지 하고 생각해봤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여행만 다녔지 여행 에세이는 너무 등한시해서 위와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 하지만 여행이 끝났으니 이젠 비관을 좀 해서라도 글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젠 진짜 뭐라도 써야지.

 이 책엔 비단 소설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가 훨씬 많고 물론 방콕 이야기도 많다. 그 이야기들에 대한 감상은 나중에 방콕 여행기 때 섞어서 해보겠다. 짧은 글이지만 이렇게 많은 감상이 나오다니, 참 신기하고 좋은 글이었다.

라이프 노노, 드라마 오케이, 라이프 노노, 트래블 오케이. - 42p




원하는 거 고집하고 관철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최선은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과정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무엇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으니까. - 73p




정말이지 쓰기 전까지는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는 것 같아도 그건 아는 게 아니니까. - 82p




아마도 우리는 우리일 수 있을 때까지 방콕을 찾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이고 싶을 때까지 방콕을 좋아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더는 방콕을 찾지 않는다면, 더는 방콕을 찾지 않기로 동의한다면, 그건 우리가 더는 우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지 않을까.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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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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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7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언제 마지막으로 수족관에 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물원도 마찬가지의 이유인데, 내가 당최 동물을 가둬놓은 곳을 갈 마음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어렸을 땐 가본 것도 같은데... 인간이 아무리 동물을 위한다 해도 자연에서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동물과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단 생각에 의식적으로라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수족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대해선 나쁜 인상은 없다. 아오사키 유고의 <수족관의 살인>이란 작품을 워낙 괜찮게 읽었기 때문일까. 이번에 읽은 <물의 미궁>의 저자 이시모치 아사미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작가다. 특히 <달의 문>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막판에 무리수가 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도 나쁘지 않았다. 좀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그 작품도 범인의 동기를 설명함에 있어 다소 무리수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요번에 <물의 미궁>도 무리수가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이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무리수를 빼놓지 않는 듯하다. 반대로 말하면 절대 무시 못할 개성이 있는 작품을 쓴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이러한 개성을 끝에 가서 약간 버거워해 무리수로 비치는 듯한데 이번 작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수족관이란 배경 자체는 대체로 잘 살렸다. 현장감을 더 잘 살려줄 그림이라든가 도표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 특히 가타야마의 '꿈'을 생각하면 더더욱. - 그래도 대강 윤곽은 그려졌다. 수족관이기에 통하는 협박범의 공격과 수족관 직원들의 하루 동안의 고군분투를 주로 다룬 이 작품은 전개 속에서의 위태로움과 더불어 수족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낭만을 어필하고 있어 제법 독특하게 읽힌다. 그래서 결말이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는......

 하지만 아쉽게도 작가가 기대한 만큼의 감동은 받지 못했고 요번에도 무리수고 억지가 들어간 결말이 나고 말았다고 보는데... 일단 가타야마의 '꿈'이 이어진다는 점과 인물 간의 관계가 그다지 깔끔하지 못한 게 거슬렸다. 차근차근 추리해보면 파악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사건의 내막을 밝힌답시고 후반부가 너무 설명 일색이었던 게 걸린다. 중반부까지 범인의 의중을 파악한다든가 수족관 직원 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려는 답답한 분위기는 좋았는데 그걸 막판에 너무나 쉽게, 또 너무나 착하게 매듭을 지어버려 갈등이 해소된 느낌이 덜했다. 범인의 동기도 마찬가지다. 범인의 정체야 워낙 예상이 가고 또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상관은 없는데 이 사단을 낸 동기에 비해 불러일으킨 결과가 참혹한 감이 있어 훈훈하고 싶어하는 결말이 더욱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크게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한 답답한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포장을 열심히 하려 해서 되려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품이 됐다. 참 이것저것 시도는 괜찮았고 작가의 취재력이 대단해서 - 작가가 아마도 작중 인물들 못지않게 수족관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설정을 쓸 생각도 못했겠지. - 아쉬움이 더욱 눈에 밟힌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요소를 이 정도로 배합시킨 걸 대단하다고 봐야 하나? 이것도 재능이라 봐야겠지. 하지만 난 그 이상을 바란다. <달의 문>이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좋았는데.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란 치명적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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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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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최근 <조커>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랑 그 영화를 대화의 화제로 종종 삼곤 하는데 영화 자체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아 대화하는 게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특히 작중의 모호한 연출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데, 결국 정답이라고 확신할 만한 게 없어 각자의 다양한 추측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전에 다른 영화 포스팅에서도 한 말이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을 자발적으로 하게 하고, 그 과정이 재밌다면 그 영화는 성공한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조커>는 성공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장르나 성향이 많이 다르지만 이번 <프리즘> 포스팅에 <조커>를 언급하는 이유는 두 작품이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이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니란 점에서 참신하게 다가올 텐데 내 경우엔 꽤나 본격적인 추리소설이구나 싶어 간만에 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여졌다. 초등학생 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의 주변 인물 4명이 아마추어 탐정으로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그럴싸하고 소름 돋는 결말을 내놓다가 끝이 나는 이 작품은 통상적인 추리소설이 그렇듯 범인이 잡히는 결말이 아닌, 다소 파격적인 모호함을 대놓고 지향하고 있다. 범인 안 밝히기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나 <내가 그를 죽였다>와는 결이 좀 다른데 아무튼 이 작품도 독자의 참여를 상당히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도에 호응해줄 독자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커>의 경우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관건이지 사건의 시작과 끝은 명확한데 비해 누쿠이 도쿠로의 <프리즘>은 사건의 시작과 끝마저 확실치 않아 더욱 미궁 속을 헤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성향에 신선함을 느낄 독자도 있겠고 허무함을 느낄 독자도 있겠는데 나는 반반이다. <조커>가 그렇듯 어떤 추리, 어떤 범인이냐에 따라 사건의 양상이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는 게 재밌었고 - 이 부분에서 작가의 장기가 잘 드러났다고 본다. 작가의 대표작 <우행록>에서 알 수 있듯 한 명의 인물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다는 걸 누쿠이 도쿠로는 너무나 잘 안다. -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작가 자신이 느끼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꾸준하고 충실하게 겨냥한 건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결정적인 단점을 꼽자면 사건의 규모나 깊이가 다소 애매해 사건에 대해 추리하고 해결하고 싶다는 등장인물들의 열정을 독자들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탐정들의 여정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으나 독자도 자발적으로 추리를 할 만큼 재미를 유발하는가 물으면 다시 말하지만 애매하다. <난반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몰입도 있는 묘사를 선보였던 것에 비하면 이 작품에서의 인물 묘사는 평면적이었던 것도 걸리는 부분이다. 하긴 <난반사>는 <프리즘> 10년 뒤에 쓰여진 작품이고 심지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니 비교하기는...


 컨셉이나 구성 등이 신선했고 작가가 원했던 바도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고 보나 사람마다 호불호는 갈릴 작품이다. 작가의 대표작에 비하면 미숙했던 시절에 나온 작품이지만 그만큼 작가의 패기가 많이 담겨 있어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담이지만 난 이 작품에서의 사건의 내막이 그리 복잡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이 자기 멋대로 뇌피셜을 펼치는 게 백미라면 백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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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글쓰기 프로젝트
(사)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지음 / 삼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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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무척이나 강렬한 제목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가독성은 떨어지는 책이었다.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 전문 작가가 아니란 걸 감안하더라도, 또 고스트라이터를 통한 글이란 걸 상기한다면 참 아쉬운 부분이다. 성매매 합법이냐 금지냐를 놓고 얘기할 때 늘 당연스럽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 책이었기에 더더욱. 미안한 얘기지만 여성분들의 사연이 천편일률적으로도 읽혔는데 내가 봤을 땐 이 글을 편집함과 동시에 고스트라이터 역할도 맡은 분의 필력이 그다지 다채롭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사실 방금 전에 천편일률적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느니 깎아내리긴 했지만 때론 그런 이유만으로 평가절하할 수 없는 글도 있는 법인데 이 책이 딱 그러했기에 간신히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완독해낼 순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매매 자체는 인간에게 있어, 특히 남성에게 있어 필요악적인 부분이 분명 있어서 무조건적인 금지는 지양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게다가 성姓이라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것도 문제라 생각했다. 떳떳하냐 아니냐완 별개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쨌든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기에 성매매 금지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봤다. 성매매 여성이 노동자로서 얼마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는지, 포주는 급료를 정당하게 지불하는지,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지 등을 잘 감시한다면 얼마든지 건전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이번 독서는 나 자신이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몰랐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위의 생각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 인간이 그걸 실천하기에,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저런 식의 건전한 성매매가 안착할 수는 없겠다고 여겨졌다. 한 여성이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하길 다른 여성들이 돈 때문에라도 이 일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빚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없는 빚도 만들어서 성매매시키는 게 이 바닥이니까. 그 말마따나 자의든 타의든 성매매라도 해야만 하는 처지의 여자들 - 대체로 가출 청소년들... - 을 꾀어 노동을 착취한다는 건 구역질 나는 일이다. 이 책이 부산의 집창촌을 배경으로 이야기하는데 서울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나라가 전부 다 이런가. 너무 심각한데?

 우리나라에서 건전한 성매매가 안착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 데에는 구역질 나는 착취 구조도 한몫했지만 성매매 자체를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작용했다. 애초에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따로 생겨야 할 만큼 이들이 그간 음지에 있었고 소외당한 존재였음을 별반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최저>의 저자 사쿠라 마나처럼 AV 배우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겠지만 왜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인 걸까. 오히려 성매매 자체가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실격'이란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가장 문제가 아닌가. 성매매 여성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없듯 성매매는 도저히 해당 여성들의 잘못이나 부주의로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착취하는 포주나 그들에게서 봄을 사려는 남자들이 훨씬 문제가 많은데 가장 피해자인 여성들이 안팎으로 어디에서건 소외를 당한다는 게 무척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얘기지만 이렇게 많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연속으로 접하니 현실이란 게 참 답답하기만 했다.


 출간된지 좀 된 책인데 장담하는데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복지며 인식이 지금이라고 더 좋아졌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대로거나 더 나빠졌을 수도 있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실제로 성매매를 해본 적도 없기에 솔직히 말해 책 밖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나와 무관한 얘기라고 한 발 물러설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전보다 부조리함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책에 나오는 여성분들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듯 나 역시 할 수 있는 선에서 부조리에 대응하고 노력해야겠지.

난 하루에 열 번, 아니 스무 번씩 나를 죽이고 살린다.

내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정말로 죽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모여든다.

똥에 파리가 모이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죽음을 먹고 사는 똥파리가 모여든다. -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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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14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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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클라이막스를 목전에 두고서 정말로 마지막으로 쉬었다 가는 에피소드. 서로의 마음을 알고도 남는데 혹시 몰라 전전긍긍하는 전개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쨌든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호로의 고향인 요이츠로 간다고 한다. 참 오래도 걸렸다. 라이트 노벨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짧고 강렬하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길 캐릭터의 매력에 취해 지지부진하게 늘려나간다는 것이라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 이젠 거의 애정이 아닌 의리로 읽어나가는 실정이라 당연하게도 거의 남는 게 없는 독서였다. 내가 제일 지양하는 독서긴 하나 지난 시절 끝을 보지 못한 이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를 이번에 제대로 끝맺고자 꾸역꾸역 읽고 있다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걸 또 이렇게 이어가는 게 대단할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4권의 등장인물 엘사의 재등장은 반가웠지만 그래봤자 지지부진하게 읽힌다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이름밖에 남지 않는 황량한 곳이라도 어쨌든 호로와 로렌스가 요이츠에 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는 게 이번 에피소드의 포인트다. 이걸 굳이 장편으로 썼어야 했나 싶지만 그래도 특유의 심리 묘사나 호로와 로랜스의 애틋한 관계, 그리고 이 관계의 발전까지 그려져 소소한 재미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14권을 쓴 진짜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

제 자신의 강인함이 있은 위에 길동무의 힘을 빌리는 것뿐입니다. 작은 그릇에 큰 물건을 담으려 하지 마라. 상인의 철칙입니다. - 99~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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