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글쓰기 프로젝트
(사)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지음 / 삼인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8.2







 무척이나 강렬한 제목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가독성은 떨어지는 책이었다.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 전문 작가가 아니란 걸 감안하더라도, 또 고스트라이터를 통한 글이란 걸 상기한다면 참 아쉬운 부분이다. 성매매 합법이냐 금지냐를 놓고 얘기할 때 늘 당연스럽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 책이었기에 더더욱. 미안한 얘기지만 여성분들의 사연이 천편일률적으로도 읽혔는데 내가 봤을 땐 이 글을 편집함과 동시에 고스트라이터 역할도 맡은 분의 필력이 그다지 다채롭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사실 방금 전에 천편일률적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느니 깎아내리긴 했지만 때론 그런 이유만으로 평가절하할 수 없는 글도 있는 법인데 이 책이 딱 그러했기에 간신히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완독해낼 순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매매 자체는 인간에게 있어, 특히 남성에게 있어 필요악적인 부분이 분명 있어서 무조건적인 금지는 지양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게다가 성姓이라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것도 문제라 생각했다. 떳떳하냐 아니냐완 별개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쨌든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기에 성매매 금지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봤다. 성매매 여성이 노동자로서 얼마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는지, 포주는 급료를 정당하게 지불하는지,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지 등을 잘 감시한다면 얼마든지 건전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이번 독서는 나 자신이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몰랐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위의 생각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 인간이 그걸 실천하기에,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저런 식의 건전한 성매매가 안착할 수는 없겠다고 여겨졌다. 한 여성이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하길 다른 여성들이 돈 때문에라도 이 일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빚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없는 빚도 만들어서 성매매시키는 게 이 바닥이니까. 그 말마따나 자의든 타의든 성매매라도 해야만 하는 처지의 여자들 - 대체로 가출 청소년들... - 을 꾀어 노동을 착취한다는 건 구역질 나는 일이다. 이 책이 부산의 집창촌을 배경으로 이야기하는데 서울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나라가 전부 다 이런가. 너무 심각한데?

 우리나라에서 건전한 성매매가 안착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 데에는 구역질 나는 착취 구조도 한몫했지만 성매매 자체를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작용했다. 애초에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따로 생겨야 할 만큼 이들이 그간 음지에 있었고 소외당한 존재였음을 별반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최저>의 저자 사쿠라 마나처럼 AV 배우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겠지만 왜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인 걸까. 오히려 성매매 자체가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실격'이란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가장 문제가 아닌가. 성매매 여성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없듯 성매매는 도저히 해당 여성들의 잘못이나 부주의로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착취하는 포주나 그들에게서 봄을 사려는 남자들이 훨씬 문제가 많은데 가장 피해자인 여성들이 안팎으로 어디에서건 소외를 당한다는 게 무척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얘기지만 이렇게 많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연속으로 접하니 현실이란 게 참 답답하기만 했다.


 출간된지 좀 된 책인데 장담하는데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복지며 인식이 지금이라고 더 좋아졌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대로거나 더 나빠졌을 수도 있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실제로 성매매를 해본 적도 없기에 솔직히 말해 책 밖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나와 무관한 얘기라고 한 발 물러설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전보다 부조리함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책에 나오는 여성분들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듯 나 역시 할 수 있는 선에서 부조리에 대응하고 노력해야겠지.

난 하루에 열 번, 아니 스무 번씩 나를 죽이고 살린다.

내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정말로 죽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모여든다.

똥에 파리가 모이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죽음을 먹고 사는 똥파리가 모여든다. -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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