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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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최근 <조커>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랑 그 영화를 대화의 화제로 종종 삼곤 하는데 영화 자체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아 대화하는 게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특히 작중의 모호한 연출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데, 결국 정답이라고 확신할 만한 게 없어 각자의 다양한 추측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전에 다른 영화 포스팅에서도 한 말이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을 자발적으로 하게 하고, 그 과정이 재밌다면 그 영화는 성공한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조커>는 성공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장르나 성향이 많이 다르지만 이번 <프리즘> 포스팅에 <조커>를 언급하는 이유는 두 작품이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이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니란 점에서 참신하게 다가올 텐데 내 경우엔 꽤나 본격적인 추리소설이구나 싶어 간만에 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여졌다. 초등학생 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의 주변 인물 4명이 아마추어 탐정으로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그럴싸하고 소름 돋는 결말을 내놓다가 끝이 나는 이 작품은 통상적인 추리소설이 그렇듯 범인이 잡히는 결말이 아닌, 다소 파격적인 모호함을 대놓고 지향하고 있다. 범인 안 밝히기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나 <내가 그를 죽였다>와는 결이 좀 다른데 아무튼 이 작품도 독자의 참여를 상당히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도에 호응해줄 독자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커>의 경우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관건이지 사건의 시작과 끝은 명확한데 비해 누쿠이 도쿠로의 <프리즘>은 사건의 시작과 끝마저 확실치 않아 더욱 미궁 속을 헤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성향에 신선함을 느낄 독자도 있겠고 허무함을 느낄 독자도 있겠는데 나는 반반이다. <조커>가 그렇듯 어떤 추리, 어떤 범인이냐에 따라 사건의 양상이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는 게 재밌었고 - 이 부분에서 작가의 장기가 잘 드러났다고 본다. 작가의 대표작 <우행록>에서 알 수 있듯 한 명의 인물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다는 걸 누쿠이 도쿠로는 너무나 잘 안다. -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작가 자신이 느끼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꾸준하고 충실하게 겨냥한 건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결정적인 단점을 꼽자면 사건의 규모나 깊이가 다소 애매해 사건에 대해 추리하고 해결하고 싶다는 등장인물들의 열정을 독자들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탐정들의 여정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으나 독자도 자발적으로 추리를 할 만큼 재미를 유발하는가 물으면 다시 말하지만 애매하다. <난반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몰입도 있는 묘사를 선보였던 것에 비하면 이 작품에서의 인물 묘사는 평면적이었던 것도 걸리는 부분이다. 하긴 <난반사>는 <프리즘> 10년 뒤에 쓰여진 작품이고 심지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니 비교하기는...


 컨셉이나 구성 등이 신선했고 작가가 원했던 바도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고 보나 사람마다 호불호는 갈릴 작품이다. 작가의 대표작에 비하면 미숙했던 시절에 나온 작품이지만 그만큼 작가의 패기가 많이 담겨 있어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담이지만 난 이 작품에서의 사건의 내막이 그리 복잡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이 자기 멋대로 뇌피셜을 펼치는 게 백미라면 백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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