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블라인드 소원라이트나우 1
김선희 외 지음 / 소원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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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 책은 원조 교제, 몰카 범죄, 스토킹, 성추행 등 다양한 비행 청소년 문제를 다룬 엔솔로지다. 일단은 청소년 소설이고 작가들도 청소년 소설을 상정하고 집필하긴 했지만 작중 묘사되는 사회 문제는 어른들한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어른이건 청소년이건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 보면 누가 더 낫다고 볼 수 없는데 문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미성년자에게 겨누는 손가락질의 강도가 더 심하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대개 '그 아이들이 그냥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단정하고 넘어가곤 하잖은가. 하지만 주변에 어른 없이 혼자 자라는 아이는 없는 법.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라는 연극을 보면 알 수 있듯 청소년 범죄의 근간에는 반드시 아이들의 가정 환경이 있다.

 엔솔로지가 으레 그렇듯 책의 수록작의 완성도가 고르지 않고 개중에는 엔솔로지의 취지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작품도 있었던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기에는, 그리고 청소년 문제 이면의 사회 문제를 살펴보기엔 충분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청소년 범죄의 근간엔 문제가 많은 가정 환경이 있지만 수록작들이 다 그렇게 귀결되는 작품인 건 아니다. 소재도 다양하고 개성적인 동시에 작품을 쓴 작가마다 따뜻한 시선이 넘쳐 이야기의 무게와 무관하게 뒷맛이 괜찮은 작품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들이 씁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김선희 '그루밍'


 원조 교제를 다룬 소설로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부정적으로 해석한 게 신선했다. 결말도 좋았고 이야기의 무게도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이라서 균형이 잡힌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일지 분간하기 애매한 중반부의 전개도 인상적이었다. 이 세상엔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어른이 너무 많다.



 문부일 '다섯 명은, 이미'


 제목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작품이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몰카 범죄와 리벤지 포르노를 학교를 배경으로 풀어낸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수록작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있었다고 본다. 특히 범인을 잡았음에도 뭐 하나 해결된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작가가 해당 소재의 심각함을 잘 파악한 듯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신지영 '오빠의 모든 게 알고 싶어'


 50을 바라보는 나이의 작가임에도 작중 구사되는 덕질 관련 용어가 현실과 동떨어진 구석이 없던 것, 팬의 심리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어른들의 씁쓸한 모습, 주인공이 자각도 못한 채 범죄를 저지르는 소름 끼치는 모습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옥의 티가 있다면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팬클럽의 이름이 촌스럽다는 것 정도? 그 정도만 빼면 주제의식이며 분량이며 가장 적절했던 수록작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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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 상.하 세트 - 전2권 - 완결
꼬마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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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그림체며 스토리며 설정이며 주제의식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창적인 만화가라고 하면 나는 바로 꼬마비를 떠올린다. 이 작품 <PTSD>는 핵전쟁이 터졌을 때 대마도에 있던 한국인들이 난민이 된다는 도입부는 확실히 꼬마비 작가답게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제목과 흐지부지한 결말은 아쉬웠고 생각보다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것도 의외였지만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군상극을 그리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작중 상황에 대한 여러 사건들, 사람들을 잘 묘사해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대마도라는 장소 선정부터 한반도 핵전쟁이라는 몰입도 있는 상황 설정 등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을 연상시켰는데, 그 영화가 할리우드답게 희망적으로 연출했다면 꼬마비 작가는 절대 희망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후반에선 인류애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작품의 분위기는 절망적이고 실제로 절망에 대해서 자주 얘기한다. 사람들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며 그 작은 난민 사회 안에서도 파벌이 생기며 개중엔 꼭 공존을 거부하는 무리도 나온다. 그렇다고 철저한 대립해 거대 규모의 갈등이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가뜩이나 답답한 상황에서 작중 인물들은 뭐 하나 시원하게 행동하는 법이 없어 나도 모르게 읽는 도중에 혀를 자주 찼다.


 작가의 그림체를 생각하면 이야기의 심각성이 잘 와 닿지 않을 법도 한데 오히려 너무 심플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 때문에 작중 상황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야기의 반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어느 귀여운 캐릭터도 초현실적인 존재지만 등장할 때마다 상황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어 이야기가 더 효과적으로 읽혔다. 바로 전에 본 영화 <조조 래빗>에서도 동심의 틈새로 본 나치즘의 폐해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작가가 그런 그림체를 고수하는 게 단지 그림 실력이 그렇게밖에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결과물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노력 대비 성능이 좋기에 그냥 그렇게 그리는 건지도 모르고. 다른 건 몰라도 4컷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건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기 전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인 국적의 여부에 관한 작가의 통찰이 생각보다 덜 드러났던 게 의아스러웠다. 타의로 인해 난민이 되고 계속 일본 땅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기꺼이 자기 처지를 곱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렇게 느닷없는 타향살이가 어딨는가 말이다. 하지만 작품은 한반도의 상황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작품에서 간간이 나오는 소식도 짤막해 난민들을 비롯해 읽는 나도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의도인 듯한데 어떤 정보든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적은 개인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일부러 이야기의 규모를 축소시켰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후반부에서 노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이산 가족을 통한 신파극으로 전개됐던 건 다소 뻔한 전개였다고 본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약간 소재가 아까운 느낌이었달까? 솔직히 다 좋은데 왜 굳이 이 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접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봤을 땐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캐릭터들이 많았다고 보는데 이런 불만이 표출될 새도 없이 너무 갑자기 결말이 나버려서... 이거 참 결과적으로 도입부에 비해 끝이 너무 허전한 작품이 되고 말았지 뭔가.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작가라서 항상 믿고 의지하며 이번 작품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엔 뒷심이 부족했는지 이전에 받은 참신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을 접해서 좋았는데 찾아보니까 작가의 책이 많이 출간됐더라. 작가가 네이버 말고 다른 곳에서도 작품을 많이 연재했던데 그 작품들도 다 찾아 읽고 싶어졌다. 보니까 제목만으로도 궁금한 작품들이 많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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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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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이 작품을 결말까지 읽은 나로선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2편이 남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는 행보를 보인 해리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이 작품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당했는데 - 바로 다음 작품 <폴리스>의 등장인물 소개를 읽다가 그야말로 봉변을 당했다;; - 알고 봐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접하니까 더 충격적이었달까. 이번에야말로 노르웨이를 떠나려던 해리를 다시금 돌아오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은 예외없이,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시리즈 3편에서 어린애로 등장한 올레그가 충격적이게도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살인 용의자로 등장하는데 격세지감이란 말도 쑥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남은 500페이지의 전개가 심히 불안했다. 가뜩이나 마약 밀수에 손을 댄 파일럿 토르와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구스토의 시점이 해리의 이야기와 병행해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는 마당이란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의 오프닝은 실로 가관이었다. 진짜 요 네스뵈는 방심할 수 없는 작가다.


 시리즈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후속작이 전작의 신선함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이 커지는 것 같다. 바로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가 완결작에서 결국 그런 느낌을 받았고 이 '해리 홀레' 시리즈도 완결이 머잖은 이번 작품에서 비슷한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완성도는 신섬함 이전의 문제가 아닐까 싶을 만큼 산만한 수준이라 개인적으로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결말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뒷맛이 개운했다. 상당히 더러운 기분을 느낄 만한 결말이었지만 그렇기에 작품이 되려 신선했던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파격이라 할 수 있겠는데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예 이 작품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다면 다른 감상이 나올지 또 모를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다른 독자들이 이 작품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할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보통 이 시리즈를 입문한다고 하면 보통 주변에서 <스노우맨>이나 <레드브레스트>, 혹은 <박쥐>를 권할 테니까.

 그 말처럼 이 작품을 펼쳐들 독자들은 거의 시리즈의 오랜 팬들일 것이 틀림없다. 만약 <스노우맨>부터 시작해 <레오파드>를 거쳐 이 작품을 읽었다고 해도 대체로 3권째 접한 셈일 텐데, 그런 독자들한테도 이 작품 속 해리와 라켈, 그리고 올레그가 보이는 유사 가족의 모습은 사람에 따라선 심금을 울릴 것이다. 나 역시 이야기가 산만한 와중에도 이들 가족의 얘기가 심상찮게 다가왔는데 그래서 구스토의 이야기가 더욱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읽어보면 인상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구스토의 이야기는 단순히 폰트를 바꾸는 이상으로 눈길을 끌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렇게 안 읽혔던 건지...


 전작과 달리 이 작품은 온전히 오슬로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리가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베르겐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전의 '오슬로' 3부작만큼은 아니지만 다시금 오슬로가 주요 배경으로 다뤄진 셈인데, 꼭 그 도시를 마약과 범죄의 온상지로 그려서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오슬로는 직접 가본 사람으로서 꽤 좋은 인상을 안겨준 도시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작가가 취재를 좀 했는지 유독 마약 범죄의 세계관을 탄탄히 묘사하던데 독자를 반쯤 질리게 만들었다면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마약 범죄에 그 어떤 호기심도 없었기에 읽기 힘들었지만 실생활에서 마약이란 걸 접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마약의 폐해를 잘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성과도 제법 거두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북유럽 추리소설이 사회 고발에 목적을 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르의 주제의식에 대단히 잘 맞는 작품이었다고 볼 사람도 있겠다.

 복지 천국인 노르웨이도 결국 범죄가 판을 치는 동네임을 지속적으로 어필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역시 의미가 남다르다고 본다. 얼마 전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 많은 쾌거를 달성한 것엔 우리나라 사회의 그늘을 깊이 있게 묘사한 덕택이 클 것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그 작품의 각본을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고 그 영화 속 사회의 모습이 픽션 속이나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주목한 점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이야기는 얼마나 불쾌하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삼 '해리 홀레' 시리즈도 비슷한 맥락에서 글로벌한 명성을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저 먼 노르웨이의 범죄 이야기에 열광하고 다음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그늘을 묘사한 게 신선하면서 아주 남 얘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들>을 제외하면 요 네스뵈의 소설을 '해리 홀레' 시리즈로만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에서의 노르웨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 작품의 바로 다음 작품인 <폴리스>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에서 무슨 이야기가 또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바로 위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그 일은 이 시리즈를 다 읽은 다음에 성사가 될 것 같다. 대체 몇 년이 지난 뒤일는지... 당장 이 소설도 2019년 안에 읽겠다고 했었는데 지켜지지 않은 걸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p.s 핑계일 수 있겠는데 작품의 내용은 결말의 스포일러 때문에 차라리 다음 작품에서 언급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듯하다. 누가 들어도 핑계인 것 같지만.

어쩌면 그래서 다들 사진을 찍는 거겠지.

우리가 행복했다는 거짓 주장을 뒷받침할 거짓 증거를 마련하려고. 살면서 잠시나마 행복한 적이 없다고 하면 견디기 힘드니까. 어른들은 애들한테 사진 찍을 때 웃으라고 하고 자기네 거짓말로 끌어들여. 그렇게 웃으면서 행복을 가장해. - 127~128p




부모가 자식을 지키려고 싸우는 걸 자기희생이라고 한다지만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거야. 똑같이 복제된 자기를. 그러니 도덕적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오. 그저 유전자의 이기주의일 뿐이야. - 162~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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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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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근래 들어 몇 년간 접해온 시리즈의 완결작을 많이 읽었는데 그 어떤 시리즈도 내게 '가가 형사' 시리즈 이상의 묵직함을 안길 수 없었다. 이 작품으로 완결되는 '가가 형사' 시리즈는 내게 아주 의미가 있는 시리즈다. 내가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사서 읽은 추리소설이 바로 이 시리즈에 속한 <붉은 손가락>이었다. 난 지금도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셜록 홈즈나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그 소설을 꼭 추천하곤 한다. 그만큼 작품에 짙게 밴 휴머니즘은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좋은 의미로 큰 충격을 줬고 그 특유의 휴머니즘은 다행히 후속작에서 빛이 바래지지 않았다. 오히려 짙어지면 짙어졌지.

 정확히 10번째 작품으로 가가 형사의 이야기를 완결을 낸 작가의 심정은 나의 허전한 심정과는 가히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알기론 가가 형사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데뷔작 이전에 쓴 소설에서부터 등장한 캐릭터이고 이후 작가의 기념비적인 작품에 여러 번 등장시킬 정도로 남다른 애착을 가진 캐릭터인 듯하다. 때문에 그런 캐릭터를 굳이 완결이라면서 작별을 고할 필요가 있었는지 읽기 전부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로서는 좀 더 깔끔하고 여운을 남긴 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던 걸까? 솔직히 궁금하지 않은가. 2010년에 드라마화를 거치면서 캐릭터의 인기도 꽤 올라갔는데 굳이 완결을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지만 그가 요즘 들어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은 역시 지울 수 없다. 아니, 바꿔 말하자면 다작의 폐해가 이제서야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문학상도 많이 받고 인기도 건재하지만 갈수록 예전의 실험적인 정신은 엿보기 힘들어졌다. 이야기꾼으로서 솜씨는 원숙해졌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고 엄연히 추리소설가로서의 패기도 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좀 더 폭넓은 작품 세계를 - 나쁘게 말하면 두루뭉술한, 얼렁뚱땅이려나. - 지향하는 것 같아 요즘은 잘 찾아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게 소중하며 일종의 빚을 진 작가이지만 10년 전과 달리 그 정도가 덜해졌음은 내게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잠시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적어봤는데 - 그의 신작이 성에 안 차는 것도 문제지만 과거의 작품이 개정돼 출간하는 것도 내심 못마땅한 일이다. 물론 사정은 이해한다만. - 그 심정은 고스란히 요번에 읽은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앞뒤는 맞지만 필요 이상으로 크고 복잡한 서사는 한눈에 잘 안 들어오고 당장 전작인 <기린의 날개>보다 도입부의 흡입력이 약했으며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도 적잖다. 개인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경우에는 크나큰 장점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선 비판 요소가 됐기에 아주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이야기가 참 슬프고 전달하는 바도 남달랐고 가가 형사의 마지막 이야기에 걸맞게 무게도 있었음에도 이렇게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온전히 작품 내적인 부분만 바라보기엔 작가의 존재감이 내게 너무나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건방지게 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더 빠져버리기 전에 가가 형사와 조금 더 안정적인 형태로 작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너무 돌려 말하는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해 시리즈를 완결하는 작품으론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인상이다. 이는 어쩌면 일본 소설, 특히 나이 좀 지긋한 일본 소설가들의 이야기에 지친 탓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등장인물 태반이 일본인 특유의 죄책감, 원죄 의식을 갖고 있고 그로 하여금 개연성을 해결하려 하니까 갈수록 피로해지지 뭔가. 그렇다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이었던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내 감성이 바닥을 치기 때문이라고 의심도 해봤으나 같은 시리즈의 <붉은 손가락>과 <신참자>는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뭉클한 걸 봐선 딱히 나만 탓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결말의 놀라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범인의 일대기를 뒤에 몰아서 보여주기 보단 차라리 작품 전반에 걸쳐 묘사했더라면 지금보다 깔끔하고 훨씬 더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범인의 이야기를 가가와 가가 어머니와 연결시키기 위해 작품을 복잡하게 설계한 것 같은데 까다로운 작업임에도 베테랑 작가답게 능숙하게 해냈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가장 크게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인물의 등장 비중이 많을수록 작품의 인상은 강해지는 법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가가 형사의 마지막 이야기란 점을 상관 않고 그의 분량을 줄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 꼭 <악의>에서와 같이 말이다.


 이 작품은 아베 히로시 주연의 TV 드라마 '신참자' 시리즈에 속하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물의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이므로 영상화가 굉장히 기대되는데 특히 TV 드라마 시리즈가 원작의 내용을 헤치지 않으면서 결과물을 잘 뽑아냈기에 영화에 더욱 기대를 걸고 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영화도 볼 예정인데 작품의 내용에 대한 감상은 그때 적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내심 시리즈와 작별을 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걸까. 어울리지 않게 감정을 내비치자면, 여기서 작품 내용에 대해서도 얘기해버리면 허전함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예상대로라고 할 것인지 의외라 봐야 할 것인지, 상당히 깔끔하게 나버린 작품의 결말 때문에 아직 내 가슴이 작품의 완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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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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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7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이 흥미로운 이유는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늘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좋게 읽은 작품은 다시 접하면 예전만큼 좋았던 적이 흔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접한 뒤에 다시 이 책을 펼치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살펴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대체로 좋게 읽은 작품이 다시 접했을 때도 좋았던 적이 흔하지 않다고 했는데 물론 반대의 경우도 적지만 존재한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용의자 X의 헌신>과 그해 여러 추리소설 랭킹과 문학상 최종 후보작에서 접전을 펼친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나는 이 작품을 막 국내에 소개됐을 적에, 정확히 말하면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지 않은 추리소설들을 막 탐독하기 시작할 때 접했는데... 참, 남다른 전개 방식과 캐릭터들이 당시의 나에겐 어색하기만 했다. 특히 범인의 동기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는데 -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이 날 정도. 이렇게 선명하긴 매우 드물다. - 히가시노 게이고도 특이한 동기를 다루기로 유명하지만 이 작품을 쓴 이시모치 아사미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그 작가완 다르다. 까놓고 말해 다 읽고 불쾌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봐도, 막 추릿소설을 접할 때와는 다르게 그래도 어느 정도 식견을 넓혔을 지금에 와서 봐도 이 작품의 범인의 동기나 탐정역을 맡은 우스이 유카의 행보는 여전히 기이했다. 다시 읽으니까 보면 동기를 묻는 'Why done it?' 류의 추리소설로는 최고가 아닌가 싶은데 이유는 범인의 동기가 작중 모든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범인이 완전 범죄를 달성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을 썼던 부분들이 도서 추리물 - 주인공이 범인 - 의 특징인 심리 묘사와 맞물려 대단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몰입하게 되던 범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범인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질겁할 추리력을 가진 우스이 유카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드러난다.

 예전엔 이런 추리력이 터무니없다고만 여겼는데 이번엔 다른 의미에서 감탄하게 됐다. 범인의 심리 묘사, 범인을 궁지로 모는 탐정, 변수로 작용하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 결국 드러나는 동기, 완전 범죄의 유무 등 작가가 도전해야 했던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그걸 전부 다뤄내지 않았는가. 캐릭터들이 개성적인 것과는 별개로 호감은 가지 않았던 게 흠이었지만 이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아무튼 맡은 바를 빠짐 없이 소화한 작가를 다시 보게 됐다.


 처음 읽을 때와 가장 인상이 달랐던 부분은 이 작품이 추리소설적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동기 하나만으로도 좋은 소설이란 생각이 들더란 것이다. 일전에 작가의 소설 <물의 미궁> 포스팅에서 이 작가는 어느 작품에서건 무리수를 쓴다고 한 적이 있고 대표작인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무리수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지 않은가 싶은데 이 점은 조금 뒤에 얘기하겠다.

 중요한 건 범인의 동기를 접하고 나면 불쾌하다가도, 누구나 실은 저마다의 '도덕적 결벽증'이 있지 않은가 하고 자문한다는 것에 있다. 법으로 재단할 수 없지만 자기가 생각했을 때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좋은 방법도 많을 텐데 굳이 아주 치밀하게 계획해서 자기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죽여버린 범인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구역질이 난다.


 이때 우리는 이런 부류의 인간을 비난할 근거를 찾게 될 텐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역지사지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퍽 좋은 일인 것 같다. 반대의 경우, 당신보다 엄격하고 고결하게 산다고 자만에 젖은 사람에게 당신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느냐고 말이다.

 작품의 논란은 논란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답은 정해졌다고 봐도 좋을 만큼 열에 아홉은 비슷한 의견을 내놓을 것 같지만 이렇게 얘깃거리에 주목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는 게 내가 이전에 읽었을 때와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내기엔 사이즈가 큰 얘기긴 하지만 나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의 도덕적 결벽증에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입힌 적이 많아 이래저래 가볍지 않게 읽혔다.


 사람들이 작품에 불쾌함을 표하는 것엔 역시 동기가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극의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극의 장치이자 인간의 뒤틀린 심리를 드러내는 문학적 요소란 건 인정하지만 나 역시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범인의 동기의 내용은 공감이 가건 가지 않건 순전히 호불호의 영역이라 작품의 단점이나 아쉬운 점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라면 범인의 동기에 대한 복선이 부족해 뜬금없었던 것이다. 범인이 지능적이면서 상상 그 이상의 또라이란 걸 짐작할 수 있을 에피소드, 과거사가 언급됐더라면 작품의 후반부가 덜 불쾌했을지 모른다. 이 점이 매끄러웠다면 우스이 유카에 대한 아쉬움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작중에 범인과 우스이 유카의 관계가 적잖게 묘사되는데 이게 전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해 심정적으로 잘 와 닿지 않는다. 특히 범인이 우스이 유카와 결별한 계기가 너무 느낌적인 느낌이었던 터라 누구에게도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공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의 문제는 독자에게 호감을 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중에서 아무리 흥겹게 농담도 쳐가며 떠들어도 인물들의 모습에 크게 이입하지 못했던 듯하다. 상황과 논리에 관한 묘사는 수준급이지만 인물의 심리나 관계 묘사는 아쉬운 작가였는데 이게 사람에 따라선 강렬한 개성일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호감은 가지 않지만 개성적이 셈인데, 딱 이 작품의 인상과 캐릭터들의 인상과 딱 들어맞는다. 여담이지만 내가 주변에서 받는 취급과 비슷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이런 요소완 달리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 이 작품을 제치고 상이나 랭킹 1위를 휩쓴 건 어찌 보면 자명한 일이었다. 다만 추리소설적 완성도만 치면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용의자 X의 헌신>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작품의 몰입도나 반전은 높게 쳐주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두 작품 다 비슷한 점도 많고 좋은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시간이 흘러 인상이 더 좋아진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손을 좀 더 들어주고 싶다.

 ......그나저나,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10년이 지난 뒤의 나는 확실히 이전보다 시니컬해지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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