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7








 이 작품을 결말까지 읽은 나로선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2편이 남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는 행보를 보인 해리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이 작품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당했는데 - 바로 다음 작품 <폴리스>의 등장인물 소개를 읽다가 그야말로 봉변을 당했다;; - 알고 봐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접하니까 더 충격적이었달까. 이번에야말로 노르웨이를 떠나려던 해리를 다시금 돌아오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은 예외없이,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시리즈 3편에서 어린애로 등장한 올레그가 충격적이게도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살인 용의자로 등장하는데 격세지감이란 말도 쑥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남은 500페이지의 전개가 심히 불안했다. 가뜩이나 마약 밀수에 손을 댄 파일럿 토르와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구스토의 시점이 해리의 이야기와 병행해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는 마당이란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의 오프닝은 실로 가관이었다. 진짜 요 네스뵈는 방심할 수 없는 작가다.


 시리즈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후속작이 전작의 신선함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이 커지는 것 같다. 바로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가 완결작에서 결국 그런 느낌을 받았고 이 '해리 홀레' 시리즈도 완결이 머잖은 이번 작품에서 비슷한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완성도는 신섬함 이전의 문제가 아닐까 싶을 만큼 산만한 수준이라 개인적으로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결말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뒷맛이 개운했다. 상당히 더러운 기분을 느낄 만한 결말이었지만 그렇기에 작품이 되려 신선했던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파격이라 할 수 있겠는데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예 이 작품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다면 다른 감상이 나올지 또 모를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다른 독자들이 이 작품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할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보통 이 시리즈를 입문한다고 하면 보통 주변에서 <스노우맨>이나 <레드브레스트>, 혹은 <박쥐>를 권할 테니까.

 그 말처럼 이 작품을 펼쳐들 독자들은 거의 시리즈의 오랜 팬들일 것이 틀림없다. 만약 <스노우맨>부터 시작해 <레오파드>를 거쳐 이 작품을 읽었다고 해도 대체로 3권째 접한 셈일 텐데, 그런 독자들한테도 이 작품 속 해리와 라켈, 그리고 올레그가 보이는 유사 가족의 모습은 사람에 따라선 심금을 울릴 것이다. 나 역시 이야기가 산만한 와중에도 이들 가족의 얘기가 심상찮게 다가왔는데 그래서 구스토의 이야기가 더욱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읽어보면 인상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구스토의 이야기는 단순히 폰트를 바꾸는 이상으로 눈길을 끌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렇게 안 읽혔던 건지...


 전작과 달리 이 작품은 온전히 오슬로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리가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베르겐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전의 '오슬로' 3부작만큼은 아니지만 다시금 오슬로가 주요 배경으로 다뤄진 셈인데, 꼭 그 도시를 마약과 범죄의 온상지로 그려서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오슬로는 직접 가본 사람으로서 꽤 좋은 인상을 안겨준 도시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작가가 취재를 좀 했는지 유독 마약 범죄의 세계관을 탄탄히 묘사하던데 독자를 반쯤 질리게 만들었다면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마약 범죄에 그 어떤 호기심도 없었기에 읽기 힘들었지만 실생활에서 마약이란 걸 접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마약의 폐해를 잘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성과도 제법 거두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북유럽 추리소설이 사회 고발에 목적을 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르의 주제의식에 대단히 잘 맞는 작품이었다고 볼 사람도 있겠다.

 복지 천국인 노르웨이도 결국 범죄가 판을 치는 동네임을 지속적으로 어필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역시 의미가 남다르다고 본다. 얼마 전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 많은 쾌거를 달성한 것엔 우리나라 사회의 그늘을 깊이 있게 묘사한 덕택이 클 것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그 작품의 각본을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고 그 영화 속 사회의 모습이 픽션 속이나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주목한 점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이야기는 얼마나 불쾌하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삼 '해리 홀레' 시리즈도 비슷한 맥락에서 글로벌한 명성을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저 먼 노르웨이의 범죄 이야기에 열광하고 다음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그늘을 묘사한 게 신선하면서 아주 남 얘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들>을 제외하면 요 네스뵈의 소설을 '해리 홀레' 시리즈로만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에서의 노르웨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 작품의 바로 다음 작품인 <폴리스>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에서 무슨 이야기가 또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바로 위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그 일은 이 시리즈를 다 읽은 다음에 성사가 될 것 같다. 대체 몇 년이 지난 뒤일는지... 당장 이 소설도 2019년 안에 읽겠다고 했었는데 지켜지지 않은 걸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p.s 핑계일 수 있겠는데 작품의 내용은 결말의 스포일러 때문에 차라리 다음 작품에서 언급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듯하다. 누가 들어도 핑계인 것 같지만.

어쩌면 그래서 다들 사진을 찍는 거겠지.

우리가 행복했다는 거짓 주장을 뒷받침할 거짓 증거를 마련하려고. 살면서 잠시나마 행복한 적이 없다고 하면 견디기 힘드니까. 어른들은 애들한테 사진 찍을 때 웃으라고 하고 자기네 거짓말로 끌어들여. 그렇게 웃으면서 행복을 가장해. - 127~128p




부모가 자식을 지키려고 싸우는 걸 자기희생이라고 한다지만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거야. 똑같이 복제된 자기를. 그러니 도덕적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오. 그저 유전자의 이기주의일 뿐이야. - 162~16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