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 상.하 세트 - 전2권 - 완결
꼬마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8







 그림체며 스토리며 설정이며 주제의식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창적인 만화가라고 하면 나는 바로 꼬마비를 떠올린다. 이 작품 <PTSD>는 핵전쟁이 터졌을 때 대마도에 있던 한국인들이 난민이 된다는 도입부는 확실히 꼬마비 작가답게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제목과 흐지부지한 결말은 아쉬웠고 생각보다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것도 의외였지만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군상극을 그리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작중 상황에 대한 여러 사건들, 사람들을 잘 묘사해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대마도라는 장소 선정부터 한반도 핵전쟁이라는 몰입도 있는 상황 설정 등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을 연상시켰는데, 그 영화가 할리우드답게 희망적으로 연출했다면 꼬마비 작가는 절대 희망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후반에선 인류애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작품의 분위기는 절망적이고 실제로 절망에 대해서 자주 얘기한다. 사람들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며 그 작은 난민 사회 안에서도 파벌이 생기며 개중엔 꼭 공존을 거부하는 무리도 나온다. 그렇다고 철저한 대립해 거대 규모의 갈등이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가뜩이나 답답한 상황에서 작중 인물들은 뭐 하나 시원하게 행동하는 법이 없어 나도 모르게 읽는 도중에 혀를 자주 찼다.


 작가의 그림체를 생각하면 이야기의 심각성이 잘 와 닿지 않을 법도 한데 오히려 너무 심플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 때문에 작중 상황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야기의 반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어느 귀여운 캐릭터도 초현실적인 존재지만 등장할 때마다 상황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어 이야기가 더 효과적으로 읽혔다. 바로 전에 본 영화 <조조 래빗>에서도 동심의 틈새로 본 나치즘의 폐해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작가가 그런 그림체를 고수하는 게 단지 그림 실력이 그렇게밖에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결과물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노력 대비 성능이 좋기에 그냥 그렇게 그리는 건지도 모르고. 다른 건 몰라도 4컷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건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기 전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인 국적의 여부에 관한 작가의 통찰이 생각보다 덜 드러났던 게 의아스러웠다. 타의로 인해 난민이 되고 계속 일본 땅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기꺼이 자기 처지를 곱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렇게 느닷없는 타향살이가 어딨는가 말이다. 하지만 작품은 한반도의 상황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작품에서 간간이 나오는 소식도 짤막해 난민들을 비롯해 읽는 나도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의도인 듯한데 어떤 정보든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적은 개인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일부러 이야기의 규모를 축소시켰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후반부에서 노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이산 가족을 통한 신파극으로 전개됐던 건 다소 뻔한 전개였다고 본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약간 소재가 아까운 느낌이었달까? 솔직히 다 좋은데 왜 굳이 이 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접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봤을 땐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캐릭터들이 많았다고 보는데 이런 불만이 표출될 새도 없이 너무 갑자기 결말이 나버려서... 이거 참 결과적으로 도입부에 비해 끝이 너무 허전한 작품이 되고 말았지 뭔가.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작가라서 항상 믿고 의지하며 이번 작품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엔 뒷심이 부족했는지 이전에 받은 참신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을 접해서 좋았는데 찾아보니까 작가의 책이 많이 출간됐더라. 작가가 네이버 말고 다른 곳에서도 작품을 많이 연재했던데 그 작품들도 다 찾아 읽고 싶어졌다. 보니까 제목만으로도 궁금한 작품들이 많더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