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매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2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7.6








 아주 반갑게도 <하늘을 나는 말>의 후속편이 금방 출간됐다. 유명세에 비해 출간 소식이 없어 늘 궁금증을 자아냈던 시리즈의 1, 2편이 연이어 출간되니 기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일본 전통 예능인 라쿠고가 작품 속에 상당 부분 인용돼 내용 이해에 애로사항이 없지않아 있지만 감성적 문체와 뜻밖의 미스터리가 있어 읽는 맛이 있었는데 이렇게 금방 후속작을 만나니 반가웠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고도 추리소설이 추리소설로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은 100년 전부터 증명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은 곧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도 그렇고 '셜록 홈즈' 시리즈에도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와중에 기타무라 가오루의 '밤의 매미'가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을 수상한 건 그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살인사건이 없는 추리소설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이 상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수상작들이 추리소설답지 않은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이름 있는 상을 탔다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이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밤의 매미'를 비롯해 2편의 일상 미스터리 작품이 수록됐다. 전편 못지않은 유려한 문체로 진행되는 작품들이었다. 추리소설이라고 인식을 않고 읽었더라면 영락없는 성장 소설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위에서 말했지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답게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판이한 작풍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작가가 남자라는 얘길 안 들었다면 반드시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가 끝까지 복면 작가로 활동했다면 지금까지도 여성 작가로 오해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이라고 짚을 순 없는데 개인적으로 전편인 <하늘을 나는 말>이 더 재밌었다. 역자 후기나 다른 사람 평에선 전편보다 진일보했다고 하는데 나는 자기 복제 수준이 아닌가 싶을 만큼 비슷하게 읽혔다. 오히려 감성과 주인공인 '나'의 성장에 초점을 두느라 미스터리가 옅어진 것 같아 아쉽기까지 했다. 어쩌면 최근 들어 일상이 급변해 감성을 즐길 여력이 없는 내 개인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전편보다 몰입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런 성격의 작품은 대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르게 읽힐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포장하고자 하는 말은 아닌데, 여타 추리소설이 '재독할 여지를 주지 못한다'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에 비하면 이 작품 <밤의 매미>의 인상은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기타무라 가오루의 소설은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시간과 사람' 3부작의 <스킵>, 그리고 이 작품의 전작 <하늘을 달리는 말>이 전부다. 그리 많이 읽진 않았지만 읽을 때마다 예외 없이 이 작가가 추리소설가치곤 유달리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추리소설, 특히 이 작품과 같은 일상 미스터리 작품도 수위가 세고 냉소적인 작풍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 이질적인 요소긴 하다.

 30년 전에 출간됐을 당시엔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시리즈지만 현재의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엔 애매한 부분 또한 있다. 보다 혁신적이고 현대의 감성에 맞는 작품과 동렬에 놓으면 과연 두드러지는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정경을 갖춘 점, 그리고 허투루 쓴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접근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못을 박고 싶다. 너무 의의를 따지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통념을 따르지 않기에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후속작은 어떨까? 좀 더 강렬한 사건이 등장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지금까지 보인 작풍으로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더불어 지금까지 접한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렇게 자극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시도가 걱정되기도 한다. 과연 어떨지...



 p.s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 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 호시 신이치의 <망상은행>, 고마츠 사쿄의 <일본침몰>,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것이다. 한 작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은 상당히 의아할 것이다. 이런 수상작을 읽으면 한 번이라도 추리소설을 쓴 적 있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미스터리가 어떤 식으로든 포함되면 상을 주는 건가 싶다. 모든 수상작이 다 그렇진 않지만 종종 그런 의문이 드는 작품이 있다. 중요한 건 추리소설이건 뭐건 재밌게 읽힌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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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9.1






 


 일본은 '현'이라는 지역 단위로 이뤄진 나라다. 현은 우리나라의 중앙 집권형 발전과 달리 일본 특유의 지방 분권형 발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뭔가 말을 어렵게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각각의 고장이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현끼리 개성을 내세우며 발전하는 게 일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 보니 일본은 '현민주의'를 가진, 이른바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이 많듯 일본도 사람들이 도쿄로 상경하는 추세가 있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것은 일본 소설에서 자주 묘사된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지나친 인구 집중을 다룬 기사를 떠올리면 이런 일본의 모습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작품은 고치 현청에서 새로 발족한 접대과가 관광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며 시작된다. 고치가 어디냐면, 일본의 주요 섬 4개 중 가장 작은 시코쿠 섬에서 남쪽에 위치한 변방의 현이다. 그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와 '호빵맨'의 저자인 야나세 다카시의 고향이라지만 실상은 낙후된 현으로 특히 관광 분야에서 처참한 성과를 거듭했다고 한다. 관광객을 손님처럼 접대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의 접대과는 고치 현청에서 호기롭게 신설됐지만 그래봤자 공무원인 과원들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속된 말로 '뻘짓'을 일삼는다.


 고치 현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접대과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고치 출신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과연 재밌을까 싶지만 <도서관 전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작가의 전적이 무색하지 않게 꽤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초반부에서 공무원들이 보인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현실 감각이 결여된 채 오로지 예산과 윗사람의 눈치를 보다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을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공무원이란...

 안정된 직장의 공무원들을 둘러싼 비아냥이 이렇게 와 닿기도 힘들 것이다. 아무튼 이 답도 없는 접대과가 과연 외화 벌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주인공 가케미즈를 비롯한 공무원들 행태를 보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몇몇 조력자의 등장으로 일은 점차 희망적으로 흘러간다.


 문장이나 심리 묘사는 어딘지 유치한 구석이 있지만 관광 사업에 대한 고찰만큼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뼈아플 만큼 지적되는 공무원들의 실태는 현실에만 안주하며 제 밥그릇만 챙기다 일을 그르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세태를 꼬집기에 이른다. 하물며 관광객 유치는 진정 관광객을 위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절대 탁상공론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 읽으니 이야기의 무대인 고치에 여행 가고 싶어졌다. 작가의 고향 사랑이 잘 반영된 덕분이리라. 산지가 많아 개발을 못해 '자연밖에 없다'는 평을 듣는 고치가 그 '자연밖에 없다'는 점을 내세워 관광객 유치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등 고치라서 펼칠 수 있는 시도들이 재미있었다. 비록 성사하지 못했지만 과거 서일본 최초로 동물원에 판다를 들이자는 입안부터 작중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기발했다.


 나는 서울이 고향인 서울 촌놈으로 서울을 벗어나 산 적이 없기 때문에 작품 속 내용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중 애향심은 내게 가장 동떨어진 감정 중 하나다. 이건 서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상경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다시피 한 서울 출신의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은 어지간히 갖기 힘든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작중 등장인물의 목적의식을 오로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을 여행하면 대도시보다 오히려 변방의, 나아가서 시골을 돌아다닐 때 더 재밌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나는 해당 지방의 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도시의 모습이 유독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결국 똑같이 관광객을 위한 일이지만 관광객으로서 그 고장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관광 사업의 현황이 궁금했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경제 부흥에 따른 번화가와 쇼핑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매력을 잘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 JTBC 방송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장위안이 '서울 말고 한국의 시골은 외국인으로서 여행하기 두렵다'고 한 게 기억난다. 나도 우리나라를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 기껏해야 부산이나 전주 정도? 군산이랑 속초, 울산도 기억난다. - 갈 때마다 솔직한 심정으로 외국 여행을 할 때처럼 흥미가 일진 않았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의 차이일 수 있으나 그를 감안하더라도 어딘지 획일화돤 모습을 느끼곤 했다...

 세계적인 관광 대국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을 무조건 찬양하자는 건 아니지만, 작품 속 낙후 도시에서 태동하는 관광 사업의 모습은 어떻게든 본받을 만했다. 당장 책으로 읽어도 고치에 가보고 싶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내가 좀처럼 갖지 못할 작가의 애향심에 끌린 결과일 텐데 그러고 보면 그 애향심이란 게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런 소중하고도 바람직한 마음이 모여 이룩해낸 작중의 관광 사업의 모양새는 읽는 내가 다 흐뭇했다. 약간 이상한 투정일 수도 있는데 잠시나마 내가 대도시 출신인 게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리카와 히로의 작품은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이후로 두 번째로 접했다. 그 유명한 <도서관 전쟁>은 영화로 접했는데 작풍이 내가 읽은 작가의 책들과는 전혀 달랐다. 사쿠라바 가즈키처럼 여러 작풍을 소화하는 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은 또 어떤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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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스토리콜렉터 55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7.2







 스파이와 코미디는 궁합이 좋아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당장 영화 <쟈니 잉글리시>와 <스파이>가 떠오른다. 이처럼 영화로는 어느 정도 익숙한 장르인데 소설로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미국의 추리소설가 도로시 길먼의 '폴리팩스' 시리즈는 해당 장르의 기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 처음 읽어봤지만, 일련의 전개 방식이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그게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난 내용에 비해 소설적 문장력이 뒤떨어지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소설을 두고 가령, '영상화가 기대되는 소설'이라든가 '활자로만 감상하기 아까운 소설'이라고 치켜세운다. 소설은 결국엔 완연한 서사의 문학이기에 문장보다 내용에 좀 더 점수를 매기다 보니 그렇게 말하게 됐다. 아주 칭찬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이다. ... 이런 말을 쏟는 이유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시리즈의 전작을 읽진 않았지만 감상하기에 애로사항은 없었다. 전작과 후속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내용이 아니라 가볍고 유쾌한 활극 중심이라 적당히 즐기다 책장을 덮으면 그만이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난 그런 적당함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할 사람은 무지 좋아하리라. 적어도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구석은 없는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정확히 무슨 경위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CIA 비밀 요원으로서 전적을 올린 바 있는 폴리팩스 부인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첩보 활동을 펼친다는 얘기다. 허황됨이 짙지만 본래 이런 이야기는 허황된 맛으로 이끌어가는 법이다. 과거에 사회주의 국가였던 불가리아 한복판에서 폴리팩스 부인이 오지랖 부리느라 필요 이상으로 임무나 여정이 고단해지는 내용은 뻔하지만 한편으론 로망을 자극시키기도 했다.


 사실 취향에 너무 안 맞아 할 말이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리즈의 의의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했다. 작가가 자신의 갈증을 소설로나마 풀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건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리포터'를 쓴 조엔 K 롤링도 그랬지만 현실을 돌파할 매개체로써 소설은 제법 효과적인 도구가 아닌가 싶었다. 백지를 활자로 채우는 일은 누군가한테 그저 고통에 불과할 수 있지만 때론 누군가에겐 희망이자 희열이 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행복을 거머쥔 이 책의 저자가 실로 우러러보였다.

 전작과 후속작을 읽겠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유쾌한 에너지를 뽐내는 작품임엔 부정할 수 없다. 숨 한 번 고르기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벅찬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글을 썼던 것처럼 우리도 비슷한 목적으로 접근하면 꽤나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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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단편 베스트 12 - 코난 도일이 직접 뽑은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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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현존하는 모든 추리소설의 탐정 캐릭터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는 유럽 문학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그 인지도가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을 웃돌 정도니 정말 말 다했다. 뤼팽의 저자인 모리스 르블랑도 괜히 작품 속에 홈즈를 등장시켰다 아직까지 욕을 먹는데 그만큼 셜록 홈즈가 상징하는 바는 남다르다. 홈즈를 현대에 맞게 각색한 드라마 <셜록>도 대히트해서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 뭐, 있을 순 있겠지만 정말 찾기 힘들 것 같다.

 나도 명색이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몇 편 접해봤다. 이 책은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혁신적이다. 혹자는 그 시대의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안 맞는 비유인 것 같다. 홈즈가 이룩한 업적은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성질은 더러워도 비상한 관찰력과 두뇌 회전을 자랑하는 탐정, 철저한 논리적 추론과 수사로 범인을 지목하는 활약, 때론 천하의 악당과 동귀어진할 만큼의 정의감... 모범이라 칭해도 좋을 탐정의 모든 조건을 최초로 선보인 캐릭터가 바로 셜록 홈즈가 아닐까. 까놓고 말하면 '셜록 홈즈' 시리즈가 가장 재밌는 추리소설이 아닐 순 있어도 시리즈의 주인공 셜록 홈즈가 가장 매력적인 탐정 주인공으로 손꼽히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탐정이 어떤 방면으로든 홈즈의 영향을 받았을 정도니 말이다.

 내 개인적으론 홈즈보다 더 복잡미묘한 매력과 행적을 보인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홈즈 쪽을 두둔하고 싶다. 의뢰인이 등장하고 의뢰인의 인상착의를 보고서 추리를 맛보기로 보여주고 이윽고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컨셉 하난 제대로 잡은 덕에 그리 쉽게 질리지 않는다. 더욱이 이 책은 무려 작가가 직접 선정한 BEST 12 선집이니 유독 돋보였던 것 같다.


 '얼룩 끈'과 '빨강머리 연맹'은 통상적인 살인사건 - > 범인 잡기 형식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름에도 인상적이었고 그 유명한 홈즈의 죽음과 귀환은 또 읽어도 여운이 짙었다. 창작자도 죽일 수 없을 정도로 - 정확히 말하면 부활시키길 강요당한;; - 인기가 어마어마했다는 후일담 없이도 충분히 재밌는 에피소드였다. 자신이 탄생시킨 캐릭터가 100년이 지나도 인기가 식지 않는 걸 저승에서 보노라면 도대체 무슨 심정일까? 처음엔 증오하다시피 해서 죽이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또 다를 것 같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기 힘든 명탐정의 위엄은 건재했다. 글쎄, 트집을 잡으려면 플롯이든 뭐든 건드릴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트집에 불과할 것들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추리소설의 모범을 - 정정하자면 당시엔 '탐정소설'로 불렸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의 소설이다. - 간직한 시리즈니 오늘날에도 읽힐 만하구나 싶었다.

자네는 보기만 할 뿐 관찰을 하지 않아.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 -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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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타 사계절 1318 문고 103
최영희 외 지음 / 사계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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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최근 SF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작년에 학교에서 바자로 싸게 구입한 <안녕, 베타>가 떠올랐다. SF 청소년 소설 엔솔로지라는 말에 혹해 샀는데 드디어 읽게 됐다. SF와 청소년 소설이라니, 그 조합이 도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아하니 우리나라는 SF 청소년 소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데 그런 와중에 이런 엔솔로지가 등장한 건 기적이 아닐까 싶다. 여러 작가들의 짧은 소설이 모여 각종 SF 설정을 집약하고 있는데 설정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분량은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표제작 '안녕, 베타' 정도가 괜찮았고 나머진 너무 청소년/성장 소설의 틀에 갇혀 다른 소재라도 비슷한 감정선을 보였는데 그럼에도 SF 특유의 진지한 고찰은 간직해 장르의 앞날은 기대하게 만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SF가 추리소설만큼이나 범용성이 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안녕, 베타'


 나와 똑같은 외양의 대체 인간이 더 나은 삶의 필수품으로 대두된 미래를 그린 작품이다. SF가 미래를 얘기하면서도 현재를 얘기하는 소설이라 한다면 그에 아주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줬다. 인간의 정체성이 함부로 규정될 수 없고 외양이 같은 것만으로 두 개의 동일한 정체성이 있을 수 없음을 아주 잘 역설해줬다. 나아가 인공지능에 대한 화두도 던지는, 만들어진 인격이라고 하대할 자격이 주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무척 좋았다. 결말이 통쾌한 건 두말하면 입 아프고.



 '엄마는 차갑다'


 로봇도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한 결핍을 로봇 엄마로 대체하는 이야기는 이래저래 짠하게 들린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한낱 고철을 엄마로 여기는 주인공이 짠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주인공을 두고 짠하게 바라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짠하다는 것이다. 날 때부터 지닐 수밖에 없는 기계의 숙명이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바로 전에 감상한 단편 '레트와 진'도 비슷한 인상을 남겼다. 정말 인공지능이 인간에 가까워지는 날이 온다면 그들의 '삶'이 정말 '삶'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진짜'


 표제작 '안녕, 베타'와 같은 듯 아주 다른 이야기다. 그 유명한 아톰도 이 작품의 주인공과 같은 처진데 쉽게 정의 내리기 민감한 내용이다. 죽은 사람을 대신한 인공지능 로봇이 과연 죽은 사람과 같은 존재일 수 있는지... 결국 상호가, 그러니까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와 로봇 자식이 서로의 관계에 동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개인적으로 정확히 같은 인격이란 존재하지 않아서 제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로봇이 이전에 죽은 인간과 같은 인간이라 할 수는 없다. 이는 '안녕, 베타'에서 논의되기도 한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사자들이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건 그것대로 문제삼을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존중 받을 만한 선택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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