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매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2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7.6








 아주 반갑게도 <하늘을 나는 말>의 후속편이 금방 출간됐다. 유명세에 비해 출간 소식이 없어 늘 궁금증을 자아냈던 시리즈의 1, 2편이 연이어 출간되니 기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일본 전통 예능인 라쿠고가 작품 속에 상당 부분 인용돼 내용 이해에 애로사항이 없지않아 있지만 감성적 문체와 뜻밖의 미스터리가 있어 읽는 맛이 있었는데 이렇게 금방 후속작을 만나니 반가웠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고도 추리소설이 추리소설로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은 100년 전부터 증명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추리소설은 곧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도 그렇고 '셜록 홈즈' 시리즈에도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와중에 기타무라 가오루의 '밤의 매미'가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을 수상한 건 그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살인사건이 없는 추리소설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이 상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수상작들이 추리소설답지 않은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이름 있는 상을 탔다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이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밤의 매미'를 비롯해 2편의 일상 미스터리 작품이 수록됐다. 전편 못지않은 유려한 문체로 진행되는 작품들이었다. 추리소설이라고 인식을 않고 읽었더라면 영락없는 성장 소설로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위에서 말했지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답게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판이한 작풍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작가가 남자라는 얘길 안 들었다면 반드시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가 끝까지 복면 작가로 활동했다면 지금까지도 여성 작가로 오해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이라고 짚을 순 없는데 개인적으로 전편인 <하늘을 나는 말>이 더 재밌었다. 역자 후기나 다른 사람 평에선 전편보다 진일보했다고 하는데 나는 자기 복제 수준이 아닌가 싶을 만큼 비슷하게 읽혔다. 오히려 감성과 주인공인 '나'의 성장에 초점을 두느라 미스터리가 옅어진 것 같아 아쉽기까지 했다. 어쩌면 최근 들어 일상이 급변해 감성을 즐길 여력이 없는 내 개인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전편보다 몰입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런 성격의 작품은 대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르게 읽힐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포장하고자 하는 말은 아닌데, 여타 추리소설이 '재독할 여지를 주지 못한다'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에 비하면 이 작품 <밤의 매미>의 인상은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기타무라 가오루의 소설은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시간과 사람' 3부작의 <스킵>, 그리고 이 작품의 전작 <하늘을 달리는 말>이 전부다. 그리 많이 읽진 않았지만 읽을 때마다 예외 없이 이 작가가 추리소설가치곤 유달리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추리소설, 특히 이 작품과 같은 일상 미스터리 작품도 수위가 세고 냉소적인 작풍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 이질적인 요소긴 하다.

 30년 전에 출간됐을 당시엔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시리즈지만 현재의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엔 애매한 부분 또한 있다. 보다 혁신적이고 현대의 감성에 맞는 작품과 동렬에 놓으면 과연 두드러지는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정경을 갖춘 점, 그리고 허투루 쓴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접근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못을 박고 싶다. 너무 의의를 따지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통념을 따르지 않기에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후속작은 어떨까? 좀 더 강렬한 사건이 등장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지금까지 보인 작풍으로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더불어 지금까지 접한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렇게 자극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시도가 걱정되기도 한다. 과연 어떨지...



 p.s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 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 호시 신이치의 <망상은행>, 고마츠 사쿄의 <일본침몰>,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야마다 무네키의 <백년법>...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것이다. 한 작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은 상당히 의아할 것이다. 이런 수상작을 읽으면 한 번이라도 추리소설을 쓴 적 있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미스터리가 어떤 식으로든 포함되면 상을 주는 건가 싶다. 모든 수상작이 다 그렇진 않지만 종종 그런 의문이 드는 작품이 있다. 중요한 건 추리소설이건 뭐건 재밌게 읽힌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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