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9.1






 


 일본은 '현'이라는 지역 단위로 이뤄진 나라다. 현은 우리나라의 중앙 집권형 발전과 달리 일본 특유의 지방 분권형 발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뭔가 말을 어렵게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각각의 고장이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현끼리 개성을 내세우며 발전하는 게 일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 보니 일본은 '현민주의'를 가진, 이른바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이 많듯 일본도 사람들이 도쿄로 상경하는 추세가 있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것은 일본 소설에서 자주 묘사된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지나친 인구 집중을 다룬 기사를 떠올리면 이런 일본의 모습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작품은 고치 현청에서 새로 발족한 접대과가 관광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며 시작된다. 고치가 어디냐면, 일본의 주요 섬 4개 중 가장 작은 시코쿠 섬에서 남쪽에 위치한 변방의 현이다. 그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와 '호빵맨'의 저자인 야나세 다카시의 고향이라지만 실상은 낙후된 현으로 특히 관광 분야에서 처참한 성과를 거듭했다고 한다. 관광객을 손님처럼 접대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의 접대과는 고치 현청에서 호기롭게 신설됐지만 그래봤자 공무원인 과원들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속된 말로 '뻘짓'을 일삼는다.


 고치 현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접대과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고치 출신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과연 재밌을까 싶지만 <도서관 전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작가의 전적이 무색하지 않게 꽤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초반부에서 공무원들이 보인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현실 감각이 결여된 채 오로지 예산과 윗사람의 눈치를 보다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을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공무원이란...

 안정된 직장의 공무원들을 둘러싼 비아냥이 이렇게 와 닿기도 힘들 것이다. 아무튼 이 답도 없는 접대과가 과연 외화 벌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주인공 가케미즈를 비롯한 공무원들 행태를 보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몇몇 조력자의 등장으로 일은 점차 희망적으로 흘러간다.


 문장이나 심리 묘사는 어딘지 유치한 구석이 있지만 관광 사업에 대한 고찰만큼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뼈아플 만큼 지적되는 공무원들의 실태는 현실에만 안주하며 제 밥그릇만 챙기다 일을 그르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세태를 꼬집기에 이른다. 하물며 관광객 유치는 진정 관광객을 위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절대 탁상공론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다 읽으니 이야기의 무대인 고치에 여행 가고 싶어졌다. 작가의 고향 사랑이 잘 반영된 덕분이리라. 산지가 많아 개발을 못해 '자연밖에 없다'는 평을 듣는 고치가 그 '자연밖에 없다'는 점을 내세워 관광객 유치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등 고치라서 펼칠 수 있는 시도들이 재미있었다. 비록 성사하지 못했지만 과거 서일본 최초로 동물원에 판다를 들이자는 입안부터 작중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기발했다.


 나는 서울이 고향인 서울 촌놈으로 서울을 벗어나 산 적이 없기 때문에 작품 속 내용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중 애향심은 내게 가장 동떨어진 감정 중 하나다. 이건 서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상경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다시피 한 서울 출신의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은 어지간히 갖기 힘든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작중 등장인물의 목적의식을 오로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을 여행하면 대도시보다 오히려 변방의, 나아가서 시골을 돌아다닐 때 더 재밌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나는 해당 지방의 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도시의 모습이 유독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결국 똑같이 관광객을 위한 일이지만 관광객으로서 그 고장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관광 사업의 현황이 궁금했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경제 부흥에 따른 번화가와 쇼핑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매력을 잘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 JTBC 방송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장위안이 '서울 말고 한국의 시골은 외국인으로서 여행하기 두렵다'고 한 게 기억난다. 나도 우리나라를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 기껏해야 부산이나 전주 정도? 군산이랑 속초, 울산도 기억난다. - 갈 때마다 솔직한 심정으로 외국 여행을 할 때처럼 흥미가 일진 않았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의 차이일 수 있으나 그를 감안하더라도 어딘지 획일화돤 모습을 느끼곤 했다...

 세계적인 관광 대국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을 무조건 찬양하자는 건 아니지만, 작품 속 낙후 도시에서 태동하는 관광 사업의 모습은 어떻게든 본받을 만했다. 당장 책으로 읽어도 고치에 가보고 싶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내가 좀처럼 갖지 못할 작가의 애향심에 끌린 결과일 텐데 그러고 보면 그 애향심이란 게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런 소중하고도 바람직한 마음이 모여 이룩해낸 작중의 관광 사업의 모양새는 읽는 내가 다 흐뭇했다. 약간 이상한 투정일 수도 있는데 잠시나마 내가 대도시 출신인 게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리카와 히로의 작품은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이후로 두 번째로 접했다. 그 유명한 <도서관 전쟁>은 영화로 접했는데 작풍이 내가 읽은 작가의 책들과는 전혀 달랐다. 사쿠라바 가즈키처럼 여러 작풍을 소화하는 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은 또 어떤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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