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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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는 농인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다. 전자는 실제 농인인 저자가 일상 속에서 겪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만화고 후자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인 주인공이 가수의 꿈을 가져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내용의 프랑스 영화다. 살면서 농인을 본 적이 거의 없지만 이러한 창작물들 덕에 비슷한 소재가 나오면 한 번 더 관심이 간다. 얘기가 나온 김에 방금 언급한 작품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접해보길 바란다. 특히 이 작품 <데프 보이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주제 의식과 작품의 완성도가 <데프 보이스>처럼 균형이 잡혔다.

 마루야마 마사키의 <데프 보이스>는 법정의 수화 통역사가 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다양한 소재가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일본 추리소설 중에서도 꽤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농인과 추리소설, 같이 놓이기 쉽지 않은 조합이라 그것만으로도 기대가 됐는데 정말 다행히도 감명 깊게 읽었다. 다 작가가 진지하게 써내려간 덕분이다.


 농인 부모 밑에서 난 아이 코다 CODA -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어 - 는 청인과 농인, 두 가지 세계 속에 정체성을 둘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도 코다로서 그가 말하듯 어렸을 때부터 질릴 정도로 수화를 썼기에 재취업의 일환으로 택한 수화 통역사란 자격증을 별 어려움 없이 획득한다. 다른 지원자완 달리 자신에겐 수화 통역사가 되고 싶은 큰 사명감이나 숭고한 의지가 없음에 자괴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괴감을 가지는 것과 별개로 그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농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나오토는 농인의 '들리는 아들'이란 이유로 무심결에 상처를 받으며 자라왔기에 이런 환호가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 나오토는 알게 모르게 누구보다 농인의 세계를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농인인 부모님과 형과 지냈기에 자연스레 농인과의 소통에 능숙하며 그들의 입장과 삶을 비호할 줄 아는 시각 또한 겸비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수화 통역사는 나오토에게 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코다인 나오토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오토는 농인이 관련된 두 번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전직 경찰관인 나오토는 과거 농아 시설 원장을 살해한 농인 피의자의 임시 수화 통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피의자가 농인이기에 당했던 수사상 불합리한 처우 때문에 조직과 알력이 있었던 그는 시간이 흘러 현재, 원장의 아들이 살해당한 사건 때 또 한 번 경찰 관계자에게 지목을 받는다. '그쪽'이라며 농인의 편을 든 인간으로 기억하는 수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인은 이전에 '농아인'이라고 불렸다. 귀가 들리지 않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이 말은 농인으로 변경된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아亞를 뺀 것인데 농인은 귀는 들리지 않지만 수화나 구화 - 독순술, 입술을 읽어 말을 이해하고 입술 모양을 내 발음하는 대화법. 선천적인 농인이라면 이쪽이 습득 난이도가 높다. - 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인 농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들도 엄연히 그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린 그들을 이해할 시각 자체가 전무하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물은 이래서 좋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시각을 일깨워 준다. 이 소설의 경우 농인이 어떤 입장으로든 범죄에 휘말려 법 아래에 놓일 때 얼마나 큰 몰이해의 폭력과 마주하고 마는지 잘 지적하고 있다.

 청각 장애는 지체 장애나 시각 장애완 달리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 '보이지 않는 장애'라고 한다. 그리고 날 때부터 들리지 않았던 농인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특별히 불편해 하지 - 장애가 아닌 '다름'이기에... -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농인과 청인이 서로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들은 적잖은 마찰을 빚고 만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 징검다리로써 농인과 청인 서로에 대한 이해를, 특히 그간 몰랐었던 농인의 입장에 대해 지대한 이해가 충만했기에 무척 가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마치 코다처럼, 두 세계 중 어느 한쪽에만 속한 게 아닌 양쪽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농인 캐릭터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 - 무조건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 게 좋았다. - 와 더불어 그들 세계에 대한 이해, 코다가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 소재에 대한 진지한 묘사가 많아 그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물론 추리소설로써도 마찬가지. 전직 경찰관이지만 엄연히 일반인인 주인공이 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과정은 과하지 않고 딱딱 맞아떨어져 읽는 맛이 출중했다. 게다가 주인공의 여러 사정과 심리에 의해 사건의 전환이 바뀌는 것도 상당한 관전 요인이었다. 덕분에 주인공의 개성과 매력이 잘 녹아들어 겉도는 느낌 하나 없이 결말까지 술술 읽혀 들어갔다.

 사건의 진상엔 어딘지 일본적인 가족애가 근간으로 있어 내심 식상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코다인 나오토의 정체성 찾기'라는 책의 또 하나의 목표완 굉장히 잘 부합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장르 소설로 농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전면에서 다뤄지기도 흔치 않은데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 그야말로 '올해의 발견'이란 생각이 다 들었다.



 p.s 부제가 '법정의 수화 통역사'라서 법정물일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법정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약간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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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 <스트로보> 개정판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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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난 사진을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남는 건 사진 뿐이다' 라는 말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내가 올린 여행 포스팅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난 여행 중에 사진 찍는 건 꽤 좋아라 한다. 다만 원칙이 있다. 딱 한 번만 찍는다. 비슷한 사진을 두 장 남기지도 않고 잘 나오길 고대하며 셔터를 두 번 이상 누르지 않는다. 이게 일로써 사진을 찍는가,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좋은 사진을 위해 집착 혹은 강박 관념을 가진 순간 여행은, 나아가 내 일상은 결코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가는 어떻게 보면 나한테 있어 가장 동떨어진 직종의 사람이다. 사진이라는 작품을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는 직업 정신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사진가라고 해도 기껏해야 새로 만드는 여권에 필요한 증명 사진을 찍을 때 만날 뿐이지만 그들에겐 남다른... 그러니까 거리감이 느껴진다.


 심포 유이치의 <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는 전적으로 '작가의 말' 때문에 여운이 떨어진 작품이다. 작품 자체는 내 취향과 그리 부합하지 않았지만 사진가인 주인공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잘 살린 다채로운 소설이었다. 영화 <박하사탕>, 소설 <내 남자>, <13.67>과 같이 역순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한 명의 사진가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에피소드, 한창 여성편력이 심했을 때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 일, 몇몇 지인의 죽음에 남겨진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이는 한 사람의 일대기이자 일본 근현대사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써 꽤 쏠쏠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 굳이 작가가 한 번 더 되짚느라 구구절절 설명하는 식이 된 '작가의 말'은 식상하고 맥빠졌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가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이 50세, 42세 때 겪은 일들로 전자는 과거 인연이 있던 한 여인의 영정 사진을 찍는 내용, 후자는 한때 관계를 가진 여성 사진가의 죽음에 담긴 사진가로서의 집념을 그린 내용이다. 전자는 드라마가, 후자는 미스터리의 색채가 짙었는데 두 색깔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져 볼 만했다. 심포 유이치는 개인적으로 작정하고 쓴 추리소설보다 이렇게 추리소설인지 뭔지 알쏭달쏭한 소설을 되게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구성이나 내용, 캐릭터가 그렇게 새롭진 않았지만 사진가의 일생을 다뤘다는 독보적인 지점이 있으므로 해당 소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작중에 드러난 사진에 대한 감성이나 철학이 크게 와 닿지 않아서 나한텐 별로 재밌진 않았는데 다른 독자들은 또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국내에 출간된 심포 유이치의 작품은 이 작품으로 다 읽은 것 같은데... 내심 허전하다. 더 읽어보고 싶은데 어째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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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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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지금은 약간 시든 것 같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한때 재미를 보증하는 작가 중 한 명에 속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작품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워낙에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쓰는 작가의 최신작이라면 더 잴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작가의 신작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때가 이 작품이 출간한 즈음과 비슷하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이 작품이 한바탕 독자들의 넋을 빼놓았었는데 막 추리소설을 접했던 나는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세상엔 별별 추리소설이 다 있구나 싶었다. 모든 면에서 틀을 깨버리는 이 작품은 다시 읽은 지금도 변함 없이 충격적이었다.


 주인공 미치오는 종업식 날 등교를 하지 않은 S를 위해 유인물을 가져다 주라는 심부름을 하게 된다. 최근 개나 고양이의 변사체가 발견돼 분위기가 뒤숭숭한 마을 속에서 미치오는 곧 S의 집에서 S의 시체와 마주한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보이는 S의 모습에 놀란 미치오는 서둘러 학교로 돌아가 담임 선생님한테 사정을 설명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담임 선생님이 경찰들과 S의 집에 갔을 땐 S의 시체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미치오가 진술한 상황과는 달리 집에선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미치오는 큰 혼란을 느끼던 중 어느 날 S를 다시 만나게 된다. 거미로 환생한 S를...

 이 작품은 환생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추리소설이다. 거미로 환생한 S와 함께 사라진 S의 시체를 찾는 이야기인데 아이가 주인공인 일본 소설다운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미치오 슈스케다운 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주인공임에도 끈적끈적하고 추한 정경 묘사는 읽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특히 이 소설 같은 경우엔 마음 놓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 명도 나오질 않아 더욱 그랬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데 조금 나쁘게 말하면 작가의 뇌 구조가 궁금해지는 그런 작풍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다. 이른바 작정하고 반전을 위한 듯한 소설로 방점이 남발되고 의도적으로 묘사를 숨기는 등 공정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 직전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을 읽었더니 확실히 비교된다. - 탓에 어쩔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일단 상황 자체가 너무 상식을 초월한 나머지 머릿속에선 잘 그려지지 않고 - 사람과 거미가 대화하는 것부터... - 이후 드러나는 사건의 동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터라 쫓아가기 버거웠다.

 이와무라 선생님의 집에 가는 중반부까진 딱 좋았는데 그 뒤 '모두 각자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는 작품의 주제에 맞게 반전을 거듭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행보는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돼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작품은 아니었고 그래서 좋았다. 명암을 밝히는 추리소설의 틀에 전혀 맞지 않음에도 미스터리한 사건과 추적이 가미돼 장르 특유의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어린 주인공과 환생이란 설정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이 작품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주인공이란 설정이 최대한으로 활용됐다는 말엔 공감 못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치고 너무 잔혹하다. 다름이 아니라 애들이 어른 못지않게 잔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도를 갖고 쓰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 아닌 이상에야 아이들이 꼭 한결 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등장할 이유는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좀 극단적인 구석이 있지만 - 그 전에 이해도 안 되지만 - 그렇기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피부로 와 닿았다.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한다. 누구나 생각하는 말일 테지만 소설이란 누구나 생각하고 알 만한 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굳이 돌려 말해 피부로 와 닿게 만드는 게 바로 소설이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니 공을 들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와 지금 다시 읽을 때 사이의 7년 간 적지 않은 책을 읽었는데도 비교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 작품이었다. 내가 아직 견문이 좁은 탓인지 몰라도 여전히 충격적이었는데 허점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볼 만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데뷔작 <등의 눈>이 만화책으로 출간됐다는데 그걸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요즘 출간되는 작가의 책은 괴기스러움이 옅던데 데뷔작은 그렇지 않겠지.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 4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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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퍼즐 학생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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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외딴섬에서의 보물찾기, 클로저드 서클 속 연쇄 살인, 밀실 살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범인 찾기... 여느 때처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외딴섬 퍼즐>은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추리소설의 로망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상당히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쓰는 이 작가를 처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신작이 발매되지 않아 이렇게 재독하는 것으로 갈증을 달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최악이라 생각했던 데뷔작 <월광게임>도 다시 읽으면 다르려나 싶을 만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재독하면 더 빛이 나는 듯 - 하지만 <월광게임>은 읽지 않을 것이다... - 하다. 3년 전, 군대에 있을 때 <말레이 철도의 비밀>과 같이 작가의 진면목을 깨닫게 해준 <외딴섬 퍼즐>은 오히려 다시 읽으니 더 흥미진진했다. 그때는 보물찾기와 연쇄 살인의 조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김전일' 같은 데서 많이 다뤄져서 식상하긴 해도 재밌게 읽혔다. 첫 번째 살인 이후에 주인공네 일원이 뭘 해본답시고 섬에서 보물찾기에 열중하거나 밤바다에 보트를 띄우는 것 등 조금씩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지만 의외로 결말, 범인을 특정짓는 과정에 있어서 불필요한 요소는 또 아니라서 여러모로 재독하는 재미가 충분했다.


 후속작 <쌍두의 악마>, <여왕국의 성>에 비하면 분량이나 스케일적 면에선 살짝 약하지만 그래도 작품 내적으론 크게 뒤떨어지는 구석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게 데뷔작 이후에 바로 출간된 두 번째 작품이란 점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뭐든 처음보다 두 번째가 어렵다고 데뷔작에 너무 힘을 쏟아 이후 작품이 실망스러운 작가가 있는 반면 이렇게 점점 잠재력을 발현하는 작가도 있는데 89년도 작품이라 신선함이 없지않아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재기 넘치는 작품이었다. 특히 '독자에 대한 도전'을 던지면서 과시된 공정함은 새삼스러울 만큼 감탄을 자아냈다. 꼭 추리소설 한두 권만 읽어본 것처럼 말했나...?

 추리소설은 재독할 가치가 없는 장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주 동의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요즘 책을 재독하는 일이 잦아졌는데 예전엔 왜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그런 뉘우침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경우에는 문장도 잘 다듬어져 있고 이야기가 별로라도 캐릭터 드라마에 공을 들여 - 적어도 탐정 주변 인물에 한해서는 확실하다. - 잔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연구회의 홍일점인 마리아의 등장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마리아가 자칫 딱딱하게 읽힐 추리소설 속 세계에 작가가 원했을 감성과 따뜻함이 잘 녹아들게끔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여덟의 여름>을 쓴 미쓰하라 유리의 해설도 백미였다.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해설보단 사랑 고백 수준의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이었는데 스포일러가 있긴 해도 시리즈의 탐정역을 맡은 에가미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혔다. 여느 거만하고 사건 해결만이 목적인 탐정과는 결이 다른 인물로 범인을 밝혀내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통찰은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 나 또한 이번에 에가미를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위에서 이 작품의 추리소설로써의 강점을 잘 부각시키지 못한 것 같아 제대로 설파하자면, 작가가 추구하는 연역적 추리가 여지없이 발휘된 수작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쟀을 때 단 한 명의 용의자가 남아 지목된다면 바로 그 사람이 범인이다. 사건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깨끗한 논리를 추구하며 구축해낸 수수께끼는 깨끗함에 걸맞게 돌파구도 마련된 숨김 없는 게임이라 그저 추리해내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굉장히 좋은 의미에서 잘 만든 추리소설로 로망과 스토리도 균형을 이루고 있어 이번에도 만족스럽게 완독할 수 있었다. 이미 읽은 후속작 <쌍두의 악마>가 또 기대되기 시작했다.



 인상 깊은 구절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실수인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아무리 봐도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억울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우아한 생활로 복수하고 있는 것 같군요. - 179p


그렇죠. 이십대 소년 탐정단이잖아요. 내가 말려든 사건은 스스로 해결하자. 이게 우리 신조 아니던가요? - 280p


이런 미스터리는 어때?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밀실 상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포에 떤다. 이윽고 탐정은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말없이 그 문을 판자와 못으로 막아 버린다. 그러더니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 마디. '자, 돌아갑시다!'...... - 330p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그런 의도가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가해자'가 됩니다. 인간은 이런 이유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 446p


운명에 속박당해 자기가 가야 할 길조차 자기 힘으로 정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상태를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454p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실수인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아무리 봐도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억울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우아한 생활로 복수하고 있는 것 같군요. - 179p




그렇죠. 이십대 소년 탐정단이잖아요. 내가 말려든 사건은 스스로 해결하자. 이게 우리 신조 아니던가요? - 280p




이런 미스터리는 어때?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밀실 상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포에 떤다. 이윽고 탐정은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말없이 그 문을 판자와 못으로 막아 버린다. 그러더니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 마디. ‘자, 돌아갑시다!‘...... - 330p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그런 의도가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가해자‘가 됩니다. 인간은 이런 이유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 446p




운명에 속박당해 자기가 가야 할 길조차 자기 힘으로 정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상태를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4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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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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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의 후기를 쓸 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짐승 같다'는 말은 어떤 경우엔 짐승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말일 수 있다. 짐승은 악의를 갖고 살생을 범하지 않는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뭔가를 죽이고 먹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개구리가 나온 만큼 - 공교롭게도 <짐승의 성>과 이 작품은 출판사가 같다. - 개구리로 예를 들겠다. 뱀이 개구리를 먹는 이유는 개구리가 싫기 때문이 아니다. 개구리를 죽이고 싶기 때문에 먹는 게 아니다. 배고프고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개구리를 표적으로 삼아 잡아먹을 뿐이다. 여기에 선과 악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개구릴 죽이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부 국가는 먹지만... 아무튼 대체로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 개구리를 죽이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 순전히 재밌기 때문에 개구리를 매달아 죽이고 으깨 죽이고 밟아 죽이고 해부하는 것이다.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저렇게 무참히 죽일 수 있나?


 이 작품은 개구리를 갖고 놀다 죽인 아이처럼 사람들을 죽이는 범인이 등장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그 유아적인 범죄 동기는 사람들을 삽시간에 공포의 난간으로 밀어넣고 경찰은 별다른 증거가 없어 용의자를 확정 짓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윽고 설령 살인마가 잡힌다 하더라도 정신 이상을 방패 삼아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을 거란 비명 섞인 우려가 터지고 이야기는 잔혹한 결말을 내보인다. 신참 형사 고테가와에게는 더 없이 잔인한 통과 의례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짐승의 성> 이후로 가장 수위가 센 소설이었는데 작중에서 계속 강조하듯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이 장난치는 구석이 다분한 범죄라 나 역시 읽으면서 참담한 기분이 이어졌다. 더욱이 연쇄살인이 이어질수록 시민들이 한순간에 폭도가 되는 전개가 나오자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너무 막장이 아닌가 싶은 한편으로 사실적이고 통찰력 있는 묘사라 줄곧 압도당했다.


 이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듭하는 반전과 심신 상실자에게 범죄 책임을 묻지 않는 형법 39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한층 강한 강렬함을 선사한다. 처녀작답게 직설적이고 오그라드는 묘사가 적잖았지만 - 액션 묘사는 약간 과하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 복선도 교묘하고 - 단 복선 회수에서부터 이어지는 추리는 너무 휘몰아치는 경향이 있다. - 작가 스스로가 맡은 컨셉과 주제의식을 철저히 책임지고 있어 생각보다 만족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적 얼개와 더불어 주제의식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시사하는 바가 상당해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신 상실자의 진정한 치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건가 싶어 반감이 들었지만 그 단호한 태도 덕분에 형법 39조라는 조항 자체가 명분만 좋은 악법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비슷한 작품으로 야쿠마루 가쿠의 <어둠 아래>가 떠올랐는데 그 작품보다 더 복잡한 범죄의 동기를 보니 참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있어 악하고도 가늠할 수 없는 본성이란 게 존재한다면 치유의 가능성이란 정말 속단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고개가 푹 숙여졌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내 입장에선 완전 재야의 고수를 만난 기분이다. 비슷한 설정과 주제를 들고 온 일본 추리소설은 많이 읽었기에 별 기대 안 했는데 이 풋풋한 처녀작은 추리소설 특유의 쾌감을 부족함 없이 안겨줬다. 특히 사회파 추리소설은 간만에 읽은 셈인데 과히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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