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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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지금은 약간 시든 것 같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한때 재미를 보증하는 작가 중 한 명에 속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작품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워낙에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쓰는 작가의 최신작이라면 더 잴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작가의 신작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때가 이 작품이 출간한 즈음과 비슷하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이 작품이 한바탕 독자들의 넋을 빼놓았었는데 막 추리소설을 접했던 나는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세상엔 별별 추리소설이 다 있구나 싶었다. 모든 면에서 틀을 깨버리는 이 작품은 다시 읽은 지금도 변함 없이 충격적이었다.


 주인공 미치오는 종업식 날 등교를 하지 않은 S를 위해 유인물을 가져다 주라는 심부름을 하게 된다. 최근 개나 고양이의 변사체가 발견돼 분위기가 뒤숭숭한 마을 속에서 미치오는 곧 S의 집에서 S의 시체와 마주한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보이는 S의 모습에 놀란 미치오는 서둘러 학교로 돌아가 담임 선생님한테 사정을 설명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담임 선생님이 경찰들과 S의 집에 갔을 땐 S의 시체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미치오가 진술한 상황과는 달리 집에선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미치오는 큰 혼란을 느끼던 중 어느 날 S를 다시 만나게 된다. 거미로 환생한 S를...

 이 작품은 환생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추리소설이다. 거미로 환생한 S와 함께 사라진 S의 시체를 찾는 이야기인데 아이가 주인공인 일본 소설다운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미치오 슈스케다운 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주인공임에도 끈적끈적하고 추한 정경 묘사는 읽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남긴다. 특히 이 소설 같은 경우엔 마음 놓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 명도 나오질 않아 더욱 그랬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데 조금 나쁘게 말하면 작가의 뇌 구조가 궁금해지는 그런 작풍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다. 이른바 작정하고 반전을 위한 듯한 소설로 방점이 남발되고 의도적으로 묘사를 숨기는 등 공정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 직전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을 읽었더니 확실히 비교된다. - 탓에 어쩔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일단 상황 자체가 너무 상식을 초월한 나머지 머릿속에선 잘 그려지지 않고 - 사람과 거미가 대화하는 것부터... - 이후 드러나는 사건의 동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터라 쫓아가기 버거웠다.

 이와무라 선생님의 집에 가는 중반부까진 딱 좋았는데 그 뒤 '모두 각자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는 작품의 주제에 맞게 반전을 거듭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행보는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돼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작품은 아니었고 그래서 좋았다. 명암을 밝히는 추리소설의 틀에 전혀 맞지 않음에도 미스터리한 사건과 추적이 가미돼 장르 특유의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어린 주인공과 환생이란 설정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이 작품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주인공이란 설정이 최대한으로 활용됐다는 말엔 공감 못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치고 너무 잔혹하다. 다름이 아니라 애들이 어른 못지않게 잔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도를 갖고 쓰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 아닌 이상에야 아이들이 꼭 한결 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등장할 이유는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좀 극단적인 구석이 있지만 - 그 전에 이해도 안 되지만 - 그렇기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피부로 와 닿았다.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한다. 누구나 생각하는 말일 테지만 소설이란 누구나 생각하고 알 만한 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굳이 돌려 말해 피부로 와 닿게 만드는 게 바로 소설이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니 공을 들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와 지금 다시 읽을 때 사이의 7년 간 적지 않은 책을 읽었는데도 비교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 작품이었다. 내가 아직 견문이 좁은 탓인지 몰라도 여전히 충격적이었는데 허점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볼 만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데뷔작 <등의 눈>이 만화책으로 출간됐다는데 그걸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요즘 출간되는 작가의 책은 괴기스러움이 옅던데 데뷔작은 그렇지 않겠지.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 4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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