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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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이번에 도쿄에 갈 때 무슨 책을 가져갈 것인가 고민을 좀 했다. 가급적 도쿄의 어느 곳이 배경으로써 존재감 있게 그려진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이 작품이 떠올랐다. 가가 형사가 니혼바시 서에 새로 부임하고 겪는 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주요 무대인 닌교초란 곳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기억이 났다. 옛 에도의 정취가 남은 거리라는데 덕분에 제법 알찬 여행 일정을 짤 수 있었다. 또 오랜만에 좋은 책도 읽고.

 가가 형사는 나에게 의미가 남다른 캐릭터다. 내가 처음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 '가가 형사' 시리즈에 속하는 <붉은 손가락>이었는데 나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다. 코난과 김전일 같이 범인을 찾는 게 추리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꽤나 새로운 경지를 선사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상관없어 보이는 얘기를 하겠다. 슈퍼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구하는 게임이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마리오를 플레이하며 모험을 하는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리오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공주를 구하기 위해 게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국 어찌 됐든 간에 그 게임은 버섯이나 거북이를 밟는 게 재밌어서 하는 게임인 것이다. 스토리는 중요한 것이지만 이 경우엔 스토리가 게임성에 밀린 상당히 아이러니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오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과정을 재밌게 꾸민 게임이다. 어쨌든 그 과정을 즐기기야 한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도 참 바라마지 않던 일이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추리소설에 대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건 좀 위험하다고, 우를 범하는 일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스토리와 트릭이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은근히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트릭은 놀랍지만 스토리가 그저 그런 경우가 대부분 - 반대로 대단히 문학적이지만 추리소설적인 묘미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 인데 이는 추리소설의 주독자층을 의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수수께끼의 논리적 풀이에 관심을 둔 독자가 많은 만큼 상대적으로 스토리 자체는 평이해도 좀처럼 지적을 받지 않는 것 같은데 난 이런 부분에서 추리소설이 저평가되는 원인이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추리소설이 자극적이고 인간미가 떨어지는 오락 소설이라는 오해 말이다.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은 그렇게 취향을 타는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수수께끼, 예를 들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누가 사람을 죽였고 그 사람은 왜 죽었고 그를 알기 위해 범인을 잡고 싶다는 등 사건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추리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일 수 있다. 크게 'who done it?', 'How done it?', 'Why done it?' 이란 질문 중 세 번째 질문에 해당하는 작풍의 추리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작품 <신참자>는 작가한테도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하나의 사건에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을 모두 조명해 - 마치 미야베 미유키처럼! - 전에 없던 성과가 나타난 작품이다. 살인사건 수사라는 대의에 가려져 약간은 경시될 수 있는 일상의 수수께끼 또한 매우 중요하며 그게 왜 중요한지 이 작품처럼 대놓고 설파하는 작품은 좀처럼 없으니 유독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후속작 <기린의 날개>에서도 이어지는데 솔직히 약간 낯간지럽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의 수수께끼가 추리소설적으로도 재밌게 풀리는 동시에 연작 소설로도 탁월한 역할을 해내기까지 하니 나중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른바 범인을 잡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운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단, 슈퍼 마리오와는 달리 스토리를 한시도 잊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점이 달랐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경이롭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연작 소설이 그렇듯 각각의 단편만으로도 완결성이 있지만 그래도 이어서 놓고 봤을 때 더욱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캐릭터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는 작가가 참 독특한 작품에 등장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새삼 대단한 도전 정신이 아닌가 싶었다. 저번에 읽었을 땐 드라마를 본 다음이라서 약간 건조하게 읽혔는데 시간이 지나 따로 놓고 읽으니 굉장히 여운이 짙은 작품이었다. 물론 처음 읽을 때에 비하면 아쉬움이 없지않아 느껴지긴 했만 어쩌면 내가 추리소설에 본격적으로 빠진 이유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어 읽는 동안 반가운 기분이 다 들었다. 처음 추리소설에 탐닉했던 이유, 난 이유에 대해 묻는 소설이 무척 좋았다. 그런 이유를 묻는 갈증을 시원하게 긁어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p.s 위에 쓴 마리오 얘기는 만화 <아인>에서 나오는 구절을 살짝 인용해 풀어쓴 것이다. 워낙 인상적이라서 언젠가 어디에선가 써먹어야지 했는데 드디어 얘기해보네.

 p.s2 드라마와 닌교초 방문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의 포스팅에서 따로 얘기하겠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80158467000

 이건 옛날에 쓴 포스팅.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 278p




전 말이죠, 이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몹쓸 짓을 한 이상 범인을 잡는 건 당연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 4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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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3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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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7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와 마주했는데 그 결과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선뜻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 될 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 비극을 야기한 행동이 사소하고 생각 없는 것일수록 우린 오히려 더 당당할 수 있다. 일단 법적으로 죄를 묻기도 어렵고 나 혼자만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 정도 사소한 잘못은 저지르곤 하니까. 그래서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점차 스스로한테 설득당하기에 이른다. 난 정말 잘못이 없었잖아?

 누쿠이 도쿠로의 <난반사>는 사소한 악행이 불러온 상상을 초월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가로수가 쓰러져 아이가 머릴 다치고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는 서두에서 이 사건은 살인이고 범인은 세상 사람 모두라고 한다. 엄청 거창한 서두인데 간단히 말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 작품으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하긴 할 테지만 더 깊게 생각하진 않거나 혹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지점을 파헤친다.


 허영심을 위해 환경 보호를 자처한 주부, 야간에 상습적으로 진료를 받는 병약한 학생, 허리가 아파서 개똥을 방치하는 남자, 불편하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의사와 공무원, 운전에 적잖은 공포를 갖고 있는 여자 등 작품에선 실로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일상 속에서 각자만의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지키지 않은 사회 규범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어겨져서 터진 비극까지가 마이너스 부분, 그 이후 아이의 아버지가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관계자를 찾아다니는 게 플러스 부분의 내용이다.

 처음에 비극을 예고하고 -44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숫자가 0에 가까워질수록 불길함이 짙어진다. 캐릭터간 행동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추측하느라, 그리고 읽는 동안 은근히 고갤 끄덕이게 되는 이들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비난받을지 내가 다 걱정이 돼서. 아니나 다를까,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암을 유발하는 전개와 리액션이 나오는데... 전부터 느꼈지만 이 작가는 독자를 짜증나게 만들어서 몰입시키는 재주가 상당하다. 어쩌면 사회파 추리소설의 미덕인 문제 제기에 그보다 잘 어울릴 수 없는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직 반려견이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긴데, 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똥을 치우지 않곤 했다. 비닐을 깜빡하고 안 갖고 나오면 그 똥을 나뭇잎으로 싸 수풀에 던졌다. 당시엔 나무의 거름으로 좋지 않겠느냐고 합리화하며 자릴 떠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끼친 셈이다. 그런 나의 행동을 보고 가끔 따끔하게 지적하는 동네 이웃이 몇 명 있었는데 그땐 뒤에서 엄청 욕을 해댔다. '다 나무들 좋아라고 하는 건데' 라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나도 결국 이 작품 속 인물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귀찮아서 저지른 매너 없는 행동이 다행히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았을 뿐 - 혹은 터졌는데 내가 모르는 것뿐일 수도... -  합리화를 해대느라 잘못이 잘못인 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몇몇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결이 다른, 어떻게 보면 혁신적이고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의 탈을 쓴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었다. 내용 전개가 불길한 한편으로 충분히 다음 내용이 짐작되고 살해당한 아이의 아버지 가야마가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너무나 사소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한테마저 책임을 묻는 전개가 다소 불편한 전개라서 전체적으로 읽기에 껄끄럽고 고통스러웠다. 작가도 그를 느꼈는지 에필로그로나마 가야마 부부를 위로하는데 사족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책 중 가장 잔혹했기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읽기 불쾌하지만 가독성은 상당했다. 위에 개똥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일부 나랑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해서 정말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그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범죄라고 의식하지 않는 미묘한 악행을 그렸는데 그 악행을 이끌어내는 심리의 묘사가 워낙 출중해서 이 부분만으로도 상당히 재밌었다.

 작품의 주제도 너무 좋았다. 아이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그들 일상에 저마다의 상당한 균열이 생긴 점을 주목하면 - 물론 가야마는 알 수 없지만 - 우리들 일상의 죄가 법적인 책임만 물을 수 없는 것이지 도덕적 책임 아래에선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린 법 아래에서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도덕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므로 절로 경각심이 불러일으켜졌다. 등장인물 중 어느 한 명한테라도 공감한 독자일수록 경각심이 더 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행동이 결코 바라지 않을 비극으로 돌아올 것이란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난 세상 사람들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다. 비판 메일의 내용처럼 가야마가 규탄한 ‘사소한 이기주의‘는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우연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었기에 특별하게 보일 뿐, 몇백만 몇천만 사람들은 날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것을 가리켜 ‘죄악‘이라 규탄한 가야마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인지도 몰랐다. 넌 뭐가 그리 잘났어, 하는 반발심이 비판 메일의 등 뒤에 비치는 것 같았다.

(중략)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면 어느 시점에 파탄이 난다는 것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상상력을 죽이고서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인가. 손안에 있는 코딱지만한 권리가 그토록 사랑스럽단 말인가. - 4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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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힘 -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10
고장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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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요번 학기엔 SF 수업을 듣는데 1주일 동안 그 수업 듣는 날만 기다릴 정도로 푹 빠졌다. 원래 SF는 내게 하나의 장르에 불과했지만 <백년법>을 읽은 이후로 관심이 가게 됐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이 장르를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내가 이공학적 사고나 상식은 많이 부족하지만 공상 과학 소설의 의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모습과 거의 같아서 앞으로도 틈틈이 찾아 읽노라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조금 더 공고히 해두고자, 그리고 요번 학기 수업의 예습 및 자체 보강을 위해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길 책의 출간에 맞춰 재탕 - 돌려막기라고도 한다. ㅋ - 한 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비슷한 내용이나 키워드가 반복되는 느낌이 있었다. SF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작가가 나눈 챕터가 워낙 세부적이라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는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에 대한 경이감으로 번지니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개발, 디스토피아, 외계인, 포스트 휴먼... 여러 SF 책과 영화, 만화, 우리나라 웹툰도 인용하는 글을 읽다보면 이 많은 걸 다 읽고 볼 수 있나 싶을 만큼 끝도 없이 언급돼서 나중에 읽을 책 리스트를 채우는 것에도 꽤 참고가 됐다.

 SF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거나 가상의, 그리고 극단적인 상상을 가미한 세계관에서 변화할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얘기하는 장르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책이지만 분량은 제법 된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익히 알았던 이야기, 아직 상상이 미치지 않은 이야기 등 흥미를 끌거나 공감을 더해줄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읽는 내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입문서보다 다양한 작품을 읽어야지.

내일의 과학이 어디까지 가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한 과학이 어떻게 쓰이고 감시되어야 하는지는 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 42p




그만큼 오늘날의 사회는 석가모니나 예수가 살던 사회만큼 단순하지도 상대적으로 순수하지도 않다. 현대의 우리는 더 많이 의심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과연 이러한 자들을 석가모니나 예수가 말씀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 78p




현실 세계의 1984년이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되지 않은 것은 바로 <1984년>과 같은 SF작품들의 시대를 앞선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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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에토 모리 지음, 이송희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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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영화는 예상과 달리 염세주의적 가치관으로 풀어낸 세계관에 일차적으로 놀랐고 그 첫인상에 반하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따뜻한 마무리가 이차적으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당초 그 영화를 본 이유 중 하나가 모리 에토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 미야자키 아오이의 목소리 연기를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또 시간도 약간 흘렀지만 이렇게 원작 소설을 읽게 됐다. 가급적 사서 읽을 생각이었는데 절판 도서라 부득이하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내용은 벌써 두 번째 접하는 터라 책을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까진 안 들었지만 만약 이 책을 구매해서 읽었더라면 선뜻 중고 서점에 팔기 망설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밑에 링크로 첨부할 영화 포스팅의 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원작 소설이 좀 더 좋았다. 영화에선 아무래도 주인공에게 퍽 충격을 줬을 엄마와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는데 소설은 엄마말고도 아빠, 형과의 관계도 다루고 있어 분량을 떠나 보다 균형감이 잡힌 느낌이었다. 지면에도 제약이 있다지만 영상 문학과 비교했을 때 생각하는 바를 거의 디테일하게 풀 수 있다는 점에선 아무래도 소설보다 빛을 발하는 장르는 또 없다고 한다. 영화를 본 게 약 2년 전이지만 두 매체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지는 걸 보고 새삼 소설의 장점이란 게 와 닿았다.


 전생에 큰 죄를 저질렀지만 '당첨'이 돼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나'. '나'는 천사 프라프라의 안내를 받아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 소년 마코토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엔 '나'는 왜 마코토는 자살을 했을까 의아스러웠지만 프라프라의 안내에 의해 평온한 것처럼 보인 마코토의 가족의 추한 모습을 알게 된다. 이후 '나'는 생전에 마코토도 미처 표현하지 못했을 극도의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마코토의 몸 안에 홈스테이하는 동안 전생의 죄를 기억해내야 윤회의 사이클로 들어갈 수 있는 처지인 '나'지만 마코토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우울한 사정에 질려 '나' 역시 의욕이 도통 생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가는 기묘한 입장의 '나'는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아무래도 입장에서 오는 무기력함의 탓이 클 것이다. 타인의 삶이라 그런가, 애당초 윤회의 사이클이란 것도 뭔지 모르겠는데 삶의 의지라니, 무기력한 걸 넘어 당혹스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한 발짝 떨어진 입장은 의외로 마코토의 삶의 순간 순간에 과감히 지르는 저돌성으로 발현되곤 하는데 기존 마코토의 행동거지완 달라 주변에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물론 마코토에게도.


 작품의 제목은 한 가지 색깔로 정의될 수 없는 인생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 자체는 인생의 진리라며 운운할 수도 없을 그냥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은근히 많지만. - 이번이라고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하진 않았다. 그보다 특기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몸에 홈스테이하게 된 '나'라는 주인공인데 이거... 은근히 잘 만든 설정이구나 싶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선 겁을 내며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몸으로 살게 되면 어떨까? 아마 조금은 부담이 덜한 처지라 이것 저것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수습은 자기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소설의 설정이 처음엔 참 밑도 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는 아마 타인이 빙의돼 거침없이 살아가면 아이러니하게도 움츠렸을 때 놓친 걸 보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 이런 소재를 쓴 것 같다. 이 기발한 설정의 심상찮은 주제는 어느 청소년 성장 소설을 찾아봐도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명확하고 특이한 주제라서 이렇게 아른거리는 것 같다. ...나 지금 스포일러 피하면서 말하고 있는 거 맞겠지? 아무튼 끝났다고 여겼을 때 시작된 기묘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아이, 청소년은 물론이고 성인 독자에게도 남 얘기가 아닐 텐데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성장 소설의 미덕을 고루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니.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813907516 


 이건 영화에 대한 포스팅.

때로는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컬러풀한 저 세계.

그 극채색 소용돌이로 돌아가자.

거기서 모두와 더불어 온통 색깔 투성이가 되어 살아가자. 설령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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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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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우리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차별이 적어질 세상이 될 테지만, 애초에 차별이 그렇듯 우리들이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의 피해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런 피해자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우린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역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차별도 있는 법이라고 고갤 돌리게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로 확실한 주제의식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꼽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작가의 <붉은 손가락>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독자다. 처음 읽은 작가의 작품은 <흑소소설>이란 블랙유머 단편집이었다. 그 책을 읽었을 땐 작가가 추리소설가인지 몰랐고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추리소설을 잘 쓴다'는 평을 듣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땐 아직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마 이 작품 <편지>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했더라면 이 작가가 추리소설가란 걸 더더욱 의아했을 것만 같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닌 그냥 사회파 소설인데 어찌나 잘 썼는지 마치 급소가 찔린 듯 눈물이 다 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섯 번째 나오키상 후보작이기도 한데 드라마와 더불어 낙인 효과나 가해자의 가족 이야기를 잘 다룬 만큼 후보작에 그친 건 - 이미 다 지난 일이건만 - 참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 다음 여섯 번째 후보작인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드디어 빛을 보니 잘 됐다면 잘 된 거지만.

 뜻하지 않게 형이 강도 살인범으로 검거된 주인공 나오키는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게 된다. 이때 나오키는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대놓고 미워하지도 않는 실로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범죄자 형의 존재는 나오키의 발목을 잡는다. 아르바트이처에서, 밴드로 데뷔할 때,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회사에서... 처음에 나오키는 한 달에 한 번 교도소에서 오는 형의 편지를 정독하지만 점차 제대로 읽지도 않고 버리는 등 형에 대한 시선이 변한다. 그러나 형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 만큼 쉽게 형제의 연을 끊지 못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가독성은 좋지만 문체는 좀 떨어지는 편이라는 게 중론인데 개인적으로 약간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딱 쓸 것만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선에서 효율적인 묘사를 통해 많은 걸 전달한다고 하면 너무 띄워주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의 심리는 결코 부족하지 않게 묘사됐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 형이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에 비관하게 되고 표독스러워지다 이내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품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의 가족이란 인물에 이 정도로 감정 이입하지도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적잖은 생각 거리를 던짐과 동시에 문제 제기에 작가가 성공했음을 어떤 식으로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쳤으면 어딘지 평범한 작품이 됐을 테지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다. 이 생각이 정답인가 아닌가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일 텐데 워낙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라 퍽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형의 죄가 곧 동생의 죄가 되진 않지만 동생이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감으로써 형은 자신의 죄를 보다 반성할 것 아닌가 하며, 그리고 사람들이 범죄와 관련되길 꺼려하는 건 당연하고 그런 그들에게 관용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등 주인공에게 결코 동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강점은 위와 같이 마냥 동정적이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범죄자의 가족에게 할 말로써 현시점에서 가장 확고하고 적확한 조언이지 않을까? 우린 어지간하면 가해자의 가족의 처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마주치더라도 피하기 마련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저도 모르게 차별하고 마는 것이다. 이때 일반적으론 차별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이 작품은 냉혹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고려했을 때 - 특히 피해자의 유가족을 생각한다면 - 우리들의 대우가 차별로 분류된다고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역자인 권일영 씨의 후기에서도 밝히듯 이건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다. 한 명이 입장을 분명히 하면 반드시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 나와 토론이 불거지고도 남을 문제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것으로 합의점이 도출될 텐데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요한 건 어쨌든 이 작품은 생각할 일이 없던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고 작가 나름의 답이 제시됐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그 답을 절대 강요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답을 내놓는 동시에 스스로 반론을 제기한다. - 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말이 그렇게 급소에 찔린 듯 슬펐던 것이리라.


 작년에 읽은 <가시고기> 이후로 가장 슬펐던 소설이다. 이것도 신파라 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쓴 어느 문장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급소를 건드려 상당히 힘들었다. 특히 존 레논의 imagine이 중첩돼니 더욱 그랬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는데 두 번째 읽을 때도 얄짤 없네, 정말. 다른 건 몰라도 imagine은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장치였다. 존 레논이 말한 것처럼 우린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무척이나 서글프게 강조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됐는데 엔딩의 노래 장면이 만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꿈은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고...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결국 영화를 보고 마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영화도 조만간 봐야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곤경은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의 일부다. 범죄자는 자기 가족의 사회성까지도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 - 319p




언제 어느 때나 정정당당한 게 자네들에게 정말로 힘든 선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네. 다시 말하면, 매우 선택하기 쉬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 -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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