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9.7







 우리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차별이 적어질 세상이 될 테지만, 애초에 차별이 그렇듯 우리들이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의 피해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런 피해자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우린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역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차별도 있는 법이라고 고갤 돌리게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로 확실한 주제의식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꼽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작가의 <붉은 손가락>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독자다. 처음 읽은 작가의 작품은 <흑소소설>이란 블랙유머 단편집이었다. 그 책을 읽었을 땐 작가가 추리소설가인지 몰랐고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추리소설을 잘 쓴다'는 평을 듣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땐 아직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마 이 작품 <편지>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했더라면 이 작가가 추리소설가란 걸 더더욱 의아했을 것만 같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닌 그냥 사회파 소설인데 어찌나 잘 썼는지 마치 급소가 찔린 듯 눈물이 다 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섯 번째 나오키상 후보작이기도 한데 드라마와 더불어 낙인 효과나 가해자의 가족 이야기를 잘 다룬 만큼 후보작에 그친 건 - 이미 다 지난 일이건만 - 참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 다음 여섯 번째 후보작인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드디어 빛을 보니 잘 됐다면 잘 된 거지만.

 뜻하지 않게 형이 강도 살인범으로 검거된 주인공 나오키는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게 된다. 이때 나오키는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대놓고 미워하지도 않는 실로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범죄자 형의 존재는 나오키의 발목을 잡는다. 아르바트이처에서, 밴드로 데뷔할 때,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회사에서... 처음에 나오키는 한 달에 한 번 교도소에서 오는 형의 편지를 정독하지만 점차 제대로 읽지도 않고 버리는 등 형에 대한 시선이 변한다. 그러나 형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 만큼 쉽게 형제의 연을 끊지 못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가독성은 좋지만 문체는 좀 떨어지는 편이라는 게 중론인데 개인적으로 약간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딱 쓸 것만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선에서 효율적인 묘사를 통해 많은 걸 전달한다고 하면 너무 띄워주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의 심리는 결코 부족하지 않게 묘사됐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 형이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에 비관하게 되고 표독스러워지다 이내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품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의 가족이란 인물에 이 정도로 감정 이입하지도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적잖은 생각 거리를 던짐과 동시에 문제 제기에 작가가 성공했음을 어떤 식으로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쳤으면 어딘지 평범한 작품이 됐을 테지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다. 이 생각이 정답인가 아닌가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일 텐데 워낙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라 퍽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형의 죄가 곧 동생의 죄가 되진 않지만 동생이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감으로써 형은 자신의 죄를 보다 반성할 것 아닌가 하며, 그리고 사람들이 범죄와 관련되길 꺼려하는 건 당연하고 그런 그들에게 관용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등 주인공에게 결코 동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강점은 위와 같이 마냥 동정적이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범죄자의 가족에게 할 말로써 현시점에서 가장 확고하고 적확한 조언이지 않을까? 우린 어지간하면 가해자의 가족의 처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마주치더라도 피하기 마련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저도 모르게 차별하고 마는 것이다. 이때 일반적으론 차별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이 작품은 냉혹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고려했을 때 - 특히 피해자의 유가족을 생각한다면 - 우리들의 대우가 차별로 분류된다고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역자인 권일영 씨의 후기에서도 밝히듯 이건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다. 한 명이 입장을 분명히 하면 반드시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 나와 토론이 불거지고도 남을 문제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것으로 합의점이 도출될 텐데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요한 건 어쨌든 이 작품은 생각할 일이 없던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고 작가 나름의 답이 제시됐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그 답을 절대 강요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답을 내놓는 동시에 스스로 반론을 제기한다. - 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말이 그렇게 급소에 찔린 듯 슬펐던 것이리라.


 작년에 읽은 <가시고기> 이후로 가장 슬펐던 소설이다. 이것도 신파라 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쓴 어느 문장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급소를 건드려 상당히 힘들었다. 특히 존 레논의 imagine이 중첩돼니 더욱 그랬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는데 두 번째 읽을 때도 얄짤 없네, 정말. 다른 건 몰라도 imagine은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장치였다. 존 레논이 말한 것처럼 우린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무척이나 서글프게 강조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됐는데 엔딩의 노래 장면이 만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꿈은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고...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결국 영화를 보고 마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영화도 조만간 봐야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곤경은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의 일부다. 범죄자는 자기 가족의 사회성까지도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 - 319p




언제 어느 때나 정정당당한 게 자네들에게 정말로 힘든 선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네. 다시 말하면, 매우 선택하기 쉬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 - 36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