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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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이번에 도쿄에 갈 때 무슨 책을 가져갈 것인가 고민을 좀 했다. 가급적 도쿄의 어느 곳이 배경으로써 존재감 있게 그려진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이 작품이 떠올랐다. 가가 형사가 니혼바시 서에 새로 부임하고 겪는 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주요 무대인 닌교초란 곳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기억이 났다. 옛 에도의 정취가 남은 거리라는데 덕분에 제법 알찬 여행 일정을 짤 수 있었다. 또 오랜만에 좋은 책도 읽고.

 가가 형사는 나에게 의미가 남다른 캐릭터다. 내가 처음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 '가가 형사' 시리즈에 속하는 <붉은 손가락>이었는데 나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다. 코난과 김전일 같이 범인을 찾는 게 추리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꽤나 새로운 경지를 선사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상관없어 보이는 얘기를 하겠다. 슈퍼 마리오는 피치 공주를 구하는 게임이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마리오를 플레이하며 모험을 하는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리오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공주를 구하기 위해 게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국 어찌 됐든 간에 그 게임은 버섯이나 거북이를 밟는 게 재밌어서 하는 게임인 것이다. 스토리는 중요한 것이지만 이 경우엔 스토리가 게임성에 밀린 상당히 아이러니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오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과정을 재밌게 꾸민 게임이다. 어쨌든 그 과정을 즐기기야 한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도 참 바라마지 않던 일이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추리소설에 대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건 좀 위험하다고, 우를 범하는 일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스토리와 트릭이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은근히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트릭은 놀랍지만 스토리가 그저 그런 경우가 대부분 - 반대로 대단히 문학적이지만 추리소설적인 묘미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 인데 이는 추리소설의 주독자층을 의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수수께끼의 논리적 풀이에 관심을 둔 독자가 많은 만큼 상대적으로 스토리 자체는 평이해도 좀처럼 지적을 받지 않는 것 같은데 난 이런 부분에서 추리소설이 저평가되는 원인이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추리소설이 자극적이고 인간미가 떨어지는 오락 소설이라는 오해 말이다.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은 그렇게 취향을 타는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수수께끼, 예를 들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누가 사람을 죽였고 그 사람은 왜 죽었고 그를 알기 위해 범인을 잡고 싶다는 등 사건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추리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일 수 있다. 크게 'who done it?', 'How done it?', 'Why done it?' 이란 질문 중 세 번째 질문에 해당하는 작풍의 추리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작품 <신참자>는 작가한테도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하나의 사건에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을 모두 조명해 - 마치 미야베 미유키처럼! - 전에 없던 성과가 나타난 작품이다. 살인사건 수사라는 대의에 가려져 약간은 경시될 수 있는 일상의 수수께끼 또한 매우 중요하며 그게 왜 중요한지 이 작품처럼 대놓고 설파하는 작품은 좀처럼 없으니 유독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후속작 <기린의 날개>에서도 이어지는데 솔직히 약간 낯간지럽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의 수수께끼가 추리소설적으로도 재밌게 풀리는 동시에 연작 소설로도 탁월한 역할을 해내기까지 하니 나중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른바 범인을 잡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운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단, 슈퍼 마리오와는 달리 스토리를 한시도 잊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점이 달랐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경이롭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연작 소설이 그렇듯 각각의 단편만으로도 완결성이 있지만 그래도 이어서 놓고 봤을 때 더욱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캐릭터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는 작가가 참 독특한 작품에 등장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새삼 대단한 도전 정신이 아닌가 싶었다. 저번에 읽었을 땐 드라마를 본 다음이라서 약간 건조하게 읽혔는데 시간이 지나 따로 놓고 읽으니 굉장히 여운이 짙은 작품이었다. 물론 처음 읽을 때에 비하면 아쉬움이 없지않아 느껴지긴 했만 어쩌면 내가 추리소설에 본격적으로 빠진 이유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어 읽는 동안 반가운 기분이 다 들었다. 처음 추리소설에 탐닉했던 이유, 난 이유에 대해 묻는 소설이 무척 좋았다. 그런 이유를 묻는 갈증을 시원하게 긁어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p.s 위에 쓴 마리오 얘기는 만화 <아인>에서 나오는 구절을 살짝 인용해 풀어쓴 것이다. 워낙 인상적이라서 언젠가 어디에선가 써먹어야지 했는데 드디어 얘기해보네.

 p.s2 드라마와 닌교초 방문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의 포스팅에서 따로 얘기하겠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80158467000

 이건 옛날에 쓴 포스팅.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 278p




전 말이죠, 이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몹쓸 짓을 한 이상 범인을 잡는 건 당연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 4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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