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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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 작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이자 현직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작으로 영화 못지않은 매력을 갖춘 수작이다. 영화와는 기본 소재만 갖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화나 소설이나 각기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이라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소설을, 반대로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면 영화도 접해보길 추천한다. 영화가 굉장히 흥행해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아무튼 영화는 소설의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구성력을 보완하고 드라마틱한 측면이 강조됐던 것이 기억나 조만간 영화도 찾아볼 생각이다.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독립적이라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템포가 끊기는 느낌을 받았고 똑같은 패턴을 열두 번 접하다 보니 식상한 감이 없잖았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가 흡입력이 고르지 않고 편차가 있는 편이라 몇몇 작품은 속독으로 넘겨버리게 됐는데 이는 작가가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는 탓이리라 본다.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평이했지만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것치곤 선방했단 생각도 드는데, 워낙에 소재와 주제의식이 좋아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길지만 여운이나 만족도는 상당한 작품이었다.


 열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의 명과 암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 그가 왜 퀴즈쇼에 참가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은 영화보다 좋았다. 영화가 이판사판이란 느낌이었다면 소설엔 주인공이 자신의 운과 인생을 건다는 비장미가 있어 행운과 기적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히려 타인을 돕다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당히 사기도 치고 길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살았기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이타적인 일을 위한 행동력도 충만하기에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아니, 밉기는커녕 퀴즈쇼에서 주인공에게 그토록 많은 행운이 따라줬음에도 주인공 보정 같은 작위적 연출로 느껴지기보단 저 정도 행운도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고 후반부의 몇몇 티 나는 반전과 행운 역시 주인공에겐 당연한 것이며 자격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히 행운과 기적을 바라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쟁취해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말도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노력해야 할는지 모른다면 적어도 주변에 노력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베풂이 이어져 훗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 모르기에 마냥 이기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타적인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도움되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계산적으로 이타적이어서야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나 세상일이란 건 또 모르는 일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 면에서 이타적인 삶이야말로 행운과 기적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지만 나만큼은 그 말을 신봉하지 않으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작중에 묘사된 인도를 보고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 는 생각을 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명색이 외교관인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 어쩌면 순화했을 수도 있지만 -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인데, 작가는 이런 잔인한 세상 속에서도 행운이 따를 자격이 있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더욱 가감없이 묘사를 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혹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행운을 거머쥐는 이야기보다 쾌감을 선사하는 이야기는 없기에 작가의 가감없는 인도 묘사는 제대로 멱혔다고 볼 수 있겠다. 동성애에 대한 다소 편향적인 묘사 정도를 제외하면 적어도 인도 묘사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작가다.

 작가의 다른 작품 <6인의 용의자>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 이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가의 수다스러움은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두 작품 모두 소재나 인도를 묘사한 방식이 끝내줘 다른 작품을 더 집필했고 국내에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용의는 있다. 안타깝게도 세 번째 작품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데... 나중에라도 꼭 출간되길 바란다. 두 권만 내고 펜을 꺾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다.

마누라를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은 뭄바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렇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인도 사람은 주변의 고통과 불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고매한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이다. - 103p

그게 아주머니가 맡은 최고의 역할이었나요?
물론 좋은 역할이기는 했지. 내 속에 감춰진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으니까. 하지만 내 삶에서 최고의 역할은 아직 해내지 못한 것 같구나. - 310p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 4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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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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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8


 오노 나츠메의 작품은 독특한 그림체 때문에라도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NOT SIMPLE>로 입문하게 됐는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연상될 정도로 충격적이고 암울한 작품이었으나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이 작가의 무거운 작품군에 속한다는데 밝고 명랑한 작품이나 사극은 어떨는지. 그림체가 단순하지만 참으로 개성적이어서 소장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제목대로 제법 단순치 않은 가정사로 인해 나락까지 가버린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의외로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한 편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작품이야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 차고 넘치지만 결국 얼마나 진솔하게 이야길 그려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최근에 읽은 <골든 슬럼버>에서 연출의 중요성을 제대로 느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여러 깨달음을 안겨줬다.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이야기임에도 몰입하게 된 데엔 캐릭터의 매력이나 방심을 허용치 않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반복적인 메시지 전달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최근 이것저것 재다가 본분을 놓친 대규모 자본 영화들에 적잖이 실망했던 나로선 이런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창작자의 단순한 자세에 더 매력을 느꼈다. 나 역시 소설을 쓰면서 이것저것 의도하고 의식하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렇게 쉽게 그려진 것 같으면서도 진솔한 작품을 읽으니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최근에 고민이다 뭐다 해서 블로그를 제외하곤 글이라곤 조금도 끄적거리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자극을 좀 받았다. 내가 곧 포스팅으로 다룰 소설집에서도 느낀 거지만 생각은 지나치면 방해가 될 뿐이다. 일단 행동하고 진도를 빼야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자세를 달리 가져봐야지.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작품이지만 <NOT SIMPLE>에선 가족으로 절대 두고 싶지 않은 캐릭터가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 이안의 부모가 그렇고 아이린과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반면교사는커녕 그쪽으로 소변도 누고 싶지 않을 만큼 역겨운 인물들 천지라 오히려 내가 다 겸허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적어도 이 작품에서 이안이 겪는 일에 비해선 하찮게 보이더라.

 그렇기에 가족의 소중함이 진정으로 와 닿은 작품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비견될 만한 새드엔딩의 귀감이 될 만한 작품이었고 내 스스로에 대해 전에 없이 겸허히 돌아보게 돼서 이 작품도 주기적으로 읽고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할 듯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을 것인데, 일단 이 작품으로 오노 나츠메란 작가에 입문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로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 작품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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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9.5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으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골든 슬럼버>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초장부터 대부분의 전개를 다 알려주는 독특한 도입부와 과거와 현재로 시점이 자주 변경됨에도 집중을 유지하고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연출의 도주극은 두 번째 읽어도 여전히 드라마틱하고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만들 때 결말과 반전 못지않게 전개와 연출도 중요함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아오야기가 도움을 받는 방식과 사건 3개월 후에 아오야기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무사 생존했음을 넌지시 알리는 연출이 특히 감명 깊었다. 이후에도 작가는 <마리아비틀>, <사신의 7일> 같은 걸출한 작품을 집필하지만 역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사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변하지 않는 것인지 자문하게 됐다. 아오야기를 돕는 사람들은 아오야기가 그럴 리 없다, 아오야기 같은 소시민이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로 변했을 리 없다고 믿으며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독자 입장에선 실로 믿음직한 아군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이들의 믿음이 순진한 걸 넘어 작품의 편의를 위해 작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재밌겠다는 이유로 돕는 기루오나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아오야기의 무죄를 부정해주지 않는 몇몇 등장인물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느꼈는데......


 최근 뉴스에서 두 명의 유명인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이 작품의 내용이 달리 보이게 됐다. 왜, 한 명은 구속됐고 한 명은 입장 해명을 해야 하는 그 두 명 말이다. 그들로 인해 현실을 외면하는 팬들과 비난하는 여론에 편승해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요새 적나라하게 드러나 뉴스나 유튜브 등을 접할 때마다 눈살이 절로 찌뿌려진다. 두 명 중 한 명은 나도 꽤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나도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한편으론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기도 했다.

 내 생각에 선한 사람이 타락하는 경우나 타락한 인간이 갱생하는 경우 모두 가능성은 극히 적은 것 같다. 선함은 곧 자부심이고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자기 억제력이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기에 타락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반대로 한 번 선을 넘어 타락해버렸다는 낙인이 찍힌 인간은 어느 순간 일이 순조롭게 풀리다가도 스스로에 도취돼 선함을 추구하기보단 선한 척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안 좋게 말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을 사람들이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데엔 다들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백히 제3자인 나도 유명인의 몰락에 심기가 불편하거나 박탈감을 느끼는 등 갈피를 잡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니 몰락한 당사자나 주변인이나 한 번 교류를 가졌던 사람들이 설령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리석은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현실적이지 못한 모습은 아니리라. 라는 생각을 하니 <골든 슬럼버>에서 아오야기를 돕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더 공감이 가게 됐다. 아마 나도 비슷한 상황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 같고 내 믿음을 관철하고자 노력할 듯하다. 대놓고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오야기의 아버지는 등장할 때마다 어록이 대단해 귀감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치한이 왜 최악의 범죄자인지 설파하는 것부터 인상적이었는데 테러리스트의 아버지라며 압박하는 기자들을 향해 내뱉는 일갈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자식을 감싸는 게 부모의 도리라지만 그 정도로 느닷없이 압박이 들어오면 위축될 법도 한데 오히려 기자들한테 그들이 갖춰야 할 직업윤리를 지적한 건 정말 대단했다. 지금 뉴스에 끊임없이 이름이 거론되는 두 유명인 중 한 명은 사실상 결론이 나버렸고 나머지 한 명이 언론의 중립적 태도가 굉장히 절실한 상황인데, 경솔하게 뉴스를 꾸미는 언론인들이 작품의 449~450페이지의 구절은 꼭 읽어줬으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느니 뭐니 전부 일리가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남의 인생이 걸린 일이잖은가. 사건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부화뇌동을 조장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작중에서 큰 사건을 덮기 위한 희생양으로 아오야기가 지목된 것처럼 지금의 두 유명인도 실제 잘못 유무는 차치하고 희생양으로써 다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이 상황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고 그걸 덮으려고 누가 이 난리법석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을 곤두세우는 게 상책일 것이다. 물론 잘못한 사람이 욕을 먹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골든 슬럼버>를 읽으니 언론을 비롯해 큰 기관에서 나온 정보는 아무리 그럴싸해도 일단 의심해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이러다 음모론자가 되어버리겠구만.

하지만 치한이란 말이야, 무슨 말로 둘러대도 용납이 안 되는 거야. 치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이란 게 난 도무지 떠오르지 않거든. 설마 아이를 지키기 위해 치한이 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은 없겠지. - 228~229p

어차피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에요.
훌륭하신 놈들일수록 그렇지. 남의 말을 전혀 안 들어줘. - 250p

치켜세웠다 버리는 게 세상 사람들 취미야. - 257p

돈이 아니야, 뭐든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걸라고. 너희는 지금 그만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인생을 기세만으로 뭉개버릴 작정 아니야? 잘 들어. 이게 네놈들 일이란 건 인정하지. 일이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자신의 일이 남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면 그만한 각오는 있어야지. 버스기사도, 빌딩 건축가도, 요리사도 말이야. 다들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가며 한다고. 왜냐하면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 각오를 하란 말이다. -449~4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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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양장)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1
위다 지음, 손인혜 옮김 / 더모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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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새드엔딩의 대명사로 알려진 작품으로 나도 어렸을 적 TV 애니메이션으로 잠깐 보긴 했지만 이렇게 원작 동화를 읽어보긴 처음이다.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그나마 새드엔딩의 충격을 완화시켜준 애니메이션과 달리 원작은 굉장히 비참한데, 내가 읽은 더모던 출판사가 출간한 이 책엔 애니메이션 삽화가 있어서 오히려 비참함이 배가되지 않았나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어린아이와 개가 꿈도 희망도 없이 죽음을 맞는 결말 때문에 '시청률은 나왔지만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 했는데 확실히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이보다 잔혹한 작품도 없을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극단적인 반응까진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다. 대체로 굳이 새드엔딩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사람들이 의문을 제시하던데, 나는 호불호를 떠나 이 작품의 경우 눈물을 머금고 새드엔딩으로 결말을 낼 만했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적으론 비참한 결말을 통해 무엇이 네로와 파트라슈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물질만능주의를 비롯해 인간의 여러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 자성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작품이 마련한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결말이었고, 또 작품 외적으론 아무런 반전 없이 악화일로를 걷다 새드엔딩을 맞이하여 이토록 오래도록 화제가 된다는 점에서 독하지만 역사에 족적을 남긴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저자 위다가 과연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그런 결말을 택하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비정한 결말을 택한 프로 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 드라마 중 상당수가 잘 나가다 결말에서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이유로 각본가들이 캐릭터에 정이 들었는지 악인이 뜬금없이 개과천선한다거나, 아니면 사이다 결말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못 이겨 무리수를 두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플란다스의 개>는 그 정반대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네로와 파트라슈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났다면 네로의 억울함이나 파트라슈의 기구한 삶, 빈자에게 한없이 잔혹한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얘기할 필요성을 지금보다 못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꼭 새드엔딩이어야 교훈이 남는 것은 아니고 네로와 파트라슈가 반드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죽어야만 했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솔직히 말해 해피엔딩인 <플란다스의 개>는 뭔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새드엔딩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만큼 작품에 크게 몰입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학에 만약은 없다지만 네로와 파트라슈의 우정이 그만큼 아름다워 뭔가 결말에서 행복한 그림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큰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다. 나처럼 슬픈 작품이라고 사전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19세기의 독자들이 느꼈을 충격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옛날에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이 잔혹하다고 알리는 용도로 집필되는 경우가 많다곤 하지만 이 작품은 잔혹함을 넘어 비참하고 서글프니까.

 나의 경우 파트라슈처럼 15년을 산 반려견이 생각나 읽기 버겁던 작품이기도 했다. 개가 등장하는 작품에 유독 취약해서 읽기 전부터 걱정됐는데 다행히 걱정했던 것만큼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지만 무력하게 흘러가는 작품의 전개에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명작의 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았던 건 이만한 몰입도를 선사한 저자의 필력에 경외심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드엔딩을 구사하는 것엔 독함이 있어야 하는데 난 옛날부터 그런 독한 면모를 가진 창작자들을 존경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와 영국인 혼혈 작가인 위다가 집필한 영어 작품이라 정작 작품의 배경인 벨기에에선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 안트베르펜 관광청에선 이 작품을 읽고 성지순례를 하러 온, 주로 일본인 관광객을 위해 부랴부랴 이 작품과 애니메이션을 보고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 등 몇몇 관광상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담이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성지순례를 하러 가고 싶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도 보고 싶고 네로와 파트라슈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도 한 번 둘러보고 싶어졌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인가. 정말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 힘이 새드엔딩에서 비롯된 힘인 것 같아 경외심이 든다. 정말이지 새드엔딩의 대명사이자 모범의 사례로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

그분이 저걸 그렸을 때 가난한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 거야. 그분은 우리가 어느 때라도 매일매일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을 텐데, 사람들이 그림을 가려놨어. 그 아름다운 것을 어둠 속에! - 668~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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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8.0



 '서 있는 남자'


 진상을 알고 나면 비교적 단순하고 오히려 범인의 지능이 의심될 만큼 작위적이기 그지없는 트릭이었지만, 작가의 연출 방식이나 이 트릭에 대한 에노모토의 표현과 범인을 압박하는 그의 추리가 인상적이었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발상'이 동원된 트릭이란 표현은 거창하지만 재밌었고, 욕심이 지나쳐 자가당착에 빠진 범인을 조롱하는 에노모토의 마지막 말은 제법 통쾌하기까지 했다. 책의 첫 번째 수록작으론 약한 편이었지만 이만하면 속도감 있게 잘 읽었다.



 '자물쇠가 잠긴 방'


 표제작이자 수록작 중에 도입부가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반대로 트릭과 범인을 지목하는 증거는 그렇게 흡족스럽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과학에 영 젬병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작가의 <악의 교전>이 연상되는 범인 캐릭터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악마의 존재는 적어도 소설 속에선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것 같다. 독자에게 소설의 결말까지 지켜봐야 하는 당위성과 몰입도를 선사하니까.



 '비뚤어진 상자'


 범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도서추리 작품. 트릭도 참신하고 쫓기는 심정인 범인의 심리 묘사도 일품이었지만 범인의 동기며 인물상 등 극단적인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라 한편으로 읽는데 짜증이 나기도 했다. 동기는 수록된 네 개의 작품 중 가장 동정심을 유발했지만 범인은 도저히 동정심을 가질 수 없는 인물이다. 도서추리 작품의 특성상 범인의 시점에서 전개되기에 무사히 완전범죄를 달성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약간이나마 들 법도 한데 말이다. 새삼 기시 유스케가 악마적인 인물상을 그리는 데에 도가 튼 작가구나 하고 감탄했다.



 '밀실극장'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던 작품. 밀실의 장치가 됐던 연극의 묘사는 너무 난잡하지만 그 난잡함마저 사랑스러웠고 범인의 동기...가 아닌 사연도 짠해서 의외로 여운도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실 사건집'을 표방하는 이 책에서 가장 단순명쾌하고 혁신적인 트릭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대놓고 웃기려고 쓴 소설인 데다 트릭을 풀이하는 과정은 약간 지루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수록작 중 가장 재밌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앞선 수록작이 트릭보다 캐릭터나 연출에 더 눈길이 가는 것과 대조적인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거야말로 코미디라 할 수 있겠군.



 시리즈 다음 작품인 <미스터리 클락>은 예전에 읽었는데 확실히 두 번 읽으니까 반복되는 컨셉이 식상해져 후속작이 나와도 과연 찾아볼까 싶다. 후속작이 너무 안드로메다로 가버려서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 어지간히 평이 좋거나 상을 받지 않은 이상 읽을 생각이 들지 않을 듯하다. 대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 코미디도 좋지만 역시 호러가 좋겠다. 최근 작가의 호러 작품이 몇 권 출간됐으니 그 작품들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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