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양장)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1
위다 지음, 손인혜 옮김 / 더모던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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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새드엔딩의 대명사로 알려진 작품으로 나도 어렸을 적 TV 애니메이션으로 잠깐 보긴 했지만 이렇게 원작 동화를 읽어보긴 처음이다.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그나마 새드엔딩의 충격을 완화시켜준 애니메이션과 달리 원작은 굉장히 비참한데, 내가 읽은 더모던 출판사가 출간한 이 책엔 애니메이션 삽화가 있어서 오히려 비참함이 배가되지 않았나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어린아이와 개가 꿈도 희망도 없이 죽음을 맞는 결말 때문에 '시청률은 나왔지만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 했는데 확실히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이보다 잔혹한 작품도 없을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극단적인 반응까진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다. 대체로 굳이 새드엔딩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사람들이 의문을 제시하던데, 나는 호불호를 떠나 이 작품의 경우 눈물을 머금고 새드엔딩으로 결말을 낼 만했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적으론 비참한 결말을 통해 무엇이 네로와 파트라슈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물질만능주의를 비롯해 인간의 여러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 자성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작품이 마련한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결말이었고, 또 작품 외적으론 아무런 반전 없이 악화일로를 걷다 새드엔딩을 맞이하여 이토록 오래도록 화제가 된다는 점에서 독하지만 역사에 족적을 남긴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저자 위다가 과연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그런 결말을 택하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비정한 결말을 택한 프로 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 드라마 중 상당수가 잘 나가다 결말에서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이유로 각본가들이 캐릭터에 정이 들었는지 악인이 뜬금없이 개과천선한다거나, 아니면 사이다 결말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못 이겨 무리수를 두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플란다스의 개>는 그 정반대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네로와 파트라슈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났다면 네로의 억울함이나 파트라슈의 기구한 삶, 빈자에게 한없이 잔혹한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얘기할 필요성을 지금보다 못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꼭 새드엔딩이어야 교훈이 남는 것은 아니고 네로와 파트라슈가 반드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죽어야만 했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솔직히 말해 해피엔딩인 <플란다스의 개>는 뭔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새드엔딩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만큼 작품에 크게 몰입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학에 만약은 없다지만 네로와 파트라슈의 우정이 그만큼 아름다워 뭔가 결말에서 행복한 그림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큰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다. 나처럼 슬픈 작품이라고 사전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19세기의 독자들이 느꼈을 충격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옛날에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이 잔혹하다고 알리는 용도로 집필되는 경우가 많다곤 하지만 이 작품은 잔혹함을 넘어 비참하고 서글프니까.

 나의 경우 파트라슈처럼 15년을 산 반려견이 생각나 읽기 버겁던 작품이기도 했다. 개가 등장하는 작품에 유독 취약해서 읽기 전부터 걱정됐는데 다행히 걱정했던 것만큼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지만 무력하게 흘러가는 작품의 전개에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명작의 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았던 건 이만한 몰입도를 선사한 저자의 필력에 경외심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드엔딩을 구사하는 것엔 독함이 있어야 하는데 난 옛날부터 그런 독한 면모를 가진 창작자들을 존경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와 영국인 혼혈 작가인 위다가 집필한 영어 작품이라 정작 작품의 배경인 벨기에에선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 안트베르펜 관광청에선 이 작품을 읽고 성지순례를 하러 온, 주로 일본인 관광객을 위해 부랴부랴 이 작품과 애니메이션을 보고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 등 몇몇 관광상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담이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성지순례를 하러 가고 싶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도 보고 싶고 네로와 파트라슈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도 한 번 둘러보고 싶어졌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인가. 정말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 힘이 새드엔딩에서 비롯된 힘인 것 같아 경외심이 든다. 정말이지 새드엔딩의 대명사이자 모범의 사례로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

그분이 저걸 그렸을 때 가난한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 거야. 그분은 우리가 어느 때라도 매일매일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을 텐데, 사람들이 그림을 가려놨어. 그 아름다운 것을 어둠 속에! - 668~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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