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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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 작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이자 현직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작으로 영화 못지않은 매력을 갖춘 수작이다. 영화와는 기본 소재만 갖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화나 소설이나 각기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이라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소설을, 반대로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면 영화도 접해보길 추천한다. 영화가 굉장히 흥행해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아무튼 영화는 소설의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구성력을 보완하고 드라마틱한 측면이 강조됐던 것이 기억나 조만간 영화도 찾아볼 생각이다.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독립적이라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템포가 끊기는 느낌을 받았고 똑같은 패턴을 열두 번 접하다 보니 식상한 감이 없잖았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가 흡입력이 고르지 않고 편차가 있는 편이라 몇몇 작품은 속독으로 넘겨버리게 됐는데 이는 작가가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는 탓이리라 본다.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평이했지만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것치곤 선방했단 생각도 드는데, 워낙에 소재와 주제의식이 좋아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길지만 여운이나 만족도는 상당한 작품이었다.


 열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의 명과 암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 그가 왜 퀴즈쇼에 참가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은 영화보다 좋았다. 영화가 이판사판이란 느낌이었다면 소설엔 주인공이 자신의 운과 인생을 건다는 비장미가 있어 행운과 기적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히려 타인을 돕다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당히 사기도 치고 길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살았기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이타적인 일을 위한 행동력도 충만하기에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아니, 밉기는커녕 퀴즈쇼에서 주인공에게 그토록 많은 행운이 따라줬음에도 주인공 보정 같은 작위적 연출로 느껴지기보단 저 정도 행운도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고 후반부의 몇몇 티 나는 반전과 행운 역시 주인공에겐 당연한 것이며 자격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히 행운과 기적을 바라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쟁취해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말도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노력해야 할는지 모른다면 적어도 주변에 노력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베풂이 이어져 훗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 모르기에 마냥 이기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타적인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도움되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계산적으로 이타적이어서야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나 세상일이란 건 또 모르는 일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 면에서 이타적인 삶이야말로 행운과 기적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지만 나만큼은 그 말을 신봉하지 않으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작중에 묘사된 인도를 보고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 는 생각을 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명색이 외교관인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 어쩌면 순화했을 수도 있지만 -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인데, 작가는 이런 잔인한 세상 속에서도 행운이 따를 자격이 있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더욱 가감없이 묘사를 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혹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행운을 거머쥐는 이야기보다 쾌감을 선사하는 이야기는 없기에 작가의 가감없는 인도 묘사는 제대로 멱혔다고 볼 수 있겠다. 동성애에 대한 다소 편향적인 묘사 정도를 제외하면 적어도 인도 묘사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작가다.

 작가의 다른 작품 <6인의 용의자>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 이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가의 수다스러움은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두 작품 모두 소재나 인도를 묘사한 방식이 끝내줘 다른 작품을 더 집필했고 국내에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용의는 있다. 안타깝게도 세 번째 작품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데... 나중에라도 꼭 출간되길 바란다. 두 권만 내고 펜을 꺾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다.

마누라를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은 뭄바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렇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인도 사람은 주변의 고통과 불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고매한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이다. - 103p

그게 아주머니가 맡은 최고의 역할이었나요?
물론 좋은 역할이기는 했지. 내 속에 감춰진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으니까. 하지만 내 삶에서 최고의 역할은 아직 해내지 못한 것 같구나. - 310p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 4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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