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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북학의 - 조선의 개혁.개방을 외친 북학 사상의 정수
박제가 지음, 안대회 엮고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평점 :
<쉽게 읽는 북학의>는
‘북학의’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학창시절에 배운 대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쓴, 청(淸)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내용의 책이라는 것이 떠오를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청과 해상 통상을 확대할 것, 수레나 선박의 사용을 늘릴 것, 절약보다는 소비를 권장하여 생산을 자극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1)”했다는 사실까지 기억할 수도 있다. 또 고루(固陋)한 성리학자들의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극복하고 조선의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저술이라는 의견을 덧붙일 이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북학의(北學議)>에 대해 이것만 알면 될까? 아니 우리가 <북학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것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먼저 <북학의>에 대해 살펴보면, 이 책은 한 번에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박제가는 1778년 절친인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와 함께 진주사(陳奏使)2)의 일원으로 청(淸)나라에 갔다 와서 <북학의>를 저술했다. 일반적인 책이라면 여기서 끝인데, 박제가는 이후 수년간 내용을 보완하여 이를 <북학의 내편>과 <북학의 외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1798년,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백성들을 위한 농서(農書)를 구하자 기존 <북학의>의 1/3 정도 내용을 간추리고 농업 관련 내용을 추가한 <진소본(進疏本) 북학의>를 만들어 바쳤다. 때문에 북학의는 ‘내편’ 및 ‘외편’과 ‘진소본’이 존재하고, 서로 중복된 내용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현대의 독자들이 어렵게 여기는 고증적이고 복잡한 부분을 제외시켜, 이를 주제에 따라 4장으로 다시 분류하여 재구성했다.
박제가가 본 당대 조선의 문제
먼저 1장 ‘왜 북학인가’에 실린 1778년 본의 서문에서 “현재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곤궁해지고, 국가의 재정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다” [p. 20]고 말해, 위기에 빠진 당대 조선의 현실을 진단한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내걸었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와 같은 얘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경제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국가와 백성이 가난해진 것일까? 박제가는 네 가지 기만(四欺)과 세 가지 폐단(三弊)때문이라고 구체적으로 꼬집는다.
네 가지 기만(四欺)은 다음과 같다.
“인재가 아주 드문데도 인재를 양성할 방도를 강구하지 않고, 재용(財用)이 날이 갈수록 고갈되는데도 소통시킬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세상이 말세로 가니 백성이 가난하다”라는 핑계를 대니 이것은 국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하급 관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국경 밖으로 사신을 갈 때에는 모든 것을 역관들에게 위임합니다. 좌우에서 자기를 옹위하게 하면서 “체모를 허술하게 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사대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과거 시험의 숲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병려문(騈驪文)3)의 길에서 기운을 다 소진하고 나서는 천하의 책을 몽땅 묶어 두어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니 이것은 공령문(功令文)4)짓는 자들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항렬의 어른에게 절을 하기는커녕 손자뻘 조카뻘 되는 어린 자가 어른을 꾸짖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쭐대며 천하를 야만족이라 무시하며 자기야말로 예의를 지켜 중화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은 우리 풍속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 [pp. 28~29]
세 가지 폐단(三弊)은 다음과 같다.
“사대부는 국가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국법이 사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과거(科擧)란 인재를 취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인재의 선택이 과거로 인해 망가지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서원을 설립하여 선현(先賢)의 제사를 받는 것은 선비를 숭상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부역에서 도망하는 장정과 금주(禁酒)를 빚는 자들이 숨어 지내는 소굴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p. 29]
조선이 살 길, 통상
앞에서 열거한 조선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박제가는 1766년에 쓴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에서 “현재 국가의 가장 큰 폐단은 한마디로 가난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난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p. 23]라고 주장하여 구체적인 위기극복 대안을 제시한다.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통상을 통해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고[學中國], “낙후한 경제의 부흥을 추진하여 개인은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고 국가는 부국강병을 실현”[p. 6]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문물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선진 문물과 박제가가 생각하는 선진 문물은 달랐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명(明)나라 이전의 정신문화를, 박제가는 청(淸)나라의 물질문화를 각각 선진 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박제가가 배우자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은 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이 아니라 서민의 행복하고 윤택한 삶, 즉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수단이다. 여기서 ‘이용(利用)’은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하는 것을 가리키고, ‘후생(厚生)’은 삶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비하하며 무시하고, 조선이야말로 유일한 문명국인 소중화(小中華)” [p. 49]라고 우쭐거리는 사대부들은 정신적 승리에 만족하는 어리석은 이요, 반드시 도태시켜야 할 나라의 좀벌레일 수 밖에 없다.
조선의 살 길이 중국과의 통상이니 이를 위해서는 수레와 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도로나 교량과 같은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3장 ‘북학의 실천’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수레’다. 먼저 사람이 타는 태평차(太平車), 짐을 싣는 대차(大車), 외바퀴 수레인 독륜차(獨輪車), 수레에 돛을 단 풍범차(風帆車) 등 청나라에서 사용하는 수레의 종류를 나열하고, 수레 운영의 장점을 얘기한다. 그리고 나서 중국 촉(蜀) 지방의 잔도(棧道)와 같이 극도로 험준한 지형도 아니면서 산천이 험준하다는 핑계로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나아가 산천이 험난해서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저 통행하기 좋은 지역만이라도 수레를 통행시켜 도(道)마다 그 도에 적합한 수레를, 고을마다 그 고을에 적합한 수레를 쓰는 게 어떤가. 만약 고개 때문에 사용을 꺼린다면, 고개를 넘을 때만 사용하는 수레가 얼마든지 있다” [p. 149]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배, 도로, 다리 등의 주제에 대해 조선과 청의 상황을 대비하는 형태로 조선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당대인이 본 <북학의>
이 책의 4장 ‘<북학의>의 평가’는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과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북학의> 서문으로 되어 있다. 소제목에 비하면 내용이 아쉬운데, 이 두 사람이 모두 북학파에 속하고, 또 <북학의>의 서문을 써 줄 정도로 박제가와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에서의 <북학의> 평가는 북학파에 의한 평가란 말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박지원이 쓴 서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북학의]을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들은 당연히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남들은 우리에게 화를 내리라. 화를 내는 성격은 편벽된 기운에 원인이 있고, 우리 말을 믿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의 산천을 여진족 땅이라고 죄악시하는 데 있다.” [pp. 257~258]
결국 조선시대 지식인 계층인 사대부가 소중화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북학의>는 믿을 수 없는 허황된 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제가가 꿈꾸었던 조선의 개혁은 그저 일부 지식인의 몽상(夢想)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북학의>를 통해 내비쳤던 박제가의 문제의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1)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2018), p. 156
2) 진주사(陳奏使): 중국에 외교적으로 알려야 할 일이 발생했을 경우 임시로 파견하는 사신. 중국으로부터의 책문(責問) 또는 중국측의 오해에 대한 해명, 조선 내의 반역사건에 대한 전말보고 등을 위해 파견했다.
3) 병려문(騈驪文): 표준어는 변려문이다. 문장이 4자와 6자를 기본으로 한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수사적(修辭的)으로 미감(美感)을 주는 문체이다. 사륙변려문(四六騈驪文)이라고도 한다.
4) 공령문(功令文): 과거 시험에 쓰는 시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