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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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프로이트의 의자>는 정신분석에 대한 개념을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놓은 에세이와 같은 책이다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기본 치유법이라는 4 가지 이야기와 21개의 장으로 나눠 불안공포우울분노좌절망설임과 열등감시기심과 질투애착과 고독오해와 집착사랑 등 다양한 개념을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가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즉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남에게 보여주는 ’/의식]과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진짜 ’/무의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가 강박적 반복(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르는과거에 상처받은 일이나 상황을 반복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가끔 나는 어떤 행동을 그냥 되풀이합니다자동적으로 움직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심지어 뻔히 손해를 보는 짓도 합니다무의식의 힘은 그렇게 작용합니다의식적으로 하는 일과 달리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왜 그러는 건지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p. 49]

 

그렇다면 왜 그런 작용이 일어날까?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p. 22]

 

하지만사람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AT필드처럼남이 내 마음을 읽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한다이러한 방어기제는 백혈구가 인간의 육체를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하는 것처럼인간의 마음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하지만 백혈구가 과다하면 백혈병에 걸리는 것처럼방어기제도 너무 즐겨 쓰거나 너무 강하게 쓰면 그것이 내 안에서 굳어져 진짜 나를 가리게 된다.

방어기제도 너무 강하게 또는 습관적으로 쓰면 문제가 생깁니다성격이 융통성 없이 꽉 막히면서 고집스러워집니다그렇게 대인 관계를 피하고 혼자 지내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p. 56]

 

그래서 내 마음의 진실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방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내 행동태도성격에 묻어 나오는 방어기제를 잘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래서 정신분석 시간에 하는 일 중에 방어기제의 분석이 중요합니다.” [p. 74].

 

 

정신분석학 입장에서 본 개념들

 

이 책에서 소개된 몇 개의 개념들을 살펴보면,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ambivalence) 이라고 합니다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예를 들면 어머니에 대해 미움과 사랑의 감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에 쓸 수 있습니다양가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입니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상생활에서의 망설임은 실제로 그 대상의 정체나 내용이 잘 파악이 안 되어서 의식에서 망설이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pp. 147~148]

이러한 망설임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완벽에의 강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열등감으로 인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망설임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약간의 망설임은 성급한 행동으로 인한 실수를 예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열등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열정적 사랑은 일종의 중독 상태입니다중독이라 말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모양이 더 열정적으로 변하길 원하지만사랑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성(tolerance)’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지면 ‘금단 증상(withdrawal symptoms)’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p. 208]

사랑은 한 가지 감정이 아닙니다사랑은 애정욕망호기심자존심소유욕이 엉켜 있는 복잡한 것입니다그리고 사랑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미움이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사랑은 생각만이 아니고 행동입니다사랑은 늘 이성이 지배하는 머리와 열정이 가득 찬 가슴이 서로 다투는 갈등입니다.

중략 ~

왜 그런 것일까요사랑은 자신이 잘 달래야 하는 감정입니다상대가 처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물론 어렵습니다속으로는 자꾸 나와 같은 사람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 211]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p. 219]

따라서 다른 사람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사실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행위 뿐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나를 내가 용서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어차피 남이 하는 용서는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용서를 빌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마세요비참하게 되어야 벌을 받은 것이고 벌을  받았으니 용서받은것이다‘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p. 255]

 

 

정신분석 치료의 어려움

 

예전에 정신과는 미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강했다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많나요?’ ‘정신과는 의자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인가요?’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어렵나요?’ 같은 질문들이 여전히 나올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상처까지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나아가 자신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자신에게 거짓말하는 마음도 꺼내놓아야 한다이런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치료자가 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해석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p. 172]

 

따라서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짜 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그래서 저자도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 [p. 179]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분석 치료를 한다는 것은 숨겨진 나 혹은 진짜 나를 바라보고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다그러는 과정에서 니까 당연히 를 안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나의 삶도 좀 더 여유로울 수 있고타인도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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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67 : 교토 (Kyoto) - 국문판 2018.6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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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와 교토[京都]의 콜라보

 

교토[京都]. 한국의 서울과 경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도시다. 고도(古都)의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는 경주가, 활기찬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에서는 서울이 연상되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교토를 좋아하고,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의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교토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 <매거진 B: 교토>는 묘한 잡지다. <매거진 B>라는 잡지는 전세계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고 한다. 잡지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잡지 스타일의 책인데, 그래서 그런지 <매거진 B: 교토>는 교토라는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파악하는 경제경영 관련 책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안의 글들이 하나하나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기에 복합상영관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을 매거진 B와 교토의 콜라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매거진 B가 본 교토

 

교토 같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또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곳을 진짜 제대로 아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생각은 눈 먼 이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품평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잡지의 편집자는

도쿄[東京]가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들로 발산하는 도시라면, 교토는 차분하게 수렴하는 도시에 가깝죠” [p. 9]라고 얘기한다.

 

수렴하는 도시라고?

역시 편집자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수렴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한다는 것”[p. 9]을 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물론 현대 도시의 끊임없는 외부 자극에 의한 잡념을 떨쳐내고 마음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을 흉내만 내도 흔들리지 않는 큰 산처럼 중심을 잡고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교토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교토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간사이 지방인데도 오사카와 교토는 색이 다르잖아요.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건물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교토엔 고도(古都)라는 느낌이 곳곳에 스며 있어요.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법한 건물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적인 편의점도 쉽게 찾을 수 있죠.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이 묘하게 잘 섞인, 경계선상에 놓인 도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p.19]

 

 

이 책에는 무라야마 도시오[村山 俊夫]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에 소개된 노포(老鋪)들의 후계자처럼, 교토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 6대째 이어온 금속 차통[茶筒, tea caddy]을 만드는 ‘카이카도(Kaikado, 開化堂)’, 일본을 대표하는 견직물인 니시진오리[西陣織]를 다루는 ‘호소오(Hosoo)’, 5대째 이어오는 대나무 공예 브랜드인 ‘코초사이 코스가(Kohchosai Kosuga)’, 철사를 엮어 주방용품과 오브제를 만드는 ‘가나아미 쓰지(Kanaami Tsuji)’, 목공예 전통을 따르는 ‘나카가와 모코게이(Nakagawa Mokkougei, 中川木工)’, 전통 도자에 현대감각을 더한 ‘아사히야키(Asahiyaki, 朝日?등 전통 공예 브랜드를 잇는 커뮤니티 고온(ごおん)의 멤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에서 대(代)를 이어 가게를 하는, 즉 가업(家業)을 잇는 것 자체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처럼 옛 것을 고스란히 보전하거나 옛 전통을 글자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려 개선하고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더 쉬울 지도 모른다. 옛 것의 맥(脈)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하나의 양식, 하나의 생활문화, 하나의 양식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그 도시에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가 감수하는 것이니까.

 

교토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의미는 과거를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핵심을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결을 더하는 것, 그것이 교토 사람들이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입니다.” [p.76]

 

단순히 교토에 백 년 가게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토라는 도시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는

브랜드의 신조가 ‘전통과 혁신의 융화’라는 점에서 교토와 이세이 미야케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항상 고민하니까요. 엄격한 전통 고수와 새로움의 수용이라는 역설적인 공통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p. 117]라고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도

교토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교토스러운 것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온 도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브랜드가 내세우는 ‘롱 라이프 디자인’의 선배격이라고 볼 수 있지요.” [p. 118]라고 얘기한다.

 

결국 교토에는 은연중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교토 스타일’ 혹은 ‘교토 스탠다드’라고 불릴 만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토에 사는 이들이 여기에 대해 일종의 ‘합의’를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합의’자체를 교토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합의’가 교토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가 얘기한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 자체는 교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교토는 하나의 기업, 하나의 브랜드를 닮은 도시인 셈이다.

 

아마 다른 책에서도 도쿄 스타일과 비교해서 교토 스타일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교토’가 가진 특이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교토’라는 도시 그 자체를 브랜드로 보는 시각은 

나름 독특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토에 관한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잡지는 충분히 제 몫을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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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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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눈, 일상을 묻어버리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서 멀어진 삶이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조예은의 <스노볼 드라이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녹지 않는 방부제, 즉 실리카 겔(Silica gel)과 유사한 성분의 가짜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서 일상에서 멀어진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 평균 강설량 20센티미터. 총합 150센티미터. 일반 눈과 다른 점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짜 눈은 성인 남성의 가슴팍까지 잠길 정도로 쌓였다. 거리의 온갖 쓰레기들, 테이크아웃 컵과 깨진 유리 조각, 담배꽁초, 죽은 시궁쥐, 제대로 닦이지 않은 일회용기 따위도 전부 눈 아래에 묻혔다. 더러운 것은 눈송이가 다 감춰 버렸으므로, 거리는 언뜻 평화로워 보였다. 태우지 않는 한 영원히 녹지 않는 눈 결정체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물비늘처럼 이쪽저쪽으로 반짝였다.” [p. 34]

 

사람의 온기에도 녹는 진짜 눈과 달리 이 가짜 눈은 발열, 구토, 가려움, 발진, 호홉곤란 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수분을 빨아들였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 눈처럼 반짝이며 지저분한 것들을 덮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흡혈귀처럼 수분을 빨아들여 세상을 하얗게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재앙이 일상이 된 삶이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단순히 소설 속의 일이라고 지나가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현상 등을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재앙 속의 일상

 

가짜 눈이 내린 이후 간혹 진짜 눈이 내려도 과거의 삶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오지 않을 꿈 속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눈송이가 스며들 일이 없도록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눈을 퍼냈다. 일주일이 꼬박 걸려서야 포크레인과 수거 차량이 지나갈 길을 텄다. 방역 회사와 정비원 등 선발대, 자원봉사자가 아닌 주민들도 전신을 단단히 봉하고 나와 눈 더미 치우는 것을 도왔다. 피해는 더디게 복구되었다. 그사이에 돌이킬 수 없도록 무너지는 것들이 더 많았다.

굶어 죽는 사람들, 외로워서 죽는 사람들, 망하는 사람들, 망해서 죽는 사람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눈 위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발작을 일으킨 사람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외출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다 돌아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  느릿한 복구 과정 중 그들의 시신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몸집이 바싹 말라 줄어들기는 했지만 꼭 잠이라도 든 것처럼 하나도 부패하지 않은 깨끗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p. 35]

 

이런 상황에서 녹지 않는 가짜 눈을 태우고 묻기 위한 장소, 그러니까 쓰레기 소각 및 매립지로 백영시가 지정되었다. 그리고 타의에 의해 사실상 격리된 이 곳에서 사람들은 녹지 않는 눈을 처리하기 위해 ‘센터’라고 부르는 눈 소각장에서 일하게 된다. 일상이 파괴되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주인공 백모루(이하 ‘모루’)도 이모인 유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센터’에서 일한다. 왜냐하면 모루의 엄마가 ‘센터’에서 일하다가 폐렴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을 지키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 가짜 눈이 왔던 중2 진로 상담 때에는 관심 있는 척하며, 되고 싶은 것이 없는 모루에게 장래희망을 계속 캐묻는 담임을 혐오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그때 담임이나 다른 어른들이 바랬던 기업의 성실한 부품이 되었으니까.

 

눈 소각장은 하루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일은 단순하지만 힘들었고, 녹초가 되어 퇴근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센터에서 궂은일을 하는 데 나이 제한을 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애들은 겁이 많고 잘 속으며 체력이 좋지만 뭘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잘 움직이니까. 처음에는 생기 있던 이들도 점차 피곤에 찌들어 갔다. 생각이라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주어지는 식사와 침대에 만족하며 성실한 부품이 되었다.” [p. 93]

 

또 다른 주인공 이이월(이하 ‘이월’)은 계모신화의 변형된 형태를 경험해야 했다. 강아지 하루의 환영을 믿어주고 함께 산책해 주면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주는 친엄마 같은 계모(繼母) 정지수와 아이를 이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차가운 의부아빠 같은 친부(親父) 사이에서 그녀가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기에 이월이 계모의 마지막 부탁인 눈 속에의 매장을 위해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이월은 유진을 만나고, 유진은 이월을 구하기 위해 강도를 유인한다. 마음의 빛을 진 이월은 모루를 만나기 위해 센터로 갔지만, 이모를 기다리는 모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한다. 고민하는 동안에도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그녀도 기계의 부품이 되었다.

 

센터에서는 늘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아닌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아도 일거리가 주어졌고, 정해진 일정을 끝내고 나면 진이 빠져 잡생각을 할 힘이 나지 않았다. 눈을 퍼내면 내 머릿속도 비워지는 것 같았다.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내 선택으로 후회할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지루한 수업을 듣는 것처럼 무료하면서 또 안락했다. 구매 식당의 흠집 난 식판이나 주말이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매점 같은 걸 볼 때면 내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시간들을 다시 사는 기분도 들었다.” [p. 198]

 

솔직히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고민하고 준비해 둔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편하다. 어쩌면 모루나 이월에게 미래를 강요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런 삶을 안정된 삶이라 여기고 걷기를 원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의 삶’이 없다.

 

하선호라는 래퍼는 [고등래퍼 2]라는 프로그램에서

꿈을 강요하면서

꿈꿀 시간을 주지 않아

모두의 꿈이

책 속에 있다 믿는 거야

괜히 또 남 사는

얘기에 힐끗힐끗해

나 자신을 괴롭히기

이젠 지긋지긋해

철이 없대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매년 적어 내래

장래 희망 oh ah yeah

없어서 없다 썼는데

그게 왜 의지 부족이고

생각 없는 거야

라고 미래를 강요하는 어른에 대해 비판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정해준,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트릭스> 시리즈에서의 주인공 네오가 선택한 빨간 약(red pill)처럼 진실을 깨닫게 되면 또 다른 삶이 주어질까?  이 소설에서는 모루가 무심코 본 한 뉴스에서 변화 혹은 각성이 시작되었다. 강도들의 아지트에서 발견된 이월의 계모 시신과 유품들을 본 모루는 ‘센터’로 달려가 근무하고 있는 이월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월이 망설이던 진실을 듣고 가짜 눈으로 인한 눈사태에 휘말린다. 이 사고는 이들에게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 와서 마치 로드무비의 시작점처럼, 그들은 이월의 아빠 차를 빼앗아 유진을 찾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잃어버린 일상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짜 눈을 헤집다가 진물이 나고 화끈거리는 아픔을 겪더라도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을 시도하는 모습은 새로운 삶을 위한 작은 첫 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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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유럽 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 탐구
김정후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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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거리가 된 산업유산

 

만약 경복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세운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얘기를 꺼낸 이를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복궁 같은 문화재가 아닌 산업시설은 어떨까? 그때도 미친 놈 취급을 할까? 오히려 토지의 효율성을 따져 앞다투어 철거 후 재개발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할을 잃어버린 산업시설은 모두 철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일에 대한 고민은 우리보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영국을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을 거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고, 운송수단도 마땅치 않아 도심에 주요한 산업시설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운송수단은 발달했으며, 산업의 변화도 시작되자, 도심에 있던 산업시설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되자 역할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도심에 남아있는 시설들이 문제가 됐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철거를 해버리면 된다. 그러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것일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사례들

 

유럽에서는 도시의 산업유산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런던의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Art Gallery)은 이러한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다. 왜냐하면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은 런던의 산업유산 중 하나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날 건물들을 무조건 오래된 것이라고 허물지 않고 그 모양을 존중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인 셈이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그 긴 시간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서려 있어야 진짜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다 때려부수고 새로 짓는다면 그 도시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그 장소에 쌓인 무형의 시간과 역사를 훼손시켜버린 것이니까.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프롬나드 플랑테(프랑스, 1993)는 파리의 바스티유 역과 벵센(Vincennes)을 연결하는 4.5km의 철길을 재활용,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르거나 산책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High Line Park, 2009)의 선례가 된 ‘공중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한 한국의 ‘서울로 7017’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소개된 헬싱키의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카타야노카 호텔(핀란드, 2007)은 감옥을 최고급 호텔로 변신시킨 특이한 재활용의 사례다. 기능적으로 유사하다고 하지만 감옥을 호텔로 변신시키겠다는 아이디어는 대담한 발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의 성공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산업유산 재활용의 폭도 넓어졌다.

 

와핑 프로젝트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52~153

 

와핑 푸드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62~163

 

일곱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와핑 프로젝트(영국, 2000)은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Museum)처럼 방치된 발전소를 재활용 사례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장소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에, 와핑 프로젝트를 흔히 ‘베이비 테이트’ 혹은 ‘시스터 테이트’라는 부를 정도다. 하지만 와핑 프로젝트는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능이 다하고 버려진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 경우에 기존 건물의 원형은 상징적 맥락에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이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와핑 프로젝트는 이 같은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라이트는 무모하리만큼 건물의 외형은 물론이고 내부의 설비 시설까지 있는 그대로 새로운 공간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즉 과거 수력 발전에 사용되었던 녹슨 기계들을 건물의 일부 혹은 인테리어와 같이 간주했다.” [pp. 157`~158]

덕분에 1층에서 운영하는 ‘와핑 푸드’ 레스토랑은 낡은 벽돌과 녹슨 기계로 가득 찬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특별함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결과 독특한 메뉴나 탁월한 맛을 가진 요리가 없으면서도 런던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발전소는 아니지만,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는 한국에도 많이 있다. 한국 최초의 방직회사인 조양방직의 공장을 리모델링한 강화도 ‘조양방직 카페’, 인천에 있던 코스모 화학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한 후 40번째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코스모40’, 맛있는 빵과 음료보다도 과거 공장을 개조한 독특한 외형과 실내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Onion) 등

 

낙후된 공장지대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 예술가촌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트루먼 브루어리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48~49

 

두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트루먼 브루어리(영국)은 이스트 엔드(East end) 지역의 맥주 양조장이었다. 이 건물이 폐쇄된 후, 가난하고 자유분방한, 젊고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 결과 트루먼 브루어리와 주변의 크고 작은 버려진 공장들이 이들의 캔버스와 전시실이 되었다. 일종의 자연발생적 도시재생이었고, 기계 시설을 위한 충분한 높이와 채광 및 환기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양조장 건물이라는 특징이 얽혀 트루먼 브루어리 지역은 ‘있는 그대로’ 양조장 건물과 주변 시설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런 특징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가이자 ‘현대미술의 악동’이라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 ‘고백의 여왕’이라 불리는 표현주의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같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취리히의 취리히 웨스트(스위스)도 슬럼가 공장 지대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단지인 베이징[北京]의 다샨즈[大山子] 지역에 형성된 ‘798예술구’에서 빠른 상업화로 높아진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이 점차 떠난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문화예술단지로의 도시재생 혹은 산업유산 재활용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이렇게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독일 카를스루에, 핀란드 헬싱키 등 유럽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산업유산의 재활용 사례 14건을 소개하고 있다.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미래

 

앞에서 소개된 14건의 사례들은 단순히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유산의 성공적인 재활용을 위해 다양한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인내하며 합의한 결과다. 다시 말해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는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명성이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회가 더욱 성숙한 논의와 협의 과정을 이루어가는 훈련의 장이다. 즉, 민주주의를 익히는 시간이자 공간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압축성장을 하느라 제대로 민주주의를 체현(體現)해보지 못한 우리에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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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 파리를 사랑한 작가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산책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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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왔던 주소로 삶을 정리하기

 

1950년 이전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 외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어떤 이는 재산 형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사하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전세값 상승이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을 위한 토지 수용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물론 한 자리에서 계속 거주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10년 이상 이사를 하지 않고 거주했다면 원주민(原住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곳에서만 산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여러 차례 주소를 바꾸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그 동안 거쳤던 주소들을 정리하고, 그 주소들에 자신의 기억을 더해 회고록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멋진 회고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소위 ‘호구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갑자기 호감을 느끼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출신지 혹은 **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만이 가진 저열한 특징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세계 어디라도 그러한 지방색이 없는 곳은 자기 지역만의 문화가 없는 곳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 시대의 장비(張飛)가 ‘연인(燕人)’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는 의미심장하다.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e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 [p. 6]

 

파리’를 ‘서울’로, 프랑스의 지명을 한국의 지명으로 바꾸면,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서울사람들의 얘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해외교포나 화교(華僑) 등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파리의 거리들

 

런던, 파리, 교토(京都) 등 고도(古都)들은 그들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처럼 옛 모습을 가능하면 많이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파리의 거리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거리, 건물, 공원 등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이나 만남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의 집인 [바노 길 1-2번지]에서는 그의 작품 낭송 녹음에 얽힌 기억을

지드의 아파트인 그 유명한 바노에 들어가는 특혜를 누렸다. 1947년 10월, <지상의 양식>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지드의 오랜 친구인 마르크 베르나르와 함께 우리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지드에게 <지상의 양식> 도입부를 읽게 했다. 그렇게 나는 실내화 차림으로 조금 긴장한 지드의 모습을 보았다. 지드가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듣고서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치음 발음을 연습해야겠군.” “ [p. 98]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앙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 1895~1972)의 집인 [볼테르 강변길 25번지]에서는 그의 증정본과 관련된 추억을

몽테를랑은 자기 책의 성공을 위한 모든 것에 세심히 마음을 썼다. 오랫동안 그는 언론용 증정본에 헌사를 쓸 때조차 초고를 작성했다. 생애 말엽에는 그런 습관이 피곤하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갈리마르 출판사 건물에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 있는데, 저자들이 그곳에서 증정본에 사인을 한다. 한 번은 몽테를랑이 점심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장 쥬네가 그곳에 들렀다. 그는 몽테를랑이 서명해놓은 책 더미를 발견하고는 헌사에 음란한 말을 덧붙였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책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 책들은 틀림없이 오늘날 값나가는 희귀본이 되었을 것이다.” [p. 119]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편집자로 있던 <콩바>가 위치한 [레오뮈르 길 100번지]에서는 그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를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한 여비서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디 계셨어요? 사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왜요?

피아의 주소를 알고 싶어서요.

피아의 주소는 왜요?

뭐라고요? 모르세요? 카뮈가 죽었어요.

그때 나는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인쇄소로 간 것이다. 마치 그곳으로 피신하려는 듯이. 그곳에 가면 15년 전에 카뮈와 함께 조판대에서 숱한 밤을 보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곳에는 모두가 베베르라고 불렀던 우리의 고참 식자실장 루아가 있었고, 카뮈와 <프랑스-수아르>에서 일했고 1940년 피난 때 클레르몽페랑에서 그와 방을 함께 썼던 늙은 편집자 다니엘 르니에프(Daniel Lenief)도 있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pp. 128~129]

 

이런 방식으로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내내 저자는 파리의 거리들을 거닐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꼼꼼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p. 36]고 말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저자가 평생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 기억들의 대부분이 문학과 연관되고, 덕분에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을 번역한 백선희도 “이 글은 로제 그르니에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이자 부침 많았던 한 세기에 대한 증언이며 문학적 자취를 가득 품은 파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기행”[p. 166]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파리 전도가 첨부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옆에 지도를 펼쳐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골목을 살피면서 읽으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만약 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저자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단순히 저자의 기억을 되새김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골목골목마다 배낭여행 때의 기억에 더해 나만의 기억을 새로 덧씌워보고 싶다는 얘기다.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힘들거나 지칠 때 잠시 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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