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유럽 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 탐구
김정후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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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거리가 된 산업유산

 

만약 경복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세운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얘기를 꺼낸 이를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복궁 같은 문화재가 아닌 산업시설은 어떨까? 그때도 미친 놈 취급을 할까? 오히려 토지의 효율성을 따져 앞다투어 철거 후 재개발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할을 잃어버린 산업시설은 모두 철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일에 대한 고민은 우리보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영국을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을 거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고, 운송수단도 마땅치 않아 도심에 주요한 산업시설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운송수단은 발달했으며, 산업의 변화도 시작되자, 도심에 있던 산업시설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되자 역할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도심에 남아있는 시설들이 문제가 됐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철거를 해버리면 된다. 그러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것일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사례들

 

유럽에서는 도시의 산업유산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런던의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Art Gallery)은 이러한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다. 왜냐하면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은 런던의 산업유산 중 하나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날 건물들을 무조건 오래된 것이라고 허물지 않고 그 모양을 존중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인 셈이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그 긴 시간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서려 있어야 진짜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다 때려부수고 새로 짓는다면 그 도시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그 장소에 쌓인 무형의 시간과 역사를 훼손시켜버린 것이니까.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프롬나드 플랑테(프랑스, 1993)는 파리의 바스티유 역과 벵센(Vincennes)을 연결하는 4.5km의 철길을 재활용,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르거나 산책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High Line Park, 2009)의 선례가 된 ‘공중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한 한국의 ‘서울로 7017’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소개된 헬싱키의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카타야노카 호텔(핀란드, 2007)은 감옥을 최고급 호텔로 변신시킨 특이한 재활용의 사례다. 기능적으로 유사하다고 하지만 감옥을 호텔로 변신시키겠다는 아이디어는 대담한 발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의 성공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산업유산 재활용의 폭도 넓어졌다.

 

와핑 프로젝트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52~153

 

와핑 푸드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62~163

 

일곱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와핑 프로젝트(영국, 2000)은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Museum)처럼 방치된 발전소를 재활용 사례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장소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에, 와핑 프로젝트를 흔히 ‘베이비 테이트’ 혹은 ‘시스터 테이트’라는 부를 정도다. 하지만 와핑 프로젝트는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능이 다하고 버려진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 경우에 기존 건물의 원형은 상징적 맥락에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이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와핑 프로젝트는 이 같은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라이트는 무모하리만큼 건물의 외형은 물론이고 내부의 설비 시설까지 있는 그대로 새로운 공간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즉 과거 수력 발전에 사용되었던 녹슨 기계들을 건물의 일부 혹은 인테리어와 같이 간주했다.” [pp. 157`~158]

덕분에 1층에서 운영하는 ‘와핑 푸드’ 레스토랑은 낡은 벽돌과 녹슨 기계로 가득 찬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특별함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결과 독특한 메뉴나 탁월한 맛을 가진 요리가 없으면서도 런던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발전소는 아니지만,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는 한국에도 많이 있다. 한국 최초의 방직회사인 조양방직의 공장을 리모델링한 강화도 ‘조양방직 카페’, 인천에 있던 코스모 화학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한 후 40번째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코스모40’, 맛있는 빵과 음료보다도 과거 공장을 개조한 독특한 외형과 실내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Onion) 등

 

낙후된 공장지대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 예술가촌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트루먼 브루어리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48~49

 

두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트루먼 브루어리(영국)은 이스트 엔드(East end) 지역의 맥주 양조장이었다. 이 건물이 폐쇄된 후, 가난하고 자유분방한, 젊고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 결과 트루먼 브루어리와 주변의 크고 작은 버려진 공장들이 이들의 캔버스와 전시실이 되었다. 일종의 자연발생적 도시재생이었고, 기계 시설을 위한 충분한 높이와 채광 및 환기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양조장 건물이라는 특징이 얽혀 트루먼 브루어리 지역은 ‘있는 그대로’ 양조장 건물과 주변 시설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런 특징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가이자 ‘현대미술의 악동’이라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 ‘고백의 여왕’이라 불리는 표현주의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같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취리히의 취리히 웨스트(스위스)도 슬럼가 공장 지대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단지인 베이징[北京]의 다샨즈[大山子] 지역에 형성된 ‘798예술구’에서 빠른 상업화로 높아진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이 점차 떠난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문화예술단지로의 도시재생 혹은 산업유산 재활용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이렇게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독일 카를스루에, 핀란드 헬싱키 등 유럽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산업유산의 재활용 사례 14건을 소개하고 있다.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미래

 

앞에서 소개된 14건의 사례들은 단순히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유산의 성공적인 재활용을 위해 다양한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인내하며 합의한 결과다. 다시 말해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는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명성이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회가 더욱 성숙한 논의와 협의 과정을 이루어가는 훈련의 장이다. 즉, 민주주의를 익히는 시간이자 공간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압축성장을 하느라 제대로 민주주의를 체현(體現)해보지 못한 우리에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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