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유럽 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 탐구
김정후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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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거리가 된 산업유산

 

만약 경복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세운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얘기를 꺼낸 이를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복궁 같은 문화재가 아닌 산업시설은 어떨까? 그때도 미친 놈 취급을 할까? 오히려 토지의 효율성을 따져 앞다투어 철거 후 재개발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할을 잃어버린 산업시설은 모두 철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일에 대한 고민은 우리보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영국을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을 거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고, 운송수단도 마땅치 않아 도심에 주요한 산업시설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운송수단은 발달했으며, 산업의 변화도 시작되자, 도심에 있던 산업시설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되자 역할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도심에 남아있는 시설들이 문제가 됐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철거를 해버리면 된다. 그러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것일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사례들

 

유럽에서는 도시의 산업유산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런던의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Art Gallery)은 이러한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다. 왜냐하면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은 런던의 산업유산 중 하나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날 건물들을 무조건 오래된 것이라고 허물지 않고 그 모양을 존중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인 셈이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그 긴 시간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서려 있어야 진짜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다 때려부수고 새로 짓는다면 그 도시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그 장소에 쌓인 무형의 시간과 역사를 훼손시켜버린 것이니까.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프롬나드 플랑테(프랑스, 1993)는 파리의 바스티유 역과 벵센(Vincennes)을 연결하는 4.5km의 철길을 재활용,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르거나 산책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High Line Park, 2009)의 선례가 된 ‘공중 산책로’로도 유명하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한 한국의 ‘서울로 7017’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소개된 헬싱키의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카타야노카 호텔(핀란드, 2007)은 감옥을 최고급 호텔로 변신시킨 특이한 재활용의 사례다. 기능적으로 유사하다고 하지만 감옥을 호텔로 변신시키겠다는 아이디어는 대담한 발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의 성공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산업유산 재활용의 폭도 넓어졌다.

 

와핑 프로젝트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52~153

 

와핑 푸드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162~163

 

일곱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와핑 프로젝트(영국, 2000)은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Museum)처럼 방치된 발전소를 재활용 사례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장소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에, 와핑 프로젝트를 흔히 ‘베이비 테이트’ 혹은 ‘시스터 테이트’라는 부를 정도다. 하지만 와핑 프로젝트는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능이 다하고 버려진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 경우에 기존 건물의 원형은 상징적 맥락에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이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와핑 프로젝트는 이 같은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라이트는 무모하리만큼 건물의 외형은 물론이고 내부의 설비 시설까지 있는 그대로 새로운 공간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즉 과거 수력 발전에 사용되었던 녹슨 기계들을 건물의 일부 혹은 인테리어와 같이 간주했다.” [pp. 157`~158]

덕분에 1층에서 운영하는 ‘와핑 푸드’ 레스토랑은 낡은 벽돌과 녹슨 기계로 가득 찬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특별함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결과 독특한 메뉴나 탁월한 맛을 가진 요리가 없으면서도 런던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발전소는 아니지만,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는 한국에도 많이 있다. 한국 최초의 방직회사인 조양방직의 공장을 리모델링한 강화도 ‘조양방직 카페’, 인천에 있던 코스모 화학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한 후 40번째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코스모40’, 맛있는 빵과 음료보다도 과거 공장을 개조한 독특한 외형과 실내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Onion) 등

 

낙후된 공장지대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 예술가촌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트루먼 브루어리

출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pp. 48~49

 

두 번째로 소개된 런던의 트루먼 브루어리(영국)은 이스트 엔드(East end) 지역의 맥주 양조장이었다. 이 건물이 폐쇄된 후, 가난하고 자유분방한, 젊고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 결과 트루먼 브루어리와 주변의 크고 작은 버려진 공장들이 이들의 캔버스와 전시실이 되었다. 일종의 자연발생적 도시재생이었고, 기계 시설을 위한 충분한 높이와 채광 및 환기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양조장 건물이라는 특징이 얽혀 트루먼 브루어리 지역은 ‘있는 그대로’ 양조장 건물과 주변 시설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런 특징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가이자 ‘현대미술의 악동’이라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 ‘고백의 여왕’이라 불리는 표현주의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같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취리히의 취리히 웨스트(스위스)도 슬럼가 공장 지대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단지인 베이징[北京]의 다샨즈[大山子] 지역에 형성된 ‘798예술구’에서 빠른 상업화로 높아진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이 점차 떠난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문화예술단지로의 도시재생 혹은 산업유산 재활용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없다.

 

이렇게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독일 카를스루에, 핀란드 헬싱키 등 유럽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산업유산의 재활용 사례 14건을 소개하고 있다.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의 미래

 

앞에서 소개된 14건의 사례들은 단순히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유산의 성공적인 재활용을 위해 다양한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인내하며 합의한 결과다. 다시 말해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는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명성이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회가 더욱 성숙한 논의와 협의 과정을 이루어가는 훈련의 장이다. 즉, 민주주의를 익히는 시간이자 공간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압축성장을 하느라 제대로 민주주의를 체현(體現)해보지 못한 우리에게 산업유산 재활용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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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 파리를 사랑한 작가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산책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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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왔던 주소로 삶을 정리하기

 

1950년 이전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 외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어떤 이는 재산 형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사하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전세값 상승이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을 위한 토지 수용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물론 한 자리에서 계속 거주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10년 이상 이사를 하지 않고 거주했다면 원주민(原住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곳에서만 산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여러 차례 주소를 바꾸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그 동안 거쳤던 주소들을 정리하고, 그 주소들에 자신의 기억을 더해 회고록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멋진 회고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소위 ‘호구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갑자기 호감을 느끼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출신지 혹은 **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만이 가진 저열한 특징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세계 어디라도 그러한 지방색이 없는 곳은 자기 지역만의 문화가 없는 곳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 시대의 장비(張飛)가 ‘연인(燕人)’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는 의미심장하다.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e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 [p. 6]

 

파리’를 ‘서울’로, 프랑스의 지명을 한국의 지명으로 바꾸면,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서울사람들의 얘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해외교포나 화교(華僑) 등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파리의 거리들

 

런던, 파리, 교토(京都) 등 고도(古都)들은 그들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처럼 옛 모습을 가능하면 많이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파리의 거리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거리, 건물, 공원 등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이나 만남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의 집인 [바노 길 1-2번지]에서는 그의 작품 낭송 녹음에 얽힌 기억을

지드의 아파트인 그 유명한 바노에 들어가는 특혜를 누렸다. 1947년 10월, <지상의 양식>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지드의 오랜 친구인 마르크 베르나르와 함께 우리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지드에게 <지상의 양식> 도입부를 읽게 했다. 그렇게 나는 실내화 차림으로 조금 긴장한 지드의 모습을 보았다. 지드가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듣고서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치음 발음을 연습해야겠군.” “ [p. 98]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앙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 1895~1972)의 집인 [볼테르 강변길 25번지]에서는 그의 증정본과 관련된 추억을

몽테를랑은 자기 책의 성공을 위한 모든 것에 세심히 마음을 썼다. 오랫동안 그는 언론용 증정본에 헌사를 쓸 때조차 초고를 작성했다. 생애 말엽에는 그런 습관이 피곤하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갈리마르 출판사 건물에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 있는데, 저자들이 그곳에서 증정본에 사인을 한다. 한 번은 몽테를랑이 점심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장 쥬네가 그곳에 들렀다. 그는 몽테를랑이 서명해놓은 책 더미를 발견하고는 헌사에 음란한 말을 덧붙였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책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 책들은 틀림없이 오늘날 값나가는 희귀본이 되었을 것이다.” [p. 119]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편집자로 있던 <콩바>가 위치한 [레오뮈르 길 100번지]에서는 그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를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한 여비서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디 계셨어요? 사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왜요?

피아의 주소를 알고 싶어서요.

피아의 주소는 왜요?

뭐라고요? 모르세요? 카뮈가 죽었어요.

그때 나는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인쇄소로 간 것이다. 마치 그곳으로 피신하려는 듯이. 그곳에 가면 15년 전에 카뮈와 함께 조판대에서 숱한 밤을 보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곳에는 모두가 베베르라고 불렀던 우리의 고참 식자실장 루아가 있었고, 카뮈와 <프랑스-수아르>에서 일했고 1940년 피난 때 클레르몽페랑에서 그와 방을 함께 썼던 늙은 편집자 다니엘 르니에프(Daniel Lenief)도 있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pp. 128~129]

 

이런 방식으로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내내 저자는 파리의 거리들을 거닐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꼼꼼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p. 36]고 말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저자가 평생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 기억들의 대부분이 문학과 연관되고, 덕분에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을 번역한 백선희도 “이 글은 로제 그르니에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이자 부침 많았던 한 세기에 대한 증언이며 문학적 자취를 가득 품은 파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기행”[p. 166]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파리 전도가 첨부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옆에 지도를 펼쳐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골목을 살피면서 읽으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만약 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저자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단순히 저자의 기억을 되새김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골목골목마다 배낭여행 때의 기억에 더해 나만의 기억을 새로 덧씌워보고 싶다는 얘기다.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힘들거나 지칠 때 잠시 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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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 정수복의 파리 연작 2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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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非장소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그런 의미와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lieu)’라고 정의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장소(non-lieu)’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1)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pp. 12~13]


이처럼 <파리의 장소들>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을 기능성만 갖춘, ‘장소(place)’ 아닌 장소, ()장소’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한 것일까? ‘장소는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공간인 반면 ()장소는 획일적으로 생산된, 생존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 <파리에 장소들>에서 파리의 장소들을 얘기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파리는 오래된 도시이고, 이에 따라 나름의 사연이 서려있는 수많은 장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지금 여기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상과 각각의 장소에 서려 있는 기억들이 서로 엮여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떤 곳에 가면 특정한 기억이 떠오르고, 거꾸로 어떤 것을 기억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특정 장소와 결부된다.

~ 중략 ~

장소는 이런 의미에서 기억이 사는 집이다.” [p. 16]

따라서 장소에 얽힌 기억은 꼭 공적(公的)인 것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나에게만 의미 있는 사적(私的)인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존중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같은 공간 다른 기억


에펠탑은 바라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주체 또는 바라보는 장소 된다. 에펠탑은 주체와 객체, 능동태와 수동태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는 기이한 물체다. 에펠탑은 노트르담 사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장소의 하나다. 그러나 다른 장소들과 달리 에펠탑은 비어 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퐁피두센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트르담 사원도 미술관은 아니지만 꽤 많은 볼거리를 담고 있다. 철로 만든 에펠탑은 그 안에 보여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p. 49]


오랫동안 에펠탑은 파리 시민들의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1부 잘 알려진 장소다르게 보기]의 첫 번째 글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30페이지 이상의 지면을 에펠탑에 할애하면서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쓸모 없음과 쓸모 있음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모든 존재는 각자의 존재이유가 있을 테니까. 혹시 에펠탑과 이를 둘러싼 논란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이 문제를 전적으로 다룬 정대인의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건물에서 라스파이 대로를 건너면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시작된다. 처음에 ‘캉파뉴 프르미에르(campagne première)’ 거리의 이름을 듣고서 나는 ‘첫 번째 시골’이라는, 다소 낭만적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파리 길 이름 사전을 찾아보니까 ‘첫 번째 전투’라는 다소 공격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캉파뉴(campagne)는 ‘시골’과 ‘전투’라는 두 가지 뜻을 다 담고 있다). 이 골목은 그냥 지나가면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파리의 골목길이다.

~ 중략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면 화려한 상점 하나 없고 어떻게 보면 건물들의 높이가 들쑥날쑥하고 형태와 소재에도 일관성이 없으며 가로수가 없어 메마른 느낌을 준다. 나에게도 이 골목길은 그저 뤽상부르 공원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골목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주 이 길을 오가게 되면서 이 길과 친해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기호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기호들과 들리는 소리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보잘것없는 평범한 골목길이 수많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는 의미의 창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일은 숨은 기호를 찾아내 해석하는 기호학적 산책의 기회를 제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두터운 의미의 지층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pp. 237~238]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3장소에 숨은 뜻 자세히 찾아 읽기]의 첫 번째 글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에서 그저 평범한 거리로 여겼던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친숙해지면서 그 곳에 수많은 기호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 후 그 길을 걷는 일은 숨어 있는 기호들을 해석하는 일이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 걷는 길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기에 그저 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하면 단순한 이상이 되지 않을까? 문득 김춘수의 <>이 떠올랐다.


[2부 피하고 싶은 장소일부러 찾아다니기]의 첫 번째 글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에서 언급한, 메닐몽탕 거리는 또 다른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메닐몽탕 거리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라는 점에서 벨빌 거리와 같다. 그러나 벨빌 거리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상점들이 계속 이어지는 데 비해서 메닐몽탕 거리는 문을 닫은 상점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자크 루소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에 메닐몽탕 언덕길을 즐겨 걸었다. 그 책의 두 번째 산책 편을 보면 1776 10 24일 목요일 루소는 벨빌과 메닐몽탕을 연결하는 오트-보른 부근을 걷고 있었다. 그날 루소는 엄청나게 큰 덴마크 개를 만나 봉변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그때 정신이 희미했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누군가가 내가 오트-보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아틀라스 산에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루소가 메닐몽탕 언덕길을 산책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몽테뉴도 메닐몽탕 언덕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두 사람 다 메닐몽탕 언덕길을 걷다가 개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했다. 이런 일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지역을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pp. 154~155]


이 얘기대로라면 메닐몽탕 거리는 진짜 위험한 지역이었을까, 아니면 위험한 지역이라고 인식된 지역이었을까? 한국으로 치면, 달동네에 해당되기에 선입견에 사로잡혀 위험한 지역이라고 여기고 싶은 상태였기에, 몽테뉴나 루소의 일화를 핑계로 그런 낙인을 찍은 것이 아닐까? 왠지 우리가 우범지대라고 여기는 곳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은 어떤 기억의 도시가 될까

                   

가볍게 여기는 산책길을 저자를 따라 걷다 보면,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그 주변,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이 책, <파리의 장소들>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했다. 시인의 혼이 되어보기도 했고 소설가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 시가 어느 순간에 밀려오는 영감의 응축된 언어적 표현이라면, 이 책에는 파리의 특정 장소들에서 느낀 고양된 감정과 미적 체험의 순간들이 군데군데 숨을 쉬고 있다. 소설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쓴 파리 이야기들이 소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p. 387]


(세계화의 영향으로) “캉파뉴 프로미에르 길에도 웰빙을 내세우며 마사지를 하는 미용실과 중국 발마사지 시술소가 생겼고 빨래방도 하나 생겼다. 막다른 골목 안에는 살을 빼고 날씬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둥근 회전판 위에서 운동하는 기계를 설치한 스포츠세터가 생겼다. ‘두 명의 앙드레라는 이름으로 실내장식 사무실도 생겼다. 마르크 오제가 말하는 이른바 비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미용사가 머리 조각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하는 전통적 미용실이 건재하고, 19세기 말에 쓰던 철제 다리미를 전시하고 있는 오래된 세탁소도 건재하며, 몽파르나스 대로 쪽 길이 끝나는 곳에 문방구를 겸한 오래된 잡화상도 그대로 있다.” [pp. 250~251]


그러면서 풍납토성(風納土城)의 해자(垓子)에 건축 폐기물 수천 톤을 매립하라고 지시했던 구청 직원2), 아파트 재건축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풍납토성 발굴 현장을 파괴하고 흙으로 덮어버린 재건축조합 관계자3)들을 떠올리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과거를, 우리의 기억을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해야 할까? 물론 파리라고 해서 과거와 꼭 같은 모습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그들의 뿌리를 남겨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파리를 기억의 도시라고도 하는 것이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한다. 아파트 숲에 둘러 쌓인 회색 도시가 우리 자손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서울의 기억’을 관찰하고 남겨두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1) 세렌디퍼티(serendipity): 완전하게 우연히, 예상치 않게, 기분 좋은 발견을 하는 재능

2)송파구청 직원 풍납토성에 쓰레기 불법 매립”, <YTN> 2013.02.02

3)풍납토성 발굴현장 무단파괴”, <국민일보>, 200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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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건축을 걷다
이용민 지음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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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뉴욕 건축을 걷다>인가

 

나는 ‘뉴욕’이라고 하면 마천루(摩天樓), 뉴요커, 도시재생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뉴욕’이라고 하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스카이라인을 과시하는 초고층 건물, 마천루(摩天樓)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1890년 이후 미국에서 세워진 거의 모든 최고층 건물이 모두 뉴욕시에 세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계 최초로 100층을 넘기고 39년 간 최고층 건물의 지위를 누렸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뉴욕’이라고 하면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예술과 맨해튼의 5번가로 상징되는 패션을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래서 뉴욕에 살아가는 사람들, 뉴요커들은 세련되고 시크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료인 서수민과 영상팀 팀장 안대훈 커플의, “매력 터지는 여친을 영상감독 남친이 촬영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https://youtu.be/ufKxOlS3f50)처럼.

 

또 다른 이는 고(故) 박원순 시장이 남긴 ‘서울로 7017’의 모델이며, 이 책에서 5번째로 소개된 ‘하이 라인 공원(The High Line Park)’으로 대표되는 도시 재생을 떠올릴 것이다. <하이라인 스토리>라는 책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듯이 하이 라인 공원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와 보존, 정부와 주민들 사이 많은 갈등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참여를 통해 비판을 극복하여 성공적인 도시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니까.

 

이 모든 것이 ‘뉴욕’이다. 그렇다면 이 ‘뉴욕’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최고층 건물이다. 하지만 뉴욕에는 이런 최고층 건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건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건물들은 어떤 의도로 지어지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뉴욕 건축을 걷다>는

 

이 책, <뉴욕 건축을 걷다>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건축의 유형, 즉 문화, 주거, 상업, 교육 건축을 기준으로 4개의 Chapter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베슬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 67, p. 71

 

‘Chapter 1. 문화 건축: 사람과 도시의 관계’에서는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Solomon Guggenheim Museum), 뉴욕 클래식 문화를 상징하는 링컨 센터(Lincoln Center),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지형과 조경 등을 이용해 공간을 디자인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 공원(Franklin D. Roosevelt Four Freedom Park), 도시 재생을 상징하는 공중 공원인 하이 라인 공원(The High Line Park),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베슬(The Vessel), 맨해튼의 뷰를 최대화한 퀸즈 헌터스 포인트 도서관(Queens Library at Hunters Point)를 소개하고 있다.

 

‘Chapter 2. 주거 건축: 공간과 라이프’에서는 2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인 킵스 베이 타워(Kips Bay Towers), 판매를 위한 럭셔리 콘도미니엄인 100 11th Avenue,  ‘New York by Gehry’라고 불리는 비정형(非定型)의 초고층 아파트인 8 스프루스 스트리트(8 Spruce Street), 극단적으로 높고 얇게 디자인된 432 파크 에비뉴(432 Park Avenue),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비아 57 웨스트(VIA 57 West), 젠가 타워(Jenga Tower), 독특한 곡선형의 외관을 가진 520 West 28th Street, 럭셔리 레지텐셜 아파트인 685 First Avenue과 같은 럭셔리 주거 공간의 다양한 시도를 다루고 있다.

 

‘Chapter 3. 상업 건축: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에서는 레버 하우스(Lever House),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메트 라이프 빌딩(MetLife Building), 포드 재단 빌딩(Ford Foundation Building), 프라다 플래그십 스토어(Prada Flagship Store),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마스터 플랜(World Trade Center Master Plan), 오큘러스(Oculus), 애플 스토어 5th 에비뉴(Apple Store 5th Avenue)를 안내하고 있다.

 

41 쿠퍼 스퀘어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 232, p. 237

 

사진출처: 위키백과

 

‘Chapter 4. 교육 건축: 배움의 공간에 대하여’에서는 뉴욕대학교 도서관(NYU Elmer Holmes Bobst Library), 명문 디자인 학교인 프랫 인스티튜트의 건축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히긴스 홀(Pratt Institute Higgins Hall), 친환경 건물로도 유명한 쿠퍼 유니언 대학의 뉴아카데미 건물인 41 쿠퍼 스퀘어(41 Cooper Square), 바너드 칼리지의 건축학부와 회화과의 스튜디오, 전시실, 강의실 등이 있는 바너드 컬리지 다이애나 센터(The Diana Center at Barnard College) 컬럼비아 대학의 과학 관련 분야의 연구/강의살, 교수 오피스, 카페 등으로 구성된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Columbia University Northwest Corner Building), 코넬 텍 캠퍼스 마스터 플랜(Cornell Tech Campus Master Plan) 등 다양한 형태의 대학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 라파엘 모네오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p. 248~249

 

여기에 소개된 30개의 건축물 마다 해당 건축물과 건축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해당 건축물에 대한 해석과 해설, 가능한 경우에 한국의 유사 건축물 혹은 해당 건축가가 관여한 건축물 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유형별로 뉴욕의 현대 건축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셈이다. 특히 한국과 비교하는 부분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도시에 세워질 건축물, 그리고 이들이 이뤄나갈 도시 공간과 문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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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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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가는가

 

과거 많은 이들이 이용했던 패키지 여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여행을 낯선 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이국적인 음식을 먹고, 낯선 상품을 사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생겨났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것이 어느 지역에 대한 ‘눈도장’, ‘발도장’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역사, 영화,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한 간접 체험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꼭 그곳까지 고생하며 갈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곳에 찾아가는 시간과 공간의 세세한 과정 속에서 얻는 무엇인가가, 도착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발로 그 땅을 디디면서 얻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p. 428]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여행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간다고 해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 지가 중요하다. 물론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니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이도 있겠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한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발길 닿는 데로 떠나는 방랑이 아닌 다음에야 여행의 장소를 정할 때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다양한 경험 등이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책, 영화, 음악 등이 여행의 행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영화를 본 후 여행지에 대한 동경이 생기곤 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보고 사막의 별을 보겠다고 이틀간 벤을 타고 가는 고생을 하고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요르단의 페트라를 찾은 것은 모두 영화가 나에게 준 여행의 ‘동인(動因)’이었다.” [p. 218]

 

 

왜 이탈리아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나라 중에 왜 이탈리아일까?

저자에 따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 어렸을 때 본 영화 <시네마 천국>과 고등학교 시절에 본 <인디아나 존스>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 중략 ~ 결정타는 고등학교 때 본 <인디아나 존스>였다. 베네치아의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시작으로 성배를 찾아 나선 여정에 홀딱 빠져버린 나는 아예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자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커졌다. <투스카니의 태양>, <잉글리시 페이션트>, <스타 만들기>, <레터스 투 줄리엣> 등 수많은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그곳의 깊은 역사 속 찬란한 예술과 문화를 배우면서 그 바람을 조금씩 현실로 끌어내게 되었다.” [p. 12]

즉,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가 계기가 되어 저자는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이탈리아의 깊은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어쩌다 보니 이탈리아를 기회가 될 때마다 방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로 정한 것이 아닐까?

 

 

예술 작품과 함께 여행하다

 

이 책은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여섯 도시,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의 작은 도시들로 작은 목차를 이루고 있다. 예들 들면, 1부에서는 베네치아와 그 주변의 파도바, 베로나, 라벤나와 같은 도시를 소개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탈리아의 35개 도시의 삶과 역사, 예술, 문화, 자연을 얘기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저자의 여행기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구체적으로는  이 영화에 도서관으로 등장한 베네치아의 산바르나바 성당이 첫 방문지로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산바르나바 성당

출처: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p. 31

 

이어지는 장소는 리알토 다리로 다리 자체에 얽힌 사연과 더불어 이를 배경으로 그린 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1527)의 <성십자가의 기적>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십자가의 기적>

출처: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p. 20

 

리알토 다리

출처: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p. 21

 

 

나만의 스토리를 꿈꾸며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라는 이탈리아 여행기는 절반은 해당 지역과 관련된 영화나 그림, 건축물 등의 소개와 함께 직접 그 장소를 둘러본 감상으로, 나머지 절반은 풍경과 예술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왜 이렇게 꾸몄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을 처음 구상할 때는 이탈리아의 예술과 풍경 사진이 어우러진, 이미지 중심의 책으로 꾸미고자 했으나, 결국 다양한 그림과 깊고 넓은 이탈리아의 예술신(scene)은 이미지뿐 아니라 에세이로도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를 둘러본다는 것은 그림과 풍경과 글이 제 나름의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광활한’ 인문학적 세계였다” [p. 13]고 했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도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같은 곳을 여러 번 갔는데도 항상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릇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 다른 풍경 속에서도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하나의 풍경 속에서도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 [p. 13]라고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야만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저자처럼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지금은 여행을 떠날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아니 종식되지 않더라도 잠잠해지면, 나도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저자처럼 여행지의 역사, 예술 등을 아울러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또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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