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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형태들의 노래 - 세계 각지에 꽃피운 건축 문명의 원류와 현재를 찾아서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형태와 영감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는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형태’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수평, 수직, 경사, 곡면, 기둥, 그리드, 구, 원, 정육면체, 비정형의 10가지 형태를 기본 유형으로 삼고, 이를 각각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문화, 인체와의 만남, 전통과 일상 사례, 근현대 건축 프로젝트, 현대 예술 작품 순으로 예시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먼 옛날의 인류는 자연에서 고유한 형태의 특성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원시 언어와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고대 형태 문화가 나타났다. 이후 중세, 근대를 거치며 현재의 형태 문명으로 발현했다.
연구를 이어가며 인류의 많은 형태는 몇 가지 기본 유형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실제 우리 환경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여러 건축가, 예술가, 이론가들도 공통으로 기본 형태유형을 언급하고,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유형 목록은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를 정리한 것이 책에 나온 열 가지 유형이다. 물론 현실의 건축과 예술 프로젝트는 대부분 다양한 형태의 복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진다. [pp. 13~14]
Back to the Basic
흔히 기본(基本) 혹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초심은 알기 쉽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것이 있다. 기본! 도대체 뭐가 기본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10가지 유형일까? 아니면 그 형태들에 담긴 마음일까?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만든다. 나중에는 그 무언가에 의해 거꾸로 영향을 받는다. 가구도, 건축도, 도시도 그렇다. 결과물은 우리 생활과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옥은 대표적인 수평 공간이다. 먼 옛날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이 처음부터 수평 집을 지으려 하지는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대지와 산하의 환경,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당대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나무로 만든 집이 우리의 주거 문화가 되었다. 나무와 흙으로 짓는 집은 수직으로 높게 올리기 힘들다. 굳이 무리해서 그렇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동양의 전통 정신문화도 역할을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고전 문화와 종교는 수평 공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p. 27]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얘기인 셈이다.
저자는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얘기하면서도 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마음 즉 우리 ‘안’의 형태를 언급한다.
형태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형태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체인지 알 수 없다. 혹자는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딱딱한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픈데, 어떻게 실체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말한 '보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부딪히고'...는 모두 우리의 감각 경험이다. 우리는 세상 사물을, 아니 세상 자체를 감각으로 체험할 수 밖에 없다.
~ 중략 ~
이 책의 주제는 형태의 실재 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경험하는 바로 우리 '안'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pp. 316~317]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무척 현학적(衒學的)인, 철학 교과서에 더 어울릴 듯한 말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저자의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몰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냐’는 말처럼 달이 아닌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니까.
하나의 기둥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자연현상 속에서 높이 치솟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위를 향한, 위가 주는 초월의 감정을 느끼고, 끝내 어떤 수직 형상을 세워 올리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p. 317]
저자의 해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인간의 감정과 연결지어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