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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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빵[pain]이 없으면 케이크[brioche]1)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치스럽고 생각 없는 여인을 상징하는 이 말은 불행히도 그녀가 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 제6권의 한 구절2)을 인용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런 누명을 써야 했을까? 먼저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가를 살펴보자.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마성(魔性)을 과시할 소양도 없고 영웅적인 행위를 이룰 의지도 없으며, 따라서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다. [p. 10]

 

그러면서

 

그렇지만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 무시무시한 개인적인 책임에 몰릴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중략 ~

마리 앙투아네트야말로 그러한 역사의 분명한 증거이다. 38년이라는 생애의 초반 30년 동안 이 여인은 무심한 길을 간다. 적어도 눈에 띄는 범위 안에서는, 그녀는 한 번도 선이든 악이든 평균치를 넘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인생이요 평범한 성격이며,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쾌활하고 구김살 없는 그녀의 유희 세계 안으로 혁명이 밀어닥치지 않았더라면, 미미한 이 합스부르크가(家)의 여인은 모든 시대의 수많은 여인들처럼 그저 그렇게 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 [pp. 10~12]

 

저자의 평가처럼 프랑스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가 평범한 보통사람, 우리 주변의 소시민과 같은 마인드를 가졌기에 비극의 대상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신성로마제국의 사실상의 황제였던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나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의 왕비인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1752~1814)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운명에 희롱 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갔을 테니까. 어쩌면 그녀가 겪은 비극은 아무런 준비 없이 왕비가 된 그녀가 받아야 할 업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의 머리 위에 얹혀진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느끼고 반응해야 하는지 그녀가 결혼하기 직전까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부모의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제대로 왕권을 쓴 자의 역할을 배우지 않은 탓인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수 차례의 징조를 그냥 넘기고 만다. 만약 루이 16세와 그녀가 그 징조들을 보고 제대로 대처했다면 혁명과 공화정이라는 루트 대신 개혁과 입헌군주정이라는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흔히 소시민적인 평범한 사람이 격변기에 권력의 정상에 위치하게 되면, 그가 선량하고 좋은 사람일수록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거나 그가 속한 조직이 나락으로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선량한 아버지이나 무능한 지도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淸)나라를 동네북으로 만든 시기의 황제였던 도광제(道光帝, 재위 1820~1850),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 등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슈테판 츠바이크도 이 책을 통해 평범한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역사의 커다란 비극 앞에서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하는지 그려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생각 없이 경솔하게 살아온 15년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왕비라는 것은 오로지 궁중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애교 있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버릇이 없고 또 무엇보다고 가장 잘 노는 여자라는 찬사를 받는 것아르비테를 엔레간티아룸, 즉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지나치도록 고상하게 훈련된 사교계의 지도적인 사교부인임을 뜻했다.

중략 ~

혁명이 그녀를 이 좁디좁은 로코코의 무대에서 완력으로 거세게 끌어내려 세계사라는 위대한 비극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운명이 자기에게 영웅적인 역할을 맡을 힘과 강한 영혼을 주었는데도, 지나간 20년 동안 너무나 보잘것없는 시녀의 역과 살롱 귀부인의 역만을 해왔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이런 잘못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왕비의 역을 맡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진정한 모습을 보였다[p. 118]

 

비록 그것이 뒤늦은 노력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시도와 도전은 그녀를 진정한 프랑스 왕비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욱 그녀에 대해, 그녀의 비극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번역가들도 이 책에 대해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평범한” 인물에 대한 심리소설 쪽에 가깝다. 쇤브룬 궁의 철없는 소녀가 프랑스 왕비가 되고 결국은 단두대에서 사라지기까지의 내면적 성숙을 그린 작품이다. [p. 552]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책도 고귀한 태생의 주인공이 운명의 사슬에 얽매여 몰락하는 고전 비극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여기에 다소 변형을 가해 태생은 고귀하지만 평범한 소시민 같은 성격의 주인공을 등장시켰을 뿐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에게 잘못이 있다면 국왕과 왕비가 된 것이 아닐까?

 

1) 서민들이 주식으로 먹던 빵[pain]과 부자들이 먹던, 버터와 달걀을 넣어 맛을 돋운 고급 빵[brioche]을 대조하는 말인데, 영어나 한국어 등에서는 ‘브리오슈(brioche)’가 ‘케이크’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2) 드디어 나는 한 지체 높은 공주가 제안했던 임시방편을 기억해 냈다. 사람들이 그 공주에게 “농민들에게 빵이 없다”고 말하니, 그 공주는 “브리오슈(brioche)를 먹게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Enfin je me rappelai le pis-aller d’une grande princesse a qui l’on disait que les paysans n’avaient pas de pain, et qui repondit : Qu’ils mangent de la brio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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