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 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
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임지연 옮김 / 북스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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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A Bite-Sized History of France: Delicious, Gastronomic Tales of Revolution, War, and Enlightenment)>는 프랑스의 여러 음식과 그에 관한 역사 등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 치즈 장수’를 자처하는 스테판 에노(Stephane Henaut)가 마음 편히 치즈를 가져오기 위해, 미국인 아내인 제니 미첼(Jeni Mitchell)에게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음식과 와인, 더 넓게는 먹고 마시고 농사짓고 포도를 재배하는 일체의 관습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프랑스라는 국가가 그렇듯 시대의 전쟁과 혁명, 전염병과 침략, 발명과 계몽을 통해 진화해왔고, 좋든 나쁘든 그 과정에서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p. 9]

 

그래서일까? 저자는 음식을 통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칫하면 ‘순혈(純血)’주의자 혹은 ‘국수(國粹)’주의자에게 이용되기 좋다.

 

불행히도 음식을 매개로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는 1990년대 이후 프랑스 극우파가 선호하는 전술이 되었고, 지난 10년 동안 주류 정치에도 스며들었다.

중략 ~

프랑스인이 되려면 프랑스 사람들처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를 살펴보면 프랑스 미식 전통이 전 세계의 맛과 관습이 혼합된 결과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포도밭은 로마인이 전해준 것이며, 유명한 페이스트리는 오스트리아의 선물이다. 터키로부터의 멋진 수입품, 커피가 없었다면 카페의 탄생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초콜릿? 멕시코에서 수입되었다. 프로방스 요리?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토마토 없는 프로방스 요리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순혈의’ 정통 프랑스 요리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사실상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앞으로 밝혀내도록 하겠다. [p. 10]

 

그렇기에 저자도 이 책에서 사실상 ‘순수한 프랑스 미식’은 없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프랑스의 풍부한 음식 문화가 침략과 전쟁, 정복, 식민지화의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요리 또한 획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는 다양한 지역색 덕분만은 아니다. 긴 역사를 탐구한 결과 우리는 외국 요리가 프랑스 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을 밝혀냈다. 와인과 리큐어, 페이스트리와 초콜릿, 그리고 프로방스의 맛 등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믿었던 많은 요소가 프랑스가 원조가 아닌 수 세기에 걸쳐 유입되어 서서히 흡수된 것이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이러한 요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침략과 정복, 식민지화의 결과였기 때문에 그 유입과정은 실제보다 더 순화되어 묘사되었다. 이 중 식민지 정복의 영향은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온 식민지 요리가 현재도 프랑스 미식에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에 있으므로 결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pp. 426~427]

 

예컨대 초콜릿과 같은 경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도 프랑스인들이 매년 약 7kg을 소비할 만큼 즐긴다. 하지만, 여전히 착취와 어쩌면 폭력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 대다수가 현대의 초콜릿이 끔찍한 식민지 건설과 대량 학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서아프리카 카카오 생산 과정에서의 착취를 강조하는 지속적인 캠페인 덕분에 초콜릿 무역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카카오의 60퍼센트 이상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이 두 나라에서 생산된다. 많은 카카오 농장 일꾼들이 일당 1달러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이 2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되는데 일부는 이웃 나라에서 인신매매된 아이들이다. [p. 178]

 

 

이와 함께 음식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요리와 식재료는 식생활 습관 혹은 방식을 통해 계층 간의 차이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사회 계층 간 차이는 음식을 통해서도 점점 더 공고해졌다. 봉건 시대에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식습관 차이가 매우 컸다. 음식은 단순한 계급의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니면서 다른 계급에 대한 한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정 음식이 고귀함과 건강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다른 음식은 비천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그 특정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귀결되었다. [pp. 66~67]

 

귀족들이 구운 고기를 먹는 동안 농민들은 채소를 찾아 헤맸다. 적어도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루이 14세가 채소를 더욱 고급 재료의 반열에 올려놓기 전까진 말이다. 이국적인 향신료와 설탕은 비교적 최근까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며, 심지어 포위전과 전쟁 중에도 부유층은 계속 별미를 즐겼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데, 비단 프랑스만의 일은 아니다.

중략 ~

즉,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분열과 불평등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특정 지역이나 시대의 음식과 관련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습인 ‘식생활 방식(foodways)’을 조사함으로써 사회에서 누가 가장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지, 어떻게 자신들의 높은 지위를 유지하는지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pp. 424~425]

 

외교 수단이기도 했다.

 

탈레랑은 프랑스 대사와 외무 장관을 지내면서 프랑스 문화와 미식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자를 이기고, 잠재적 동맹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타협을 끌어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소프트 파워’라고 부르는 것의 완벽한 실천자였으며, 적어도 17세기 중반 이래 유럽에서 가장 세련되었다는 프랑스 요리의 명성을 활용해 중요한 국익을 추구했다. 그는 유럽 정치를 재편할 협상을 위해 빈 회의에 참석하고자 출발하면서 “폐하, 지시 말씀보다 소스팬이 더 필요합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p. 276]

 

이처럼 음식을 매개로 프랑스 역사의 어두운 이면까지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프랑스의 다채로운 음식과 역사,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누군가가 한국의 음식과 역사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시선으로 글을 쓴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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