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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평점 :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일본 건축의 대중화를 이끈, 일본 3세대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 ]는 여러 모로 유명하다. 일단 그의 이력이 특이하다. 프로복싱 선수 출신이라는 경력이나 고졸이라는 학력 모두 일반적인 건축가와 다르다. 거기에 그는 건축을 독학했다. 그렇기에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라는 이명(異名)을 지닌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선 현재, 그의 삶은 밑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첫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보면 뭔가 건축가로 성공할 수 있는 비법 혹은 자신의 성공담이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 책을 고희(古稀)를 앞둔 시점에 내놓았으니 그런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부정한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다.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거듭해 온 이 무뚝뚝한 자전을 읽고 한국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인생에 용기를 가져준다면 좋겠다. [p. 5]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그림자
안도 다다오는 독학으로 건축을 배우는 과정에서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건축은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하지만 ‘물’이나 ‘빛’ 같은 자연적 요소와의 융합을 꾀함으로써,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차갑지 않은 느낌을 받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콘크리트를 사용하되, 그 안의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을 배려하는 건축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을 배려했다는 것과 인간이 생활하기 편리하다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그의 처녀작인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1976)은 그가 일관적으로 추구하는 노출 콘크리트를 소재로 간결하고 독창적인 건축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경향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내부 중앙에 하늘을 향해 개방된 중정(中庭)이 배치되어 있어 하늘과 바람, 빛이 자연스럽게 드나들어, 도시 안에서 자연을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 대신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좁은 집의 1/3을 차지하는, 지붕 없는 중정(中庭)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면 서재에서 마루로 가는 동안 우산을 써야 하는 등 일상 생활에 있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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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p. 89
건축 설계의 목적이란 합리적이고 경제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쾌적한 건물을 짓는 것이다. 닫힌 실내에서 숨죽이고 사는 것과 다소 불편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호흡 할 수 있는 생활 중에 어느 쪽이 더 ‘쾌적’할까. 이것을 결정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일상생활과 가치관의 문제까지 살펴서 궁리한다면 건축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지며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p. 335]
관점의 차이겠지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생활공간이라면, 나는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안도 다다오의 ‘쾌적한 건물’보다 생활하기 편리한 건물을 선택할 것이다.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이나 교회, 성당, 절 같은 종교시설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굳이 몸과 마음을 쉬는 공간인 생활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투쟁적인 건축가가 되기까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 학연이나 혈연 등 아무런 배경 없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맨바닥에 헤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안도 다다오가 뭔가 시작해도 거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어쩌면 1%의 가능성도 사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성공했다. 그의 성공은 기성의 개념과 고정관념, 경제적인 제약 등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결과다. 그래서 그를 ‘가장 투쟁적인 건축가’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령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있다면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 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정보화가 발달하고 고도로 관리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볕이 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중략 ~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늘. 이것이 건축 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pp. 417~419]
노출 콘크리트가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가 처음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은 가성비가 좋은 재료이자 공법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0년대 내가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미학적 의도에서만은 아니었다. 벽 안팎을 단번에 마감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는 제한된 예산과 대지에서 최대한 커다란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p. 170]
하지만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에서 다른 의미를 찾았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공장에서 품질 관리를 할 수 없는 ‘현장 작업’이기 때문에 조건 여하에 따라 마감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는 난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재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콘크리트라고 해도 르 코르뷔지에의 라투레트수도원 같은 강력하고 거친 표현도 있고, 칸의 킴벨미술관 같은 단정한 표현도 있다. 즉, 건축가의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라는 것이다. [pp. 170~171]
그렇다고 그가 노출 콘크리트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서양식 주택을 짓고 모여 살던, 고베의 주택가에 위치한 ‘로즈 가든’(1977)은 노출 콘크리트를 배제한 작품이다. 이 건축물은 다소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거리 보존과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벽돌 벽과 합각지붕 디자인이라는 이진칸[異人館] 고유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있다.
로즈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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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p. 129
또한 안도 다다오는 도큐토요코선[東急東橫線]의 시부야역[渋谷驛](2008)에 지하 깊은 곳까지 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보이드(void)를 ‘달걀’ 모양의 껍데기로 둘러싼 지중선(地中船)의 형태를 제안했다. 이 ‘달걀’에 덮인 원룸형 역사를 지하 공간의 채광, 통풍, 방습을 위해 설치된 통로 드라이 에어리어와 연결하고, ‘달걀’ 껍데기의 재료로 일반 콘크리트가 아니라 안에 빈 공간이 있는 GRC(Glass fiber Reinforced Concrete)를 채택하여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환기가 가능한 ‘자연 환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점에서 환경파괴적인 노출 콘크리트가 대표하는 이미지와 달리 그가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경제의 세기[20C]’에서 ‘환경의 세기[21C]’로의 전환을 고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도큐토요코선[東急東橫線]의 시부야역[渋谷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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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p. 328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에 책 날개에
생각의 자유를 잃지 않는 열정을 청춘이라 한다면 그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방법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다.
라고 얘기한 것 같다.
여전히 청춘인 안도 다다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이만 그의 자서전을 덮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