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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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박자 느린 여행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차례 봐서 그런 것일까? 왠지 청량한 파란색의 아줄레주(Azulejo) 타일 벽화가 인상적인 이 책의 표지에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 책,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은 제목에서 여행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흔들의자나 등받이 의자에 기대고 옆 테이블에 놓인 커피 향기를 즐기며 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제목도 신호음이 들리자 마자 허겁지겁 뛰는 것이 아니라 ‘반 박자’의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자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보니

 

한 박자 반 정도 느린 편이다, 나는. 한 박자 서두른 게 분명했는데, 한 박자 반만큼 뒤처지니 다시 그만큼 뒤에 있다. [p. 4]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했다. 어? 도대체 어떤 여행을 하자는 거지? 설마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겪어 왔던 패키지 여행처럼 서두르는 여행을 하자는 것인가? 모두다 알다시피 해외 여행을 패키지로 출발하면 게임에서 주어진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정해진 무엇을 시간에 쫓기듯이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다가 인증 사진 몇 장을 남기거나 기념품 몇 개를 사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다행히 저자의 포르투갈 여행은 한 박자 빠른 여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느리게 혹은 쉬엄쉬엄 순간순간을 즐기는 여행이었다.

 

햇살은 커다란 창이 난 곳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커튼 그림자가 출렁거렸다기지개를 쭉 켜고 침대 옆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보니 오전 7시다. 블루투스 오디오를 켰다. 호텔 로비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방에서도 들을 수 있다. 포르투갈에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잔잔하고도 리드미컬한 노래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30분을 더 가만히 누워있었다[pp. 232~233]

 

그래. 여행이라면 이런 여유 정도는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의 즐거움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이국적인 먹거리일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사람들은 요리를 하고, 함께 그 음식을 나눠 먹는 데 시간을 쏟는다. 서민들의 삶과 역사가 담긴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와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더 맛있게 느껴진다. 천연 재료의 맛을 살린 담백한 요리가 많은 이유는 직접 잡은 물고기, 직접 키운 야채와 포도처럼 신선한 식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포르투갈에서는 음식의 역할이 중요하다. [p. 271]

 

포르투갈’하면 떠오르는 먹거리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에그타르트다. 포르투갈에서는 이를 ‘나타(nata)’, 정확히는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에그타르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저자가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먹으면 행복해진다는, 리스본 벨렘지구에 있는 ‘Pasteis de Belem’1)의 에그타르트의 맛이 궁금해졌다. 그때 함께 마신 에스프레소의 맛도!

사실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은 기대치가 높아져서 어지간한 맛에는 실망하게 되기 쉽다. 심지어 나는 마카오에서 로즈 스토우즈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 [安德魯餠店])’의 에그타르트를 먹고, 맛은 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 곳의 에그타르트를 맛보지 않고 귀국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픈 일’이라고 소개받은 에그타르트는 불행히도 내 영혼을 사로잡을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와인이라고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프랑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포르투갈에도 와인이 있다. 그것도 영국에서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을 대체하기 위해 선택한! 그 와인이 포르투갈 북부 도우루(Douro) 강 상류 인근에서 생산되는 포트 와인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수십 개의 와이너리 투어가 있다는데, 저자는 포르투갈 여행기간이 충분하지 않거나 와이너리 투어에 큰 관심이 없다면 대형 와이너리를 추천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좁은 골목을 오래 걸어가 발견했던 아우구스투스 와이너리 투어와 같은 각자의 신념과 전통을 이어가는 작은 와이너리의 매력도 피력한다.

 

포르투갈 요리의 대표적인 식재료가 소금절인 대구인 바갈라우(Bacalhau)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문어 요리를 찾는 장면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거의 매일 문어 요리를 먹은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에서 매일 먹는 문어 요리는 오늘도 예외가 없다. 운 대구와 오징어, 야채와 감자를 곁들여 식감을 달리하며 먹는 식사는 더 재미있다. [p. 139]

 

알고 보니 문어[Polvo]도 포르투갈 요리의 대표적인 식재료 가운데 하나였다.

 

 

먹거리만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다. 그저 이국적인 먹거리를 음미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여행을 가지 않고, 국내에 들어온 각 나라 요리의 전문점을 방문해도 무방할 일이다. 아무래도 즐길 거리도 있어야 여행에 흥이 난다.

한국의 판소리처럼 포르투갈에도 민속음악이 있다. ‘파두(Fado)2)’라고 하는 이 음악은 판소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첫 파두 레스트랑에서는 두 명씩 온 여행자들에게 4인 테이블을 공유하길 권하면서 빈자리가 없게끔 공간을 꽉 채웠다. 일하는 직원은 느렸고, 사람이 많아 주문이 밀렸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었기에 로컬 음식 위주로 파는 것 같았다. 심지어 영어 메뉴가 없어서 심혈을 기울여 골라야 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프랑스에서 왔다는 옆자리에 앉은 두 여행자들과 간단한 일상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예상치 못한 순간이 불이 꺼졌고, 어둠 속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았다. 오브리가다(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그 순간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목청 좋은 한 파디스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때의 강렬한 전율을 잊지 못한다. 여자와 남자가 주고받듯 노래를 하며, 레스토랑 그 좁은 테이블 사이를 조금씩 이동하기까지 한다. 사각지대에 있는 손님을 위한 배려였을까. 둘의 고혹적인 목소리에 빠져들 때쯤 저쪽 코너에서 다른 가수 한 명이 합류한다. 그렇게 또 한 명이 더 합류했고…. 자유롭게 노래하는 파디스트의 향연에 여행자들은 카메라를 꺼냈지만, 아무도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았고,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차피 어두워서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과 연주와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밥이 나왔지만 배고픔도 잊은 채였다. 그 작은 로컬 레스토랑에서의 파두 가수들은 식당의 여행자들과 소통하며 노래하고 있었다밝은 노래는 몸짓으로, 슬픈 선율은 눈빛으로 허공에 만들어낸 그들의 손짓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마음을 울리며. [pp. 169~170]

 

다만, 그녀가 들은 두 번째이자 보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들은 파두는 그때의 전율을 다시 한번 안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좀더 고급지고 세련된 멋을 얻는 대신 서민의 삶에서 나온 날 것의 감정을 놓친 것이 아닐까?

 

마치 홍보대사도 된 듯이 포르투갈 여행을 가는 사람마다 오비두스(Obidos)를 추천했다가 후회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마다 혹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여행지의 느낌은 다 다를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하는 질문에 지금의 나는 다른 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내가 겪고 있는 시절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중략 ~

내가 겪은 계절과 당신의 계절의 온도는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p. 122]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1) 원조 에그타르트 맛집이라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Pasteis de Belem)에 대해서는 오봉파리(obonparis)라는 사이트의 포스팅(https://www.obonparis.com/ko/magazine/pasteis-de-belem-lisbon)이 유용하다.

2) 파두(Fado)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민속 음악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우다드(Saudade)가 서려 있다. 흔히 우리나라의 한(恨)과 비슷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원망이나 억울함, 안타까워 응어리진 마음과는 다르다. 향수, 그리움, 열정, 운명, 질투와 슬픔, 좌절과 용기가 어린 그들의 삶이자 정서이다. 그렇다고 한없이 우울해하거나 슬퍼할 이유도 없다. 삶의 질감이 드러나는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파두라는 것일 뿐, 일상생활에서는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정도의 의미로도 가볍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p.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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